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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62화 (62/87)

〈 62화 〉 결착(下)

* * *

“크읏, 죽여라…!”

“…….”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바닥에 쓰러진 채로 눈을 치켜뜨는 노파.

누가 보면 내가 파렴치한이고, 노파가 여기사라도 되는 줄 알겠다.

그저 정정당당한 대결 끝에 승리를 거머쥐었을 뿐이거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마저 옥좌의 뒤로 가서 사전에 들은 순서대로 보석들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옥좌는 순식간에 손가락 크기의 열쇠로 바뀌었다.

이는 말 많은 노파가 옥좌의 비밀을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굳이 알아서 이야기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의외로 마법 실력은 괜찮았지.’

방금까지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는 증거로 새까맣게 불탄 흔적과 검의 상흔이 공동 곳곳에 자리해 있다. 놀랍게도 노파는 ‘현자의 시련’에 들어오기 전의 나였다면, 위험했을 정도로 강한 마법사였다.

그 말인즉슨 지금의 내게는 이리엔을 죽이기 전, 에피타이저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뭐, 저 사람 입이 금붕어처럼 가볍지만 않았으면, 흥은 더 났을 텐데.’

나는 괜한 아쉬움에 깊은 숨을 내뱉었다. 필사의 승부 끝의 승리를 원했건만 실상은 자멸하는 래퍼 노파와의 졸전이었다.

아니, 교황의 비밀부터 시작해서 자기 약점까지 말하는 건 도대체 뭔데.

그렇게 내가 속으로 궁시렁거릴 무렵, 띠링­ 익숙한 알림음이 들려왔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별생각 없이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무심코 침음하고 말았다.

“……왓?”

[ 안녕하세요, 천상 코인 거래소의 이용자분들께 알립니다.

오늘부로 ‘모지 코인’은 상장 폐지되어 거래를 취급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희 거래소는 이용자분들께 소소한 위로를 건네는 바이며, 앞으로도 거래소를 애용해주시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부디 오늘 하루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

언제나 깔끔하게 할 말만 하던 시스템치고는 웬일로 메시지가 장황했다.

그러나 그 길이는 상관없었다.

내 눈동자는 곧바로 그중 한 곳에 알아서 주목했으므로.

내 척수가 자동으로 반사할 만큼 불길한 언어에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상장 폐지.

그것은 간단히 말해 나의 소중한 코인을 종잇조각으로 만드는 개소리였다.

아주 끔찍한.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런 개씨발.”

비보(??)였다.

* * *

‘무한 코인교’의 수석 성기사 ‘피아로 노베르’는 지금껏 자신이 무척 차분한 사람이라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의 기억 속에는 자신이 화를 내는 일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환경이 제법 유복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애초부터 그의 천성이 남을 욕하고 열을 내는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피아로는 세상 모든 사람이 반드시 갖춰야 하는 필수교양, ‘투자’를 할 때도 남다른 모습을 보였다.

다른 이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그래프에 일희일비할 때에도 그만큼은 언제나 흔들리지 않고, 장투(??)를 고수했다.

또, 주 종목인 ‘모지 코인’은 매주 봉급이 들어올 때마다 꼬박꼬박 매입했다.

일관적인, 다른 말로 안정적인 투자.

그 덕분일까. 피아로는 하락세 없이 빠르게 재산을 모았고, 수석 성기사라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저 말만으로는 굉장히 쉬운 것이지만, 십수 년간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고집해 이뤄낸 결실이었다.

피아로는 여전히 차분하고, 겸손한 성격대로 나이에 비해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결코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삶의 든든한 기둥이 생겼다고만 생각한 채, 장투와 모지 코인에 자금을 때려 박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아, 넣기만 하면 돈이 복사가 된다니 얼마나 크나큰 은총이란 말인가.’

피아로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돈이 복사되리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렇기에 언제나 차분하던 피아로는 순간 알아채지 못했다.

이것은 누구의 비명이란 말인가.

하늘에서 광휘의 폭발이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신성력이 사라졌다.

그 덕분에 신전의 모든 신관과 성기사는 혼란에 빠졌고, 개중 몇 명이 비명을 지르는 것은 꽤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그중 누군가의 비명이 귓가에 때려 박히는 것이리라고 잠깐 생각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리고, 피아로는 닭똥 같은 눈물을 서글프게 주륵주륵 흘려댔다.

그는 자신이 아이처럼 울부짖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도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엉엉 울어 재끼리라고는 말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를 탓하지는 못하리라.

그야……,

[ 상장폐지 ]

전 재산의 대부분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슬프고 억울한 일이었고, 현재 항구도시 ‘모지’의 시민 모두가 직면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째서 이런 개 같은 상황을 마주해야 하는 걸까.

그들은 엉엉, 울부짖다가 문득 생각했다.

그리고, 곧 직전까지 연달아 일어났던 거대한 폭발을 떠올렸다.

……상식적으로 성난 불길에 뛰어드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러나 도시의 신관들은, 성기사들은, 시민들은 그런 지극히 상식적인 것을 머리에 붙잡을 수 있을 정도로 정상적이지 못했다.

피아로는 미친 듯이 실성하면서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머릿속을 채운 것은 내 코인, 내 돈, 당장 돌려내.

오직 그것들뿐이었다.

그는 텅 빈 상실감에 여전히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면서도 길가를 달렸다.

내 돈 내놔아아아아아!

내 코인이 사라진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으리란 생각으로.

어떤 광기에 의해 피아로는, 군중은 화마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그 길목에는 마녀가 있었다.

* * *

어째서일까.

온 세상이, 하늘이 파랗고, 맑았다.

누군가에게는 비보의 색상이건만, 신혜영에겐 쾌청한 것으로만 받아들여졌다.

복수를 끝마쳤기에 비가 그친 걸까.

하늘나라에 있는 진우 씨가 나를 향해 활짝 웃고 있는 걸까.

정말 고맙다고, 잘해줬다고.

마녀는 한 톨의 마력도 움직일 수 없는 탈력감을, 멀리서 들려오는 성난 군중의 발소리에 어떤 결말을 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미소를 지었다.

이진우의 시체와 함께 복귀하지 못 하는 것이 흠이었으나 괜찮았다.

최소한의 목표는 이뤘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마녀의 눈동자는 죽음에 초연했고, 표정은 평온했다.

모든 걸 끝마쳤다는 안도감 말고는 어떤 두려움도, 불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귀환석을 발동시킬 약간의 마력이 없어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이건만 오롯이 자리에 서서 운명을 기다렸다.

담담하게.

이제는 눈을 뜰 기력조차 남지 않아 가만히 눈을 감고서 어린 시절부터 스무 살인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반추했다.

다른 평범한 아이들처럼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마법의 존재와 종말의 예언을 깨닫고 필사적으로 마(?)를 연마하고, 삶을 갈구하던 중고등학교 때.

또, 본격적으로 마법사로 활동하기 시작한 올해까지 빠르게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사랑하는 부모님.

이제는 얼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 친구들.

아직도 간간이 연락하는 중고등학교 친구들.

마탑 동료 연금술사들.

망할 놈의 텃세를 부리던 원정대원들.

그리고, 어째서인지 이진우.

‘……으음, 뭐지. 그래도 뭐, 나쁘지는 않네.’

신혜영은 죽음을 앞두고서 자신의 삶에 만족했다. 분명 아쉬운 일이 많았다. 미련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녀는 제법 괜찮은 삶이지 않았나 생각했다.

다만 후회는 있었다.

만약 며칠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신혜영은 괜히 아쉬운 마음에 씁쓸한 미소를 짓다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무도 안 오지?’

근위병이건, 신관이건, 시민이건, 진작에 누군가가 접근할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아무도 그녀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게다가 무슨 코끼리 떼가 몰려오는 듯한 발소리가 귓가를 울렸던 아까와는 달리 이상할 정도로 고요한 지금.

이상하다.

“…….”

신혜영은 입술을 깨물고, 마른 침을 삼키고는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의외로 눈은 쉽게 뜨였다.

간신히 호흡만을 이어가던, 그대로 눈을 뜨지 못하고 절명할 것 같던 몸뚱이치고는 의외로 산뜻한 감각이 선명하게 맴돌았다.

신혜영은 살짝 입술을 벌렸다.

자신의 앞에 누군가 도착한다면, 분명 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웬일로 흑의(??) 차림의 인물이 눈앞에 서 있었다.

……레지스탕스.

그러나 마녀는 마냥 자신을 구하러 왔으리라고 방심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서로 이해가 맞닿았을 뿐이지 동료나 친구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어쩌면 대마녀의 후예를 전격적으로 해부해 마도의 발판으로 삼겠다! 같이 사특한 생각을 품고 있을지도 몰랐다.

신혜영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흑의인을 주시하다가 곧 새로운 사실을 알아차렸다.

……누군가와 체격이 상당히 닮았다. 그런 생각이 들 무렵, 흑의인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손을 올려 두건을 벗었다.

그리고, 그는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친근하게 물어왔다.

“요, 가출은 즐거우셨는감.”

“…….”

뭐지, 어느새 하늘나라에 도착한 건가.

아, 그러면 모든 게 말이 된다.

신혜영은 피식 웃고는 부릅뜬 눈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터벅터벅,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곧 이진우의 면전에 다다랐다.

그리고, 그녀는 생전에 하고 싶었던 것을 그대로 이루려 발뒤꿈치를 들어 올렸다.

쪽,

입을 맞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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