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63화 (63/87)

〈 63화 〉 후일담

* * *

먹구름이 개었다.

온종일 호우를 쏟아내던 폭풍이 멈췄다.

밤늦게까지 도시를 불살랐던 화마가 끝내 바스러졌다.

이윽고 날이 지나갔다.

푸르른 하늘 위로 붉은 태양이 솟아올랐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신전 사람들은 여전히 사라진 신과 코인과 교황님을 찾으며 엉엉 울부짖었다.

죽은 이들의 가족과 친우는 그들끼리 눈물을 흘리며 상처를 위로했다.

관료들은 전소된 도시의 광경을 바라보고는 경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떻게든 복구할 계획을 짜내기 시작했다.

던전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동감 있는 재앙의 현장이었다.

그리고, 그 시각 남녀는 단둘이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동산을 거닐었다.

사박사박,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풀 밟히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잡초에 맞힌 물방울이 새까만 암행복에 달라붙어 그를 적셨다.

남자는 그를 전혀 상관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발걸음을 이어갔다.

자신과 같은 나이 또래의 등에 업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 무게에 휘청거리지 않고, 단단한 발걸음을 연이어 내디디며, 천천히 언덕을 올랐다.

누군가 그 모습을 본다면, 훈련된 병사라 생각할 만큼 절도 있고, 규칙적인 발걸음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의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얼굴과 그녀의 오금을 바친 와중 무안함에 움찔거리는 손가락까지 발견한다면 분명 생각이 달라지리라. 더 깊게는 매우 긴장한 온몸의 근육들을 본다면 말이다.

아아, 사실 저 남자의 단단한 발걸음은 병사의 행군 같은 것이 아니라 로봇의 직립보행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열심히 언덕을 오르던 이진우는 불현듯 고개를 들어 올리고는 붉게 이글거리는 태양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시발,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인고.’

곤란하다.

이진우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등에 매달린 신혜영을 힐끗 바라보았다.

복권 당첨이라도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굉장히 행복해 보이면서도 어떤 걱정도 없는 듯한 평온한 얼굴이다.

“……에휴.”

가출 소녀 신혜영과 재회한 것은 분명한 쾌거였다.

노벨피아 유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은연중 그녀의 행방을 얼마나 걱정했던가.

도대체 어디서 태운 것인지 살결이 죄다 그을린 상태가 되어 일진 포스를 내뿜는 것을 제외하면 참 좋다고…….

주르륵──. 지금 당장 식은땀을 흘리는 이진우는 그녀를 막 재회했을 당시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째서, 도대체, 와이? 왓? 무슨 짓을 하려고!’

이진우는 신혜영이 몹시 화가 난 상태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것도 엄청나게 독한 선택과 행동을 태연히 할 정도로 말이다.

물론 지금 그녀의 모습에서는 한 띠끌의 분노도 찾을 수 없고, 지극히 평화롭다.

넝마가 된 채로 거의 죽기 직전에 이르렀던 신혜영을 떠올리면, 완전 개고생을 한 듯한 모양새였으니 고생 끝에 친우의 소중함을 깨닫고 잘 대해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볼뽀뽀를?’

그리 중얼거린 이진우는 일순간 뇌리를 스치는 기억에 눈을 질끈 감았다. 도대체 얼마나 화를 내려고 이런 공격을 벌써부터 서슴지 않게 하는 것인가.

볼뽀뽀에, 어부바라니…….

유한나를 제외하고는 이성 친구가 전무한 그는 여성과의 접촉이 익숙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향후 전개가 두려울 따름이었다.

나중에 청산할 업보가 두렵다──!!! 속으로 비명을 지른 이진우는 멍하니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걸었다.

그리고, 이내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경직된 표정을 풀었다.

그는 긴 고뇌 끝에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시발, 될 대로 되라지.

“아아, 포기하니까 마음이 편하구만.”

이진우는 나지막이, 혹은 허탈하게 중얼거리고서는 여전히 경직된 발걸음으로 푸르른 언덕을 올랐다.

“……동산.”

“그래, 네 말대로 동산 왔어. 그러니까 제발 용서해줘.”

신혜영의 잠꼬대에 가까운 중얼거림에 필사적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은 덤이었다. 그에 소녀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바보, 멍청이.”

“…….”

그렇게 이진우라는 이름의 로봇은 동산에서 소풍을 즐기는 꿈을 꾸던 주인이 깨어나기까지 삐걱삐걱, 경직된 몸놀림으로 계속 언덕 위를 맴돌았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 신혜영이 천국이 아니라 사실을 깨닫고, 온종일 비명을 지른 것이 그리 먼일이 아니었다.

바로 옆에 있던 이진우는 억울하게 스무 대는 얻어맞았다.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 뿐인 이야기다.

“……시발.”

언제나처럼 사무실 책상 위의 서류를 하나씩 처리해나가던 이리엔은 오늘 들어온 따끈따끈한 보고서를 읽으며 대략 세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선 첫째로는 특급 서류 노예였던 이진우가 ‘현자의 시련’이란 던전을 성공적으로 공략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래, 건방진 놈이 나름 성과를 보였다는 것에 배알이 꼴리지만,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하며 미간을 꿈틀거리던 이리엔은 다음 소식에 경악했다.

무슨 과정으로, 방법으로 오른 것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지만, 이진우가 적(赤) 등위에 올랐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이거 사기 아니야?”

이리엔은 온종일 ‘시발, 사장 죽일 거야. 상사 죽일 거야…….’라고 중얼거리던 부하 직원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시발, 도대체 각성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고위 마법사로 취급받는 ‘적’ 등위에 오른단 말인가.

설마 ‘현자의 시련’이 그저 그런 미공략 던전이 아니라 숨겨진, 그것도 원큐에 승급을 시켜버리는 특별한 각성 던전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진우가 본래부터 모든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엄청난 마력과 신체 재능을 지닌 인재였다던가?

뭐, 그래, 거기까지도 아무래도 좋았다. 붉은 머리의 회사원은 본인의 삶만 영원히 평안할 수 있다면 남이 어떻게 살건 신경을 쓰지 않은 주의인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영원히 외면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은 세 번째 사실에 비하면 말이다.

“……시발.”

이리엔은 유일하게 머릿속에 떠오른 욕지거리를 입밖에 내뱉으며, 쿵쾅쿵쾅 뛰고 있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사무실 한쪽에 펄럭이는 달력을 보면, 오늘의 날짜는 6월 9일 수요일.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일의 날짜는 6월 10일 목요일이었다.

그래, 내일은…….

──덤벼, 시발년아.

한 달 전, 그녀가 이진우와 마력의 맹세로 약속했던 운명의 데스매치 날이었다.

“──아아.”

그 사실을 아주 명확하게 떠올린 이리엔은 몸을 부들거리며 침음했다.

이내 그녀는 온종일 열심히 움직였던 깃펜을 멈추고, 손에 들린 서류를 책상에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파들거리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필사적으로 심호흡했다.

후하후하,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안정이 필요했다.

괜한 긴장과 불안이 온몸을 감쌌기에.

그러나 한편으로, 그녀는 내가 왜 이딴 걱정을 해야 하는지 분노를 실감했다.

어쩌면 굴욕감일지도 모른다.

“────후우.”

이리엔은 마지막으로 깊게 숨을 내쉬었다. 왠지 조금 차분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그러다가 툭, 읊조렸다.

“시발.”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났다.

시발, 이게 말이 돼? 신입 직원이 하늘 같은 상사한테 막고라를 신청하는 게?

얼굴을 잔뜩 찌푸린 그녀는 가쁜 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발걸음을 바쁘게 옮겼다. 승리를 확실히 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 * *

그 세상은 광활했다.

온갖 괴수와 장애물, 환경으로 공략이 지체된다고는 하지만, 서울과 부산을 한 시간이면 가볍게 주파할 수 있는 이들이 보름에 걸쳐 이동해야 끝에 다다를 정도로 험난했고, 긴 여정이었다.

사막(??)과 대해(大?).

설원(雪?)과 수림(??).

화산(火山)과 무저갱(無??).

지금까지 경험했던 던전 중에서 수위에 들 정도로 환경의 변화가 제멋대로였다.

물론 거의 끝에 다다른 지금 와서는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였다.

뭐, 각 환경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겠지.

유한나는 그리 추측하며 바위 위에 걸터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냥 초장에 좀 덤비지.”

결국, 이진우와의 동거를 만끽할 수 있었던 보름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유한나는 그 사실에 극심한 분노와 억울함을 느끼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불현듯 그녀는 족칠 누군가가 없는지 주위를 차분히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선혈이 바다를 이룬 구덩이의 광경을 다시 확인하고는 생존자를 찾는 것을 포기했다.

──그냥 한 놈은 살려둘걸.

유한나는 막심한 후회를 느끼면서 그대로 드러누웠다.

이번 던전의 보스몹은 찾아가는 게 아닌, 기다려야만 만날 수 있는 생명체였다.

빨리 던전에서 나가고픈 그녀로서는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었다.

‘제발 빨리 와라.’

유한나는 간절히 소망했다. 시간이 지체되는 상황에 조바심을 느끼기도 했고, 일단 화풀이를 위한 대상이 절실히 필요했다.

──아, 시발.

어째서인지 기분이 더럽게 불쾌했다.

“진우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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