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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68화 (67/87)

〈 68화 〉 창밖

* * *

붉은 머리카락과 통이 큰 환자복의 소매가 선풍기 바람에 흔들렸다.

그 쾌적한 바람에도 커다란 거즈를 붙인 얼굴은 펴지질 않았다.

그저 손을 바쁘게 움직일 뿐이었다.

사각사각, 깃펜이 양피지에 글자를 하나둘 적어나간다.

평소처럼 유려한 필치(??).

그러나 움직이는 속도가 굼벵이와 같다.

손수 펜을 붙잡고 써 내려가는 차이가 있으나 그 때문만은 아니다.

또한, 양피지가 오래도록 아껴온 것이라 신중한 것도, 불세출의 문장을 적기 위해 절차탁마하는 것도 아니었다.

우뚝─.

부러지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앙상한 손목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펜을 부러뜨릴 것처럼 세게 움켜쥐고는 바들바들 떨었다.

그리고, 이내 양피지에 새겨놓았던 글자를 모두 지워냈다.

그렇게 붉은 머리의 여인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새것처럼 여백 가득한 양피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온종일 편지를 쓰다가 가슴이 얹히는 거북함이라도 느끼면 곧바로 전부 지워내 다시 쓰는 것을 반복하는 중이었으므로.

그녀는 흔히 말해 창작의 고통, 비록 예술가는 아닐지언정 그것을 아주 뼈저리게 느끼는 참이었다.

그저 편지에 생각을, 마음을 한 장 적어낼 뿐에 불과하거늘.

종종 활자를 적어내기가 곤란한 계약이나 어려운 업무를 맡은 적은 있었어도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하고픈 말은 많았다. 다만 대가리 속 생각을 어찌 표현해야 하나 막막할 따름이었다. 번뇌의 시간이었다.

“……아.”

오랜 고민 끝에, 여인은 불현듯 어떤 문장을 떠올려냈다.

그녀의 진심(心)을 담담하면서도 오롯이 담아낼 서두.

감정이 채 식기 전에 서둘러 깃펜을 붙잡고 한 자씩 적어나갔다.

사각사각─. 글자는 하나둘 모여 문장을 이루었다.

이리엔입니다…….

붉은 머리의 여인은 가슴 속 온갖 참담함을 뿜어냈다.

빛바랜 양피지에 담아냈다.

자신의 쪽팔림을 넘어 죽고 싶은 마음을 온전히 담아내야 도망칠 수 있으리란 생각에 전력을 다해 사직서를 작성해나갔다.

인수인계도 없이 런하는 것은 그야말로 민폐였지만…….

뭐, 어쩌겠는가.

막고라에서 패배하고, 죽지 못한 이상 늦게라도 자결하던가 이 망할 곳에서 도망가는 것이 그녀에게 주어진 유이한 선택지였다…….

“……다시 생각해도 빡치네.”

동시에 창피했다.

이리엔은 허탈하게 웃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투명한 유리창 너머 화창한 하늘이 시야에 들어왔다.

복잡하고, 암울한 그녀의 마음과는 정반대의, 명쾌하게 빛나는 것이었다.

죽음과 퇴사.

그 기로에 선 여인은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가 돌연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창밖에 편지를 냅다 던졌다.

스르륵­. 창문이 전조와 소리 없이 열리고, 사직서는 병실을 태연하게 벗어나 이윽고 하늘에 닿았다.

종이비행기가 되었다.

바람을 타고, 두둥실 날았다.

어느덧 친구들을 만나 무리를 이루었다. 창천(??)을 가득 채웠다.

그것들은 모두 제각각 다른 장소에서 날아온 편지이며 동시에 위급함을 알리는──.

급보(??)였다.

* * *

어떤 분야이건 상관없이 능통해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한다.

재능의 차를 감안하더라도 그를 위해 흘려야 하는 땀의 최소치가 존재한다.

설령 그것이 하늘의 뜻을 받아 내려온 마법(??)일지라도.

마탑 감찰부 소속 페페 로로쉐는 지금껏 그를 의심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첩보로 들어온 보고서를 읽으며, 자신의 확고했던 신념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불공평하군.”

페페는 입꼬리를 비틀고는 중얼거렸다. 그는 그럼에도 성이 풀리지 않아 고개를 세제 휘저었다. 납득이 가지 않아 서류를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일종의 절차라는 것이 존재하더라도 모든 일에 그것을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대부분 그것을 적용할 수 있기에 ‘절차’는 규범으로써 자리한다.

마탑에 신입 마법사가 새로 들어오는 경우, 보통 한 달간 잡무를 맡는다.

내리갈굼 같은 것이 아니다.

이리저리 사무실에서 치이며 지금껏 알지 못했던 세상에 감을 잡게 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슬슬 익숙해지는 듯싶으면 사수와 함께 던전을 돌기 시작한다. 자신의 품속에 잠들어 있던 마법적 역량을 서서히 이끌어낸다. 진화의 계절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렇게 대략 반년.

첫 이벤트에서 등위가 오르는 극히 드문 사례를 제외하면, 마법사 대부분은 녹(?) 등위에서 반년가량을 머문다.

그런데 이 녀석은──.

페페는 문득 올라오는 화를 느끼며 오만상을 지었다.

“좋아, 뭐 여기까진 그럴 수도 있어.”

운이건 실력이건 기적을 한 번쯤 일으킬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다음 부분에서부터.

페페는 썩은 달걀과도 같은 미소를 지은 채 종잇장을 넘겼다.

──현자의 시련 공략 보고서──

상인(?人)과 마녀(??). 이렇게 단둘이 던전을 파훼했다.

전자는 물건 뽑는 도구이고, 후자는 보조 마법과 연금술이 특기인 직군.

그 와중에 상인이란 작자는 얼마 전에 각성하고, 등위가 오른 신입 중의 신입이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지, 정말.”

게다가 그 둘은 공략에 성공하면서 등위가 올랐다고 한다.

각성 던전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심지어 상인은 바로 얼마 전까지 황(?) 등위…, 아니, 녹(?) 등위였다.

그런데 겨우 던전 하나 공략했다고 적(赤) 등위로?

“……이익, 도대체에! 그게에! 어떻게에 말이 되냐고!!!”

감찰관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쾅쾅! 책상을 내리쳤다.

자신은 적(赤) 등위에, 일개 감찰관에 십 년째 머무르고 있다.

그런데 저 녀석은 삼 개월 만에 자신을 거의 따라잡았다.

그런 불공평한 일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쾅! 쾅! 쾅!

연달아 책상을 내리쳤다.

그렇게 한참 동안 열등감과 분노에 휩싸여 있던 페페의 머릿속에 돌연 기발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 잠깐, 그래,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래, 그래. 이건 비정상적인 일이야. 무언가 속임수가 있는 게 틀림없어.”

페페는 멍하니 중얼거리더니 내리치려던 주먹을 움켜쥐었다. 미세하게 입꼬리를 꿈틀거리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마탑에 들어올 때부터 보고서에 오류가 있던 것이 분명하다.

아니면, 순식간에 경지가 오른 ‘이진우’라는 인물 자체가 거짓이던가.

그렇다면, 녀석이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거짓 신분으로 마탑에 잠입한 이유는 무엇이지? 도대체 무슨 연유로?

이윽고 페페는 확신했다.

“스파이다.”

무신궁인지 길드인지 정확히 어딘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정황상 스파이가 잠입해온 것은 확실한 것이다.

감찰관은 영문 모를 확신을 지닌 채 행동을 개시하였다.

정확히는 그리 믿고 행동하는 감찰관의 모습을 위장하고자 하였다.

‘상대는 유망한 듯한 실적을 보이고 있지만, 결국엔 인맥도 실력도 없는 초짜! 관록으로 밀어붙이면 돼!’

관록(??)이란 이름의 내리갈굼.

지금 이 순간, 그저 질투심이 많은 편에 불과했던 감찰관 페페는 상대가 마탑의 중추까지 들어오기 전, 스파이 의심 죄를 들이밀며 최전방으로 보낼 계획을 꾸몄다.

─너의 충정! 몸으로, 피로써 직접 보이도록 하여라!

살짝이라도 윗선과 끈이 닿는 자신과 다르게 녀석은 아무것도 없을 테다!

평소 고된 업무를 맡지만, 권위는 누구보다 강력한 감찰관의 입바람.

만약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정황이 발견되면, 녀석은 즉시 선량한 감찰관의 고발로 좌천을 당하게 될 것이다.

페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감찰관은 곧바로 조사를 단행하기로 했다.

우선 마녀(??)부터.

메인디시에 앞서 애피타이저를 맛보겠단 생각으로 정한 순서였다.

‘친한 동료의 팔다리부터 잘라 내주지.’

페페는 취조실에 앉아 앞으로 어떻게 할지 흉계를 꾸몄다.

그러던 중, 앞에 누군가 앉는 실루엣이 보였다.

그는 옳다구나, 내심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어이, 너­?”

그리고, 감찰관은 냉랭한 얼굴의 마녀와 눈을 마주쳤다.

꿀꺽, 무심코 침을 삼켰다.

페페는 마치 ‘매혹’ 마법에라도 걸린 듯 거친 심장박동과 낯의 뜨거움을 느꼈다.

세상에, 이럴 수가! 그녀의 찬란한 금발이, 영롱한 적안이, 백옥 같은 피부가 너무나도 매력적! 취향이었다!

베테랑 감찰관은 그렇게 취조 시작부터 상정치 못한 상황을 맞이했다.

페페는 어느 순간 쿵쿵, 두근대는 심장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그는 실낱같은 평정심이라도 유지하려 아예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뭐 하는 녀석이지?’

그리고, 신혜영은 눈살을 찌푸린 채로 감찰관을 노려보았다.

이른 아침부터 부르더니 이게 도대체 무슨 짓거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불편한 침묵의 시간이 십분 가량 이어졌다.

……좋아, 이제 좀 괜찮아진 것 같아.

약간의 평정심을 되찾은 페페는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자아! 네 녀석이 진정으로 무고하다면, 내 눈을 바라보시오!”

“…….”

“……젠장! 이 루비보다 아름다운 눈동자는 무엇이더냐! 그래, 당신은 무고하다! 그러니 어서 나가시오!”

“……?”

“제발 나가시오!”

페페는 책상에 고개를 세게 박고는 다급하게 외쳤고, 마녀는 갑작스러운 축객령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뭐지, 이 미친 새기는.

그녀는 슬쩍 감찰관을 곁눈질하고는 종종걸음으로 취조실을 나섰다.

“…….”

그렇게 취조실에 홀로 남겨진 감찰관은 입술을 짓씹었다.

이게 베테랑 감찰관으로서 무슨 추태였단 말인가.

동시에 그는 마녀의 모습을 곱씹었다.

비록 찰나에 불과했지만, 방금 마주했던 것은 분명 ‘사랑’이었다.

“……아름다웠지.”

페페는 눈을 감고 마녀를 떠올렸다. 고유 능력 ‘진실의 눈’으로 꿰뚫어 본 그녀의 상태창 또한 기억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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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혜영 >

[ 등급 : 적(赤) ]

[ 직업 : 마녀(??), 현자(?者) ]

[ 특성 : 마안(??), 현안(??) ]

[ 능력 : 상급 마법, 창조(??), 개시(??) ]

[ 성향 : 중도(中?), 순진(?) ]

[ 근력 : 22(+9) ] [ 체력 : 21(+11) ]

[ 민첩 : 23(+12) ] [ 지혜 : 61(+18) ]

[ 마력 : 65(+17) ] [ 행운 : 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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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라는 직업과 그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특성.

상급의 초입을 넘어 어느덧 숙련의 단계에 오른 마력과 지혜.

다른 능력치들도 그를 따라가려는 듯 꽤 많이 올랐다.

이것은 아무리 던전을 공략한 성과라 하여도 믿을 수 없는 성장 폭.

그야말로 이레귤러!

그러나 사랑에 콩깍지가 씐 페페는 그냥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잠시나마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 그녀를 곤경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진심으로 스파이의 존재를 의심한 것도 아니었으니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만, 너는 다르다!”

콰앙! 페페는 희번뜩하게 눈을 뜨고서는 책상을 내리쳤다.

연금술로 연성한 책상은 수없이 두드려졌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감찰관 앞의 닌자 또한 마찬가지인 것이었다.

두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 * *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바람은 적당히 서늘했다. 잔잔했다.

햇볕은 따스했지만, 무덥지는 않았다. 불쾌하지 않았다.

새하얀 구름이 하늘을 떠다녔다. 사람 마음을 몰라주고, 태평하게.

“…….”

낙원이 새장으로 변하고, 여인은 그를 벗어나려 노력해왔다.

부수지는 못하더라도 빠져나갈 수는 있게 모든 수단을 강구했다.

그 결과, 마침내 성과를 얻어냈다.

창밖의 하늘을 애틋하게 바라보던 샤오팡은 결국에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눈을 살짝 찡그리고는 책상에 몸을 기대었다.

보주가 녹색 빛을 뿜어냈다.

샤오팡은 그것을 눈에 담으며, 생각했다.

때가 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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