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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59화 (59/87)

〈 59화 〉 안녕

* * *

어떤 이유에서건, 종착지가 어디이건, 동경하는 이와 격렬히 맞부딪친다는 것은 참으로 낭만적인 일이다.

개인적인, 아주 오랜 생각이다.

챙─. 채앵──.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수리검을 맞부딪친다.

연격(?)을 이루는 일격(一?) 하나하나에 온 힘을 쏟아낸다.

마틸다를 해치기 싫다는 덜떨어진 생각으로 비수를 휘두르는 것이 아닌, 반드시 죽인다는 생각으로 손을 움직인다.

──나는, 내 롤 모델을 죽이고 싶지 않아!

그딴 마음가짐으로 싸움에 임했다간 계속 목덜미를 노려오는 마틸다의 비수에 목이 베일 것이 분명했다.

‘시험…, 그래, 시험인가.’

나는 금세 그녀가 거칠게 수리검을 베어오는 까닭을 깨달았다.

새까만 복면 위로 슬그머니 보이는 맑은 눈망울은 오로지 나를 직시하고 있었다.

노벨피아 유

그래, 닌자로서 자립하라는 선배님! 스승님의 마지막 시험인 것이다!

‘……크읏!’

나는 감동으로 벅차오르는 눈물을 차마 닦아낼 염두를 내지 못하고, 안간힘으로 입술을 짓씹으면서 참아내었다.

챙챙­. 여전히 계속해서 날아오는 수리검을 받아쳤다.

마틸다의 얼굴 중에 유일하게 보이는 맑은 눈망울을 마주 보며 사색했다.

이 세상에 떨어진 지 이틀째, 외진 골목길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녀는 나를 돈에 미쳐 날뛰는 인파에서 구원해주었고, 닌자의 길로 인도했다.

비상(?上).

아름다웠다.

그녀는 날개를 지니지 않은 인간의 몸으로 푸르른 하늘을 날았다.

나비처럼 날아올라 벌처럼 벽을 박찼다. 앞으로 나아갔다.

원래부터 인간은 땅이 아니라 벽을 박차고 살아가는 생명체라고 말하듯이 가볍게 공중을 부유했다.

그 뛰어난 닌자의 발놀림.

어떤 근육과 동선의 낭비도 없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기동.

그것은 몇 번을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지만, 정말로──.

──아름다웠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닌자상 그 자체. 사심을 조금 넣어보자면, 그녀가 복면을 벗고서 드러낸 쾌활한 미소까지 정말 완벽했다.

평생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한 사람으로서 이만한 운명적 만남은 따로 없었다.

따라서 나는 생각했다.

‘……아이는 몇 명 정도가 좋지.’

진지한 고민이었다.

그리고, 그 고민은 이곳이 던전만 아니었더라면, 빛을 발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주최 측이랄까, 던전의 농간으로 모든 것이 망해버렸다.

챙─. 채앵──.

그렇게 나는 어떤 오해로 인해 운명의 여인과 수리검을 맞대게 되었다.

‘젠자아아아아앙──!!!’

모쏠을 탈출할 마지막 기회였는데! 너무나도 안타깝고, 슬프고, 처량한 운명에 나는 그저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마음을 비웠다.

레옹과 마틸다.

아마도 우린 그 이름처럼 평생 짝짝꿍할 수는 없는 운명이지만, 세상의 유이(?二)한 닌자로서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채앵──.

우리는 수리검을 부딪쳤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든 그녀에게 내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대를 바라보면서 닌자의 기술을, 마음가짐을, 진리를 깨달았노라고!

‘보고 있어? 닌자 선배? 이게 당신을 보고 익힌, 나의 수리검 검식이야!’

조금은 칭찬이 마려웠던 나는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수리검을 내리쳤다.

그 상태로 마틸다의 뜨거운 열망이 담긴 눈동자와 마주했다.

마틸다는 돌연 미간을 일그러뜨리더니 수리검을 거칠게 밀쳐내고는 울분에 북받친 목소리로 악을 썼다.

“이 배신자──!! 나는 믿고 있었는데!”

“……에?”

그 찰나(?).

나는 눈을 끔벅이면서 머리를 굴렸다. 에엣, 지금 그녀가 발하는 감정은 뭐지? 설마 마틸다가 내게 살의와 분노, 배신감을 발산하는 것인가? 진짜로?

‘……일부러 배신한 게 아닌데.’

어떤 사정이 있었습니다. 라고 말해봐야 이해할 수 없겠지.

갑자기 무거워진 마음에 팽팽 머리를 굴리던 나는 결론을 내렸다.

이 또한 콩가루 닌자에 걸맞은, 괜찮은 결말이지 않은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정면의 시선을 필사적으로 피한 채 살초를 받아냈다.

마음이 무거운 것과는 별개로 손놀림은 여전히 민첩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수리검을 막아낼 수 있었다.

우리들의 닌자 매치는 땀을 제물로 바쳐 오래토록 계속되었다.

그러나 무엇이든 언젠가 끝에 다다른다.

털썩─. 녹초가 된 마틸다가 결국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온몸을, 특히 수리검을 주로 쥐었던 오른팔을 파르르 떨어댔다.

전력으로 움직이는 상대를 평생 지속할 수는 없는 것이 당연했다.

반면에 나는 ‘금화신공’이라는 돈 먹는 무한 배터리가 있었다. 그랬기에 닌자복 곳곳에 칼자국이 났지만, 비교적 멀쩡한 모습으로 그녀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크윽, 죽여라!”

마틸다는 가쁜 숨을 내쉬며 증오로 가득 찬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았다. 언젠가 들어본 대사는 덤이었다.

나는 그 매정한 눈빛에 쓴웃음을 지었다. 곧 눈을 감고 그녀를 지나쳤다.

“…….”

“…….”

결국엔 깨닫고 만 것이다.

우리가 결혼식장에 도달하기에는, 자녀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루기에는 너무 먼 길을 돌아와 버렸다는 현실을 직시했다.

이게 운명인 것인가.

나는 안타까움에 이를 꽉 깨문 채 그녀를 남겨두고 앞으로 나아갔다.

마틸다, 나의 닌자 선배님.

나의 롤모델.

어쩌면 다른 차원의 와이프여.

굿바이, 안녕.

그렇게 나는 이별을 겪었다.

* * *

콰아아아아아아앙─────!!!

천지를 울리는 굉음이 들려왔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폭발은 먼 거리에서 일어난 것이었으나 눈이 멀 정도로 눈부셨고,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거웠다.

대폭발(大??).

고층 건물을 간단히 파괴할 수 있는 상급 마법을 수십 중첩에 걸쳐 구축한 걸 떠올리면, 당연한 결과물이었다.

일반적인 생명체는 결코 살아남지 못할 대화재(大火災).

그러나 마녀는 확신했다.

‘……안 죽겠지.’

그녀가 며칠간 알아본 바로 교황은 거의 불사에 가까운 이였다.

철갑보다 단단한 육체를 지니고 있었고, 어찌어찌 그 사지를 찢어낸다고 해도 순식간에 회복해내는 괴물이었다.

레지스탕스의 데이터에 의하면, 산산조각이 났는데도 살아났다고 했다.

그래도 마녀는 이번 것으로 데미지가 충분히 쌓였을 것이라 생각했다.

첫 번째 것으로 죽진 않았어도 그 후에 몰아지는 화염에 지글지글 익게 되겠지.

신혜영은 이렇게 수십 번을 반복한다면, 교황도 결국엔 무너지리라고 확신했다.

아니, 정확히는 믿으려 했다.

차륜전(??戰).

마녀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부족한 전투력을 채우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도시 곳곳을 워프로 오가며, 함정과 유물을 이용해 교황을 불사른다.

혹은──.

──도시 전체를 불사른다.

그렇게 한다면,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육체적으로 교황을 죽이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사회적으로는, 그의 기반을 모두 불태울 수 있을 터였다.

……이진우의 복수를 위해 그녀가 내린 최대한의 타협이었다.

던전의 괴물이라 생각하더라도 인간의 형태를 띤 생명체를 불사르는 것에 거부감이 없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감수하기로 마음먹었다.

[ 악명 : 81 ]

“……마지막에는 한 번에 터뜨려야겠네.”

마녀는 창백한 안색으로 읊조리고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순간 머리가 진탕되는 듯한 고통에 그대로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우읍──.”

신혜영은 바닥에 검붉은 피를 토했다. 그리고, 이내 찾아오는 온몸의 혈류가 역류하는, 장기가 망가지는 감각에 몸부림쳤다.

그것은 사전에 각오했어도 이겨내기 힘든, 극심한 고통이었다.

며칠간 요양도 하지 않고, 계속 상급 마법을 중첩한 부작용.

게다가 그것을 발동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디코이’로 분신의 데미지까지 일부분 받았으니 당연한 결과물이었다.

‘──이대로 쓰러지고 싶다.’

신혜영은 불현듯 그런 연약한 생각을 떠올리고 말았다.

더럽게 아팠다.

본래 계획대로 이행할 수 있는 걸까. 자신의 몸은 생각보다 무른 게 아니었을까. 이거 고통 이전에 버틸 수 있는 문제인 건가?

뇌리를 스치는 수많은 생각과 유혹에 그녀는 눈을 감았다.

언젠가 사랑했던,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녀는 맹렬히 삶을 갈구하는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 뛰고 있는 심장은 누구의 것인가. 자신의 것인가?

아니었다.

아까 전에 내가 뭐라 말했었지?

“……목숨을 걸고서라도 죽인다.”

죽이기 전에 죽어선 안 됐다.

신혜영은 속이 진탕되는 격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손톱을 세운 채로 바닥을 긁고서 겨우 일어난 탓에 나뭇조각이 사이에 박혔다.

“…….”

그러나 그것이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이미 온몸이 더럽게 아팠다.

어쩌면, 정말 복수를 끝마치기 전에 먼저 죽을지도 몰랐다.

그것도 마력 과도 사용으로.

마녀는 피식, 웃었다. 눈을 몇 번 끔벅이고는 정신 나갈 듯한 고통을 주문으로 억눌러 외면했다.

그것으로 넝마가 된 몸의 심각성이 사라지진 않았으나 적어도 두 발로 일어나 여관방을 나설 수 있었다.

그 주문으로 또다시 마력 회로 중의 어딘가가 터져 나갔지만, 뭐 괜찮았다.

안녕 따위는 사후에 찾으면 됐으니까.

신혜영은 당장 수명을 갉아먹는 주문을 읊조리면서 진심으로 생각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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