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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79화 (78/87)

〈 79화 〉 안녕, 나의 친구

* * *

어두운 통로.

벽에 걸린 횃불만이 이따금 길을 밝혀주는 비동(??).

별안간 피가 흩날렸다.

울부짖는 병사의 비명이 암암리에 묻혔다.

땅바닥에 스며들지 못한 붉은 혈액이 스멀스멀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는 그를 뒤따랐다.

“……공주님?”

이윽고 다다른 드넓은 공동.

장대하고 교묘한 마법진 앞의 사내는 의문 어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음성은 묻어도 살기는 차마 묻을 수 없었는지, 진작 맞설 준비를 한 모양새.

샤오팡은 가없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옛날 옛적, 아버지에게 신임받던 아저씨. 주름은 살짝 졌지만, 그때와 비슷한 인상이었다.

그렇구나.

예전과 다를 게 없구나.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때 공주로 추앙받았던 여인은 씁쓸한 미소를 짓고는 한 발짝 내디뎠다.

푸른 뇌전이 파직, 하고 바닥에서 치솟았다.

그러나 전격은 그녀에게 어떤 아픔도 주지 못하였다.

한때 주인이 될 자이자, 눈감고도 마법의 설계를 떠올릴 만큼 뛰어난 마법사가 바로 그녀였다.

한 걸음.

두 걸음.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공동에 펼쳐진 마법진이 요동쳤다.

그러나 몸부림치기만 할 뿐 요격 마법은 본분을 전혀 하지 못했다.

이내 그 사실을 깨달은 공동의 책임자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책임은 내가 진다! 팔다리 정도는 괜찮으니 서둘러 잡아라!”

이래 보여도 전직 공주이거늘 철저히 진압하려 드는가.

과연, 무신궁 유일의 마법사이자 책사답게 타고난 결단력.

옛 추억을 마주한 샤오팡은 싱그럽게 미소를 지은 채로,

짝!

손뼉을 쳤다.

──흑관(??)

새까만 그림자가 동굴을 덮었다.

비명이 귓전을 울렸다.

지금 들어보니 하나하나가 익숙한 목소리.

그러니 옛 추억을 보아 손수 예쁜 관으로 매장해주었다.

콰앙,

세상이 깜깜해졌다.

공주는 기꺼이 장의사를 자처했다.

***

“……새까맣네.”

이게 내 마력인가.

샤오팡은 검게 피어난 자신의 마력을 관조하며 생각했다.

이것 참 역겨운 색채라고.

흑마법사가 자신의 마력을, 흑마법을 기피하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핏물뿐만 아니라 시체까지 사용했다면 망할 년을 억류하는 과정이 곱절은 편했을 터다.

그럼에도 하지 않은 까닭은 제물로 바쳤음에도 겨우 남은 최후의 양심 때문일까.

바보 같다.

정말로 바보 같아.

흑마법사가 되었음에도 마지막까지 피하는 걸로 만족해야 한 내가 밉다.

자신의 대부분을 바쳤음에도 복수하지 못하는 신세가 처량하다.

한창 새장에 갇혔던 시절이었다면 그런 상념에 괴로워했으리라.

샤오팡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를 미워할 필요도, 자신을 처량하게 여길 이유도 없었다.

이제 곧 제일의 행복과 복수와 도피행을 마주할 테니까.

곧 만날 수 있다. 영원할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 평생 원했던 자유와 사랑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를 위해서라면 마력이 까맣게 물들건, 흑마법사가 되건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다고.

그리 확신한 샤오팡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마력을 끌어모았다.

최상급 유물 영옥(氷?).

본래 신록의 빛을 뿜어내던 보옥은 공물을 받고 핏빛으로 물들어 그녀의 수중에서 발광했다.

화르르륵─! 새까만 불꽃이 피어나 바닥에 진을 그렸다.

공동에 존재하던 마법진이 그에 호응해 불길한 빛을 내뿜었다.

샤오팡의 붉은 동공에서 혈액이 흘러내렸다.

그녀의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대마법(大??).

동력원은 충분했다.

희생으로 말미암아 지배를 공고히 한 최상급의 유물.

무신궁(???)을 가리고 있는 결계의 근원.

그리고 자기 자신.

“공물을 받으시옵소서.”

곧 맞이할 행복을 위하여.

“전부 바치겠나이다.”

주문을 외웠다.

*

“……저건 뭐야.”

맨 처음 이변을 깨달은 건 원정대장 마르쿠스.

그 후로는 원정대의 고위 마법사와 육마(??), 최정상에 이른 고수들.

인간을 초월한 이들이 검붉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나같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를 따라 무슨 일인가 하여 하늘을 올려다보는 이들이 늘어갔다.

“어?”

그리고 한순간에 녹아내렸다.

영역(??).

초고위 술자가 자신의 우주를 세상에 덧씌우는 마도의 극의.

영역에서의 술자는 신과 다름없어진다.

다만 인간의 몸으로는 이룰 수 없는 술법이기에 가능한 이가 한 손에 꼽혔다.

탑주와 신의 사도를 포함해도 그러한, 아득하게 높은 술법이었다.

하지만 저 하늘은 그런 영역의 발현이 아니었다. 무언가 달랐다.

누군가의 세계를 덧씌웠다기보단 본래 존재하는 세상을 거꾸로 뒤집은 듯했다.

정확히는 무언가의 내장에 들어온 듯한, 역겨운 색상으로 물들었다.

세상으로부터 모습을 감추기 위한 결계가 그들을 가둬놓는 새장으로 변했다.

정확히는 언젠가 먹어치우기 위한 우리로.

마력과 정신력이 약한 이들부터 차례로 신체가 녹아내렸다.

“으아아아아아악!”

누군가의 비명이 묻히지 않고, 사방에서 잇따라 울려왔다.

옆의 동료가 끔찍한 몰골로 산화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신 나간 공간에 들어오면서 정신을 침해하는 어떤 마법적 작용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리라.

순식간에 미쳐가는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들을 인솔하는 책임자로서는 반드시 그러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비명을 지르는 걸 넘어, 동료끼리 칼과 마법으로 서로를 죽이기 시작했으니까.

상잔(??)이었다.

“……이게 무슨.”

무인과 마법사.

그런 구분과 관계없이 수뇌부는 황망한 표정으로 제 부하가 서로를 죽이는 꼴을 바라보았다.

이해타산 이전에 인간적으로 서둘러 벗어나고픈 상황이었기에 정신을 차린 그들은 본래의 싸움을 멈췄다.

상잔하는 이들을 떼어놓으며 신체를 속박했다.

그러나 묶는 이들조차 하나둘 미쳐가는 상황에 그들은 이윽고 깨달았다.

이곳이 지옥이었다.

툭,

툭,

투둑.

떨어지는 물소리.

“오랜만이구나.”

대망(大?), 린 다이만은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의 아낙네를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실컷 싸우던 사내가 사라졌으나 그보다 중요한 이가 눈앞에 있었다.

푸른 보옥을 세공한 듯한 머릿결에, 하얀 조각과 같은 용모.

어렴풋이 느껴지는 애증(??).

예전과 많은 게 달라졌다지만, 다른 이와 착각할 리는 없었다.

한때 누구보다 아꼈던 딸이었으니까.

“그리고 잘 가거라.”

그러나 진작 마음속에서 지워버린 존재.

게다가 일변한 하늘과 연결된 기운을 보아 적인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이무기는 필사(必死)의 의지를 담아 손 위로 칼을 빚어냈다.

천마신공(????)을 극성으로 발휘했다. 칠흑의 안개가 그의 온몸을 뒤덮었다.

이윽고 자세를 다잡은 이무기는 일보(一?)를 내디뎠다.

──천마군림보(?????)

쿠웅, 천지가 울렸다.

땅에 발을 내디딘 게 아니었다.

세상 자체에 흔적을 남기는 움직임. 경천동지할 경지에 하늘이 감탄한 것일까. 그 패기에 호응해 중력이 상대를 짓눌렀다.

이무기는 그에 만족하지 않고, 발걸음을 수없이 내디디며 수중에 별을 탄생시켰다.

검기성강(????).

손은 곧 검이요, 그 안에 든 건 별이었다.

무신궁 궁주 린 다이만은 자신했다.

지금 자신이 피워낸 별은 생애 최고의 빛무리일 것이라고.

그리 생각하며 오른손에 제 모든 기운을 담아 출수했다.

──패천(??)

하늘을 깨뜨리라고 자부하는 일격.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는 외팔이 무인을 보며, 샤오팡은 추억을 곱씹었다.

추레해진 몰골에도 기운 넘치는 모습도. 언제나 하늘에 한끝 모자란 경지도.

“여전하시네요.”

아득하면서도 낯익었다.

쓰라리면서도 웃음이 나오는 광경이었다.

샤오팡은 조금 무거워진 어깨를 툭툭 털어내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낯빛이 걸음을 옮길수록 점차 화사하게 밝아져 갔다.

언젠가, 까마득한 예전부터 상상해왔던 순간에, 마침내 다다랐으므로.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여인은 만면에 활짝 꽃을 피우는 웃음으로, 제 아버지를 일별했다.

두 손을 모아 마지막 주문을 외웠다.

샤오팡으로서의 인생에, 후회에, 미련에 마침표를 찍는 시간이었다.

“역천세계(??世?).”

세상이 뒤집혔다.

*

“시발.”

아슬아슬했다.

한숨을 내쉬며 상태창을 보았다.

[ 소지금 : 142, 328, 945 Gold ]

최근 조 단위 액수만 보았던 내겐 현저히 적은 숫자의 나열.

소지금이 떨어지다 못해 바닥을 친 것이다.

기술을 남발한 대가였다.

“……진짜 신세 조질 뻔했네.”

발악에 발악을 거듭해 겨우 팔 하나는 잘랐지만, 결국 그뿐이었다.

사람은 생각보다 죽지 않는 동물.

곧바로 달려드는 괴물 아재를 보면서 “조졌네.” 머릿속으로 유서를 작성하는 것도 잠시.

이상한 곳에 떨어지고 말았다.

아니, 이상한 곳이라기보다는 미묘하게 낯익은 동네였다.

동양의 궁전과 현대식 건물과는 다른, 서양의 성 느낌의 복도.

어느샌가 나는 그 위에 서 있었다.

“뭐지.”

분명 예전에 왔었다.

하지만 꿈을 꾸는 듯 머리가 뿌연 느낌에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영문 모를 상황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단 발걸음을 옮겼다.

뚜벅─뚜벅─.

끝없이 이어진 복도를 수없이 걸었다.

그 기약 없는 광경에 슬슬 지겨움을 느낄 때쯤, 문이 보였다.

헐레벌떡 달려가 문을 열었다.

끼익,

그토록 고대하던 순간을 마주했다.

“안녕.”

그 안에는 창천(??)을 물들인 머리칼.

루비를 세공한 듯한 영롱한 눈동자.

흑색의 벨벳 드레스가 아찔한 몸매를 드러내고, 고귀하다는 생각마저 드는 아름다운 외모의 여인이 있었다.

“…나의 친구.”

울먹이는, 화사한 미소가 나를 맞이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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