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중앙음악학교 2학년 아나톨리 이고르비치 네스트로프는 바이올린을 품에 안은 채 교정을 헤매고 있었다.
기악 합주 연습 중에 뛰쳐나온 어린 학생에겐 갈 곳이 없었다.
굳이 연습실이 아니라도 학교는 넓고 어디든지 숨을 공간은 많았지만, 바이올린을 들고 화장실 같은 곳에 틀어박히긴 싫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던 아나톨리는 5층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복도 끝에 위치한 연습실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곤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그쪽으로 향했다.
피아노과의 연습실은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현악기 연습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방음 처리가 된 연습실에 그랜드 피아노가 한 대 놓여 있었고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었다.
차이라고는 삼각대로 세우는 보면대가 하나도 없다는 점 정도였다.
얼핏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아나톨리는 이 연습실에 들어서자마자 조금 어이가 없었다.
“뭐지…….”
아나톨리는 눈을 비비고 다시 연습실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전에 쓴 사람들이 과자와 음료수를 두고 파티라도 벌인 것처럼 테이블 위가 엉망이었다.
장엄한 교칙 위반의 현장이었지만 아나톨리는 용감하게 연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달리 갈 곳이 없었다.
“…….”
연습실 문을 닫자 적막이 내려앉았다. 모든 소리를 빨아들이는 방음실 특유의 먹먹함이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아나톨리는 바이올린을 내려다보았다. 이걸 켜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아나톨리는 바이올린을 옆에 내려놓고 두리번거리다가 피아노 앞으로 다가갔다.
피아노.
이 거대한 악기는 늘 그에게 무서운 위압감을 주곤 했다.
피아노는 한 가닥 현으로도 수없이 많은 음들을 자아낼 수 있는 바이올린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악기였다.
아나톨리는 이 여든여덟 개나 되는 건반 속에 각각의 음이 꼼짝도 못 하고 누워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딱딱하고, 두렵게 느껴졌다.
대체 어떤 사람이 이렇게 무서운 생각을 한 걸까.
이 건반 하나하나는 묘비라 할 수 있었다. 건드리면, 유령이 일어나서 비명을 지른다.
아나톨리에게 있어서 피아노는 거대한 공동묘지나 다름없었다.
“…….”
아나톨리는 야속하다는 듯 피아노를 바라보았다.
기악 합주를 연습하다가 도망쳐 나온 것 역시 이 피아노 때문이었다.
반주로 배경에 깔리는 피아노 소리가 너무 둔탁하고, 소름 끼쳐서. 아나톨리는 자신의 바이올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혼자 에튀드를 연습하고 바이올린에 집중할 땐 이런 일이 없었는데, 2학년이 시작되고 새로운 곡들을 배우자 피아노 반주가 합쳐지면서 아나톨리는 수업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이나 합주를 망치고, 같은 반인 마르파에게 짜증 서린 핀잔을 듣고, 참을 수 없어서 뛰쳐나왔다.
왜 자신은 이렇게나 피아노 소리가 두려운 걸까. 그 누구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들조차 아나톨리의 설명을 알아주지 않았다.
그래 봐야 악기에 불과한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잘 안다. 하지만 이 소리가 너무 싫었다.
아나톨리는 이를 악물고 분하다는 듯 손을 뻗어 건반을 눌렀다.
해머가 현을 때리고, 현에 구속된 음의 유령이 일어나서 울음소리를 냈다.
“아…….”
아나톨리는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뭐지 방금? 진짜 유령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아나톨리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선생님에게 아무리 말해도 들어 주지 않던 자신의 생각이 옳았단 말인가?
피아노 건반엔 유령이 깃들어 있어.
아나톨리는 그 자리에 굳어서 부들거리다가, 다시 눈을 부릅떴다.
무섭고 두려웠지만, 기회이기도 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증명할 수 있는 기회.
아나톨리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다시, 이번엔 조금 더 세게 건반을 눌렀다.
“아…… 악!”
쿵!
피아노가 진동하며 비명 소리가 일었다.
아나톨리는 이번에야말로 기겁해서 후다닥 벽으로 물러섰다. 그 손엔 바이올린이 들려 있었다.
피아노의 유령이 나타난다면 바이올린으로 물리쳐야만 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나톨리는 허겁지겁 바이올린 케이스를 열고 바이올린을 꺼내 어깨에 올리고, 활을 쥐었다.
마치 적에게 총구를 겨누는 군인처럼, 그렇게 자세를 취한 채 아나톨리는 피아노를 노려보았다.
무엇이든 튀어나오기만 하면 방아쇠를, 활을 당길 생각이었다.
나와라, 나오기만 하면 내가 이 바이올린으로…….
“으…….”
잔뜩 긴장하고 공격 태세를 취하고 있던 아나톨리는 갑자기 손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유령이 아닌 요정이 피아노 밑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다.
“뭐야아…….”
손으로 머리를 문지르던 요정이, 몸을 일으켰다. 아나톨리는 숨 쉬는 것도 잊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중앙음악학교는 그 역사가 80년이나 된 학교이니 만큼 수많은 전설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중엔 음악의 요정에 대한 것들도 있었다. 연습실에 머물러 있다가 마음에 든 학생들에게 축복을 내린다고 했었던가.
그 요정이 교복을 입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진짜였어…….”
“……누구신가요?”
헝클어진 황금빛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요정이 물었다. 요정은 어딘가 굉장히 피곤해 보였다. 아나톨리는 저도 모르게 순순히 대답했다.
“아나톨리…… 아나톨리예요.”
“……아나톨리?”
그 발음이 낯설다는 듯 중얼거리던 요정이 손을 들어 눈을 몇 번 부비더니 다시 눈을 들었다. 극히 옅은 푸른색 눈이 이채를 띠었다.
“풀 네임은요?”
“……예?”
“이 학교에 아나톨리가 하나뿐은 아니잖아요?”
“……아나톨리 이고르비치 네스트로프예요.”
“몇 학년?”
“2학년이요.”
“그래요…… 바이올린을 하고 있으시군요?”
아나톨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과연, 음악의 요정은 이름만 들어도 무슨 악기를 하는지 알 수 있는 건가?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들고 있잖아요?”
요정이 심드렁하게 아나톨리의 어깨를 가리켰다. 그제야 아나톨리는 아직도 자신이 바이올린을 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호구조사를 마친 요정이 킥 웃더니 말했다.
“저 이제 아나톨리의 이름이랑 반이랑…… 다 알아요?”
“……?”
“그러니까, 제가 여기 있다는 건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돼요. 알겠죠……? 학교에 소문이라도 돌면 제가 아나톨리를 찾아갈 테니깐요.”
“……!”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교복까지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현실감 없게 생겨서 정말 요정이라고밖에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아닐지도 모른다.
아나톨리는 이 학교에 떠도는 또 다른 이야기를 떠올려 냈다. 그건 괴담이었다. 70년대에 있었던 화재로 생겨난 수많은 유령들에 대한…….
아나톨리는 벌벌 떨면서 물었다.
“유…… 유령이신가요?”
“응?”
이젠 정체를 알 수 없게 된 소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
“유령이라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죠.”
약간 자조적으로 웃으며, 소녀가 말했다.
“그게 제 본질이니까요.”
“……아…… 으아…….”
제대로 말도 못하고 얼어붙은 아나톨리에게 소녀가 다가갔다. 음산한 미소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어쨌든, 소문 내지 않아 줄 거죠?”
“예, 예. 예!”
“좋아요.”
방금 보였던 음울함이 마치 모두 거짓이었던 것처럼, 소녀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현실적으로 보이던 외모에 갑자기 색채감이 확 돌아왔다. 아나톨리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소녀가 발랄하게 휙 돌아서더니 노래하듯 말했다.
“착한 아이에게는 선물을 줘야겠네요.”
“……?”
“자아, 아나톨리. 어떤 곡을 켤 줄 아시나요?”
“저요?”
“다른 누가 있겠어요?”
소녀가 똑바로 아나톨리를 직시했다. 선물?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하지만 무엇을 할 줄 아느냐고 묻자, 곧장 아나톨리의 머릿속에 그간 배웠던 바이올린 곡들이 떠올랐다.
셰프치크나 카이저, 흐리말리 같은 에튀드 교재들은 꽤 진도를 많이 나가 있었다. 방학 내내 배운 독주곡들도 꽤 많았다.
“비에냐프스키 에튀드 카프리스 4번이요.”
아나톨리는 그중에서도 꽤나 멋있게 들려줄 수 있는 곡을 선택했다.
바이올린 홀로 연주되는 에튀드 카프리스는 연습곡이지만 그 자체로도 충분한 독주곡이었다.
소녀는 그 제목만 듣고도 약간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칭찬했다.
“대단한데요? 들려주시겠어요?”
순수한 칭찬에 아나톨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기대 어린 소녀의 눈을 본 아나톨리는 곧장 실력을 보여 주겠다는 듯, 지판을 짚고 활을 그었다.
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소년과 1/2사이즈의 바이올린. 어수룩할 수밖에 없어 보이는 이 조합이 빚어내는 선율은 상상 이상으로 맑고 또렷했다.
아나톨리는 작고 어리지만 중앙음악학교에 들어올 인재라면 나이와 관계없는 선험적 천재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눈을 감고 연주에 빠져든 아나톨리의 귓가로 무언가 다른 소리가 섞여 들었다.
아나톨리는 처음엔 그것이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얽혀 든 그 소리는 곧 아나톨리의 바이올린 소리를 더더욱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아나톨리는 계단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정신을 차린 아나톨리가 화들짝 놀라 연주를 멈췄다.
“……!”
“계속하세요.”
소녀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바이올린은 멈췄고, 길을 잃었다.
하지만 피아노의 화성과 프레이즈는 단단했다. 수백 년간 연구된 화성의 구조는 쉽게 흐름을 잃지 않았다.
아나톨리는 다시 활을 쥐고 프레이즈 안으로 뛰어들었다.
소녀가 앞서 나가며 마련하는 길은 그간 단단하고, 배려 없고, 무섭기만 하던 피아노 반주와는 달랐다. 흡사 카펫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고 그 위에 바이올린을 올리기만 하면 되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피아노의 화성 위로 몸을 던지기만 하면 모든 것을 끌어내 주었다.
아나톨리는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기분으로 연주를 이어 나갔다. 처음 굳어 있던 입은 갈수록 풀어져, 마지막엔 미소를 띠고 있었다.
“…….”
짧은 카프리스가 끝나고, 아나톨리는 편안하게 바이올린을 내렸다.
아나톨리는 자신이 처음으로 완벽하게 피아노 반주와 함께 연주를 마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녀가 방긋 웃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직도 벽 쪽에 붙어 있는 아나톨리 쪽으로 다가오더니 허리를 숙였다.
그제야 아나톨리는 눈앞의 소녀가 유령이나 요정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나톨리의 머리를 따뜻하게 쓰다듬으며 소녀가 말했다.
“소리가 좋아요. 연습 열심히 하세요, 아나톨리. 그러면 정말 훌륭한 연주자가 되실 거예요.”
“예……?”
“하나만 말해 드리자면…… 비브라토를 할 때 너무 힘을 줘서 꽉 누르지 말고 조금은 풀어 주세요.”
“!”
선생님들에게 늘 들었던 말을 소녀가 똑같이 하고 있었다.
고쳐야 한다고 생각 하면서도 연주에 열중하다 보면 무의식중에 그렇게 되고 말던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 낸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피아노 전공이시잖아요?”
그것 외엔 다르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눈앞의 소녀는 요정도 무엇도 아니었다.
피아노과의 선배였다. 그것도 전문 반주자들의 실력을 넘어설 정도로 굉장한.
피아노에서 이렇게 부드럽고 환상적인 음색을 자아낼 수 있는 사람이 보통 사람일 리가 없었다.
소녀는 배시시 웃더니 얼굴을 더욱 가까이 했다. 아나톨리의 얼굴이 폭발할 듯 붉어졌다. 소녀는 비밀이라는 듯, 귓가에 소곤거렸다.
“전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지만, 바이올린도 배운 적이 있거든요.”
아나톨리는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소녀는 잘 해 봐야 10대 초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저런 피아노를 칠 수 있으면서 바이올린까지 배웠다니? 그것도 아나톨리의 문제점을 지적해 주는 것을 보면 어설프게 조금 배운 실력도 아닌 것 같았다.
“피아노를 그렇게 잘 치시면서 왜요……?”
“예전에 사사한 교수님이 저에게 바이올린을 배워 보라고 하셨어요. 재미있지 않나요?”
“재미가 아니라, 이해가 안 가요. 시간 낭비잖아요?”
소녀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소리에 대해 연구하는 데에 있어선 바이올린보다 좋은 악기가 없으니까요.”
아직 아나톨리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엄청난 피아노 실력의 기반에 바이올린이 깔려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백금발의 소녀는 다시 부드럽게 웃으며 아나톨리의 머리를 살짝 헝클어뜨렸다. 아나톨리는 마주 웃으며 머리를 맡겼다.
따뜻한 손길과, 다시 깨달은 피아노에 대한 관념으로, 그간 무작정 느껴지던 두려움은 많이 사라져 갔다.
소녀는 배시시 웃더니 물었다.
“그래서, 아나톨리. 어떤 고민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나톨리는 기가 막혔다. 방금 연주를 한 번 들었다고 그런 것까지 읽어 낸단 말인가?
아무것도 숨길 수 없었다. 아나톨리는 그냥 모두 털어놓기로 했다.
“그…… 마르파가 아, 제 여자 친구 이름이에요. 마르파가…….”
“음?”
“제가 항상 합주를 망치니까 이젠 꼴도 보기 싫다고…….”
“그러세요……?”
소녀가 삐딱하게 고개를 틀며 아나톨리의 이야기에 호응했다.
약간 심사가 뒤틀린 것처럼 보였지만 아나톨리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나톨리는 정리가 안 되는 머릿속을 헤집고 마구 뒤져서 말들을 찾아냈다. 조금 두서없이 말이 나왔다.
“마르파랑 저는 소꿉친구였고…… 작년에 마르파가 저랑 사귀자고 한 뒤론 절 싫어한다고 한 적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이 처음이에요. 전…… 전 합주를 잘 못해서 마르파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요.”
“……그랬군요.”
애절한 목소리가 아나톨리를 다독였다. 아나톨리는 소녀가 무언가 조언을 해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소녀는 갑자기 냉정하게 눈을 치떴다.
“잘되었다고 생각하세요, 아나톨리.”
“예……?”
“애인이 다 무슨 소용인가요? 고독과 사색은 음악가의 친구이자 운명이랍니다. 아나톨리도 지금은 물론 마음이 아프고 쓰라리겠지만 그게 앞으로 더더욱 대단한 음악가로 이끌…….”
“너 대체 애 붙잡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타티아나…….”
언제 들어왔는지, 화려한 금발을 지닌 소녀가 연습실에 들어와 있었다.
아나톨리를 붙잡고 심각하게 이야기를 하던 소녀는 연습실에 막 들어온 소녀를 보자마자 반색하며 해맑게 웃었다.
“아나스타샤!”
“너 대체…… 저 애는 또 누구야?”
“아나톨리라는 이름의, 여덟 살에 여자 친구까지 있는, 되바라진…… 조숙한 후배님이지만, 오늘부턴 갈 곳이 없는 고독한 음악가예요.”
“타티아나. 괜찮아? 혹시 그사이 콜라 더 마셨니?”
“그러니까 이 연습실까지 찾아왔겠죠! 전 알 수 있어요!”
타티아나는 이전까지 보이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애처럼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나톨리는 언뜻 신비로워 보이기까지 했던 분위기의 편린조차 찾을 수 없어 황망해했다.
“어디 갔다 온 거예요, 아나스타샤. 절 버려두고.”
“음료수 사러 갔다 왔어. 그사이 넌…… 옷은 또 왜 이래? 먼지투성이잖아.”
“아…… 머리도 아프고 속도 안 좋고, 심장이 도저히 멈출 생각을 안 해서 피아노 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 아! 아파요! 아나스타샤!”
“미쳤어, 진짜. 거길 왜 기어 들어가?”
“아! 아야!”
아나스타샤는 타티아나의 교복에 붙은 먼지를 떼어 낸다는 명목으로 손바닥으로 타티아나의 등허리를 마구 두들겼다.
타티아나는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뒤틀었다.
상급생 둘이 보이는 희한한 광경에 아나톨리는 할 말을 잃었다.
“저기…… 누나들.”
“음.”
그제서야 아나스타샤는 손을 멈추고 아나톨리를 돌아보았다. 아나톨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까 타티아나도 강조했지만 절대로 여기서 있었던 일을 발설해선 안 된다는 본능적 직감이 들었다.
잠시간 아나톨리를 내려다보던 아나스타샤가 말했다.
“과자 먹을래?”
“……?”
아나스타샤는 다짜고짜 뇌물부터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