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파이어 펀치
* * *
와장창──! 파멸적인 파쇄음이 콜로세움에 울려 퍼졌다.
누군가의 안면이 파괴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아직까진 그 앞에 펼쳐진 보호막의 균열을 만들어내는 소리에 불과했다.
끼기기기기기긱──! 급조된 보호막이 비명을 질러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그에 이리엔은 안간힘을 써가며 보호막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시전 속도를 우선으로 마법의 발현, 그 결과물의 강도는 미덥지 못했다.
주먹이 조금이라도 더 파고든다면 산산이 조각날 것이 분명했다.
……그리된다면, 저 불타는 건담 주먹이 안면에 틀어박히는 것도, 살갗을 지글지글 태우는 것도 필연이겠지.
의외로 피부미용에 관심이 많은 그녀로서는 부디 피하고픈 일이었다.
“WRRYYYYYYY────!!!!!”
하지만, 무자비한 닌자는 그런 그녀의 사정을 쥐뿔도 신경 쓰지 않았다.
전혀 그래 주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떻게든 박살내겠다는 의지가 닌자의 부릅뜬 눈에서 느껴졌다.
쾅쾅쾅!
닌자는 비틀비틀 흔들리는 보호막에 연달아 주먹을 박아넣었다.
수 초간 파멸적인 닌자의 권격(??)이 한곳에 수백 번 이루어졌다.
그 압도적인 폭력에 보호막은 비명을 질러대며 균열을 늘려갔다.
그리고, 보호막의 균열이 완연해진 것이 육안으로 보일 무렵.
닌자는 돌연 자세를 바로 잡았다.
붉은 머리 악덕 상사는 그 모습을 보고 무언가 오겠구나 직감하고는 보호막에 최대한의 마력을 불어넣었다.
파스스슥──! 닌자의 불꽃 마녀 건담 의수에 화마가 일어났다.
그것은 몇 주간 쌓아온 피땀눈물과 마력과 분노를 한 데 모은 결실.
──파이어 펀치를 내뻗었다.
콰드드득. 지금까지와는 다른 파멸적인 파괴음이 귓전에 들려왔다.
이리엔은 눈을 부릅떴다. 마력 파편이 그녀의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어떻게든 연명시켰던 보호막이 결국엔 운명한 것이었다.
그 파멸적인 광경에 이리엔은 무심코 입술을 짓씹었다.
그래도 그 아릿한 통증 덕분일까.
그녀는 넋을 놓지 않고, 미리 다른 손에 준비한 마법을 펼쳐냈다.
쇼크 웨이브(Shock Wave).
무형의 충격파가 미칠 정도로 강렬하게 닌자의 정면으로 발산되었다.
이리엔은 이것으로 데미지를 주진 못하더라도 거리는 벌릴 수 있으리라고.
잠깐의 여유를 얻는다면, 다시 폭격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은 오직 마법사에게만 두 개의 손을 내려주지 않았다.
사랑스러운 닌자에게도 건담 의수뿐만 아니라 ‘오른손’이란 것을 내려준 것이다.
그래, 이진우에게는 오른손이 있었다. 그 손에 들린 닌자도가 있었다!
닌자는 충격파를 목격한 찰나에, 닌자도에 자신의 마력 대부분을 쏟아내었다.
띠링─!
【불멸의 닌자도】
◆ 전설적인 사무라이가 사용했던 불멸(?)의 닌자도입니다. 절대 파괴되지 않습니다. 대량의 마력을 머금으면 파멸(??)의 청염(?)을 발산합니다.
◆ [ 2,481,952,630 Gold ]
◆ ‘닌자’의 정체성을 가진 이를 위한 아티팩트입니다.
본래는 거상의 직업을 지닌 이진우에게 힘을 빌려주지 않을 닌자도다.
그러나 그가 품은 닌자(?者)의 진심이! 영혼이! 결국 닌자도에도 전해졌다!
[ 파멸(??)의 청염(?)이 피어납니다. ]
칠흑의 닌자…도신에 푸른 불꽃이 피어났다. 귀화가 피어난 듯했다.
그것은 무엇이든 파괴해 없애는 파멸(??)의 힘을 가진 마검(??)……!
아니, 바로 파멸의 마도(??)였다!
그렇게 닌자는 파멸의 불꽃이 피어난 ‘불멸의 닌자도’를 휘둘러 공간을 그어냈다.
……여담으로 이진우는 왼손이 아닌, 오른손잡이였다.
그 덕분일까.
닌자는 조금 전에 날린 왼손의 파이어 펀치보다도 더욱 강력한 마력과 완력을 오른손의 닌자도에 담아낼 수 있었다.
서걱──. 그 뒤에 따라오는 결과는 그야말로 필연적(必??)이었다.
닌자는 이리엔이 준비한 회심의 ‘쇼크 웨이브’를 가뿐히 갈라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뒤에, 그녀가 몰래 완성해가던 마법, ‘폭렬(??)’까지 파괴했다.
“……어?”
이리엔은 멍하니 신음했다.
바보처럼 자신의 마법이 박살나는 꼴을 지켜보았다.
그 어이없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그녀는 잠깐 사고를 이어가지 못했다.
……눈앞의 전직 서류 노예는 마법을 상쇄하는 것도 아니고, 파괴했다.
이 얼마나 높은 경지……. 아니, 얼마나 큰 거금을 들이부은 것일까!
그 놀라운 재력은 분명히 두렵고, 또 두려운 것이었다!
“……하하.”
그렇게 자신의 패배 요인을 알아낸 이리엔은 실소하고, 낙담했다.
또, 포기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닌자의 치명적인 일수(一手)를!
그동안 과로에 시달려온 회사원의 분노! 그것이 결집된 일격(一?)을!
데스매치의 승자로서 내리는 사사로운 징벌의 일권(一?)을!
이리엔은 어느덧 초연한 얼굴로 올곧게 날아오는 이진우를 바라보았다.
“……이런, 씨”
콰직. 온몸으로 받아내었다.
* * *
……닌자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멀리 지평선에 화마(火?)가 일어난 듯한 정열적인 석양.
모든 숙원을 이루어서인지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홀로 오롯이 선 이진우는 그 아름다운 석양에 오른손을 내뻗었다.
그 직후, 어떤 사실을 깨닫고는 몸을 움찔거리더니 조용히 읊조렸다.
“……아, 팔 아파.”
* * *
“좋아, 다 됐네.”
신혜영은 기지개를 켜고는 책상 위의 보고서를 정리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퇴근하는 길에 제출하기만 하면, 그녀에게 주어진 업무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오후 7시가 넘은 늦은 시각이었으나 보고서를 받는 담당 부서는 지원 본부.
팀장인 이리엔이 아니더라도 철야가 많은 곳이다.
그러니 이 시간에도 분명 한 명은 있으리라고 마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신혜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사무실의 수많은 사축을 둘러보았다.
이런, 마음이 아픈 광경이군.
그녀는 잠깐 안쓰럽게 그들을 바라보고는 그나마 낯이 익은 사축에게 다가가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 사축은 살짝 놀랐다는 표정으로 서류더미를 받아들었다.
“에, 벌써요?”
“헤헤, 시간 있을 때 후딱 해버려야죠!”
신혜영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는, 천진한 분위기를 가장하며 말했다.
그리고는 태연하게 복도로 나왔다. 그녀는 서둘러 입꼬리를 감추었다.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의 찬란한 금발을 쥐어뜯듯 움켜쥐었다.
“……으으.”
후속 보고서의 제출 기한은 사축의 말마따나 굉장히 널널했다.
이진우처럼 휴가를 내어 하루를 평안히 보내는 것도 좋았으리라.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쪽!
마녀는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에 이미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더욱 질끈 감았다.
흑역사가, 그날의 기억이 자꾸만 수면 위로 떠 오른다!
그녀는 이불에 이어 침대를 부숴버리기 전, 잡념을 밀어낼 업무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업무로의 도피도 잠시였다. 보고서를 거의 완성했을 무렵부터 악몽이 스멀스멀 몰려오기 시작했다.
쪽쪽쪽쪽, 급기야 입맞춤 소리가 머릿속에 리믹스 버전으로 재생되었다.
신혜영은 머리를 감싸 쥔 채로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야, 쟤 왜 저래.”
“몰러, 똥이 마려운가 보지.”
그 꽈배기처럼 몸을 비튼 모습을 보고, 사축들이 ‘신혜영의 절규’라 이름 붙일 무렵.
그녀는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집, 집, 집, 집, 지이이이입!!! 빨리, 빨리 집에 가야 해!’
상상 이상으로 비명을 지르고픈 충동이 상당했다.
그 욕구를 발산하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방음이 잘 되어 있는 자신의 단독주택으로 가야만 했다.
신혜영은 거의 뜀박질을 하는 속도로 복도를 걸었다.
‘복도에서 뛰면 안 돼요?’라는 초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지 않았다면, 복도를 박살내는 뜀박질을 선보였으리라.
그렇게 마녀는 복도의 창문을 뚫고 날아가고 싶단 생각을 겨우 억누르고, 마침내 1층 로비에 다다를 수 있었다.
“……?”
그러다가 ‘신속화’까지 사용하며 걷던 신혜영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삐뽀삐뽀──! 웬일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올뿐더러 익숙한 마력이 그 소리가 들려오는 쪽에서 둘이나 느껴졌다.
그것도 한쪽은 거의 빈사 상태로.
신혜영은 미심쩍은 표정을 짓고는 슬그머니 동선을 틀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마녀는 콜로세움에 도착했다.
셀베르크 마탑 병원 소속의 비행정 두 대를 목격했다.
그중 한 대는 급하게 하늘로 떠올랐으나 나머지 한 대는 시동만 걸린 채로 여유롭게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다.
“……엑.”
신혜영은 고민했다. 이것은 무슨 공명의 함정인가 하고.
그녀는 뇌리를 스치는 기억에 계속 눈가를 파들거렸지만, 결국 익숙한 마력의 기운을 따라 비행정에 올라탔다.
……혹시 위중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그녀는 간이침대에 눕혀진 닌자를 마주하게 되었다.
신혜영은 눈을 깜빡이며 흐뭇한 표정의 그를 내려다보았다.
이진우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더니 후회 따윈 없는 듯한 표정으로 읊조렸다.
“꿈은 이루어진다.”
그렇게 눈을 감았다.
물론 죽은 것은 아니었다. 몸뚱이는 아주 쌩쌩한 상태였다.
신혜영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이것은 무엇인가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뭐지, 이 병신은.”
그녀는 인상을 잠깐 찌푸리더니 옆에 있던 간호인에게 물었다.
이 사람 오른팔은 왜 손가락 끝까지 전부 깁스로 칭칭 감겨 있냐고.
간호인은 엄숙하게 말했다. 사람을 너무 세게 때렸네요.
제 힘에 제 팔이 탈골된 것이라 했다.
그를 들은 신혜영은 차게 식은 얼굴로 이진우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 건지 닌자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마녀는 한숨을 푹푹, 내뱉었다.
이윽고 그녀는 이마를 탁, 치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러모로 바보 같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