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73화 (72/87)

〈 73화 〉 가여워라

* * *

학창시절의 그는 지금과 비슷했다.

“초코바 먹을래?”

이진우는 해맑은 얼굴로 필기를 도와준 반장에게 선물을 내밀었고, 안경을 쓴 미인은 홍조를 띄운 채로 조심스럽게 초코바를 받아들었다.

“…….”

유한나는 미간을 찌푸리고서 그 망할 연놈들을 바라봤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어난 참사.

그녀는 입꼬리를 뻣뻣하게 올리고서 이진우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그의 어깨에 억지로 팔을 걸쳐 내린 뒤,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너 뒤질래?”

“……에, 제가 뭘 잘못했나요?”

잘못이라.

면상이 특출나게 잘생겼고, 자신도 모르게 다른 년을 꼬시는 게 죄라면.

아주 눈치가 없는 것을 죄로 환산할 수 있다면 사형을 선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덧 이진우와 소꿉친구 10년에 다다른 유한나는 인내심이 태평양처럼 넓어졌고 옆구리에 잽을 날리는 것으로 봐줄 수 있게 되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교실 바닥에 널브러져 비명을 지르는 이진우.

그 꼴을 유한나는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다가 벌벌 떨고 있는 반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내 부릅뜨고서 소리 없이 읊조렸다.

‘얘는 내 거야.’

암요, 그렇고말고요.

반장은 재봉틀에라도 빙의한 듯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물리친 여자만 일백에 달했다.

교복 차림의 이진우는 단순히 멋진 걸 넘어서서 파멸적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참 잘 꼬셨지.’

어쩌면 지금도 홀리고 있을지 모른다.

언제나 하는 생각이지만 바보한테 잘생긴 얼굴을 주면 그야말로 범죄였다.

“하아, 진짜 나 없으면 안 된다니까.”

유한나는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 저으며 말했다.

뺨을 타고 핏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 괴리감이 느껴지는 모습에, 이리엔은 바닥에 엎드린 채로 생각했다.

‘시발, 좆됐다.’

미친놈이 가니까 완전 미친년이 찾아왔다.

그 정도도 문제지만, 궤가 아예 달랐다.

이리엔은 덜덜 떨리는 자신의 턱을 억누르면서 눈앞의 광경을 보았다.

피투성이의, 원탁과 옥좌에 널브러진 채 임종을 맞이한 마탑의 원로들.

탑주와 중앙의 대원로를 제외하면, 최대 중진일 한국 지부 원로회가 몰살당했다.

전시 상황에,

그것도 같은 편한테서.

“으음, 이번에는 어디로 가면 좋을까.”

이리엔은 흔들리는 눈으로 이 상황에 입꼬리를 삐죽 올린 미친년을 보았다.

설마 스파이였나?

현재 마탑 최강이라 평가받는 그 혈사자가?

어떻게 하지?

이거 도망칠 수 있나?

아무리 봐도 완전 좆된 것 같은데?

이리엔의 머릿속에 수많은 걱정과 불안이 서로를 교차했다.

눈앞의 미친년한테 무슨 속셈이냐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뭐해, 안 짖어?”

“……멍멍!”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언제나 자신을 싸늘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는 악마가 돌변하면 얼마나 큰 고통이 찾아올지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목줄을 차고서 바닥을 기는 지금 상태만이라도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 나는 애완견이다. 저 미친년의 개야.

“멍멍!”

이리엔은 개똥밭에 굴러도 어떻게든 살아 있는 게 좋으리라 생각하면서 열심히 짖었다.

유한나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후보지를 되뇌었다.

수많은 지부.

또, 수많은 멍청이가 득실거리는 치부.

‘어디를 먼저 칠까.’

도려낼 배신자가 너무나도 많았다.

원정대까지 동원해도 하루는 꼬박 투자해야 할 만큼 받아 처먹은 놈들이 넘쳐났다.

턱을 매만지며 어디를 갈지 고민하던 유한나는 불현듯 고개를 돌렸다.

……영역이 열렸다.

그녀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멍멍! 멍멍멍멍!”

그 살벌한 표정에 겁먹은 이리엔이 필사적으로 짖어댔다.

장내를 가득 채우는 개소리에도 사도는 어딘가를 지그시 노려볼 뿐이었다.

결단을 내렸다.

죽일 대상이 정해졌다.

***

이른 아침.

신혜영과 나는 안내에 따라 광장으로 모였다.

한 사내가 단상에 올라섰다.

“……원정대장이네요.”

그렇게 말하는 신혜영의 얼굴이 짐짓 심각했다.

“뭐, 문제라도 있어?”

“……이런 중대한 자리엔 탑주님이나 대원로님이 올라오는 게 보통이거든요.”

“저 사람 엄청 강해 보이는데 높은 사람 아니야?”

“아니, 높은 사람이긴 한데…….”

마녀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단상의 원정대장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내 대답했다.

“……그, 진우 씨 소꿉친구랑 쌍두마차로 미쳤다 소문난 사람이거든요.”

“……아아.”

“이런 자리 잘 안 올라온다고 들었는데…….”

─아아, 마이크 테스트.

광장에 걸걸한 목소리가 쨍하게 울려퍼졌다.

장내의 모든 인원이 얼굴을 찌푸렸고 원정대장은 머쓱하게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아, 미안하군. 이제 됐으니 안심하게.”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간략히 소개하자면, 현 흑룡 원정대장을 맡은 마르쿠스라고 한다. 그대들의 작전을 지휘하게 된 사람이기도 하지. 으음, 지금 한시가 급하니 바로 브리핑을 진행해볼까.”

그렇게 서두를 띤 원정대장 마르쿠스는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간단하게 설명했다.

무인은 간이 결계를 두른 채로 암살을 행하고, 마법사는 그를 받아치는, 끝없는 소모전.

교환비는 좋지만, 저쪽의 머릿수가 월등히 많은 탓에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텔레포트를 한다.”

매스 텔레포트(Mass Teleport).

그 대규모 마법으로, 수천 명의 마법사를 상대의 본진에 직접 떨어뜨린다는 이야기였다.

“…….”

“…….”

“…….”

광장의 모든 이가 침묵에 빠졌고,

‘……저거 가능한 이야기냐?’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신혜영과 나는 이게 맞는 건지 속삭였다. 설마 공중에서 불시착해 짜부라진다던가, 그런 위험성 있는 작전이라면 당장 튀고 싶었다.

아니, 그거 개죽음이잖아.

“혹시라도 마법이 잘못 시전될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정예들이 십수 년에 걸쳐, 비밀리에 작성한 대마법이니까.”

짜악─!

원정대장이 손뼉을 치자 광장 바닥이 푸른 빛에 휩싸였다.

선과 선이 겹쳐져 만들어진 마법진.

거대한 오망성 여럿이 겹쳐진 채로 광장 전체에 그려져 있었다.

“리허설은 못 해봐서 아주 쬐끔 위험하긴 한데 나도 갈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도록.”

“…….”

“…….”

“…….”

“자, 지금이라도 빠질 사람은 거수하도록. 오늘 하루만 억류하고 풀어줄 테니.”

원정대장은 웃으며 말했다.

무신궁과 마탑. 어느 쪽이 이기건, 오늘로 모든 일이 마무리되리라고.

과연 그 미친 작전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말했다.

“조금 짜릿할지도.”

“……당신도 미쳤다는 걸 깜빡했네요.”

“데헷!”

그렇게 우리는 마법진을 벗어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신혜영은 고개를 저었고,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켜 폐부의 긴장을 지워냈다.

“좋아, 이제 가볼까.”

이내 마법이 발동되었다.

***

오랜만에 마주한 하늘은 흐렸다.

짙고 어두운 구름 사이로 금방이라도 빗방울을 흘릴 듯했다.

축축하고 텁텁한 냄새.

폐부로 들이차는 매연 혹은 먼지.

시끄러운 클락션과 목소리.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리워했다.

앞으로 마주할 순간을 오래도록 고대했다.

오직 그것만이 삶의 이유인 것처럼.

샤오팡은 사랑을 했다.

빠아아아앙──!!

“뭘 웃어 미친년아! 죽기 싫으면 빨리 비켜! (?? 不?死??! 子!)”

그랬기에 그녀는 때아닌 욕설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싱긋 웃어 보였다.

그러자 돼지는 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삿대질을 해댔다.

으음, 왜 저렇게 화를 내는 걸까.

샤오팡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째깍─째깍─

지금, 이 순간에도 대로변의 신호등은 점멸했다.

곧 녹색 불이 끝나면 빨갛게 물들 터다.

벌써부터 성을 내는 저 돼지는 자신을 아예 밟고 지나갈지도 모른다.

안 된다.

그래서는 안 된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 불행한 상상에,

샤오팡은 곧 눈물이라도 흘릴 듯 슬픈 표정으로 읊조렸다.

“몇 명이나 살 수 있을까.”

어차피 거의 다 죽을 목숨, 자신이 바르게 쓰는 게 맞지 않을까.

그래.

그게 옳다.

그러면 분명 행복해질 수 있을 터다.

따라서 그녀는 수인을 맺었다.

주문을 외웠다.

붉은 안광이 돼지를 비추었다.

──적(赤)

신호등이 붉게 물들었다.

“……어?”

돼지는 액셀을 밟지 않았다.

잿빛에서 새빨갛게 뒤바뀐 하늘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석양 따위에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금방이라도 핏물이 떨어질 듯한 질감.

그 불길한 색상과 징조에 바쁘게 나아가는 차량 사이로 밖에 나와 위를 올려다보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마치 그래야만 하는 듯이.

뚜욱…

문득 뺨에 빗물이 떨어진 감각에 무심코 얼굴을 닦았다.

……핏자국.

돼지는 어느새 제 손을 흠뻑 적신 핏물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온몸을 감쌌다.

이내 빠르게 스쳐 가는 차량에도 깜짝하지 않는 눈앞의 여인에 시선이 닿았다.

웃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숨이 턱 막혀 오는 감각에,

마치 그래야만 하는 듯이 돼지는 새빨간 얼굴로 조수석에서 장도리를 꺼내 달렸다.

어떻게든 닿아야 한다는 듯 허우적거렸다.

가여워라.

거짓된 사도는 기껍게 반겼다. 붉어진 두 눈에서 피눈물이 쏟아졌다. 호선을 그린 입꼬리 아래로 건너간 핏물은 기어코 턱 끝에 맺혀,

“아버지, 공물을 받으시옵소서.”

대지에 떨어졌다.

──사도?? 즉결심판???──

째깍…

핏물이 흘러넘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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