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87화 (87/1,277)

##  87화

난 바쁜 아버지 대신 루슬란 오빠를 데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갈 계획을 짜며, 며칠간 기회를 노리면서 오빠의 방학 일정에 대해 조사했다.

물어보면 매번 바쁘다고 딱 자르긴 하지만, 말이 매번 다르고 얼버무리는 것이 분명 방학 내내 할 일 없이 내내 게임을 하며 뒹굴거나 가끔 친구와 외출하는 게 전부일 것이 뻔했다.

하지만 그건 단지 내 추측일 뿐이었다. 보다 확신이 필요했다.

만약 오빠에게 선약이 있다면 그 경중을 떠나 난 깔끔하게 물러나 혼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호텔에서 숙박을 해 볼 생각이다.

지금 내가 나 싫다는 인간을 붙잡고 억지를 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도 정도껏 선을 지켜야 한다는 자각쯤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정말 모스크바 대학교에 전화를 걸어 무언가 특별한 일정이 있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오빠를 볼 때면 넌지시 방학에 뭘 할 것인지 재차 물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루슬란 오빠의 방학 일정의 진실에 대한 신경전이 오가길 이틀째, 드디어 기회가 왔다.

“……음.”

난 내 방의 창문 밑에 숨어서 눈만 내놓고 저택 마당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루슬란 오빠와 갈색 머리의 낯선 남자가 함께 벨카와 놀고 있었다. 벨카는 처음 보는 남자에게도 살갑게 굴었다.

“이 녀석 전에 봤을 때보다 더 커진 것 같은데? 대체 얼마나 크는 거야?”

“지금 50킬로그램도 넘었지, 아마.”

“나 얘랑 싸우면 질 것 같지?”

“3초도 못 버틸걸?”

음…….

순진한 벨카를 놓고 싸워서 이기니 마니 하는 걸 보니 나이가 스물이 되어도 역시 남자들은 다 똑같나 싶다.

어쨌든 루슬란 오빠의 또래로 보이는 남자는 한눈에 봐도 오빠의 친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의 내 목표였다.

“…….”

난 사냥감을 찾아낸 맹수처럼,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지금 어설프게 개입해 봐야 오빠가 가로막는다면 아무 소용 없었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적절한 때를 찾아내야 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아, 얘 장난감이 따로 있었는데. 잠깐만. 가지고 올게.”

“그래.”

루슬란 오빠가 벨카의 장난감을 가지러 저택으로 들어갔다.

홀로 남은 오빠의 친구는 아직 뒹굴고 있는 벨카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난 재빨리 창문을 열고 발을 걸쳤다. 이미 외투는 갖춰 입고 있는 상태였다. 그대로 타넘기만 하면 된다.

“…….”

내 방은 1층이었지만 감기를 달고 골골거리던 이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제대로 된 착지는커녕 그대로 굴러서 어디 크게 다칠 걱정부터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난 이상하리만큼 자신감에 차 있었다.

난 그것을 믿고 창틀 위에 올라가 걸터앉았다.

“……쉽겠는데?”

다리를 늘어뜨려 놓고 보자니 땅은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았다.

겁을 먹을래야 먹을 수도 없는 높이였다.

“웃차…….”

난 가볍게 뛰어내려, 마당에 내려앉았다.

툭,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난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었다. 볼썽사납게 구르거나 다리가 부러지는 일은 없었다.

“……?”

그 소리가 저편까지 들렸는지, 오빠 친구가 내 쪽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창문을 타넘는 모습을 보여 줄 생각은 없었는데, 약간 부끄러웠다.

오빠 친구는 날 보더니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을 했다.

“타, 타…… 타티아나?”

날 알고 있는 사람이었던가?

하지만 내 기억엔 없었다. 난 이런 상황을 맞이했을 때 취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메뉴얼대로 행동했다.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알은척이었다.

가장 편하고 상식적인 대응은 죄송하지만 기억상실이라 기억을 못 한다고 말하는 것이겠지만, 난 되도록 그녀와의 연결고리를 끊어 놓지 않을 생각이었다.

내가 지금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듯, 그녀가 한때 존재했었다는 것을 깨끗하게 지워 버리고 모든 것을 시작하고 싶진 않았다.

인사를 건네고, 한 걸음씩 서서히 다가가면서 난 오빠 친구의 안색을 살폈다.

나와 알고 있다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사이는 어떠했는지,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

순간적으로 사람의 얼굴과 행동에선 여러 가지가 드러난다. 난 그것들을 읽어 냈고, 어떤 사람인지 파악했다.

“그…… 어…… 타티아나. 쾌유했다는 건 들었지만 모스크바에 있는 줄은 몰랐어. 인사 오지 못해서 미안……해?”

“괜찮아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 응? 어?”

일부러 무표정하지 않게 웃으며 말했더니 명백하게 당황스러워한다.

벨카를 쓰다듬는 손에도 그 당황이 영향을 끼쳤는지, 벨카는 강해진 손길에 불만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뭔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

당장 이 사람을 잘 구슬리면 그녀에 대한 정보를 빼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조금 흔들어 볼까? 두루뭉술하게 화두만 던져도 여러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

분명 오빠의 중계로 만났을 테니 오빠를 사이에 놓고 있었던 사건들을 특정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난 당장의 목적에 충실하기로 했다.

뒹구는 벨카를 보며 물었다.

“벨카가 놀아 달라고 하던가요?”

“어…… 그렇지.”

“요 근래 벨카와 놀아 줄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다행이네요.”

“뭐 난 아직 이 녀석과 그렇게까지 친한 것 같진 않지만…….”

한참이나 연상이면서 이상하게 내 눈치를 보는 것이 루슬란 오빠와 비슷했다.

난 이름 모를 오빠 친구를 일단 칭찬부터 했다.

“아뇨, 벨카는 순하지만 이렇게까지 경계가 없진 않아요. 이미 충분히 친하신 것 같은데요. 벨카는 착한 사람에게만 경계를 푸는데.”

“……고마워. 근데 워낙에 순한 녀석 같아.”

약간 풀어진 미소, 여기서 더 시간을 끌 순 없었다. 조심스레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렇게 놀러 와 주신 건…… 혹시 방학 동안 오라버니와 계획이라도 있으신가요? 어디론가 여행이라도 가신다든가.”

“어, 아니? 그런 계획은 없는데.”

“그런가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묻지도 않은 답변이 이어졌다.

“저번에 방학 동안 뭐 할 거냐고 물어봤더니 2주일간은 꼼짝도 않고 집에서 쉴 거라던데. 아마 별다른 일은 없을걸.”

아하. 역시 그렇죠?

비로소 확신이 섰다.

오빠는 정말 방학 내내 아무런 약속이 없었고, 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오빠를 끌고 가도 죄책감을 별로 안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해……?”

“아하하…….”

“그건 그렇고, 타티아나 너 못 본 사이에…….”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묻던 오빠 친구가 대뜸 말했다.

약간 긴장했다.

난 그녀가 얼마나 개차반이었던지 간에 완전히 세상에서 잊히는 걸 바라진 않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행동하면서 살 순 없었다.

물론 그 때문에 위화감이 생기겠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철이 든 것으로 보여지길 바랐다.

하지만 그냥 위화감을 넘어 의심의 단계까지 간다면 약간 곤란했다.

오빠의 친구가 무슨 말을 꺼낼지 예상하며 그에 대한 대응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굉장히 야위었구나.”

“……예?”

“작년에도 계속 아팠다더니, 정말이네…… 밥은 잘 먹는 거지?”

“예.”

“뭐, 너희 집에서 알아서 잘 하겠지만…….”

진심으로 안쓰러워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

난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오빠 친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렴풋하게 알 것만 같았다.

처음엔 기존 기억 때문인지 날 보자마자 무척이나 당황해하던 오빠 친구는, 이젠 나와 조금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더없이 친근하게 말하고 있었다.

굉장히 솔직하고, 착한 사람인 것 같았다.

“어쨌든, 다시 사과할게. 너무 늦게 인사해서 미안해. 요양을 갔다는 소식 이후로 들은 게 없어서 정말 모스크바에 없는 줄 알았어.”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래……. 참 나, 루슬란도 동생이 집에 있다면 있다고 말을 해 줘야…….”

“아차. 오빠.”

“뭐……?”

아직 이름을 몰라 오빠라고 부르자 눈을 휘둥그레 뜨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난 조금 어둡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 죄송한데, 루슬란 오라버니에겐 제가 방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걸 알리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뭐? 왜?”

“부끄럽지만…… 오라버니와는 아직 냉전 중이라서요.”

“아…….”

대충 알겠다는 듯한 신음성. 난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오라버니가 없는 사이 살짝 인사드리고 싶었어요. 저기, 이해해 주실 수 있나요?”

“그, 그래. 그렇고말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오빠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물러섰다.

“그럼 다음에 또 뵈어요.”

그리고 난 저택 뒤편으로 조용히 돌아갔다. 오빠 친구의 시선이 등 뒤에 느껴졌지만 일부러 뒤돌아보지 않았다.

“…….”

성공적으로 원하는 정보를 얻어 내긴 했지만 이렇게 뒷공작 같은 일을 하니 양심이 약간 찔리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루슬란 오빠에게 이 정도는 해도 괜찮았다.

내 말이라면 의심부터 하고 보는 루슬란 오빠와 달리, 오빠 친구는 금세 경계를 풀고 걱정을 해 주기까지 했다.

지금 내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는 게 증명된 것이다.

이렇게 평범하고 상식적으로 동생 노릇을 해 주려고 하는데, 대체 1년이 다 되어 가도록 날을 세우고 있는 루슬란 오빠는 뭐 하는 인간이란 말인가?

자세한 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서 오붓하게 듣도록 하죠.

* * *

그날 저녁, 난 승부수를 던지기로 했다.

“아버지.”

“그래, 타티아나.”

막 식사를 하시던 아버지가 말했다.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치시는 것을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 여기서 난 콩쿠르에 앞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일찍 여행을 가는 것과 그 여행에 오빠를 데리고 가는 것, 두 사안에 대해 허락을 받아야 했다.

어설퍼 보이지 않게 입을 열었다.

“저 이번 달 중순에 있는 콩쿠르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어요.”

“오, 그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한다고 했었지.”

아버지는 잊지 않고 있다는 듯 말했다.

“그날은 내가 세상이 무너지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참석하려 한다. 그래서 요즈음 아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

“너무 무리하시면 안 돼요.”

“하하, 괜찮다. 그런데 할 말이란 건 무어냐? 말해 보거라.”

난 조용히 본론을 꺼냈다.

“콩쿠르 하기 전에, 일주일 정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일찍 가 보고 싶어서요.”

아버지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둥 말로써 묻지 않았다. 한 쪽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설명을 요구하실 뿐이었다.

“조금 일찍 가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느낌도 느껴 보고, 많은 것을 보고 싶어요. 그 예술의 도시는 분명 제게 좋은 영향을 줄 거예요. 미하일 선생님도 그렇게…….”

“관광을 하고 싶단 말이냐?”

아버지는 쓸데없이 말을 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예.”

“흠…….”

“물론 콩쿠르에도 집중해야죠. 낮에는 도시를 둘러보고, 저녁엔 미하일 선생님이 소개시켜 주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있는 교수님에게 레슨을 받기로 했어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예.”

러시아에 있는 음악원은 굉장히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모스크바 음악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그네신 음악원 이 세 음악원을 최고로 친다.

아버지는 한결 편하게 말씀하셨다.

“그것도 나쁘지 않게 들리는구나, 타티아나. 네 선생인 미하일이 소개해 주는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겠지. 하지만 말이다…….”

편안함은 잠시, 곧 안색이 어두워졌다.

“내가 지금 휴가를 내기엔…… 사정이 그리 좋지 않구나. 타티아나, 이건 네가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해해요, 아버지.”

“미안하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다음에 언제라도…….”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루슬란 오빠가 아버지 대신 저와 가 준다면 어떨까요?”

“흠?”

“……뭐? 컥.”

자기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듯 식사에만 집중하던 루슬란 오빠가 목이 막히는 소리를 냈다.

“내가 왜!”

기겁해서 소리를 쳐서 아버지가 눈살을 찌푸리셨다.

“왜냐니 그게 무슨 말이냐, 루슬란. 넌 타티아나의 오빠이지 않느냐.”

“……아버지.”

아버지의 호통에 루슬란 오빠가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그렇지 내 오빠이지 않느냔 말에 풀이 죽는 건 나도 좀 상처받는데.

아버지는 이미 생각이 굳어지신 듯, 오빠를 설득했다.

“같이 가 주거라. 넌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 본 적도 많으니 익숙하지 않겠느냐? 타티아나는…… 처음이고.”

그녀 역시 가족들과, 혹은 다른 누구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지만, 그걸 내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아버지는 날 바라보며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으셨다. 오빠 역시 기분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콩쿠르 당일이라면 모를까, 거기서 일주일이나 있을 순 없어요.”

“왜지.”

“바빠요, 저도.”

“방학을 맞은 대학생이 바쁠 일이라곤 놀 일밖에 더 있느냐?”

“…….”

“무슨 선약이 있든 상관없다. 미뤄라. 네 동생이 우선 아니냐.”

단호한 명령.

이건 부탁이 아니라 가장으로서의 명령이었다. 오빠는 여기에 저항할 수 없었다.

“…….”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야기를 꺼내고 아버지의 힘을 빌리면 일이 이렇게 강압적으로 흘러가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했고, 그 때문에 오빠에게 정말 약속이 없는지 조금 철저하게 알아보았다.

하지만 정말 오빠의 기분이 안 좋아 보이자 약간 미안해지기도 했다.

내 딴엔 1년이나 도저히 좁혀지지 않는 남매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너무 억지로 일을 밀어붙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사실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내가 왜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오빠를 끌고 가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물론 날 아직도 멀리하는 오빠에게 약간 화가 나 있기도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행위가 정당화되진 않는다. 충분히 알고 있다. 잘 아는데…….

루슬란 오빠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타티아나 너…… 무슨 속셈이야.”

“속셈이라뇨? 전 그저 오빠가 함께 가 주었으면 하는…….”

“말도 안 돼. 네가 언제부터 그런…….”

“루슬란.”

아버지가 싸늘하게 말했다.

“내가 뭐라고 그랬었지?”

“…….”

아버지와 오빠 사이에 있는, 나는 절대 알 수 없는 모종의 이야기가 있는 듯했다.

부자 사이에 눈빛이 오가고 오빠는 그 눈에 약간 반항기를 품기 시작했다. 난 그걸 옆에서 보고는 숨을 들이쉬었다.

결국 체념한 오빠가 못 이기는 척 따라와 준다면 내가 이후에 기분을 풀어 주면 될 일이었지만, 이렇게 시작도 하기 전에 아버지와 분위기가 심각해질 낌새를 보이는 것은 좋지 않았다.

조금 유약하게만 보였던 루슬란 오빠가 이렇게까지 저항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난 이쯤에서 일단 미끼를 던져 오빠를 진정시켜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오빠가 도저히 시간이 안 나신다면 저 혼자 가야겠네요.”

“그건 안 된다, 타티아나.”

“괜찮아요. 좀 늦더라도 친구와 합류하면 되어요.”

“친구?”

“예.”

난 태연하게 대답하면서 루슬란 오빠의 눈치를 살폈다.

오빠는 이전까지 불퉁했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갑자기 고민하다가, 아버지를 보다가, 다시 테이블을 뚫어져라 노려보다가 결국 결정한 듯 내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종전과는 확연히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타티아나.”

“예?”

“널 혼자 보낼 순 없지. 내가 따라가 줄게.”

순간 웃음이 터질 뻔했다.

와, 우리 오빠 생각보다 너무 순진한 사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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