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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82화 (81/87)

〈 82화 〉 손님

* * *

대망(大?), 이무기, 하늘에 닿지 못한 자. 여러 오명이 붙었으나, 그가 거물이라는 데에는 누구도 이견을 내지 않았다.

무신궁주, 린 다이만.

특급 빌런, 린 샤오팡의 아비이자, 무신(??)과 탑주(??)를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공신력이 있던 걸물.

마법사에 대한 혐오와 무림인 우월주의로 각계의 갈등을 조장.

결국에는 전쟁까지 일으킨 작자지만, 그렇다고 길바닥에서 명을 달리할 위인도 아니었다.

그런데 죽어버렸다.

각 세력의 정상끼리 평화협정(아마도?)을 나누던 중 테러를 당했다.

그것도 이야기를 나누던 상대편 정상한테 직접 심장을 꿰뚫린 것이다.

무인과 마법사를 가리지 않고 영역에서 살아남은 모든 인원이 그 현장을 아연하게 바라보았다.

‘뭐지? 저 미친년, 무슨 생각으로 저지른 거지? 이걸 어떻게 하면 좋지?’

‘네 소꿉친구 잃어버려서 미안해.’라며 무릎 꿇고 사과할 생각이던 원정대장 마르쿠스조차 말문을 잃는 대참사였다.

“……씨이발.”

굳이 지금 죽였어야 했나.

전쟁터도 아니고 협상 테이블에 앉은 분위기에서 이런 참사를 일으킨 저의가 무엇일까.

그냥 오자마자 달려든 거라면 이해라도 할 텐데, 이건 미쳤다는 소리를 어지간히 들어왔던 그조차 이해할 수 없는 사태였다.

마르쿠스는 조용히 눈알을 굴리며 장내의 공기를 훑었다.

……이렇게 된 이상, 전부 죽여야 하나?

이내 살인 멸구의 발상에 다다를 무렵, 무인들의 말문이 트였다.

“……네 년이 정녕 미친 게냐!”

냉정하기로 유명한 그 검마(??)가 눈에 핏발을 세운 채 뇌까렸다.

뒤따라 육마(??)와 휘하 무인들 또한 혈사자를 성토했다.

그런 와중에도, 유한나는 두 손을 모아 기도할 뿐이었다.

“……어찌 일체의 설명도 하지 않는단 말이냐. 무슨 유언이라도 남기셨을 터다! 우리에겐 그를 들을 자격이, 의무가 있다.”

검마가 애절한 투로 말했지만, 그럼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제장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자신만의 기도문을 읊었다.

그야말로 태연자약한 그녀에게 일제히 달려들지 않는 까닭은 궁주가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기운이 소진되었더라도 무인의 정상(?上)이었다.

그 혈사자의 기습일지라도 아예 반응하지 못할 만큼 나약한 이가 아니었다.

……따라서, 기다렸다.

충성심 높다 소문난 무신궁의 무인들은 그녀의 동태만을 살폈다.

궁주를 찌른 직후, 비약적으로 올라간 유한나의 기세에 압도된 면도 분명 있었다.

단순히 경지에 겁을 먹은 게 아닌, 저 초월적인 경지에 이른 자가, 허튼 이유로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으리란 믿음.

“…….”

“…….”

그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은 침묵의 시간 끝에, 이윽고 거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력을 머금은 푸른 눈동자가 대지에 선 일단의 무리를 스쳤다.

아무 말 없이, 선혈이 묻은 손가락으로 공간을 갈랐다.

찬란한 광채가 쏟아졌다.

죽음과 불길함이 그득하던 장소에 마침내 출구가 열렸다.

허망할 정도로 간단하게.

“나가.”

축객령이 떨어졌다.

“……”

분명 고대하던 출구는 맞았으나, 기대하던 말은 아니었다.

‘네.’라고 지고지순하게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철컥, 철컥, 사방에서 마찰음이 울렸다.

일대의 무인들은 모두 제 병기를 뽑아 들었다.

승산이 희박하다는 까닭으로 울먹일 사람은 이미 죽은 지 오래였다.

무인은 사신에게 칼을 들이밀었다.

마법사들 또한 상황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일단 지원을 위해 마력을 끌어모았다.

유한나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비장한 얼굴들을 노려보았다.

일촉즉발(一??)의 상황.

한 집단의 명이 끊어지기 직전, 다행히 대답은 돌아왔다.

“거래였다.”

유한나는 나지막이 말했다.

“나는 그에 응했을 뿐이고. 혹시 유언을 바라는 것이라면, 너희들의 주인은 그런 낯간지러운 말 따위 남기지 않았다. 내가 해줄 말은 그뿐이야.”

그렇게 내뱉고 병기를 쥐었다.

마치 덤빌 테면 그러라는 듯 거만스러운 태도로 내려다보았다.

검마는 그 진위를 파악하려 그녀의 눈을 맹렬히 노려보았다.

그런 이유로 또다시 대치가 길어지자, 유한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덤빌 거면 빨리 덤벼. 할 일 있으니까.”

어쩐지 기분이 더러운 게, 무언가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었다.

***

이른 아침.

창가의 청백색 하늘이 방안을 비췄다.

커튼 사이로 얇게 들어오는 미약한 빛이었지만, 초인의 시야는 주변 풍경을 또렷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사내는 초점 잃은 시선으로 어지럽혀진 침실을 멍하니 둘러보았다.

“…….”

잔뜩 흐트러진 이불.

이리저리 뒹구느라 주름이 생긴 시트.

어느덧 홀딱 벗은 저 자신과 그 옆의 아슬아슬한 백옥의 나신.

어떤 치장도 하지 않은, 자연 모습 그대로임에도 아름다운 여인이 바로 옆에 있었다.

이불 외에 어떤 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으음…….”

샤오팡이 입맛을 다시며 이불을 끌어당겼다. 두 팔로 당신을 끌어안았다.

부드럽고 짜릿한 감각이 말초신경에 밀려들었다. 어째서인지 뇌가 저릿했다.

“……아.”

사내는 간밤의 일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 아침과 다른 현장을 보고 있자니, 무슨 일이 있어도 제대로 있던 모양이라는 당연한 추론을 해냈다.

그렇다면 뭔지는 몰라도 침실 주인으로서 책임을 져야지 않겠는가.

그런 의젓한 생각과 별개로 뇌리에 어떤 회한이 밀어닥쳤다.

“……처, 처음이었는데.”

이게 바로 쾌락 없는 책임이란 건가.

이진우는 순간 밀려오는 아찔한 감각에 얼굴을 쓸어내렸다.

슬쩍, 아름다운 그녀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아득하고 막막하면서도 몽글몽글한, 또 간지러운 가슴을 새삼 실감하며, 옆자리의 그녀를 조심스레 흔들어 깨웠다.

샤오팡은 기다렸다는 듯 눈을 비비며 비스듬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유려한 몸선을 타고 이불이 흘러내렸다.

그에 놀라기는커녕 전혀 괘념치 않는 표정으로 생긋 웃으며 말했다.

“여보, 좋은 아침이야.”

이진우는 탁, 하고 이마를 쳤다.

그리고는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정면에 시선을 두어선 안 됐다.

만약 마주한다면 심장이 멈추리란 확신을 느꼈기 때문이다.

잠시 현실에서 도피한 그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신속히 진정시켰다.

‘…여보? 지금 나한테 한 소리인가. 아니, 당연히 그렇겠지만. 도대체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여보 소리가 나오는 거지?’

그렇게 명석한 두뇌로 수천 가지의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았지만, 나오는 결론은 하나였다.

역시 메챠쿠챠 저질러 버렸나…….

이윽고 확신한 이진우는 발그레해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샤오팡은 듬직한 표정으로 제 연인(그렇게 만들 예정)의 허리를 슬쩍 감았다.

그리고는 뜨거웠던 지난밤을 떠올렸다.

여느 때와 같은 티타임에서 입맞춤을 성사시킬 줄은 그녀도 몰랐었다.

그 이후, 어떤 진전이 없으리란 것도 예상하지 못했고.

‘……아니, 키스까지 했는데 여기서 끝내자고? 어째서?! 더 좋은 게 남아 있잖아!’

‘역시 결혼하고 나서 하는 게 플라토닉한 사랑에 걸맞지 않나. 롤러코스터처럼 너무 빠른 진도는 심장에 나쁘지 않나.’

‘…….’

‘……저기요?’

‘그딴 플라토닉, 나는 용납 못 해!’

동거 35일 차.

플라토닉 러브를 끝내 순응하지 못한 샤오팡이 간밤에 달려드는 사고가 발생.

그러나 생식기를 폭발시켜 일대를 초토화시키는 정조보호 마법에 의해 불발되었고, 어쩔 수 없이 의복을 벗기고 품에 안기는 것으로 타협했다.

어찌 보면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하루의 아침.

“아.”

그 사실을 포옹이 이뤄진 지 십분 여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떠올린 이진우는 침음을 흘리며 품에 안긴 샤오팡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말똥말똥한 눈으로, 배시시 웃는 그녀를 꾸짖기에는 무리였다.

이진우는 행복감에 가득 차 빛나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다시 한번 탁! 하고 이마를 쳤다.

……그리고는 곧 하체에 위험 반응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는 직감을 느꼈다.

그를 깨닫자, 이진우는 조급해졌다.

“나, 잠깐만. 잠깐만 일어날게.”

“응? 갑자기?”

전체이용가에 일어나선 안 되는 녀석이 일어나려 하고 있어.

그리 말할 수 없었던 이진우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라는 변명을 내걸었다.

막 깨어난 참이라 그럴듯한 이유였다.

“아, 그래?”

아직 변태 플레이를 할 생각은 없었던 샤오팡은 그를 기꺼이 놓아주었다.

어느덧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에 세뇌된 그녀는 진도를 차근차근 나아가길 바랐다.

‘어젯밤은 키스였으니까, 그렇다면 오늘은 다음 거를 하고, 내일은 더한 무언가를……’

그런 음흉한 계획을 머릿속으로 진행해 나가는 중이었지만, 당장은 풀어주었다.

“고마워.”

이진우는 생긋 웃어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멈칫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말았다.

“……어.”

재빨리 침대맡의 타올을 하체에 감싸고는 욕실로 향했다.

그 황급히 옮겨지는 발걸음과 씰룩이는 뒤태를 보며, 샤오팡은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았다.

“……아, 개귀엽네.”

당장 잡아먹고 싶다.

……일단 생식기를 터뜨리고 재생시키면 되는 게 아닐까.

조금만 더 참으면 되니까, 그냥 참자. 그래, 아주 조금만 참으면 돼.

…아니, 얼마나 더?!

그렇게 극심한 내적 갈등을 느끼던 그녀는 돌연 고개를 돌렸다.

“……드디어.”

손님이 오셨다.

오직 그만을 위해 준비한 궁전에 감히 불청객이 찾아왔다.

이걸 반가워해야 하나, 질색해야 하나. 고민하며 샤오팡은 제 몸에 의복을 덧씌웠다.

순식간에 화려한 드레스를 걸친 성주는 어떻게 환영할지 생각했다.

쏟아지는 물소리와 콧노래가 흘러나오는 욕실을 곁눈질했다.

톡, 톡, 톡. 머리를 두드렸다.

어떤 방법이 그와 나의 행복한 삶을 보장할지, 긴 고민 끝에 해답을 도출해냈다.

죽이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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