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69화 (69/1,277)

##  69화

미하일 선생님께서 소개시켜 준 레슨실은 1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어떤 선생님이 날 기다리고 계실지 두근거렸다.

미하일 선생님이 개인적인 친분으로 부탁해 주신 분이니 아마 나긋나긋하고 착하신 분이 아닐까 싶다가도, 미하일 선생님과 친한 선생님 중 하나가 바로 그 구세프 선생님이라는 걸 생각하면 불안하기도 하다.

어쨌든 부딪혀 보면 알 일이었다.

“…….”

조심스레 노크를 하려는 찰나, 레슨실 안에서 미세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 손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보았다.

간드러지는, 울음소리와도 비슷한 소리였다.

“?”

얼핏 듣기엔 무슨 고양이 울음소리 같다. 레슨실에서 고양이라도 키우나?

별생각 없이 문을 노크했다. 똑똑. 가볍게 두드리자 안에서 나던 소리가 뚝 멈췄다. 난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피아노과 미하일 표도로비치 볼콘스키 선생님의 소개를 받고 온 타티아나 유리예브나 베르체노바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하지만 안에선 아무 대꾸도 없다가.

“미야옹.”

울음소리가 대답처럼 들려왔다. 의심할 여지 없는 고양이 소리였다.

“…….”

조금 황당했지만 웃음이 나왔다. 사람 대신 고양이가 대답하는 걸 보니 레슨실 안에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약간 기대되었다. 성악 레슨실에 고양이라니 어찌 된 영문인진 모르겠지만 주인 없는 사이에 조금 귀여워해 준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지 않겠는가? 뭐라고 하시면 고양이가 들여보내 줬다고 하면 되겠지.

슬며시 문손잡이를 돌려보자 문이 열렸다. 난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섰다.

“미야앙.”

그리고 문손잡이를 잡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

레슨실 안에는 자그마한 여학생 한 명이 바닥에 엎드린 채로 내 쪽을 돌아보았다.

흑단같이 고운 머리칼이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바닥에 흘러 있었다. 난 약한 패닉에 빠졌다.

요즘 성악과에서는 고양이 놀이가 유행인가?

“이양.”

무미건조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스산하게 울렸다.

고양이 흉내를 내는 소녀의 모습을 뻣뻣하게 지켜보던 나는 바보처럼 멀거니 물었다.

“저기, 바닥 차갑지 않나요?”

“야옹.”

무슨 뜻인진 모르겠는데 신경 끄라는 것 같다.

하지만 차가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모습이 정말 추워 보인다. 난 나도 모르게 다가가선 양손을 뻗어 여학생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일어나 주시겠어요? 감기 걸리실지도 몰라요.”

“미야앙.”

반항하는 어투였지만 난 그만두지 않았다.

잘 모르는 아이였지만 감기에 걸리게 둘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실랑이 끝에, 결국 아이가 입을 열었다.

“아, 언니 진짜 왜 이래요. 연습 방해되게.”

“……?”

귓가에 들리는 싸늘한 목소리에 놀라 손을 놓자 날 흘겨보는 눈동자가 보였다.

“놔 달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말이 안 통하는 언니네.”

“……예?”

“야옹이라고 했잖아요. 야옹.”

그러면서 소녀가 가르릉 소리를 냈다.

난 어안이 벙벙해져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보시면 몰라요? 전 고양이잖아요.”

“?”

“고양이는 모르는 사람이 가까이 오면 싫어한다고요. 아무리 예쁜 언니라도 소용없어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내가 바보란 뜻이겠지?

난 더듬거리며 상황을 정리했다.

“고양이 흉내를 내며 놀고 있었던 건가요?”

갑자기 아이가 왁 하고 화를 냈다.

“언니, 제가 지금 놀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아니라고요?”

“연습 중이라고 했잖아요.”

“아…….”

뭔가 엄청난 실례를 한 것 같다. 난 짧게 사과한 뒤 다시 정리했다.

“미안해요. 그러니까…… 고양이의 마음을 알아보기 위해 고양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요?”

“마음은 모르겠고 고양이가 되어야 노래를 할 수 있으니깐요.”

“노래요?”

“응. 이거.”

그리고 옆에 있는 악보를 가리켰다.

조아키노 안토니오 롯시니의 고양이 이중창?

“이게 뭐죠?”

“고양이 이중창이요.”

“가사가 왜 야옹야옹밖에 없나요?”

“고양이 이중창이니깐요.”

“……?”

“언니 아무것도 몰라요?”

내가 성악에 대해 뭘 알겠는가?

난 클래식을 전공하고 있긴 하지만 보다 좁은 카테고리로 보자면 솔리스트로서 피아노 독주곡들에 특화되어 있었다.

때문에 슈베르트나 볼프, 모차르트같이 기악보다 성악 비중이 높은 작곡가들이 쓴 곡들을 공부하면서도 그것들을 모조리 기악으로만 흡수했다. 일종의 직업병 같은 것이리라.

당장 관현악들로만 이루어진 교향곡이나 오페라, 성악 쪽으로 들어가면 취미로 클래식을 듣는 일반인들보다 못한 경우도 많았다.

내가 아는 롯시니는 1800년대, 그러니까 19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유명했던 작곡가였다.

그가 작곡한 곡 중 내가 아는 곡은 윌리엄텔 서곡이나 타란텔라 정도였다.

롯시니가 이런 곡도 썼을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시 악보를 봐도 황당했다. 피아노에 맞춰서 두 사람이 번갈아 야옹야옹거리는 것이 전부인 곡이었다.

이거 진짜 있는 곡인가?

너무 이해가 안 가서 물어보려다가 한없이 진지한 아이의 얼굴을 보곤 그만두었다.

이 아이는 세상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이 고양이 이중창이라는 곡을 부르기 위해 고양이 흉내를 내고 있었다.

“음…… 미안해요. 전 성악과가 아니라서 잘 몰랐어요.”

“……? 언니 성악과 아니에요?”

“예. 전 피아노과예요.”

“아…….”

잠시 입을 벌리고 내 얼굴을 요모조모 살폈다.

“그럼 모를 수도 있겠네!”

눈을 반짝거리며 박수를 짝 쳤다. 방금 전까지 조금 날카롭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놀라서 잠깐 손을 놓은 사이, 아이는 내 앞으로 빠져나가더니 가슴을 펴고 자기소개를 했다.

“전 성악과 2학년 류보비 이바노브나 벨라예바예요!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

나 역시 거기에 답해 인사했다.

“전 피아노과 8학년 타티아나 유리예브나 베르체노바예요. 반가워요.”

“8학년! 세상에, 이렇게 나이가 많은 언니랑 이야기해 보는 건 처음이야.”

“음…… 그런가요?”

“어쨌든, 어쨌든 간에요. 타티아나 언니는 고양이 이중창을 모르잖아요? 그렇죠?”

“……그렇죠.”

“그럼 저한테 물어보세요!”

2학년이면 여덟 살인데 그래도 성악과라고, 뭐든지 물어보면 대답해 주겠노라 가슴을 탕탕 치니 한없이 귀엽게 보였다.

난 지금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어디 가셨나요?”

“…….”

일순 류보비의 얼굴에 불만이 서렸다.

“언니. 저한테 물어보셔야죠. 선생님은 이따가, 아주 이따가 오실 거예요.

류보비는 뭔가 성악에 대한 질문을 원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난 아무 기초도 없이 온 터라 뭘 물어봐야 할지조차 잘 몰랐다.

“당장 류보비에게 물어볼 건 없는 것 같아요.”

“그럴 리가요, 타티아나 언니. 고양이 이중창도 모르잖아요. 그런데 왜 물어볼 게 없나요?”

어떠한 논리에서 저런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질문을 바란다면 해 줄 뿐이다.

“모차르트처럼 긴 프레이징을 가지고 가거나 쇼팽처럼 화려한 장식음으로 성악을 기악에 담아내려고 한 작곡가들의 곡을 연주한다면 연주자는 충분히 악기를 통해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하죠. 그런데 그와 전혀 관계없는 곡을 연주하면서도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스스로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을까요?”

“……미야옹?”

내 질문에 류보비는 귀엽게 고개를 까딱이며 고양이 소리를 냈다. 여기서 현실도피를 하면 어떻게 하니?

어쨌든, 적당히 류보비가 원하는 질문을 해 주기로 했다.

“류보비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참 잘 내네요. 고양이 이중창은 고양이 흉내를 내면 잘 되나요?”

그냥 이전 질문은 안 한 셈 치고 새로운 질문을 던졌더니 류보비 역시 이전 질문은 안 들은 것으로 치겠다는 듯, 얼른 반응했다.

“당연하죠. 고양이 소리 내 보셨어요?”

“……아뇨?”

“내 보세요.”

“…….”

성악과 신고식인가?

낯 뜨겁게 고양이 소리 같은 걸 내 본 적이 있겠는가?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입을 꾹 다물고 목을 빼자 류보비가 엄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어서요. 야옹.”

도망칠까.

한참이나 어린 애를 상대로 진지하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야옹 소리가 더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류보비는 거의 얼굴이 맞붙을 정도로 가깝게 얼굴을 내 쪽으로 들이밀었다.

“이야아앙. 해 보세요. 쉽잖아요.”

“…….”

2학년 후배와 같이 놀아주는 셈 치고 못 할 것도 없지만 난 엄청나게 갈등했다. 솔직히 창피했다.

하지만 기대감이 잔뜩 서린 눈빛에 결국 져 버렸다.

“……미야옹.”

입 밖으로 고양이 소리를 내는 순간 얼굴에 확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어마어마하게 부끄러웠다.

내가 미쳤나. 도대체 뭐 하는 짓이지 이게.

류보비는 탄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와, 엄청 잘하세요. 성악에 재능이 있으신 게 분명해요!”

“……말이라도 고마워요.”

“한 번 더 해 보세요. 조금 더 새초롬하게.”

“미양…….”

모르겠다.

그렇게 고양이 흉내를 내는 족족 류보비는 무슨 성악 천재이니 어쩌니 하면서 흥을 돋웠다.

아무리 봐도 그냥 날 가지고 놀려는 것으로밖에 안 보였지만 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따라 주었다.

귀여운 2학년 후배가 생글거리며 조르면 어지간해선 차갑게 무시하기 힘들다.

하지만 네 발로 기어 보면 더 잘 된다는 주장엔 필사적으로 반대했다.

“류보비, 그건 그…… 수련을 더 쌓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뇨, 타티아나 언니는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언니는 고양이의 천재예요.”

“그게 뭐예요, 대체?”

“무대 위에서 부른다면 아마 관객들은 언니를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로 알지도 몰라요.”

“그건 정말 싫은데요?”

내겐 아직 인간으로서의 존엄이라는 게 남아 있다.

결사반대하자 류보비가 징징거리며 내 팔을 잡아끌었다.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군, 이 꼬맹이. 그냥 레슨실에서 혼자 심심한데 갑자기 들어온 나와 놀고 싶었던 것이 분명하렷다.

내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결사항전을 벌인 지 얼마나 지났을까.

조르기도 하고, 약 올리기도 하고, 삐진 척도 하던 류보비가 결국 진이 빠져 내 옆에서 야옹야옹거리며 늘어졌을 무렵, 구세주가 등장했다.

“류보비. 연습은 어떠…… 누구니?”

벌떡 일어섰다. 내 옆에 기대어 있던 류보비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뒹굴 굴러 쓰러졌다.

깜짝 놀랐지만 류보비는 맨 바닥에 굴러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야옹거렸다.

난 방금 레슨실 문을 열고 들어온 여성분을 향해 물었다.

“그, 음, 이제, 아니지…… 폴리나 바실레예브나 곤차로바 선생님?”

“응. 그런데 누구니?”

“처음 뵙겠습니다. 전 타티아나 유리예브나 베르체노바라고 합니다. 피아노과의…….”

“아, 미하일이 보내겠다던 학생이 너구나? 어쩜…….”

폴리나 선생님은 언뜻 보기에도 당당하고, 화려한 이미지를 지닌 선생님이었다.

곧게 펴진 어깨와 목소리에서 그야말로 에너지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선생님이 미안하다는 듯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미안해. 잠시 볼일이 있어서. 오래 기다렸니?”

“아니에요. 얼마 되지 않았어요.”

“다행이네. 그사이에 우리 학생이 귀찮게 굴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류보비가 움찔했다. 폴리나 선생님이 짐짓 엄하게 말했다.

“일어나렴, 류보비.”

“예…….”

“교복이 엉망이잖니. 자, 먼지 털고.”

류보비는 건성으로 허리께를 툭툭 털었다.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의 류보비를 보며 폴리나 선생님이 말했다.

“타티아나 선배를 귀찮게 한 건 아니겠지?”

“……아닌데요.”

얘 봐라?

그 와중에도 내 눈치를 힐긋 살피는 것을 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폴리나 선생님이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난 입을 열어야 할 때임을 느꼈다.

“깜짝 놀랐어요.”

“…….”

류보비가 거의 배신자를 보는 듯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내가 딱히 배신할 것도 없다만.

하지만 난 류보비가 걱정하는 것처럼 말할 생각은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고양이 이중창 연습에 정말 열심이었거든요. 2학년인데도 정말 열정적인 모습이라 저도 배울 게 많았어요.”

“아…… 그러니?”

내 말에 류보비는 눈을 크게 떴고 폴리나 선생님 역시 약간 의심스러워하던 눈빛을 거두었다.

여기서 내가 쟤 때문에 고양이 울음소리 내다가 치욕스러워서 자결할 뻔했다고 해 봐야 누구 좋겠는가? 적당히 좋게 좋게 넘어갈 때 비로소 모두가 행복해지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폴리나 선생님은 역시 어른이니만큼 내가 어떤 의도로 류보비를 감쌌는지 단번에 알아차리신 듯했다.

내 쪽으로 작게 눈짓하는 걸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약간 감사를 표하시는 것 같았다.

“자.”

폴리나 선생님이 외투를 옷걸이에 벗어서 거시고는, 내게 말했다.

“그럼 약간 늦었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 타티아나.”

“예, 선생님.”

“미하일에게 대략적인 이야기는 들었단다. 꽤 괜찮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더구나?”

다행히 첫 인상은 상당히 괜찮은 모양이다. 폴리나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기악을 하는 학생들이 많이 잊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음악이 성악, 즉 사람 목소리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야. 그렇게나 많은 성악곡들이 있어 왔는데 왜 가장 기초적인 것을 도외시하는 걸까?”

“…….”

“그런데 타티아나 넌 그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음악의 본질을 꿰뚫어 보곤 성악을 알아보겠다고 자진했다 그랬지. 정말 대단해. 미하일이 제자 복은 있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당장 저번 주까지만 해도 난 피아노 외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양심이 좀 찔렸다.

난 조심스레 말했다.

“제가 다음 주까지 얼마나 배울 수 있을까요?”

“그건 해 봐야 알겠지?”

폴리나 선생님이 태평하게 말했다.

“너도 피아노를 친다면 알겠지만 이 음악이란 게 그렇잖니? 일주일 배운 것으로 수년을 배운 사람을 따라잡기도 하고, 그런 세계라는 걸.”

“그렇긴 하죠.”

물론 오래 살수록 절대적인 공부량이 늘어날 테니 음악이 훨씬 깊어지고 원숙해지겠지만, 본질적인 부분은 사실 타고나야 하는 것이 많았다.

그리고 소위 천재성이라 부르는 요소들은 보통 긴 시간을 필요치 않고 바로 드러난다.

바로바로 드러나기에 그것을 천재성이라 부르는 것이지,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한다면 그건 천재성이 아니 것이다.

“…….”

딱히 난 내가 성악에 천재성을 보이길 바라진 않지만.

있으면 좋겠다. 없는 것보단 낫지 않겠는가.

폴리나 선생님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기본적인 음역대 체크부터 해 볼까?”

“어…… 바로요?”

“그래. 지금 거기 서서 바로.”

“자세라든지 발성이라든지 전 아무것도 몰라요, 선생님.”

폴리나 선생님이 활짝 웃었다.

“네가 천재인지 아닌지는 거기에서부터 드러나는 거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