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격전 (中)
* * *
최근 게임할 여유가 없다 보니 그 존재를 까먹고 있었다.
그토록 게임을 좋아했었는데 인생 살기 바쁘니까 그렇게 되더라.
그런데 와중에 예상도 못 한 곳에서, 그 존재를 떠올리고 만 것이다.
‘시발, 좆망겜.’
그래, 이건 좆망겜이다.
게임 밸런스를 엿장수한테 팔아먹은 똥겜 그 자체다.
서걱, 따위의 절삭음은 들리지 않았다.
사내의 손가락이 움직이면, 그 선상의 모든 것이 잘려나갈 뿐이다.
건물의 바닥과 기둥, 벽.
어떻게 가능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공간까지도 무참히 베였다.
썰려나갔다.
툭,
바닥에 떨어졌다.
어깨에서 분수처럼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필사적인 회피에도 불구하고, 오른팔이 기어코 13번째 잘려나갔다.
이미 여러 번 잘려나간 것과는 상관없이 더럽게 아팠다.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는 고통.
단순히 목숨 연명을 넘어 정신까지도 보조해주는 금화신공이 없었다면, 과다출혈로 죽기 전에 너무 아파서 징징거리다가 진작 반토막나서 죽었다.
[ 금화신공이 발동 중입니다. ]
여전히 아팠지만, 지랄발광하던 통각이 조금은 얌전해졌다.
나는 이를 악 깨물고는 재빨리 땅에 떨어진 팔을 주워 어깨에 꽂았다.
내가 장난감 인형도 아니고 쉽게 붙을 리가 만무하건만, 어느덧 내 몸은 상식을 초월한 기능이 추가된 모양이었다.
착, 하고 간단하게 붙었다.
기우뚱
그 짧은 순간에 왼쪽 발목이 베어나갔다.
더럽게 아프기는 마찬가지였으나, 팔보다는 훨씬 나았다.
워낙 깔끔하게 잘려나간 터라 그쪽에 무게 중심을 싣는 것으로 꾸욱, 눌러 그대로 발과 발목을 접합시켰다.
그러자 착, 하고 간단하게 붙었다.
뭐랄까, 모르는 사이 내가 정말로 인간을 벗어난 기분이다.
그 감상을 마찬가지로 느낀 것일까.
내 발악을 권태롭게 바라보던 아재가 헛웃음을 지었다.
“신기하구나. 신기해. 네 녀석만큼 바퀴벌레 같은 놈은 처음 보는구나.”
“…….”
뭐라 쌍욕을 박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우연히 들어온 건물에서 저 아저씨, 더럽게 괴물이라 눈 깜짝할 사이 손가락이 움직였고, 참격이 날아왔다.
몸뚱이가 잘리기 싫으면 끊임없이 땅을 구르고, 또 굴러야만 했다.
전투라기보단 탄막게임을 하는 기분.
제때 결손 부위를 못 줍거나 골드가 다 떨어지면 진짜로 죽는 개좆망겜이지.
‘심지어 지금 뭔가 봐주는 느낌이지…….’
봐준달까.
정확히는 곤충을 채집해 어떻게 죽음에 이르는지 관찰하는 듯했다.
대체 몇 번이나 잘려야 행동을 멈출까, 재생력의 한계는 어디까지고.
이 속도와 각도로 날리면 피할 수 있을까?
이래도 안 죽어?
그런 순수한 악의가 느껴지는 가운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회피뿐.
그래도 처음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슬슬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나는 유한나처럼 압도적인 역량을 가지고 있지 않다.
신혜영처럼 꿰뚫어 보는 ‘마안’도 없다.
내가 가진 건 개똥망겜을 이어나가는 원동력인 돈과 템빨뿐이다.
더불어 질질 끌어 생긴 보는 요령도.
망할 괴물 아재가 손가락을 내리그었다. 곧 참격이 날아올 테지.
그에 맞춰 일보를 내디뎠다.
이전까지 땅에 몸을 던지는 것이 아닌, 안정적인 회피.
────!
처음으로, 보이지 않는 참격을 온전히 피해냈다.
“호오?”
이름 모를 괴물 아재는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나 또한 지켜보고 있었다. 팔다리를 수십 번이나 잘리면서 그 궤적을 관찰했다. 보통이라면 진작 뒤졌겠지만, 나는 끝까지 살아남았다.
피하고, 피했다.
마침내, 내부의 진탕된 마력을 진정시킬 여유가 생겼다.
이윽고 준비되었다.
어쩌면 사람을 벨 마음가짐조차.
때가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술에 관해서 무지렁이와 다름없던 나였다.
사람을 주먹으로 때리는 것도 그렇지만, 검으로 베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식칼도 드물게 잡는 놈이 진검 잡을 일은 평생에 얼마나 있겠는가.
또, 사람한테 겨누는 건 어떻고.
‘현자의 시련’ 하수구에서 수리검으로 노닥거렸을 때나 이리엔과의 결투 때 잠깐 뽑아 들었던 것을 제외하면, 첫 실전.
누군가를 베기 위해 진심으로 칼을 뽑아 든 건 처음이다.
하지만 차라리 다행이었다.
팔다리가 몇 번씩 베이니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단 배짱 부릴 여유가 사라졌으니까.
그저 발악에 전념하면 될 뿐이다.
주문을 외웠다.
“개시(??).”
『불멸의 닌자도』
상점을 둘러보다가 발견한, 파이어 펀치 의수와 쌍벽을 이뤘던 워너비 아이템.
‘닌자’의 직업 무기임에도 사무라이가 사용했다는 역사가 존재하는 닌자도.
그 우스꽝스러운 연원에도 본래 주인이 상당히 강자였는지 불멸(?)이란 수식어마저 달려 있는 이 무기는 상점의 물품 중에서도 비쌌다.
하지만 그럼에도 ‘탈주닌자’란 직업을 얻자마자 구매했다.
그 진가를 깨달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마법의 주문을 읊었다.
“무기 개방.”
그 언령이 울려 퍼지는 즉시, 피투성이가 되었던 암행복이 산산이 조각났다.
그 대신으로 내 몸 위에 삼베로 지어진, 마치 옛 사무라이가 입었을 법한 복장이 덧씌워졌다.
그와 동시에 유한나에게 전수받은 전투 방법이 전부인, 간신히 무지렁이를 벗어난 내 머릿속에 각종 살육 방법이 피어올랐다.
그제야 비로소 칼 쓰는 방법을 깨달았다.
나는 조금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그 사실을 괴물 아재도 직감한 모양이다. 돌연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양 주먹을 쥐고 내질렀다.
“파천(??).”
만약 스친다면 반드시 뒤질 자신이 있는 강렬한 마력 파장.
저 막대한 기운이 느껴지는 일격을 피하기엔 내 몸뚱이가 너무 느려 터졌다.
그렇다면, 피할 수가 없다면, 맞서 싸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손잡이를 단단히 붙들었다.
특유의 마력 운용을 전개하며, 마침내 칼을 뽑아 들었다.
칼날이 궤적을 그렸다.
한때 무력이 하늘이 닿았다 여겨지던 무신(??).
또한, 그 하늘에 오르고팠던 이무기는 긴 폐관 수련 끝에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은 온전히 하늘에 닿을 수는 없노라고.
그래, 사특한 방법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그렇기에 만든 마공(??).
천마신공(????).
그 경천동지할 위력의 무공으로, 이른바 천마라 불리게 된 이무기의 하늘을 부수는 일격이 허공을 격했다.
어떤 소리도 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선상의 모든 것을 착실히 바스러뜨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재생력 하나만큼은 인정해줄 만한, 바퀴벌레와 같은 버러지도 그럴 터였다.
끼이이익─
칼집에서 칼이 벗어나는, 아주 자그마한 소리에 이무기는 예감했다.
이거, 위험하다고.
따라서 이무기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서걱─본디 들려서는 안 될 절삭음.
동시에 궁전 전체가 기우뚱 몸을 기울였다.
어느샌가 반으로 토막난 궁의 모습에, 이무기는 깨달았다.
언젠가 느꼈던 온몸을 저리게 만드는 흥분감에 입맛을 다셨다.
‘……되도록 오래오래 죽이고 싶거늘.’
과연, 버텨줄까.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강──!!! 궁전의 지붕과 기둥, 벽. 지탱하던 모든 것들이 토막나자 건물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단 둘을 제외하면, 건물 내에는 아무도 없었고, 건물 파편을 맞을 사람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애먼 바닥에 부딪쳐 피어오르는 흙먼지 속에서, 닌자이자 사무라이는 탄식했다.
“시발, 이걸로 1조가 날아가?”
어차피 뒤지면 날아갈 돈이라 생각하면, 별 거 아닌 금액이긴 한데…….
이진우는 미간을 긁적이며 생각했다. 현재 남은 골드는 대략 14조.
그 말인즉슨, 방금과 같은 일격을 날릴 수 있는 건 고작 열네 번.
웬만한 적수는 그 안에 참살할 자신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상대가 어지간한 수준이 아니었다.
“현물거래(?物??).”
잔금을 모조리 쏟아부어서 한방에 정리할 수만 있다면, 그리할 테다.
하지만, 상대는 위력만 더럽게 센 일격을 맞을 만큼 바보가 아니었다.
게다가 마지막 눈빛을 보니까 왠지 관찰동물에서 유해조수로 위험도가 오른 듯했다.
요컨대 상대의 방심을, 럭키펀치를 바라지 말고, 제대로 후려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럭키펀치를 적중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투자였다.
띠링─!
[ 근력 : 51 > 80 ]
[ 체력 : 52 > 80 ]
[ 민첩 : 55 > 80 ]
[ 지혜 : 50 > 80 ]
[ 마력 : 60 > 90 ]
온몸이 비틀리는 고통이라던가, 이질감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전능감은 예전부터 존재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몸에 깃들었다.
그래, 4조를 들였으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
이진우는 흡족하게 웃으며 슬슬 가라앉은 흙먼지 너머를 바라보았다.
앞으로 단 5분.
그 짧은 시간밖에 소유하지 못할 강함이었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누가 죽던지, 그 안에 결판날 테니까.
“현물거래(?物??).”
이번에는 얼마짜리로 갈까.
이진우는 칼집에 칼날을 수납하고서 그곳에 다시 차오른 기력과 돈을 들이부었다.
정면에서 번뜩이는 흑광(?光)에 시선을 두고서 때를 기다렸다.
그 막대한 기운의 주인인 이무기와 필연적으로 눈이 마주쳤다.
천마는 느릿하게 입을 움직였다.
죽, 어, 라.
이내 강기(??) 덩어리가 날아왔다.
“너무하네.”
닌자는 칼을 뽑아 들었다.
발도(??).
세상에 궤적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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