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105화 (105/1,277)

##  105화

곡을 마무리 짓고 내려오자, 건조한 박수 소리가 정확히 세 번 울렸다가 멎었다.

에르네스트는 말없이 날 가만 바라보았다.

그는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지금 입을 열어 발하는 언어로는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내게 전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듯했다.

그렇다면 그에게 차례를 줘야 했다. 난 의자에서 내려왔다.

“아니야.”

갑자기 그가 이상한 말을 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뭐가요?”

“네가 아니라 내가.”

“저는요?”

“……나가자.”

바보 같은 언어의 주고받음. 우리는 둘 다 언어중추가 마비된 사람처럼 굴었다. 뇌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을, 생각을 외부로 표현하는 부분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웃어 버릴 만도 했다. 하지만 나도, 에르네스트도 진지했다.

에르네스트가 먼저 외투를 들었다. 정말 나가 버리려는 것 같았다. 먼저 나를 연습실로 끌고 온 사람이 보일 태도로는 조금 부적절했지만 아무 이유 없이 저러는 것 같진 않다.

그가 문을 열고 나가며 손짓했다. 따라오라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외투를 걸쳐 입고 그 뒤를 따랐다.

에르네스트는 밖으로 나가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러곤 방금까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딱 부러진 태도로 통화를 했다.

그제야 제대로 말을 할 수 있게 된 나는 통화를 막 끊은 그의 옆에 가서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

“다른 연습실에 가자.”

“……예?”

난 조금 황당해졌다.

사운드에 예민한 연주자들일수록 피아노나 공간에 까다롭게 구는 경향이 있긴 했다.

예민한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연주자라면 누구나 그런 부분을 가지고 있었고, 나 역시 피아노의 소리를 굉장히 따지는 편이었다.

하지만 방금 연습실의 피아노는 적어도 내가 듣기엔 흠잡을 곳 없이 훌륭했다.

최소 600만 루블을 호가하는 스타인웨이의 피아노. 조율과 관리도 잘 되어 있어서 음색도 나쁘지 않고 괜찮았다. 문제가 있다면 연주자인 내게 있겠지, 적어도 피아노엔 없었다.

“…….”

허나 에르네스트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약간 의아한 눈으로 에르네스트를 바라보는데, 그가 말했다.

“내가 아는 곳이 있어. 거기에서 이어서 하자.”

“……그래요.”

잘 모르겠지만, 에르네스트가 그리하고 싶다면 반대할 생각은 없다.

차에 다시 올라, 에르네스트는 방금 전화로 예약을 한 듯한 연습실을 스마트폰 지도에 띄워 빅토르에게 보여 주었다. 어디라고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고 좋은 방법이었다.

“…….”

그렇게 다른 연습실로 향하는 내내 우리는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난 방금 연주한 발트슈타인 소나타와 에르네스트가 보이는 태도를 생각하며 상념에 잠겼다.

나도 안다. 내 소나타는 언제나처럼 사상누각 같은 느낌이었다.

아직 버릇들을 제대로 다 씻어 버리지 못해서 이미지화되어 있는 해석과, 한 학기간 중앙음악학교에서 두 선생님에게 사사한 해석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에서 담아내려 노력 중인 음색, 그것들을 한곳에 집중한 손가락 끝.

어떻게든 구조화해서 쌓아 올리고 있긴 하지만 내 레슨을 봐 주었던 소피야 교수님의 말처럼, 굉장히 많은 것이 올라가 있어서 안정되어 있지 않았다.

에르네스트 역시 소피야 교수님과 비슷한 것을 느꼈다면 아마 난 그를 조금 실망시켰을지도 모른다.

천재인 그가 듣기에, 지금 내가 펼칠 수 있는 음악은 굉장히 산만하고 멍청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

하지만 후회는 없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연습실을 바꿔 가면서 무언가 들려주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난 그 대답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복잡한 생각들을 하면서 창밖을 내다본 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우리가 탄 차량은 곧 길가에 슥 멈춰 섰다.

“도착했습니다.”

차에서 내리고, 난 낯익은 건물에 눈을 가늘게 떴다.

“……여긴?”

“보기엔 이렇지만 연습실이야. 따라와.”

에르네스트는 주저 없이 건물 안으로 쑥 들어갔고, 난 잠시간 멈춰 서서 올려다보았다.

분명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처음 연습실을 구했을 때, 빅토르가 구해 준 19세기 풍의 연습실이었다.

루슬란 오빠와 함께 여기에 와서, 쇼팽의 왈츠와 녹턴을 오빠에게 연주해 준 바 있었다.

“…….”

조용히 에르네스트를 따라 들어갔다. 이전에 봤던 형식의 장식들이 아침이라 그런지 더욱 환하게 빛났다. 저편에서 에르네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뒤를 따랐더니 그는 이전보다 조금 더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연습실로 향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함께 연습실에 들어섰고, 난 에르네스트가 왜 연습실도 바꾸면서 이곳에 왔는지 바로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세상에.”

연습실 문을 여는 순간 200년 정도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 들었다.

익히 아는 그랜드피아노가 아닌, 그보다 작은 피아노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 피아노는 현대의 피아노들처럼 검은색 일색이 아니라, 원목의 무늬가 그대로 드러나는 아주 고풍스러운 색을 띠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된 물건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이 방이 유행하던 시대와 비슷한 시대의 물건인 것 같았다. 19세기 스타일의 이 방에 작고 오래된 피아노는 완벽하게 잘 어울렸다.

난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와서 수많은 문화재들을 보면서도 이렇게 오래된 피아노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단 사실에 조금 놀랐다. 그리고 어떻게 그 생각을 못 했는지에 대해서도 충격을 받았다.

박물관 같은 곳이 아니라 이런 장소에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내가 놀라워하며 피아노를 보고 있는데 에르네스트는 외투를 벗어 걸고는 갑자기 그 앞의 의자에 앉았다. 난 깜짝 놀랐다. 이거 문화재 같은 것 아니야? 쳐선 안 될 것 같은데?

미처 말로 나오지 못한 내 걱정이 그에게 전달될 리 없었고, 그는 아랑곳 않고 건반을 살며시 눌렀다.

“…….”

처음엔 무슨 곡인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작고 오래된 이 피아노는 내가 익숙한 피아노의 음색과도 많이 달랐다.

하지만 1분쯤 지나, 스케르초풍의 격렬한 선율을 듣고, 난 이 곡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함머클라비어.

그 이름은 베토벤이 자신의 피아노 소나타 29번에 붙인 부제이면서, 동시에 이 피아노의 이름이기도 했다.

건반악기가 처음부터 피아노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이전엔 18세기 중반까지도 하프시코드가 주로 사용되었다. 바흐는 거의 하프시코드만을 위한 곡을 썼다.

하지만 하프시코드는 페달도 없고, 건반으로 강약 조절도 어려운 악기였으므로 화성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음악성을 만들어 내기가 힘들었다.

때문에 음악가들은 그보다 더 풍부한 표현력을 지닌 건반악기를 원했다. 그러한 수요에 힘입어 만들어진 것이 피아노였다.

이 피아노 역시 초기에는 굉장히 단순한 형태였으며 몇십 년에 걸쳐 개량되고 발전하고 나서야 현대의 피아노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되는데, 함머클라비어는 이 중간 형태에 속하는 피아노였다.

19세기 초에 피아노 제작자인 브로드우드로부터 이 함머클라비어를 선물받게 된 베토벤은 보다 화려한 기교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이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는 소나타를 쓰게 되었고, 그 곡에 함머클라비어를 위한 대 소나타라는 이름을 붙였다.

에르네스트는 앞선 모든 악장을 생략하고 4악장부터 연주를 시작했다.

인상적인 서주가 끝나고, 푸가가 이어졌다.

언뜻 푸가가 아닌, 다른 양식의 음악처럼 느껴진다.

다른 고전 음악가들의 푸가처럼 치밀한 느낌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보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즉흥적인, 그야말로 함머클라비어로 가능한 모든 기교를 활용하기 위해 대위법으로 쓰인 또 하나의 다른 음악 같았다.

이 함머클라비어가 베토벤의 후기 음악의 시작을 여는 소나타임이 분명한데도 현대에 잘 연주되지 않는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굉장히 난해하고, 까다롭기 때문이었다.

당대엔 이 곡을 소화해 낼 수 있는 피아니스트가 거의 없었으며 그건 현대에도 비슷했다. 기교적으로는 물론이고 해석하기에도 어려웠다.

베토벤이 이 곡을 쓰면서 50년 후에도 피아니스트들이 도전해야만 할 곡이라고 말한 것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200년 후의 연주자인 에르네스트는 이 난곡의 해석을 날것으로 내게 보여 주었다.

에르네스트는 함머클라비어라는 이름을 지닌 소나타를, 정말 그 시대의 함머클라비어로 연주하면서 심지어 주법까지 그 시대에 맞추려는 것 같았다.

현대적 피아노와 현대적 해석에 익숙할 그가 이런 실력을 보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에르네스트는 자신을 놓지 않았다.

이러한 원전연주는 몇 번이나 들어 본 적 있었지만, 에르네스트의 연주는 굉장히 특별했다.

고전적이면서도 독자적인, 에르네스트의 연주를 들으면서 난 왜 그가 이 소나타를 들려주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

10여 분 정도 되는 연주가 끝나고, 에르네스트가 일어섰다.

난 짧게 박수를 쳤다. 인정해야만 했다. 이렇게 깔끔하고 완벽하게 대답을 들려줄 방법을, 적어도 난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에르네스트가 내게 혹시 할 말 없냐는 듯 눈짓했다. 이번엔 입을 열어 물었다.

“에르네스트. 혹시…… 여기에 에라르 피아노도 있나요?”

“물론이지.”

내가 그렇게 물어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에르네스트가 즉각 대답했다. 그리고 날 데리고 옆 연습실로 향했다.

거기엔 함머클라비어보다 더 오래되어 보이는 피아노가 있었다.

“…….”

프랑스의 에라르사에서 만들어 에라르 피아노라고 불리는 오래된 피아노다.

여러 모델이 있지만, 건반이 70개 정도인 이 초기 모델은 베토벤이 발트슈타인 소나타를 썼을 경에 애용하던 피아노였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중 특히 21번 발트슈타인과 29번 함머클라비어는 그 자체로 피아노 제작기술과 연주자의 기교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역사서나 다름없는 것이다.

피아노 앞에 앉아서 건반을 살며시 쓰다듬어 보니 신기한 느낌이었다. 바흐를 연구하면서 하프시코드를 쳐 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건반악기의 과도기 시절 피아노를 느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사실 이런 건 쉽게 만져 볼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다. 난 이걸 내 마음대로 만져도 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고장내서 물어주거나 인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이걸 쳐 봐야 할 것 같았다.

조심스레 건반을 눌러 보았다. 생각보다 훨씬 가볍게 건반이 들어갔다.

현대의 피아노들에 비하면 훨씬 작고 울림도 덜하지만, 섬세한 소리가 피아노로부터 흘러나왔다.

난 가볍게 건반을 조금 만져 보다가 그대로 베토벤의 발트슈타인 소나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

당시 베토벤의 생애 같은 것은 음악사를 공부하면서 대충 알고 있었다.

귓병을 앓기 시작하면서 절망하여 유서까지 썼던 20대 후반의 베토벤. 그는 피아노로 할 수 있는 보다 혁신적인 곡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이 발트슈타인 소나타를 썼다. 그리고 또 한 번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몇 글자 언어로 대체 베토벤에 대해 뭘 알 수 있단 말인가?

에라르 피아노는 굉장히 경쾌하게 내 손에 따라 음악을 만들어 나갔다. 연속화음으로 시작되는 첫 주제에서부터 확연히 다른 음색이 느껴졌다.

이 낯선 음악을 들으며 기묘한 감성을 느꼈다. 베토벤이 이 곡을 쓰고, 연주되었을 당시에 발트슈타인 소나타는 바로 이런 음악이었을 것이다. 난 이 음악을 모르고 대체 뭘 연주하고 있었던 걸까.

미하일 선생님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무엇을 보고 오라고 한 것인지 어렴풋이 느껴진다.

마구잡이로 섞여서 쌓여 있던 것들을 끌어안고, 넘어지지 않도록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 작은 발판을 찾아낸 듯한 안도감이 들었다. 적어도 시작점을 알 수 있으니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진 않았다.

이대로 잠시 앉아 있을 수도 있었다. 나보다 수천 배는 천재일 그 사람들에게 기대어 있을 수도 있었다. 적어도 그러면 지금처럼 고민하고 갈등할 필요는 없었다.

“…….”

난 그 안식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나는 여태껏 내 음악, 그리고 그녀의 음악, 오로지 그렇게 자기증명에만 목숨을 걸어 왔다. 이제 와서 그것을 던져 버릴 순 없는 것이었다.

에르네스트 역시 러시아인으로서 러시아 피아니즘에 목숨을 걸고 있었다. 우리는 과거에 있었던 천재들이 준 선물을 딛고 서서 안도할 수 없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간 잊고 있던 것을 한 가지 깨달았다.

가끔은 길을 헤매기도 하지만, 내가 뒤죽박죽으로 뒤섞여서, 완전히 알아볼 수도 없게 변해 버린다 하더라도 이렇게 돌아올 집이 있으니 보다 과감하게 발을 내디딜 수도 있다는 것을.

난 건반 전체를 손끝으로 느끼며 손목을 조금 흔들었다. 음색이 변하면서 음악이 변화했다. 내가 이전까지 가지고 있던 해석은 잘 모르겠다.

일단 잊었다. 난 주어진 음악이 허락하는 대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전혀 익숙하지 않은 에라르 피아노를 연주하자니 어색했다. 가벼운 건반은 살짝 스치기만 해도 크게 날뛰었다. 스타인웨이의 그랜드 피아노가 고급 세단에 올라타 도로를 주행하는 느낌이었다면, 이 에라르 피아노는 승마를 하는 느낌이었다.

잘 모를수록 더더욱 조심해야 하는 법이지만, 난 더더욱 도전적으로 손가락을 놀렸다. 때로는 과해서 음이 이상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크게 틀어지진 않는다.

이걸 보고 베토벤 아저씨가 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 양반 곡은 잘 썼지만 성격 더럽기로도 유명했으니까.

하지만 결국엔 웃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