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101화 (101/1,277)

##  101화

잠시 후 저녁 식사가 완성되었고, 나와 루슬란 오빠, 에르네스트와 사샤, 그리고 에르네스트의 어머니까지 다섯 명 모두 식탁 앞에 모였다.

식사 메뉴는 정말 다채로웠는데, 그중 메인디쉬는 볶은 돼지고기와 웨지감자였다.

저 중에 내 손이 간 음식은…… 열심히 나른 것만으로도 충분히 요리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자.”

식사를 시작하기 전, 에르네스트의 어머니께서 짧게 말씀하셨다.

“정말 간만에 북적이는 식탁이라 너무 행복하구나. 오늘 손님으로 와 준 루슬란과 타티아나, 모두 입맛에 맞을진 모르겠지만…… 맛있게 먹어 주었으면 좋겠네.”

“저희야말로 감사해요.”

“언젠가,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스테판 니콜라예비치도 함께 모시고 식사를 함께하고 싶군요. 연락 꼭 드리겠습니다.”

“어머나, 그래 준다면 고맙고, 루슬란.”

짧은 기도가 이어졌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맛은 말할 것도 없이 훌륭했다. 지금까지 수없이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을 맛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난 이런 맛은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가정식이라는 느낌이 물씬 나는 식사였다. 쉐프인 드미트리에겐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때때론 이런 소박한 식사가 주는 감동이라는 것도 있었다.

“…….”

그중에서도 내 손이 많이 간 보르쉬는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살짝 눈치를 보며 옆을 보니 다들 보르쉬를 먹으면서 감탄을 표하고 있었다. 난 마음속으로 안도했다. 정말 다행이었다.

조용히 식사를 하던 루슬란 오빠가 말했다.

“정말 맛있네요.”

“다행이네!”

“저도요. 너무 맛있어요.”

“고마워, 타티아나.”

에르네스트의 어머니는 혹여나 우리가 입맛에 맞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와 루슬란 오빠가 번갈아 가며 맛있다고 솔직한 칭찬을 하자 한층 마음이 놓이신 듯했다.

에르네스트의 어머니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타티아나가 많이 도와준 덕이야.”

“전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요…….”

“왜 없니? 네가 도와준 것이 얼마나 많은데? 에르네스트를 보렴. 감자만 까더니 휙 들어가 버렸잖니.”

“제가 뭘 더 해요.”

“쟤 말하는 거 보렴.”

에르네스트는 툴툴거리며 보르쉬를 크게 떠서 입에 집어넣었다. 나는 그저 배시시 웃었다.

“항상 딸이 있었으면 했는데……. 오늘 정말 고맙구나, 타티아나.”

에르네스트의 어머니가 내 쪽을 보시더니 그렇게까지 말씀해 주셨다.

조금 애틋한 그 말씀에 순간 목이 메었지만, 이건 그냥 하시는 말씀이었다.

난 옅게 미소를 띠며 머리 한편 어딘가에 잠들어 있던 매뉴얼에서 적당한 대답을 읽어냈다.

“별말씀을요. 좋게 봐 주시니 저야말로 감사해요.”

여기까지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약간의 욕심이, 결국 한 마디를 더 이끌어 냈다.

“절 딸처럼 여겨 주신다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사실 저도…….”

순간, 계속 차고 있던 가넷 목걸이가 갑자기 냉기를 품고 가슴에 파고드는 듯, 그 서늘함으로 심장을 꿰뚫었다.

난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 문제도 느끼지 못하겠지만, 분명 들켰을 것이다.

“…….”

석고로 굳혀 버린 것처럼 딱딱해진 목을 간신히 돌리자, 루슬란 오빠가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근래 들어 많이 따스해졌던 눈빛이 돌변해 있었다. 원망, 가증, 질투, 고독, 허무 등 폐부를 직접적으로 찌르는 온갖 감정들이 내 쪽을 향했다.

그 시선이 너무나 차갑고, 맹렬해서, 난 시선으로 목을 조른다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불과 몇 초, 날 송두리째 옭아매던 그 시선은 곧 거두어졌다.

루슬란 오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번엔 고기가 정말 먹기 좋다며 웃음을 머금었다.

그 모습은 철저하게 교육받은 부분에서 비롯되는 모습이라 그 어떤 위화감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난 스푼을 든 채 한참을 굳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오빠.”

“…….”

“루슬란 오빠. 잠시만요.”

탕탕탕탕.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만이 크게 울렸다. 난 늦을세라 그 뒤를 쫓았지만 아무래도 나보단 루슬란 오빠가 내려가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오빠…….”

몇 번 부르다가 그만두었다.

“…….”

실수였다.

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굉장히 희박한 편이었다. 이전에도, 이번에도.

아버지에 대한 것 또한 그러했으나, 이번엔 아버지로부터 충분하고도 넘치는 애정을 받고 있기 때문에 어머니의 빈자리는 상대적으로 옅게 느끼고 있었다.

원래 없었던 것을 갈망해야 할 정도로 굶주리지 않았고, 그리움이나 외로움 등을 크게 느끼진 않았다.

하지만 따뜻함에 방심했던 것이다,

“…….”

그게 나 혼자의 일이라면 상관없었을 것이다.

기억의 부재로 인한 의리의 부재로, 스스로를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난 그것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내 입장일 뿐이었다.

루슬란 오빠에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계단에 멈춰 선 채, 층계의 찬 공기를 들이쉬다가 웅크렸다.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일이라 각오를 다진 바 있었다.

난 몇 번이고 정면으로 이 부분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한 적 있었고, 루슬란 오빠는 철저하게 그것을 거절했다.

루슬란 오빠는 그것이 나를 위한, 우리 관계를 위한 최선이라고 판단하는 듯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날 두고 오빠와 아버지만 입을 다물면 모든 게 괜찮아지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루슬란 오빠는 지금을 두 번째 기회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런 부분까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정작 루슬란 오빠 본인의 마음에 있는 상처가 헤집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어쩌지.”

루슬란 오빠는 먼저 내려가 버렸다. 이대로 어디론가 가 버렸을지도 모른다. 당분간 내 얼굴을 보기 싫을지도.

난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갔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

다행인지 불행인지 루슬란 오빠는 1층 입구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가로등에 비친 어두운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내 발까지 닿았다.

“오빠…….”

“타티아나.”

조용히 날 불렀다.

“미안해. 갑자기 찬 바람이 쐬고 싶어져서.”

그렇게 사과를 해 왔다.

정말 바람을 쐬고 싶은 게 전부였다는 듯, 완전히 평정을 되찾은 태연한 목소리가 오빠로부터 흘러 나왔다.

예민하고, 섬세하지만 그만큼 상냥하고 착한 루슬란 오빠 그대로인 것만 같아서, 아무 생각 없이 속아 주고 싶었다.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할래? 평소처럼 연습실로 갈까? 아니면 오늘은 일찍 호텔로 돌아가서 쉬는 것도…….”

“오빠.”

하지만 나는 한 번 더, 루슬란 오빠를 자극했다.

“괜찮아요?”

“…….”

어둠 속에서도 섬뜩하게 빛나는 눈이 내게 향했다.

이렇게 할 필요는 없었다. 루슬란 오빠가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은 보지 않고, 보이고 싶은 모습만 봐 가면서 착하게 지내는 것이 현명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이라면 루슬란 오빠가 견디지 못할 날이 언제든 도래할 것 같았다.

난 오빠의 정신력과…… 비위,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불분명한 기준에 모든 것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난 결코 루슬란 오빠를 상관없는 남이라 여기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무시해선 안 되는 분명한 내 가족이었으니까.

루슬란 오빠는 다시 한 번 시치미를 뗐다.

“괜찮고말고? 무슨 소리야 그게.”

“그게 아니라 아까…….”

“그만하랬지.”

가차 없이 냉랭한 목소리가 날 후려쳤다.

“그만하기로 했잖아.”

“오빠…….”

“아니, 정말 미안해. 내가 그러자고 해 놓고는 널 불안하게 해서. 하지만 오늘은 조금 놀랐을 뿐이야.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준비가 안 되어 있으리라곤 몰랐거든.”

조금 횡설수설하는 듯한 느낌, 하지만 이미 내적으로는 높게 쌓여 있는 벽들이 나와 루슬란 오빠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이것이 이제 막 스무 살인 루슬란 오빠가 생각하는 어른의 태도인 것인지, 난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벽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흔들거렸다. 이쪽이나, 혹은 저쪽으로.

“오늘은 미안했어. 많이 놀랐지?”

“…….”

“다음부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야. 좋은 일이잖아? 널 딸로 여기고 싶을 정도로 좋아해 주는 분이 있으시단 건…….”

“그건 그냥 겉치레일 뿐이잖…….”

“그래서 넌 그걸 그냥 겉치레로 받아들였나?”

루슬란 오빠가 갑자기 확 공격적으로 돌변했다.

벽이 무너지고, 그 뒤에서 이를 드러내고 있는 야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빠는 스스로의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루슬란 유리예비치 베르체노프는 베르체노프 재벌의 후계자이자 모스크바 대학교에 다니는 영재이지만, 그와 동시에 어머니를 여의고 스무 살밖에 안 된 청년인 것이다.

지금 오빠는 굉장히 불안정해 보였다.

루슬란 오빠 스스로도 그것을 아는지, 목소리에 자신이 사라져 갔다.

“타티아나…… 넌 지금 내가 굉장히 치졸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미안해, 어쩔 수 없어. 내가 지금 좀 그래. 생각이 많아.”

“…….”

“네가 본래, 이렇게 쉽게 사랑받는 성격이었다면, 그래. 대체 어머니와 나는 뭐였던 걸까, 계속 그런 생각이 들어.”

어머니와 루슬란 오빠, 그리고 개차반이었던 그녀. 어떤 일들이 있었을지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방금 전 베샤스트니흐가에서 있었던 따뜻하고 차분한 광경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광경. 오빠는 거기에 전혀 면역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참다가, 결국 나와 에르네스트 어머니가 보인 겉치레 수준의 교류와 애정만으로도 루슬란 오빠는 질투에 미친 모습으로 폭발해 버렸다.

내가 조금 일찍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루슬란 오빠의 연기를 꿰뚫어 볼 정도로 생각이 깊지 못했다.

하지만 루슬란 오빠는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네 잘못은 아니지. 전혀 아니야. 그러니까 괜찮아. 지금 이건 다 나만 쓸데없는 생각을 그만두면 해결될…….”

이성을 잃고 폭발하긴 했지만 루슬란 오빠는 그것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 누구에게도 화살을 돌릴 수 없는 문제이니 혼자서 찍어 누르면 어떻게든 잠재울 수 있으리라,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는 것 같았다.

“오빠.”

난 중얼거리는 루슬란 오빠를 불렀다.

오빠가 고개를 들고 내 쪽을 바라보았다. 공허한 듯한 그 얼굴이 너무 처량해 보여서, 난 한달음에 다가가 루슬란 오빠를 끌어안았다.

두꺼운 옷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난 더더욱 강하게 팔에 힘을 주었다.

“제가……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

“가르쳐 주세요.”

이제 난 잘 모르겠다.

하지만 루슬란 오빠는 알고 있겠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오빠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차마 내게 말로 하진 못하고 있지만, 분명 이성으로 자제하고 있는 그 뒤쪽엔 내게 하고 싶은 말과, 내가 해 주었으면 하는 일들이 잔뜩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 좋았다.

“놔. 일단.”

하지만 루슬란 오빠는 내 머리 위로 차가운 말들을 늘어놓았다. 귓가가, 목덜미가 서늘해진다.

“네가 할 건 아무것도 없어. 잘못한 것도 없고. 놔.”

“절 또 후회하게 만드실 건가요.”

“타티아나. 난 너한테 소리 지르기 싫어. 이거 놔.”

“말이 엉망진창이잖아요!”

“빌어먹을! 타티아나!”

살짝 밀기만 해도 난 형편없이 나가떨어질 텐데, 루슬란 오빠는 그 와중에도 거칠게 뿌리치지 못하고 언성을 키웠다.

갑자기 짜증이 치솟았다. 차라리 날 때려! 난 오빠를 놓고 마주 소리를 질렀다.

“제가 잘못한 게 왜 없나요? 기억이 없는 저도 알겠는데! 어머니에 대한 것이 적어도 제가 조심했어야 할 부분이라는 것쯤은 알아요!”

“정확하게 말하지. 넌 잘못한 게 없는 게 아니라 잘못할 수가 없어! 어머니에 대한 것? 네가 뭘 알기에 그런 말을 해?”

“그, 그거야 오빠가 아무 이야기도 안 해 주…….”

“해 주면 그게 네 기억이 돼?”

“…….”

말문이 막혔다.

루슬란 오빠는 내가 기억상실에서 회복되지 않는 이상, 일방적으로 내게 이야기를 해 준들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내가 루슬란 오빠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불현듯 기억을 되살려 내어서 그때 당시에 있었던 디테일한 일들이나, 당시 그녀의 기분 등을 떠올려 낼 수 없다면 그건 내 기억이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소한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도는 알아야 내가 실수라도 덜할 것 아닌가.

“전 괜찮다고 쳐요, 그러면 오빠는요?”

“뭐?”

“루슬란 오빠가 제 말 한마디, 행동 하나마다 상처를 입는다면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

루슬란 오빠는 자기도 모르게 폭발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바로 오늘만 해도 그랬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그런 지뢰들이 산재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루슬란 오빠는 다시 마음을 다잡은 듯, 잘라 말했다.

“기억이 없는 네게 내가 뭘 요구할 수 있겠어? 지금 넌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 이상을 바랄 정도로 내가 미친놈으로 보여?”

“바라시잖아요!”

“바라…… 바라지! 그래! 바라 마지않지! 하지만 그건 내 욕심이지! 너한테 결코 강요할 순 없는 거야!”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쏘아붙이던 오빠가 갑자기 위험한 눈빛을 하며 말했다.

“딱 하나 있어, 내가 네게 바라는 것.”

그게 뭐냐고 묻기도 전에, 오빠는 갑자기 손을 뻗어 내 외투를 열어젖히곤 손을 목 뒤쪽으로 집어넣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손이 갑자기 목에 닿아 소스라치게 놀랐다. 순간, 오빠가 내 목을 조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날 위하는 오빠가 그런 짓을 할 리 없었다. 난 꿈틀거리지 않고 그 자리에 섰다.

내 목에 걸려 있던 가넷 목걸이, 루슬란 오빠는 그 목걸이의 사슬을 손가락에 걸어, 주르륵 빼냈다.

“이거, 벗어서 나한테 줄 수 있어?”

“……아버지는…….”

루슬란 오빠가 중얼거렸다.

“그래, 이걸 너한테 주기 전에 아버지와 난 충분한 의논을 거쳤어.

난 동의했고, 이해했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안 되겠어. 이것만큼은 아버지가 틀렸어.”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난 울먹이지 않으려 기를 쓰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 동생으로 여기지 못하시겠단 건가요?”

“아니?”

루슬란 오빠는 드디어 해결책을 찾았다는 듯, 손가락에 건 사슬을 놓지 않고 내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했다.

거의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눈을 마주하고는, 거의 숨이 멎은 날 향해 오빠가 말했다.

“이것만 줘. 난 이걸 그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곳에 둘 거야. 눈에 띄지 않도록. 앞으로 오늘 같은 일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난 널 새로운 동생으로 보게 될 거니까. 1년 전만 해도 없었다가, 새로 생긴 내 동생.”

어둠이 깊게 내려앉은 음울한 눈동자가 그렇게 말했다.

악마는 언제나 최선의 해답을 주곤 하지.

“실제로 그러하기도 하고. 안 그래? 세상 누가 널 미워할 수 있을까. 어머니도, 과거도 그 무엇도 지금 내 앞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네게 비하면 가볍기 그지없어. 앞으로 내 인생에 허락된 모든 애정은 네게 향할 거야. 그 누구도 아닌 네게.”

그렇게 루슬란 오빠는 끝까지 고민하던 마지막 판단을 정리했다.

“그게 옳아.”

“…….”

나는 반박하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마지막으로 남아 주었던 오빠마저 잃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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