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전운(戰雲)
* * *
황해(??).
“무슨 약이라도 발라놨나.”
마루는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아버지를 따라 바다 낚싯배에 올라탔거늘, 장장 2시간째 입질을 못 느끼고 있었다.
반대편에 자리 잡은 아버지가 숨풍숨풍 들어 올리는 것을 보면 자리가 나쁜 것은 아닌데.
“히야! 월척이다!”
혼자서 우럭 면상을 독차지하는 아버지를 보니 미련하더라도 자리를 바꾸자고 할까 고민되는 것이다.
삼십 분 전만 해도 저 자리에 자신이 앉았으니 달라진 것은 딱히 없을 터다.
하지만,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들아, 던졌으면 휘적거리지 말고, 차분하게 기다리란 말이야. 알겠니?”
마루는 한쪽 입꼬리를 귀까지 올리고서 히죽거리는 아비가 원망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아버지의 뒤통수를 노려보고서는 다시 심기일전하여 루어를 던졌다.
아버지는 우럭만 대여섯을 잡아가는데 자신도 한 마리 정도는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퉁. 저 멀리 날아간 찌가 수면에 파형을 일어냈다.
마루는 부릅뜬 눈으로 낚싯바늘을 노려봤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차분하게.
휘적거리지 말고.
명심하자.
차분하게.
절대 휘적거리지 말고.
제발 명심하자고.
그렇게 홀로 외로운 눈싸움을 이어가길 삼분.
마루의 집중력은 한계에 다다랐다.
흥미가 떨어진 그가 눈을 끔벅거리고는 세월아 네월아 멍을 때리는 일은 예정된 사항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목격한 건 완벽한 우연이었다.
“……어?”
시력 2.0인 마루가 아슬아슬하게 볼 정도로 먼 거리의 수면에 루어가 부딪힌 듯한 파형 ‘수백 개’가 일시에 일어났다.
마루는 불현듯 고개를 들어올렸다.
하늘은 맑았다. 먹구름 하나 없이 화창했다. 적어도 비가 내릴 것 같진 않았다.
“오, 입질 왔냐?”
“아니, 그건 아닌데…….”
마루는 어물쩍 대답하고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
그러나 수면은 이상할 정도로 잔잔했다.
***
여기는 멸마(??). 항구에 다다랐다.
“보고.”
본 궁과 비교해 경계가 허술하고, 영역이 현저히 적다. 요격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
다만, 결계를 불시에 해제하는 사술이 곳곳에 설치돼 있으니 부디 주의하기 바란다.
“알았다. 무운을 비마.”
그리 대답한 광풍대주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눈앞의 광경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잿가루가 흩날렸다.
방금까지 수하였던 이의 흔적이다.
재수도 없이 전보가 오기 직전에 ‘은폐’가 해제되어 일반인에게 존재를 목격당해버렸다.
그리고, 재가 되었다.
그야말로 불명예스러운 죽음이었다.
“……반도의 주술쟁이들이 간악한 술수를 부리는구나.”
이딴 같잖은 짓거리라니.
무인(?人)은 한껏 끌어올린 증오심을 원료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반인은 결코 보지 못할 결계 속의 은밀한 발걸음을 수십의 무인이 뒤따랐다.
그렇게 국경을 넘는 무리가 전국에 수백을 넘겼다.
* * *
악에서 약자를 구원하는 영웅을 꿈꾸는가.
솔직히 어릴 적엔 그런 것을 꿈꿨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굳이 남을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버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미안.”
그런 나의 철딱서니 없는 대답에도 소꿉친구는 웃어주었다. 그냥 도망가는 게 몸도 마음도 편할 것이 분명할 텐데도 나는 부정했고, 그녀는 재차 물어보지 않았다.
내게 과분한 친구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혹시라도 후회하는가.
후회하지 않는다.
정말로 그러한가.
아니, 사실 잘 모르겠다.
나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소꿉친구의 은은한 미소가 자꾸만 머릿속을 가로질렀다.
그냥 런할 걸 그랬나.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모든 위대한 마법사분들께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단상에 올라 자신을 원로원의 일각이라 소개한─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반백의 신사는 고개 숙이며 인사했다.
주위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생각하면, 꼭 나한테 한 이야기는 아닐 테지만 기분이 살짝 상했다.
마법사라고 일반화를 당하는, 상인과 닌자로서의 정체성이 부정당하는 나의 심정을 사람들이 알까.
아마 모르겠지.
쿵쿵, 나는 분노의 엔진을 발동시켰다.
[ 금화신공이 발동 중입니다. ]
심장이 떨렸다.
그 와중에도 눈과 귀는 노신사에게 집중했다.
원로는 꽤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손에 들린 서류를 훑고는 로비의 마법사들에게 말했다.
“오늘부로 셀베르크 마탑 한국 지부는 사라집니다.”
노신사는 뒤이어 말했다.
“동시에 이 자리에서 본단으로 적을 옮길 분과 소속을 포기하실 분을 나누고자 합니다.”
셀베르크의 이름으로 적과 맞서 싸우고자 하는 분은
“거수하십시오.”
나는 번쩍 두 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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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우 >
[ 등급 : 적(赤) ]
[ 직업 : 거상(巨?), 닌자(?者) ]
[ 특성 : 금화신공(???) 4성(成), 탈주닌자(???者) ]
[ 능력 : 거래(??), 매수(??), 매각(?) ]
[ 성향 : 중도(中?), 열혈(?血) ]
[ 근력 : 51 ] [ 체력 : 52 ]
[ 민첩 : 55 ] [ 지혜 : 50 ]
[ 마력 : 60 ] [ 행운 : 80 ]
[ 소지금 : 19, 420, 715, 836, 000 Gol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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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보고 또 봐도 나의 정체성은 탈주닌자인데 어째서 탈주를 안 하는 것일까.
가짜인가?
혹시 나는 가짜 닌자였던 것인가?
“알 수 없군.”
나는 공허하게 중얼거렸다.
제 발로 전쟁터로 향한다는 사실에 대한 허탈함과 의구심이 뒤늦게서야 찾아왔다.
앞으로 마주할 전쟁에 조국을 구한다는 명분이나 명예가 따라오는 것도,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어째서 그곳으로 향하는 것일까.
막말로 전 직장 동료가 죽어 나간다고 해서 내 손가락이 아파져 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너는 왜 가냐.”
옆자리에 앉은 신혜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는 퉁명스러운 얼굴로 노려보면서 입을 우물거리더니 결국 대답했다.
“부모님이 아프셔서 도망도 못 가요. 같이 넘어가려면 돈이랑 업적이 필요해요.”
신혜영은 이능력자를 죽이면, 일정량의 재화와 경험치가 들어온다고 덧붙였다.
미친놈들은 자신들이 살아남으려 쳐들어오는 것이고, 자신은 가족을 지키고, 또 살기 위해 죽이러 가는 것이라고.
그녀도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막막한 것인지 어두운 안색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창가로 몸을 돌렸다.
나도 눈을 감고, 머리를 식혔다.
부우우웅. 곧 부유감과 함께 비행정이 하늘을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돌이킬 수 없었다.
***
전운(戰雲)이 감돌았다.
전보가 사방에서 날아다니는 하늘이건, 행인이 사라진 길거리건 어느 쪽을 봐도 그렇다.
전쟁이 바로 코앞이었다.
“……어제 퇴사하겠다고 말할걸.”
오늘 새벽녘에 깨어난 터라 의미 없는 가정이지만, 그랬다면 지금처럼 도망치는 모양새는 아니었을 터다.
이리엔은 씁쓸한 표정으로 저 멀리 보이는 마탑을 곁눈질했다.
이내 고개를 젓고는 캐리어를 질질 끌고 나아갔다.
혹시 징발이라도 당한다면, 상당히 귀찮고 위험할 것이 분명해 선택한 탈주(??).
수년간 다닌 직장에 후배에게 밀려 사직서를 내는 것도 모자라 물리적으로 도망친다는 데에서 기인하는 굴욕감과 불쾌함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사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그래, 살아야 뭐라도 되는 거야.’
오늘까지는 침략에 안전할 테니 최대한 물자와 재화를 챙겨 이세계로 도망가자.
아무리 척박한 곳이더라도 기반을 잘 쌓는다면 살만하리라.
이리엔은 입가에 억지 미소를 띠며 머릿속에서 긍정적인 생각을 계속 굴려나갔다.
그렇지 않는다면, 어제부로 무너진 자존감으로 인해 멘탈이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았다.
‘일단 집부터 들리자.’
근무 일수의 대부분을 숙직실에서 지닌 덕분에 인테리어가 가물가물한 강변의 아파트.
이리엔은 그곳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장식품을 포함해서지만, 여러 마도구와 소모품이 있었으니 그 가치가 상당했다.
마탑이라는 뒷배 없이 도망치는 그녀로서는 필히 들러야 하는 곳이었다.
“안녕? 병원에 없길래 기다리고 있었어.”
“…….”
그 사실을 유한나도 알았다.
콰앙.
이리엔은 캐리어가 쓰러지는 것은 신경 쓰지도 못하고, 눈앞의 악마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좁은 면적에 비해 막대한 마력이 감도는 푸른 눈동자.
그곳에서 악마의 흥미와 동시에 살기를 느낀 이리엔은 현관에 털썩 주저앉았다.
깜빡.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러자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악마는 어느덧 그녀의 옆에서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아름다운 얼굴에 아름다운 미소.
그러나 그녀를 바라보는 이리엔의 마음은 울렁이다 못해 내장을 그대로 쏟아낼 것만 같았다.
악마는 속삭였다.
“폭언, 과로, 폭행, 살인 미수.”
그리고, 개목걸이.
그 순간,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이리엔은 눈을 감았다.
끝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