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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69화 (68/87)

〈 69화 〉 하늘

* * *

투둑─. 투두두둑─.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줄기에 잠이 깼다.

익숙치 않은 소리.

반개한 눈으로, 창가를 보니 언제나 새파랗던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껴 있었다.

그야말로 생경한 날씨.

어떤 기묘함에 고개를 갸웃거려보지만, 오늘따라 산뜻한 기분에 안건이 뒤로 밀렸다.

요즘 차마 느끼지 못했던,

누가 오더라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전능의 감각에 걸맞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또각, 또각.

새하얀 대리석 복도에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구두 소리가 났다.

어쩌다 사용인과 마주치면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눴다.

그들은 저택을 관리하는 인원답게 멋들어진 메이드복과 집사복을 갖춰 입었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관망하다가 문득 고개를 내려 지금 내 옷차림새를 훑어보았다.

새파랗게 일렁이는 드레스.

단색에 가깝지만 고급스러운 옷감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허리까지 늘어 드려진 머리카락과 어울리기 때문일까.

평소 입는 것과 다름에도 제법 마음에 들었다.

또각, 또각.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저택을 둘러보았다.

평상시 식구들과 만찬을 즐기는 홀에 들렀다.

어느덧 십 년째 인연을 이어가는 노집사 발데르트가 바쁘게 움직이며 만찬을 준비하고 있었다.

곁으로 다가가 오늘 메뉴는 무엇이냐 묻고 싶었지만, 나중의 즐거움을 위해 인내하기로 했다.

또각, 또각.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무도회장에 도착했다.

저택의 가장 넓은 시설로 양 끝에 축구 골대를 놓아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의 너비.

그 공간이 무색하게도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거늘, 오늘 무슨 날이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무도회장 바닥에 깔린 융단이며, 테이블이며, 그 위의 음식이며 아무래도 연회 중인 듯했다.

한쪽 구석에 익스플로전 전문 마법사 레비가 교향악단의 연주에 맞춰 뛰노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마법 계열끼리 토론하는 대연구실.

언제나 소심한 결계사 드와이스가 열띤 목소리로 마법 이론을 외치는 유일한 장소다.

오늘도 그러했고, 나는 수십 명이 옹기종기 모인 저 자리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을 안간힘으로 참아냈다.

저택 뒤 연무장.

마르코가 열심히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보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행해지는 일이다.

“바보처럼 성실해.”

비틀린 입술 사이로, 문드러진 가슴에서, 마음에도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나는 양옆으로 고개를 저으며 화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도착했다.

아무렇지 않게 형형색색의 꽃밭을 따라 걸었다. 그러던 중, 제비꽃 한 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무심코 따버렸다.

“…….”

빙글빙글 돌리며 손안에서 가지고 놀았다.

보랏빛 꽃송이는 의도대로 태평하게 원을 그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멈췄다.

고개를 들었다.

어느샌가 창공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뚜욱­뚝­.

별안간 핏물이 떨어지며 저택과 꽃밭을 불태웠다.

무자비하게 불살라졌다.

그렇게 온 사방이 불바다가 되었다

불쾌한 일렁거림.

나는 그 역겨운 광경에 눈을 감고, 백 마리의 양을 차분하게 세어 나갔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백.

다시 눈을 뜨니 사무실에 도착해 있었다.

내 연구실이 아니었다.

마법사들의 토론장 역시 아니었다.

그저 못 만난 지가 제법 오래된, 바래진 기억 속 그가 일하고, 또 웃어주던 공간이었다.

“……하아, 제일 기억에 남는 장소가 사무실이라는 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허탈하게.

동시에 안도감을 머금고 말을 내뱉었다.

“────.”

저편에서, 언젠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남자가 자상한 얼굴로 내게 말하고 있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고작 일주일도 제대로 만나지 않은, 이제는 슬슬 눈코입 위치도 가물가물한 상대를──.

꿈에서조차 그리는 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었다.

“뭐지, 얼굴은 잘 안 보이는데 네가 장난스럽게 웃고 있단 건 왠지 잘 알겠어.”

“───.”

“말투가 재수 없네.”

“─.”

“조금 생겼다고 그렇게 의기양양하면 금방 정떨어진다?”

그럼에도 멈추지 못했다.

“……내가 얼굴 보고 반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도대체, 왜 너를 좋아하게 된 걸까.”

신기루보다 의미 없는 것일지라도.

“지금껏 쌓아온 모든 걸 버릴 만큼.”

나는 애타게 갈구했다.

“보고 싶네….”

남자의 입꼬리가 살짝 내려갔다.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마주 보았다.

쓸데없이 요망하기는.

모르는 사이 저 녀석한테 최면에 걸렸거나 이상한 묘약을 먹은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맹렬하게 뛰고 있었다.

“미친 게 분명해.”

그게 아니라면 말이 안 돼.

나는 피식, 웃고는 작은 가위 하나를 만들어냈다.

탁탁, 몇 번 오므려보았다.

그리고는 마법사가 된 이후로 단 한 번도 잘라내지 않은 자신의 정든 일부분을.

창천(??)의 색을 닮은 머리칼.

자유의 계절을 줄곧 함께한 머리카락을 한 움큼 붙잡아 가위 사이에 비집어 넣었다.

“계약을 제시합니다.”

*

샤오팡은 긴 시간 고민했다.

빌어먹을 악마가 걸어놓은 주박을 어떻게 부숴야 할지 연구하고, 또다시 연구했다.

모든 시간을 그에 쏟아부었다.

계약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유한나(갑)’와 계약을 맺는 이 자리의 모든 인원, 개중 ‘샤오팡(을)’은 반드시 이를 준수해야 한다.

──‘을’은 2022년 1월 1일이 될 때까지 최상급 유물 ‘스키드블라드니르’에서 나가지 못한다. ※다만 지구를 제외하고, 다른 세계로의 이동은 허락한다.

──‘을’은 ‘이진우’의 존재를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낸다.

──‘을’의 ‘이진우’와의 조우 및 교류를 일체 불허한다. 설령 이를 기억 못 할지라도 이행해야만 한다.

──‘을’은 향후 ‘갑’에게 공격적인 의도를 품은, 모든 직·간접적 행위를 할 수 없다.

──‘을’은 전투배상금을 지불한다. 그 배상금의 액수와 그를 대신한 물품은 ‘갑’이 결정한다.

마력에, 영혼에, 세상에 규정된 계약.

주체가 강하고 능할수록, 계약 사항이 단순할수록 주박을 파훼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번은 특히 그런 경우에 속했지만, 샤오팡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수천수만 번의 시도를 거듭했다.

예를 들어 이진우를 바보라 부르기로 마음먹었다고 그를 계속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름’은 한 세계의, 한 생명의, 삶의 정체성을 총체적으로 망라하는 마법과도 같은 것,

그 마법을 조작하지 못한 샤오팡은 이진우와 관련된 모든 것을 점차 잊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이건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

샤오팡은 그 이후로 계약을 우회하기보다는 영옥을 통해 힘으로 찍어누르는 노선으로 갈아탔다.

노벨피아 유

노벨피아 소설 총 400,000화 유

그렇게 유물의 지배도를 올리는 데에 한 달을 매진했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단 결론이 나왔다.

영옥을 필요한 만큼 지배하는 것보다 이진우의 존재를 잊는 것이 훨씬 더 빨랐다.

그러던 중, 의외의 곳에서 우회도 가능하고, 주박의 파괴력도 높이는 어떤 수단을 발견했다.

기대받던 어릴 적부터.

모든 이에게 박해받고 별궁에 감금당한 시절.

새장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새롭게 동료를 만나 이상을 그리던 계절.

마침내 자신들의 낙원을 이룬 그 순간까지.

불행하고, 행복하고를 떠나 언제나 그녀는 ‘샤오팡’이었다.

그랬기에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를 위해.”

샤오팡이란 이름을.

“제 사랑을, 순정을, 생명을 제외한 그 외의 모든 것들을.”

삶을.

정체성을.

지금에 이르기까지 과정 대부분을.

“제물로 바치옵니다.”

그 이상의 행복을 마주하기 위함이었다.

“공양을 받으소서.”

서걱, 하늘이 나풀거렸다.

그 순간 샤오팡은 이진우를 바라보았다.

활짝 웃고 있었다.

그러므로 후회 따위는 없었다.

* * *

똑똑─.

마르코는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무정하게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덧 익숙해진 일이었다.

“샤오팡. 밥 놓고 가니까 꼭 챙겨 먹어야 한다? 알겠지? 나중에 내가 확인할 거야?!”

샤오팡 패밀리의 부두목이자 검성, 그리고 식사 배달부는 불퉁한 목소리로 잔소리를 지껄였다.

연구실에 틀어박혀 한 달째 두문불출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무려 오늘 저녁 메뉴가 후라이드 치킨에 제육덮밥인데 먹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마르코는 여느 때처럼 연구실 앞에서 수 분간을 투덜거리다가 트롤리를 놓고 등을 돌렸다.

“……어?”

만약 이변을 깨닫지 않았더라면 그랬을 터였다.

방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콰앙­! 마르코는 그것을 깨닫자마자 마력을 끌어올려 연구실 문짝을 부쉈다.

혹시라도 파편이 튀지 않게 그 자체로 넘어뜨렸다.

그러고는 그 짧은 거리를 필사적으로 뛰어 들어와 방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폈다.

“……샤오팡?”

하지만, 창가의 커튼만이 바람에 일렁일 뿐 방의 주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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