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65화 (65/1,277)

##  65화

일요일에도 난 어김없이 외출 준비를 했다.

시간에 맞춰 빅토르를 찾아갔다. 숙소 문을 두드리자 이미 빅토르와 자하르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도 구아르바트 거리로 가십니까? 아가씨.”

“예.”

“바이올린에 관심이 생기신 것 같군요?”

난 바이올린을 배운 적도 있었지만 빅토르를 이해시킬 순 없을 것이다. 그저 고개만 끄덕여 대답했다.

그는 가만히 날 바라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가씨. 주제넘는 말입니다만, 하나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주제넘다니, 그런 말 마세요, 빅토르. 뭔가요?”

빅토르가 이상한 소리를 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으레 아가씨 또래의 분들이 느끼는 그런…… 감정에 의해서 행여나 그…….”

“무슨 말이에요?”

“혹시 그 악사에게 연민 같은 걸 느끼는 건 아니시겠죠?”

“……예?”

나도 모르게 조금 높은 소리가 나왔다.

“제가 그분을 그렇게 모욕적인 시선으로 보는 것 같나요?”

그 대단한 연주자에게 나 따위가 감히 연민을 느낄 거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돈? 물론 콘서트 홀이 아닌 거리에서 연주를 하시는 그분은 가진 돈이 많지 않을 수 있겠지, 그에 비해 난 여유가 좀 있을 수도 있겠고. 하지만 그건 내 판단 기준에 있어서 아주 사소한 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난 언제나 똑같은 기준으로 음악가를 대한다.

조금 날이 선 눈으로 빅토르를 바라보자 그가 사과했다.

“아니라면 죄송합니다.”

“……빅토르가 무슨 말을 하는진 알아요. 제가 사흘을 내리 한 사람만 찾아 갈 이유는 딱히 없겠죠. 하지만…….”

“아뇨, 아가씨. 전 아가씨를 믿습니다.”

가만히 있던 자하르가 끼어들었다.

난 자하르가 날 약간 과보호함과 동시에 굉장히 어린애로 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날 믿는다는 말로 두둔하니 약간 어색했다.

“어…… 고마워요?”

“아가씨께선 스스로 듣고 믿으시는 바대로 행동하시면 됩니다. 그 주변에 거슬리는 것들은 제가 치워 드리겠습니다.”

“야, 자하르. 왜 너 혼자만 일하는 것 같냐? 나야말로 아가씨 덕분에 죽어나거든?”

“저희가 치워 드리겠습니다.”

“이제 와서 말 바꾸면 끝이야? 이 □□□□가 요즘 보면 막 나가, 아주?”

당사자 보는 앞에서 죽어난다느니 하는 빅토르를 보며 빅토르야말로 막 나가시는 거 아니냐고 묻고 싶었지만, 난 저번 주 사건 이후로 빅토르에게 찍소리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빅토르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예고르와 소로킨이 그를 거의 잡아먹기 직전까지 갔었단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가 날 위해 정말 죽어난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빅토르, 제가 잘할 테니 제발 앞담은 자제해 주세요. 죄책감 때문에 얼굴을 못 들겠으니까.

* * *

“왔구나.”

“안녕하세요.”

조금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자니 할아버지가 바이올린을 메고 나타났다.

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싱글벙글 웃으며 준비를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오늘도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할아버지가 몇 번 바이올린을 켜 보시더니 내 쪽을 보았다. 아직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이 잠시간 날 내려다보셨다.

신청곡이 있다면 말해 보라는 듯한 시선이었다. 내가 여기서 조금 당돌하게 듣고 싶은 곡을 말한다면 얼마든지 연주해 주실 것 같았다.

“…….”

하지만 조용히 고개를 가로젓자 할아버지는 흥미롭다는 듯 웃더니 연주를 시작했다.

오늘의 프로그램은 바흐의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소나타 및 파르티타 중 파르티타 2번이었다.

파르티타란 바로크 시대에 쓰인 변주곡 형식의 모음곡을 뜻했다.

바흐의 파르티타 2번은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주요 레퍼토리이기도 했다.

아르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지그, 샤콘느의 5곡을 포함하고 있었고 특히 그 중 다섯 번째 샤콘느는 바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들으면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고, 단독으로도 자주 연주되곤 한다.

피아노곡에 있어서 바흐가 구약성서의 취급을 받는 것처럼, 바이올린에 있어서도 역시 그랬다.

다만 한 가지 차이라면 깊이도 깊이지만 난이도도 굉장히 높다는 점이었다.

피아노로도 바흐를 제대로 연주하기란 물론 쉽지 않지만 그 난이도가 낭만 시대의 난곡들과 비견된다 할 순 없었다.

하지만 바이올린 곡들, 특히 이 파르티타는 후세의 곡들과 비교해도 굉장한 난곡에 속했다.

“……!”

그리고 백발의 바이올리니스트는 엄청난 기교로 바흐를 세상에 풀어내었다.

오늘은 어제 느꼈던 기교 너머의 깊이를 더 자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난 가만히 연주를 들으며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을 떠올렸다. 조세프 시게티, 혹은 아르투르 그루미오.

난 지금 이 연주가 어떤 명반들에 비해서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고 느꼈다.

얼핏 끝없이 우울하게만 들릴 수도 있는 단조의 음악은 깔끔하게 정제된 감정으로 내게 먹먹한 감동을 가져다주었다.

섬세한 바이올린 소리에 얼마나 몰입했을까. 연주가 끝났다.

“…….”

오늘은 어제처럼 청중이 많이 몰려들지 않았다.

호쾌하고 화려한 파가니니 카프리치오에 비해 바흐의 바이올린 독주 파르티타는 조금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묘한 충동을 느끼며 바이올린을 바라보았다.

당장 가까운 스튜디오 아무 곳이나 빌려서 이분을 초청하여 음반을 녹음하고 싶었다.

난 에이전트도 무엇도 아닌 그저 학생에 불과했지만, 하고자 한다면 무엇이든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

하지만 그건 아나스타샤나 빅토르의 걱정처럼 오해받기에 딱 좋았다. 결정적으로 저분도 날 오해하게 될 것이고.

연민 따위가 아님을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어려웠다. 너무 어려웠다.

나는 거의 입 밖으로 나오기 직전인 말을 간신히 밀어 넣으며, 다른 청중들 틈에 섞여서 모자 위에 지폐를 내려놓았다.

그렇게 연주가 끝나고 다른 청중들은 모두 돌아갔다. 자신들이 기존에 이 거리를 찾아왔던 목적을 향해서.

하지만 내가 이 거리에 온 목적은 오로지 이 할아버지의 연주를 듣기 위해서였다.

때문에 난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하는 할아버지를 보면서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내일도 오실 건가요? 모레는? 무슨 질문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그조차도 하지 못했다.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할아버지가 고개를 들었다. 흰 머리가 눈가로 흘러내린다.

“찾고자 하는 것은 찾았니?”

“……!”

소름이 다 끼쳤다.

난 너무 놀라 헛숨을 들이켰다. 한순간에 가슴 깊은 곳을 찔린 기분이었다.

할아버지는 허허 웃더니 이어 말했다.

“너무 놀랄 것 없단다.”

“제가 어떤…….”

“그렇게 눈에 띄는 교복을 입고, 알아보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건 아니겠지?”

“……아.”

금요일엔 중앙음악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다. 이 일대에선 꽤 유명한 교복이기도 했다.

그제야 난 그때 내 모습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중앙음악학교 교복을 입고, 누가 봐도 오른손엔 부상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로 사흘째 연주를 들으러 나오기도 했다. 누가 봐도 무언가 사연이 있는 애로 보였을 것이다.

간단한 추리로 날 꿰뚫어 본 할아버지가 바이올린 케이스를 집어 들었다.

“좋은 학교에 다니면서, 이 늙고 별 볼 일 없는 노인에게서 무얼 찾는지 모르겠지만…….”

“…….”

“찾아내었다면, 기쁘겠구나.”

난 아무것도 찾아낸 것이 없었다.

물론 이런 연주를 하시는 분을 찾아내긴 했지만 그건 그저 내 개인적 욕구의 충족일 뿐으로 내가 휴식 기간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두서없이 생각하다가, 문득 입 밖으로 말을 꺼냈다.

“전…… 그…… 바이올린 전공이 아니에요.”

“응……?”

할아버지가 갑자기 흥미를 보였다. 난 관심을 끌기 위해 아무렇게나 더 말했다.

“중앙음악학교에서 전 피아노를 배워요.”

“피아노? 허. 며칠간 계속 보이기에 바이올린을 배우는 학생인 줄 알았건만…….”

약간 실망하신 기색, 난 급히 덧붙였다.

“바, 바이올린도 배운 적 있어요. 예전에 배운…… 바이올린은 음색이 좋잖아요? 그래서…….”

“허허허.”

횡설수설하는 날 보며 할아버지가 자상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도로 바이올린 케이스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나와 이야기가 하고 싶어 보이는구나.”

이야기? 무슨 이야기?

“잠시 이야기를 들어줄 순 있겠지…….”

그렇게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난 이 노령의 연주자와 무언가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정확히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일단 되는대로 내뱉었다.

“연주 정말 잘 들었어요. 많이 늦었습니다만 혹시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니. 내 이름 따위가.”

“그래도 그렇게 굉장한 연주를 보여 주셨는데…….”

“허허, 그렇다면 난 이 거리가 아니라 콘서트홀에 있어야 하지 않겠니?”

“…….”

당장 콘서트홀로 가셔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할아버지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이야기가 듣고 싶구나.”

“……전 그다지 할 이야기가 없어요.”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괜찮단다.”

“…….”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잘 알지도 못하는 할아버지와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진 모르겠지만, 이것이 어마어마한 민폐고, 또 관련도 없는 사람에게 무언가 털어놓는 게 정신병자나 할 짓이라는 건 알지만.

“전…….”

난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연주자야말로 곧 저 자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

“오랫동안. 믿어 의심치 않았고, 사고를 당하고도 운 좋게 다시 피아노를 잡을 수 있었죠.”

단순히 운 좋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기적같은 현상이었지만, 어쨌건 난 다시 피아노 앞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전 여태껏 제가 원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 단순히 제가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고도프스키처럼 피아노를 떠나면 비참해지는…… 그런 사람이라서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요.”

요 며칠간, 더더욱 처절하게 깨달았다.

지금 나라는 사람, 타티아나 유리예브나 베르체노바라는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그야말로 미련밖에 남지 않은 망령이었다.

이제 난 도저히 이것을 사람의 의지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산산이 깨어지고 나면, 대체 뭐가 남지.

뭐라도 남기야 남겠지. 그게 나라고 할 순 없겠지만.

“일주일 뒤면 다시 피아노 앞으로 돌아가겠지만…… 겁이 나요. 절 믿을 수가 없어요.”

난 겁이 났다.

단 한 곡도, 제대로 연주할 수 없을까 봐 무섭고 그것을 포기한다고 해도, 연주자로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한계는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매우 가까웠다. 처음부터 나는 내 몸이, 이 손이 연주자에 걸맞지 않음을 느꼈다. 늘 의심하고 불신했다.

사실 그대로 전할 수는 없어서 조금 비틀어 말했다.

할아버지는 조용히 내 말을 듣더니, 이윽고 말했다.

“그래서 평생을 바이올리니스트로 산 내게 묻고 싶었구나.”

“…….”

난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었다. 지금까지 말한 것만 해도 너무 많았다.

“한 가지만…… 불안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다만…….”

할아버지가 푸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의지를 원할 수는 없단다. 걱정 않아도 될 것 같구나.”

“……무슨 말씀인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 다시 물었더니 할아버지가 조금 쉽게 풀어서 이야기해 주었다.

“피아니스트가 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그걸 의심할 필요는 없다는 거란다.”

“그것 자체를…….”

딱히 말대꾸를 하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 더 자세하게 물어보려던 난 순간 눈앞을 홱 지나가는 사람을 보며 깜짝 놀랐다.

“!?”

모자를 쓴 한 남자가 갑자기 뛰어오더니 팁박스인 모자와 바이올린을 집어 들고 순식간에 도망친 것이다.

난 너무 놀라서 말도 잇지 못했다.

모스크바가 치안이 괜찮다고는 하지만 소매치기나 도둑은 유럽 대부분 도시가 그렇듯 굉장히 많았다.

이렇게 길거리에서 돈이 될 만한 물건을 내려놓고 있는 노인과 어린애는 날치기들이 노리기에 가장 좋은 타깃이었을 것이다.

벌써 저 멀리 뛰어가는 남자를 보며 나도, 할아버지도 따라가거나 사람을 부를 생각조차 못 했다.

뒤늦게 경찰을 불러 봐야 저걸 붙잡을 순 없을 것이다.

아니지, 못 잡을 건 또 뭐야?

“윽……!”

내가 이를 악물고 스마트폰을 들어 올리는 순간, 할아버지가 말렸다.

“내버려 두거라.”

“……오늘 버신 건요?”

“저 청년을 위해 공연을 했다고 치면 되지. 허허.”

“…….”

정말 흔하게 겪는 일이라 당황하지 않는 것인지, 내가 크게 걱정할까 싶어 일부러 그러시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좋으신 것도 정도가 있어요.

물론 마냥 허허 웃고 계시진 않았다.

“그래도 바이올린은 조금 아쉬운데. 사실 바이올린은 널 주려고 했었단다.”

“……예? 저요?”

“그래. 이제 어쩔 수 없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더니 다시 허탈한 웃음이 이어졌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저 청년이 내 바이올린을 제값 받고 팔았으면 좋겠구나. 꽤 비싼 건데 빨리 처분하려다 보면 보통 값을 제대로 못 받기 일쑤니…….”

“지금 빼앗긴 바이올린을 제값 받고 못 팔까 봐 걱정하시는 거예요?”

“돈이 필요하지 않았겠니.”

“무슨 말씀이세요!”

갑자기 짜증이 확 치솟았다.

사정이 어떻든 간에 지금 당한 건 도둑질이었다. 그런데도 도통 화를 내지 않으시니까 그냥 옆에 있었을 뿐인 내가 더 화가 났다.

난 곧바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빅토르.”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응답했다.

- 예, 아가씨.

“보고 있죠?”

- 자하르가 따라붙었습니다.

“찾아와 주세요.”

- 물건만 찾아오면 되겠습니까?

차가운 빅토르의 목소리를 들으며, 난 섬뜩함을 느꼈다.

물건만 찾아와 달라고 말한다면 내 경호원들은 말 그대로 물건만 찾아올 것이다. 그 외의 것은 편할 대로 처리하겠지.

“…….”

난 어디까지나 냉정하게, 목소리를 떨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다.

“되도록 데리고 와 주세요.”

-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어졌다.

고개를 들자 할아버지가 날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딱히 더 놀라거나 하시진 않은 것 같았다.

난 조금 복잡한 심정으로 짐짓 얼굴을 무표정하게 굳히고 기다렸다.

잠시 후, 3분도 채 되지 않아 자하르가 모자를 쓴 청년과 함께 돌아왔다.

자하르는 청년과 바짝 붙은 상태로, 수트 안으로 한 손을 집어넣고 있었다.

난 그 수트 안의 손이 무엇을 쥐고 있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청년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할아버지 앞에 서더니 이럴 줄은 몰랐다면서 바이올린과 모자를 내려놓았다.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

할아버지는 가만히 그걸 내려다보더니, 불쑥 말했다.

“돈은 가지고 가시게.”

“……뭐라고요?”

“오늘은 자네 주려고 했단 셈 칠 테니, 가지고 가시게.”

그 말에 청년은 할아버지도, 나도 아닌 뒤편에 있는 자하르의 눈치를 살폈다. 물론 자하르는 내 눈치를 살폈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하겠는가? 그리하시겠다는데.

허락이 떨어지고도 청년은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결국 할아버지가 모자를 통째로 건네자 그제야 집어 들었다.

“……고맙습니다.”

무슨 말을 길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자하르가 한 발자국 떨어졌고 청년은 조심스럽게 뒷걸음질 치더니, 곧 거리로 사라졌다.

“…….”

난 청년이 사라진 거리를 노려보다가 할아버지를 돌아보았다.

내가 자하르와 빅토르를 대동하고 있지 않았다면 대체 어쩔 뻔했는가? 속이 터지는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아버지는 웃으며 내게 말했다.

“바이올린을 찾아 줘서 고맙구나.”

“……별말씀을요.”

조금 시큰둥하게 말하자 할아버지가 이번엔 내가 솔깃할 만한 것을 권했다.

“감사의 표시로 차라도 한잔 대접하고 싶은데, 같이 가겠니?”

“……! 당연하죠!”

갑자기 돌발 상황이 발생해서 뒤로 밀어두고 있었던 팬심에 불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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