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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80화 (79/87)

〈 80화 〉 충만한 하루

* * *

때가 왔다.

마침내 사랑하는 임과의 조우가 이뤄졌다.

샤오팡은 숨이 턱 막혀왔다. 너무나도 기뻐서 저절로 눈물이 맺혔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복에 겨워 죽을 것만 같았다.

‘이보다 행복해질 수 있다고?’

그 믿기지 않는 사실을 깨달은 샤오팡의 심장이 한 번 멈추었다.

행복사(幸?死).

그 직전까지 다다른 샤오팡은 이내 숨을 크게 내쉬며 벅차오른 가슴을 진정시켰다.

언제까지고 입만 우물거릴 수는 없었다.

그녀는 말을 더듬거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입술을 떼었다.

‘안녕, 나의 친구’라고.

……솔직한 마음으로는 사랑한다고 수없이 외치고 싶었다.

품에 뛰어들어 안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성격상 그런 행동은 분명 부담스럽게 여기겠지.

그러므로 샤오팡은 앞으로 튀어 나가려는 자신의 몸을 타일렀다.

어차피 시간은 많았다.

그러니 이번에는 처음부터 바로잡고서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래. 그러면 되었다.

“……어, 음, 어.”

이게 무슨 일인가 이해하지 못한 듯 바보 같은 표정의 사내.

그에게 다가가 그 손을 붙잡았다. 움찔, 별안간 떨려오는 감각.

그와 동시에 심장이 찌르르 마비되는 감각을 느끼며, 여인은 애처롭게 말했다.

“친구가 되어주세요.”

그때까지도 이진우는 어벙한 표정을 지은 채로 멍하니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제대로 된 언어를 내뱉었다.

“……예.”

그렇게 다시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다.

*

첫날 기념으로 둘은 온종일 수다를 떨었다.

잔디가 깔린, 널따란 정원에 앉아 커피와 차를 마셨다.

샤오팡은 애타게 갈구했던 임의 모습을 가없이 눈에 담았다.

혹시라도 도망가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 그의 곁에만 붙어 있었다.

이진우는 새로 사귄 친우를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갑자기 어쩌다가 친구가 된 것인지 자신도 영 의아했으나 좋은 게 좋은 것이었다.

그렇게 서로는 서로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고, 이후 장소를 침실로 옮기고도 대화는 밤늦게까지 이루어졌다.

“아무리 친구라도 침대는 따로 써야지.”

“쳇.”

연인이 아니라면,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미묘한 사고관에 의해 한 침대에 동침하는 것은 거부당했으나, 뭐 그래도 좋았다.

샤오팡은 맞은 편 침대에 누워 이진우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당장 그녀는 이것만으로도 행복에 겨웠다. 그래,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조만간 덮칠 수 있겠지.’

어떤 기정사실을 만들 수 있으리라고. 저 바보 같은 남자도 금방 넘어오리라고.

샤오팡은 비로소 한 달이 지나서야 그게 안이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적이다.’

과연, 자신이 인정한 남자다. 이 정도로 어마한 목석일 줄이야.

실로 감탄한 그녀는 기어코 비장의 수단을 꺼내 들었다.

예물함을 열었다.

*

호화로운 방의 푹신한 침대에서 일어나 호화로운 욕실에서 샤워하고, 아리따운 친구와 혀가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진다.

그다음은 티타임.

무슨 찻잎인지 싸구려 혓바닥인 나조차 풍미를 체감할 수 있는 상급의 것이었다.

이내 찾아오는 편안함에 몸을 맡기고 친우와 즐거이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충실한 하루를 보내다가, 문득 데자뷰라도 느낀 걸까.

뭐지.

그게 뭐였더라.

‘어라, 기억나질 않아.’

무언가 잊어버렸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순간에도 무언가 조금씩 지워져 가고 있다.

머리가 왠지 뿌옇다.

그런 찝찝한 생각을 저버릴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하루가, 이틀이 지나고, 이후로도 평안한 하루가 계속되니 ‘별 상관없지 않나.’

과거에 대한 의문을 내팽개칠 만큼, 나는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살고 있었다.

“쨔안.”

여인은 깜찍하게 웃으며 무언갈 소중히 감싸고 있던 두 손을 활짝 펼쳤다.

작달막한 손에서 어떻게 숨겨진 것인지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놀라운 마술을 행한 새로 사귄 베프는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예쁘다.

그리고 아름답다.

그런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아리따운 자태. 물론 반지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건 왜 보여주는 걸까, 의아해진 나는 눈을 끔벅였다.

“뭐야, 이건?”

“선물.”

“누구 선물?”

“…아니, 네 선물인 게 당연하잖아.”

친우는 어처구니가 없는 듯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뭐지, 내 선물인 게 당연한 건가.

다른 사람 선물을 이거 괜찮은지 미리 보여주는 걸 수도 있잖아.

그보다 내 생일 되려면 아직 한참 남았는데 웬 선물?

“자, 아무튼 이건 네 거야.”

그럼에도 내가 반지를 멀뚱히 바라보기만 하자 여인은 인상을 찌푸렸다.

내게 한 걸음 다가와 손을 이끌고는 자신이 준비한 반지를 안겼다.

그대로 움켜쥐게 했다.

그렇게 반지는 크고 두꺼운 손아귀에 의해 재차 모습을 감추었다.

여인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굳게 쥐어진 주먹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지, 이건 아니야.”

그리 중얼거리며 내 손아귀를 억지로 펼쳤다. 그 안의 반지를 검지와 엄지로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갑작스레 선물 받은 반지가 올 때처럼 다시 순식간에 멀어지는 것이었다.

‘……줬다 뺐기?’

아무리 반가운 티를 내진 않았다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 그런 생각으로 그녀를 부루퉁하게 바라보는 것도 잠깐이었다.

여인은 내 왼손을 제멋대로 가지런히 펼치더니 약지에 반지를 끼워 넣었다.

불편하거나 헐렁하지 않았다.

스르륵, 들어간 반지는 제 주인을 찾은 것처럼 정말 딱 맞았다.

그에 여인은 해맑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좋네…….”

선물 받은 당사자인 나보다도 행복한 표정으로 약지의 반지를 쓰다듬는다.

이제 보니 그녀의 왼손 약지에도 똑같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 약지에 무슨 의미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음, 기억이 나질 않는다.

“흐음.”

머리를 긁적이며, 내 손을 무슨 귀중한 보물을 만지는 듯한 여인을 바라보았다.

남한테 끼워주는 것조차 저리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으로 별생각 없이 내뱉었다.

“너도 내가 다시 끼워줄까?”

“응?”

“그, 왼손의 반지.”

“……!”

여인의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그녀 또한 키가 큰 편이었으나 그래도 나보다는 훨씬 작았다.

그랬기에 무릎을 살짝 굽히고 조심스레 그 손을 붙잡았다.

가늘디 가느다란 손가락 중에서도 약지의 반지를 빼냈다.

공중에 체공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다시 끼워 넣었다.

언뜻 보면 우스꽝스러운 모습.

하지만 이름 모를 친우는, 여인은 그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반지와 그 위에 겹쳐진 내 손을 붙들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무언가 따뜻한 기운이 가슴 속에 피어나는 것을 느꼈다.

여느 때처럼 충만한 하루였다.

***

“아, 뒤지겠네.”

사내는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중얼거렸다.

폐허에 몸을 눕힌 꼴이 언뜻 보면 시체와 견줄 만할 정도로 피폐했다.

그러나 그 또한 제일 나은 축에 속했다.

그 옆의 숨을 꺽꺽거리는 반송장들은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경종에 다다랐다.

원정대장 마르쿠스는 새삼 그네들을 둘러보고선 이를 갈았다.

절반이 녹아내린 첫날 이후 몇 명이 더 녹아내렸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정신없이 싸우던 와중, 급작스레 찾아온 죽음이었으니.

게다가 이 망할 공간은 숨 쉬는 것만으로 상당한 기운을 앗아갔다.

시체를 수습하기는커녕 제 몸 가누기가 급했고, 힘에 부쳤다.

‘오늘은 몇 명이 죽을까.’

그저 바닥에 드러누워 최대한 기운을 온존한 채 자신의 죽음을, 동료의 죽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래도 대략적으로, 가는 순서는 알았다. 약한 순서대로 차례차례 죽어 나갔다.

그를 생각하면, 의외로 급작스러운 죽음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내가 제일 오래 버틸 게 분명하다, 생각하면서도 마르쿠스는 위안 따위 가질 수 없었다.

평생토록 두려워하던 ‘개죽음’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것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었기에.

현 세대의 마법사 가운데 필두로 손꼽히는 그조차 죽음은 두려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장에서의 죽음은 기꺼이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미친 공간에서 널브러진 채 숨만 쉬다가 하직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제껏 살면서 전혀 상정하지 못한 죽음이었다.

‘……내가 정말 죽는다고?’

오늘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주위의 녀석들이 전부 죽으면, 그다음에 자신의 차례가 올 것임은 분명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구조대가 오리라고 말했지만, 그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결계도 처음 보는 유형의 괴랄한 것이었고, 양대 세력의 주전력이 날아간 바깥 상황도 다른 의미로 급박할 것임은 분명했기에.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구조가 오지 않은 것을 보면, 죽을 때까지 못 올지도 모른다.

이제껏 외면하던 현실을 떠올린 원정대장의 숨이 삽시에 거칠어졌다.

주변의 마법사들은 마찬가지로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그를 경계했다.

이따금 정신적으로 몰린 이들이 죽기 전, 마지막 힘을 짜내며 발광하고는 했었다.

어차피 죽을 거 왜 그러는지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 공간의 영향이리라고 모두들 지레짐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수많은 사람이 개같이 죽었다.

그중에서도 원정대장은 곱절은 강한 강자였고, 그를 막다가 기운이 빠져 죽음에 가까워지는 일은 질색이었기에, 마법사들은 여차하면 쏠 생각으로 마법을 장전했다.

장내에 불쾌한 숨소리가 깔렸다.

오늘도 많이 죽겠구나.

마법사들은 어렴풋한 예감을 느끼며 각자의 이적을 조형해나갔다.

끼긱─

무언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개중 성질 급한 마법사는 원정대장이 몸을 일으키는 줄 알고 바로 마법을 던졌다.

파이어볼, 하급의 공격 마법.

생존자 대다수가 고위 마법사 혹은 무인이란 걸 생각하면 상당히 초라하기 그지없었으나 그조차 지금 그들에겐 위협적이었다.

말 그대로 반송장이었으므로.

원정대장은 멍하니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염구를 바라보았다.

콰드득─!

정확히는 맨손으로 마법을 잡아채 찌그러뜨리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성복과 베일, 살기가 등등한 표정. 송장 가운데 펼쳐지는 막대한 기세.

그에 놀란, 한쪽의 무인들이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보였다.

확실히 살벌한 기운이었지만, 한편으로 이보다 반가울 수 없는 얼굴이었다.

“……오, 할렐루야.”

“할렐루야는 개뿔, 미친놈아. 내 자기 어디 있어.”

구세주가 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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