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75화 (74/87)

〈 75화 〉 격전 (上)

* * *

무신궁.

마탑.

길드.

이들을 모두 아울러 삼대세력.

다른 중소규모의 단체와 궤를 달리하는 힘으로, 또한 격을 달리하는 이능력자 집단.

그중에서도 수좌는 존재했다.

마법사들에 비해 연계는 떨어지지만, 개개인의 작전 수행 능력이 뛰어나며, 중원에 모든 전력이 집중된 무신궁(???).

그 뒤를 잇는 좀생이마냥 깔짝대는 마탑과, 그저 시정잡배에 불과한 길드.

어느 쪽이 위에 자리할까.

일당만의 탑주가 없었더라면, 길드가 무신궁과 마탑 사이에 끼어들 틈이 없었더라면, 그 둘은 본 궁에 비해 압도적으로 떨어졌으리라.

오랜 세월 탑주가 잠적한 지금, 균형이 깨졌음은 명약관화한 사실이었고.

그런데도 이렇게 어깨를 맞대려 하다니, 참으로 어리석고 괘씸했다.

신에 다다르지 못한 이무기는,

영원히 그 너머를 꿈꿀 제사장은 반개한 눈으로 말했다.

“그래, 괘씸하구나.”

옥좌에 앉은 황제는 턱을 괴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멍청이를 바라보았다.

제 주제를 모르고 기어들어 온 것도 모자라 저런 쭉정이마저 제 앞에 당도시키는가.

작전을 이행한 마탑도, 저 녀석을 놓친 수하도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허수아비를 베는 취미는 없다만.”

궁주, 대망은 나지막이 읊조리며 왼손의 검지와 중지를 들어 올렸다.

그곳에 미약한 기운이 깃들었다.

용이 되지 못했다고는 하나, 세계에서 한 손안에 들 괴물의 기준이었다.

“저승에 가면 탑주에게 전해라. 정성스레 키워낸 마법사들, 오늘 전부 대지에 묻히리라고.”

그리 단언하며, 이무기는 허공을 내리그었다.

“절().”

그 모습에 마법사는, 아니 탈주 닌자는 데자뷰를 느꼈다.

언젠가 신혜영에게서 보았던 손짓.

그때는 결계를 열기 위한 것이었지만, 지금 이건 어떨까.

그 생각에 닿은 이진우는 곧바로 몸을 던졌다.

나려타곤(????).

당나귀가 땅을 구르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무인들이 기피하는 행위.

그러나 무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없었던 이진우는 기꺼이 땅을 굴렀다.

끼이이이익──

걱정했던 것만큼의 공격은 아니었는지 이렇다 할 파괴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예리한 무언가가 신발 밑창을 스치는 감각만이 느껴졌을 뿐이다.

이진우는 왠지 모를 경각심과 압박감을 느끼며, 바닥에 엎드린 채로 고개를 들었다.

반으로 갈린 공간이 보였다.

말 그대로 세상을 가른 흑색 흉터가 점점 상처를 넓혀갔다.

과연 있어서는 안 될, 괴리감이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시발.”

이거 파워 밸런스 잘못 맞춘 거 아니냐.

닌자는 울상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일단 살아남아야 했기에 자세를 잡고 닌자도를 쥐었다.

서걱­

“아.”

그 순간 칼을 붙잡은 오른손이 잘렸다. 툭, 땅에 떨어졌다.

닌자는 눈을 끔벅였다. 널브러진 오른손을 보며 생각했다.

시발, 뭐지.

그리고 이내 현실을 깨달았다.

“……아.”

에바.

***

같은 시각, 무신궁 내부.

마찬가지로 낙오된 마녀는 숨을 헐떡이면서 벽 너머를 곁눈질했다.

우르르, 횃불을 들고 지나가는 병사들.

잡졸에 불과하나 한 번 들키면, 끝없이 몰려올 게 뻔했기 때문에 정말 죽어라 도망쳤다.

대낮이었던 런던과 달리 이곳은 어두운 저녁이라 다행이도 도망치기 수월했다.

애초부터 그걸 감안하고 돌입한 것이겠지.

그러나 그 작전에 대해 칭찬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마녀는 이를 박박 갈았다.

‘시발, 이게 말이 돼?!’

신혜영은 방금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정상의 마법사들이 긴 시간 설계한 대마법. 생애 느껴보지 못한 방대한 마력. 그리고 부유감.

하늘에서 애먼 곳으로 튕겨 날아가는, 경황없는 상황에도 그녀는 보았다.

자신과는 완전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는 이진우의 모습을.

그 얼빠진 표정을.

두 명 중 두 명이 안전사고에 휘말린 지금, 이게 정녕 말이 되는 확률이란 말인가.

무슨 음모에 당한 게 아닌가, 신혜영은 진심으로 걱정하고 의심했다.

“……어디 가서 바보 짓하는 건 아니겠지.”

물론 일행의 막무가내랄까, 그 대책 없는 성격을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다.

일신의 무력이 상당해졌다지만, 이곳은 괴물들의 소굴이었다.

이진우가 수백 명이더라도 이겨내지 못할 강자가 드글한 마경이었다.

……이걸 어쩌면 좋지.

신혜영은 한숨을 연신 내뱉었다.

당장이라도 구하러 가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멀기도 했고, 일단 자신부터 살아남아야 했다.

마녀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정면의 담에 올라서 있는 무인을 바라보았다.

“밤톨만 해가지고, 제법 눈치 빠른데?”

흑색의 무복을 입은 무인.

담 위에 쪼그려 앉은 사내는 히죽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신혜영 또한 마주 보고서 가늠했다. 뭐, 기운만 보면 비슷한 수준인가.

“귀찮네.”

“응?”

신혜영은 와락, 인상을 구기고 손아귀에 마력을 끌어모았다.

─점화(?火)

붉게 타오르는 마력.

심장을 타고, 팔의 혈관을 지나 손 위로 모습을 드러낸 현상은 순식간에 크기를 부풀렸다.

다른 손에는 어느덧 현자의 서가 모습을 드러내 발광했다.

빠르게 넘어가는 페이지.

그 하나하나에 담긴 막대한 마력에, 무인은 이변을 깨달았다.

“…뭐, 뭐야!”

무인은 생각 이상의 강적을 마주했음을 깨닫고, 인상을 구겼다.

그리고 동료를 부르기보다 전진을 택했다.

긍지 높은 무인은 홈그라운드에서 도망치는 법을 몰랐다.

그래서 전진을 택했다.

콰앙! 이름 모를 무인은 인간을 초월한 각력으로 삽시간에 마녀에게 이르렀다.

주먹을 뻗었다.

마녀는 시야를 가득 채워오는 주먹에도, 평온히 주문을 외웠다.

그 짧은 시간,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자신이 가장 애용하는 낱장을 펼쳤다.

상급 파괴 마법, 폭렬(??).

그 십(?) 중첩.

“파이어.”

금색 휘광이 번졌다.

***

멀리서 거대한 마력의 파동이 느껴졌다.

이제껏 마주한 강자와는 다른 인상의, 흥미로운 마력 파장.

관문에서 꽤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일어난 것을 보니 별동대가 따로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혼란을 가중시키려는가.

궁주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슬슬 출두해야 함을 직감했다.

대원로는 길드를 견제하느라 오지 않았을 테고 아마 침략군의 책임자는 혈사자나 흑룡, 혹은 둘 모두일 것이다.

감히 자신에 비할 바는 아니나, 수준 높은 이들이란 건 분명했다.

수하들이 죄다 쓸려나가기 전, 정리하는 게 좋을 터다.

하지만 흥미로운 게 눈앞에 있으니 벗어나기가 영 쉽지 않았다.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에 점차 영역을 넓혀가는 웅덩이.

완전히 잘렸거나 거의 반쯤 잘려나간 사지가 그 발원지였다.

무인의 복식과는 미묘하게 다른, 흑의의 사내는 자신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바닥에 떨어진 팔을 절단 부위에 가져다 대었다.

그대로 팔이 붙었다.

임시방편 따위가 아니라 완치에 이른, 경이로운 재생력.

“트롤과 좀비의 혼종이기라도 하느냐.”

흥미 본위로 팔다리를 자른 게 십수 번.

진작에 실혈사로 명을 달리해야 하건만, 안색이 나빠진 것 말고는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피의 흘린 양을 생각해보면, 단순하게 재생력만 좋은 것은 아니었다.

마치 무언가 녀석을 ‘절대’ 죽지 못하게 붙잡는 듯한 기분이었다.

무와 육체의 정점을 바라보는 궁주로서도 가지지 못한 놈만의 장점.

궁주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만약 끝까지 살아남는다면 자신도 그 원인을 얻을 수 있을지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반면, 세계 제일의 탈주 닌자는 내심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눈앞의 괴물한테서 감히 시선을 떼지 못했다.

물론 아른거리는 메시지가 거슬리기는 했다. 꽤 절망적인 전개였으니까.

[ 금화신공(???)이 발동 중입니다. ]

[ 과다출혈로 인한 ‘사망’을 회피했습니다. ]

[ 보유 골드가 감소합니다. ]

[ 보유 골드가 감소합니다. ]

[ 감소합니다. ]

[ 감소합니다. ]

[ 감소합니다. ]

금화신공에 의한 연명이 계속되었다.

약간의 재화라도 존재한다면, 정신적, 육체적로는 그로기 상태에 빠지지 않는 무적기.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골드가 남아 있을 때 이야기였다.

──────────────────

< 이진우 >

[ 등급 : 적(赤) ]

[ 직업 : 거상(巨?), 닌자(?者) ]

[ 특성 : 금화신공(???) ­ 5성(成), 탈주닌자(???者) ]

[ 능력 : 거래(??), 매수(??), 매각(?) ]

[ 성향 : 중도(中?), 열혈(?血) ]

[ 근력 : 51 ] [ 체력 : 52 ]

[ 민첩 : 55 ] [ 지혜 : 50 ]

[ 마력 : 60 ] [ 행운 : 80 ]

[ 소지금 : 15, 820, 294, 965, 000 Gold ]

──────────────────

이곳에 오기 전만 해도 20조에 다다랐던 재화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그 반절의 반절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 덕분에 목숨을 구제받았지만 죽음을 영원히 면피할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 무슨 대책이 필요했다.

이진우는 자신을 여유롭게 구경하는 괴물한테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시발, 답 안 보이는데.’

역시 대진이, 파워 밸런스가 잘못됐다. 누가 짠 거야, 이거.

하지만 어찌 되었건 원군이 오기 전까지는, 돈이 바닥나기 전까지는 비벼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테니까.

이진우는 한숨을 내쉬며 무기를 쥐었다.

─불멸의 닌자도.

이윽고 칼날을 내보였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