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54화 (54/1,277)

##  54화

연습실로 들어선 리처드는 가방을 구석에 내려놓더니 날 돌아보았다.

“게임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우리 미리 정해 놓을 게 있지?”

“정해 놓을 것이요?”

같은 피아노를 가지고 대결하는 데에 있어서 그런 게 있던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리처드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깃거리를 걸어야지.”

“아…….”

규칙 이야기가 아니었다.

난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렇게 요즘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지. 머리가 잘 안 돈다.

리처드가 이어 말했다.

“지금 이 게임은 어디까지나 내가 요구한 일이고, 그저 재미로 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내기가 약하면 재미가 없죠.”

내가 대신 대답하자 리처드가 손을 튕겨 딱 소리를 냈다.

“바로 그거야. 달리 게임에 집중할 이유가 없다면 내깃거리로 그 이유를 만들어 내야지.”

“그래서, 뭘 원하시는데요?”

“네가 에르네스트에게 걸었던 것.”

“…….”

그때 난 에르네스트에게 뭐든지 다 들어주겠다며 백지수표를 썼었다.

하지만 그때랑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난 애석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리처드 미안하지만, 그건 받아들일 수 없어요.”

“왜?”

“그때 에르네스트는 연구회의 해체를 걸었죠. 전 이긴다고 해도 리처드에게 그리 대단한 걸 요구할 생각이 없어요.”

“내기가 약하면 재미없다고 한 건 타티아나 너인데?”

“약하진 않죠. 전 리처드에게 몇 가지 궁금한 것들을 물어볼 생각이니까요.”

중앙음악학교에 입학한 뒤로 4년 간 숨기고 있었던 것들을 캐물어 볼 생각이었다.

나에게 있어선 정말 별것 아닌 그저 흥미본위의 일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리처드에게 있어선 꽤나 중요한 일을 드러내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그걸 떠벌리고 다닐 일은 없어도 결코 가볍진 않다.

리처드가 냉정하게 딱 잘라 말했다.

“확실히 약한 내깃거리는 아니야. 그건 내게 있어선 최선을 다해야 할 조건이니까.”

“저도 알고 있어요.”

“그래도 넌 에르네스트에게 걸었던 조건을 내걸지 못하겠다고?”

하지만 리처드의 비밀을 조금 듣는 조건으로 그 반대편에 내가 백지수표를 올려놓을 순 없는 일 아니겠는가?

“너무 계산적인 것은 저도 별로 안 좋아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대체 뭘 걸었던 거야?”

“비밀이에요.”

리처드가 날 유심히 바라보았다. 리처드는 굉장히 날카롭고 영민하다.

이미 그는 상당히 많은 것을 읽어 냈겠지만 그걸 굳이 확인시켜 주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시치미를 뚝 떼고 마주 쳐다보자 리처드는 약간 곤란하다는 듯한 낯빛을 했다. 이쪽 저울에 올려놓은 것만큼만 리처드 역시 올려놓을 수 있었다.

리처드가 그렇게 잠시간 날 바라보더니, 이윽고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말했다.

“타티아나 넌 내게 몇 가지 묻는다는 걸 조금 쉽게 여기는 것 같은데.”

“그렇진 않아요.”

“그렇다면 이건 어때. 내가 이기면 당분간 구세프의 지도에 따르지 마.”

“……?”

순간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왔다.

리처드가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건가? 이건 저울이 약간 기운 게 아니라 그냥 저울이 박살 나 버린 것 같은데.

정말 장난치는 건가 싶어서 리처드를 올려다보았지만 리처드는 어디까지나 진지했다.

스스로 듣기에도 당혹감이 역력한 목소리가 나왔다.

“리처드, 그건 내깃거리로 삼을 수 있는 조건이 아닌 것 같은데요.”

“충분히 가능해.”

가능이야 하겠지. 내가 죽어도 못하겠다고 뻗대면 구세프 선생님도 어찌 할 방법이 없을 테니.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나는 구세프 선생님에게 더더욱 반항하면 안 되는 입장이기도 했고.

“그건 조금 곤란…….”

“결코 귀찮거나 문제 되는 일은 없을 거야. 그 점은 내가 처리해 줄게.”

“……?”

난 리처드가 도대체 뭘 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선생님의 지도에 반항하라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무거운 조건을 내걸어 놓고는 이 태연한 태도는 무어란 말인가? 귀찮거나 문제 되는 일은 자신이 처리해 준다고?

도저히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요?”

“비밀이야.”

난 순간 헛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정말 대단했다.

내가 비밀이라고 딱 자른 지 불과 30초 만에 거꾸로 날 안달 나게 해서 복수를 성공시킬 줄이야.

그는 날 어떻게 하면 움직일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난 선선히 패배를 인정했다.

“무슨 생각이신진 모르겠지만…… 전 내기 조건을 되도록 이행하고 싶어요.”

되도록 따라 주고 싶지만,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조건이라면 내기고 나발이고 집어던지는 수가 있단 소리였다.

리처드는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이기만 하면 돼.”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이렇게까지 당당하게 나오니 믿음이 생겼다.

의심과 신뢰, 흥미, 호기심 등등의 감정이 뒤섞여서 날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 어쩐지 나 사기 같은 거 잘 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일단, 알겠어요. 받아들일게요.”

“좋아.”

리처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옆을 돌아보았다.

거기엔 클라브디야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우리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처드가 물었다.

“들었어? 참관인 후배.”

“저기…… 두 분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클라브디야가 더듬거리며 손가락을 하나씩 꼽았다.

“그, 타티아나 선배님은 이겼을 경우 단지 몇 가지 물어 볼 것이 있다고 하셨죠.”

“예. 맞아요.”

“그런데 그 반대가 선생님의 지도를 거부하는 것이라고요? 게다가 구세프라고 하면 그 구세프 선생님 말하는 것 맞죠?”

“예.”

“말이 안 되지 않나요? 공평하지 않아요.”

그녀가 보기엔 정말 정신 나간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비단 클라브디야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 머리 한쪽에 간신히 남아 있는 상식도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아니…….”

“공평하지 않더라도 상관없어요.”

난 그 모두를 잠재웠다.

알 게 뭔가.

말도 안 되게 불공평한 조건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최소한 이건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가?

이대로 내기에 져서, 충실하게 내기 조건에 따라 구세프 선생님의 레슨실로 쳐들어간 다음에 황당한 눈으로 날 쳐다보는 구세프 선생님 앞에서 도저히 당신 같은 작자랑은 뭘 같이 못해 먹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뛰쳐나오는 일이 생겨도, 나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핑계가 필요한 걸까?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기분이다.

“타티아나.”

내기 조건까지 모든 게 정해졌고 리처드가 날 불렀다.

“먼저 하겠어?”

사실 누가 먼저 한다고 해서 유리하거나 불리할 것도 별로 없다.

“아뇨, 리처드 먼저 하세요.”

“알았어.”

리처드는 긴 말 않고 피아노 앞에 가서 앉았다.

대충 앉아서, 정말 대충 자세를 잡더니 곧바로 양손으로 건반을 두들겼다.

쇼팽의 전주곡 16번이었다.

후세 사람들이 부르는 부제는 ‘지옥의 골짜기로 가는 길’.

강렬한 펼침화음이 곡의 발단을 알리고, 무시무시한 스케일이 시작되었다.

“…….”

역시, 역시 리처드는 보통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전주곡은 연주 시간도 1분 정도로 짧고 난이도도 그리 높다고 할 순 없었지만, 빠른 스케일을 뭉개지 않고 똑바로 유려하게 쳐 내려면 꽤 건실한 테크닉을 필요로 했다.

특히 인간의 손이 어떻게 구동하는지, 어디까지 움직이는지 같은 인체공학엔 전혀 관심이 없는 쇼팽의 작곡 특성상 깔끔하기 어려운 구간이 몇 존재했다.

그 모두를 리처드는 너무나 가볍게 연주해 나갔다.

쇼팽의 곡들은 대부분 순수음악으로, 들리는 대로 듣는 게 가장 올바른 감상법이지만 왜 ‘지옥의 골짜기로 가는 길’이라는 부제가 붙었는지 뚜렷하게 잡힐 듯이 눈에 보였다.

누군가 쫓아오는 것을 절대 뒤돌아보지 않고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달아난다.

절뚝거리는 왼손에 비해 오른손의 선율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그 길을 가르쳐 주는 것처럼 끊이지 않고, 흩어지지 않고 한곳으로 수렴되는 듯 이어져 나간다.

샛길 하나 없이 어디로 도망치지도 못하고 앞으로, 앞으로 미친 듯이 도망치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는 것은…….

“…….”

리처드가 손을 놓고 날 보고 있었다.

난 이 곡 역시 리처드가 보여 줄 수 있는 실력 중 지극히 일부, 편린에 불과하리라 확신했다.

프렐류드, 즉 전주곡. 한 작품의 도입부이자 첫인상으로 쓰이는 곡이다.

쇼팽은 이것을 독립된 기악곡으로 작곡했지만, 리처드는 전주곡의 뜻대로 사용했다.

이것은 리처드가 내게 보내는 일종의 인사라 할 수 있었다.

리처드는 단순히 기교를 겨루는 대결 이상을 추구하고 있었다.

나와 더 친해지고 싶다고, 날 알고 싶다고 악수를 건네고 있는 중이었다.

“네 차례야.”

리처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머뭇거리며 피아노로 다가갔다.

“…….”

리처드는 이렇게 훌륭하게 내게 인사를 보냈다. 그 뜻은 충분히 전해졌다.

나 역시 답인사를 해야만 했다.

리처드에게 보내기에 충분한 곡으로…….

하지만 건반을 눈앞에 두니 머릿속이 캄캄해졌다. 마치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기분이었다.

최대한 느릿하게 의자를 조절하고, 페달을 발로 더듬으면서,

필사적으로 맞는 곡을 찾기 위해 머리를 헤집었다.

쇼팽 프렐류드 16번이라면 24번? 그냥 에튀드는 어때? 10-1번이나 10-4번, 아니면 25-9번? 이런 대결에 무난한 것으로 왈츠 7번도 자주 치지 않았나?

아니야, 굳이 쇼팽에 국한될 이유가 없잖아. 나는 나대로 리스트의 곡들로……. 너무 식상한가? 리처드는 이렇게 깔끔하게 자신을 드러냈는데 괜히 과시적으로 보이려고 해 봐야 우스운 꼴밖에 안 될 것 같아. 지금 리스트를 제대로 칠 수 있으리란 자신도 없고.

슈만을 다시 한 번…… 아냐, 차라리 요즘 과제곡을 할까.

“…….”

본래 난 이런 즉흥적이고 돌발적인 상황에서 피아노 앞에 앉아 전혀 고민 같은 건 하지 않는 편이었다.

내 머리엔 항상 곡들이 가득했고 난 언제든지 그것들을 건반 위로 끌어 올릴 수 있었다. 연주자라면 으레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난 자리를 잡고 앉아서도 몇 초간을 그대로 굳어 있었다.

어쩌지.

나 생각보다 상태 너무 안 좋은데.

그냥 막연히, 상황이 주어지면 해낼 수 있으리라 스스로를 믿고 있었다.

난 항상 자신감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아노 앞에 일단 앉으면 무엇이라도 곡을 뽑아내는, 그런 기술적인 면은 상당히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믿음은 너무 쉽게 배신당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지난 한 달 사이 이렇게 못 쓰게 되어 버렸나.

“…….”

생각이 완전히 정지되어 버린 내가 결국 선택한 것은 리처드가 연주한 곡을 똑같이 따라서 연주하는 것이었다.

조금 더 빠르게.

아주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아무 생각 없는 일차원적 대응이긴 하지만, 규칙 같은 게 어디 있는가?

이렇게 똑같은 곡으로 기교를 과시하는 것 또한 이런 대결에서 유효한 방법 중 하나였다.

다른 무엇 보다 확실하게 실력 차를 보여 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난 정말 깜깜한 머리로 건반에 매달렸다.

리처드가 연주한 것 보다 더 빠른 템포로, 미친 듯이 내달렸다. 절뚝거리며 도망치던 남자가 이젠 거의 날아서 협곡 사이를 비행하고 있었다.

리처드가 원한 것은 결코 이런 게 아니다. 내가 원한 것도 아니다.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곡이 정신없이 이어졌다.

대체 이게 뭔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뿐이었다.

“…….”

어떻게 쳤는지도 모를 곡을 마무리 짓고 떨리는 눈으로 리처드를 돌아보았다.

리처드는 평소의 그 무감각한 눈으로 내 쪽을 보고 있었다.

단순히 손가락 속도만을 겨루는 자리라면 내가 이긴 것이 되겠지. 하지만 정말 그 정도를 따지는 대결이었다면 리처드 역시 시작부터 인템포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연주했을 것이다.

리처드 역시 그럴 실력이 없어서 정중하게 전주곡을 연주했던 것이 아니다.

“이건 어때?”

리처드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피아노 의자에서 물러나자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

이번엔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op23 전주곡 10곡 중 5번째 곡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내 속주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과격하지 않고 정중한 인템포의 연주였다.

여기서도 리처드의 본 실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시작되는 웅장한 행진곡 풍의 주제를 쿨하게, 말 그대로 쿨하게 연주하고는 이어지는 서정적 주제 또한 아름답게 이어 나갔다.

대충 완주하기는 쉽지만 멋지게 연주하기는 정말 어려운 곡이었는데, 리처드는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한 태도로 곡을 만들어 나갔다.

난 그것을 들으면서도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다음 곡을 고민했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하지만 그 어떤 곡을 꺼내도 리처드를 이길 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르네스트 때와는 완전 정반대의 기분이었다.

그때는 그 엄청난 라 캄파넬라를 듣고서도 반드시 찍어 누를 자신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 짧은 전주곡을 듣고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아무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너무 신경을 곤두세웠는지 머리가 다 아파 왔다.

“…….”

리처드가 일어섰고, 난 다시 그와 교대해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거의 기계처럼, 아무 감정도 생각도 없이 리처드가 연주했던 라흐마니노프 전주곡를 반복해서 연주했다.

훨씬 더 빠른 템포로.

지금은 대결 중이고, 난 무슨 곡이든 쳐야만 했고, 이 또한 하나의 전략일 뿐이라는 야비한 생각이 날 합리화했다.

중반부의 서정적인 주제 역시 처음 잡았던 속도 그대로 주르륵 긁어 나갔다.

악보 그대로 컴퓨터에 집어넣고 빠른 배속으로 재생시키면 아마 이런 소리가 나올 것 같았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그냥 그만두어야 하는 것 아닐까.

“…….”

연주가 아닌 이상한 무언가를 마치고 손을 늘어뜨렸다.

클라브디야의 작은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그녀가 보기엔 내가 리처드를 완전히 가지고 논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가 먼저 연주한 곡을 잇달아서 훨씬 빠르게 연주했으니 기교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리처드가 나와 속주로 맞붙고 싶었다면 얼마든지 더 빠르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난 리처드가 두 번째로 준 기회 역시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세 번째는 리처드도 봐주지 않을 것이다. 실망과 경멸이 가득 어린 곡이 날 후려치겠지. 그때, 엉망인 내 상태가 드러날 것이다.

그렇게 조용히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데, 리처드가 말했다.

“왜 그런 표정이야?”

“…….”

그는 분노도, 경멸도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내가 그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자각이 들었다.

리처드가 담담히 말했다.

“타티아나. 네가 지금 그 속주로 이겼다고 주장한다면, 난 두말 않고 받아들일 거야.”

“……리처드.”

“하지만 넌 그럴 생각이 없어 보여.”

더없이 걱정 어린 목소리였다.

차라리 그가 날 향해 지독하다는 듯 욕을 했다고 해도 이보다 마음이 아프진 않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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