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난 상당히, 루슬란 오빠가 아나스타샤와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보다 더 언짢아졌다.
루슬란 오빠는 에르네스트와 직접 이야기까지 그렇게 나누었다면 스스로 본 것이 있을 텐데, 뭘 묻는 건지 모르겠고. 아나스타샤 역시 에르네스트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텐데 루슬란 오빠에게 뭘 묻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몰라도 말과 말 뒤에서 일렁이는 의도는 느낄 수 있었고 난 그게 싫었다.
루슬란 오빠가 가벼운 어투로 말했다.
“뭐, 그래도 엊그제 한 번 만난 것에 불과하고…… 내가 뭔가 친하다고 말하기엔 어폐가 있지만…….”
슬쩍 한 걸음 물러서는 것같이 들리지만, 아나스타샤와의 대화를 엮어 가기 위한 포석이었다.
“사실 베샤스트니흐는 우리 가문과 꽤 가까운 가문이기도 하거든. 그 장남이 음악학교에 다니고 있는지는 나도 몰랐지만, 신선하긴 했지. 아마 꽤 자기 주관이 뚜렷한 녀석이 아닐까 싶은데. 그만큼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실력도 뒷받침해 줘야 할 테고.”
루슬란 오빠는 교묘하게 차례를 넘겼다.
“듣기론 그 녀석이 학년 수석이라던데, 정말이야?”
그 말에 아나스타샤는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맞아요. 그리고 차석은 여기, 타티아나고요.”
“차석?”
나도 모르고 있었던 일이다.
아나스타샤가 눈을 찡긋했다.
“어제 우편으로 날아왔어.”
“아…….”
시험을 꽤 잘 봤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차석일 줄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에 조금 놀랐다.
루슬란 오빠가 후후 웃으며 말했다.
“자랑스럽네.”
“친구인 저도 자랑스러워요.”
그렇게 물 흐르듯 잠시 날 짚고 가더니 아나스타샤가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루슬란. 그 에르네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만요, 아나스타샤.”
난 도중에 끼어들었다. 내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좋지만 이 대화를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아나스타샤가 들어 올리다 만 팔을 멈추고는 내 쪽을 돌아보았다.
“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지 않으실래요.”
“……뭐?”
아나스타샤는 내 의중을 파악하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목을 기울였다.
무슨 뜻인지, 내가 왜 끼어들었는지 잘 모르겠다는 듯한 반응이다.
아나스타샤는 평소 절대로 내게 저런 표정을 짓는 법이 없었지만, 불식간에 이렇게 드러나는 그녀의 본색은 굉장히 차갑고 매섭다.
하지만 난 아나스타샤가 더 이상 말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지금 에르네스트는 여기에 없잖아요? 없는 사람 이야기를 해서 무엇 하나요?”
“있지 않으니까 하는 소리잖아. 그리고 루슬란도 궁금해하시는 것 같고. 그건 친구로서의 내 의무잖아?”
“저도 친구로서의 의무를 지키고 싶어요. 아나스타샤.”
난 아나스타샤를 막지 않으면 후회하고 말리란 직감을 느끼고 말로 그녀를 붙잡았다.
우연찮게 나온 이야기에서 에르네스트를 어떻게 말하든 말든 사실 그건 아나스타샤의 판단이니 내가 뭐라 할 거리가 안 된다. 변호를 조금 할 수는 있겠지만 그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등판에 표적지를 그려 넣는 일은 지켜보기가 조금 버겁다.
내가 아는 아나스타샤는 화끈하게 자신의 주장을 하는 스타일이었지만, 결코 그렇게밖에 말할 줄 모르는 바보는 아니었다.
그녀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교묘해질 수 있었다. 분위기와 말로서 은근히 상대를 유도할 줄도 알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대화를 끌고 나갈 줄도 알았다.
난 그녀가, 내가 좋아하는 그녀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나스타샤를 위해서 드리는 말이에요.”
“날?”
“예.”
“…….”
그 말에 무작정, 정말 무조건적으로 아나스타샤의 얼굴이 스르르 풀어졌다.
얌전히 쥐고 있던 포크를 버릇없게 한 바퀴 휙 돌리더니, 마치 모든 게 다 장난에 불과하다는 듯 배시시 웃음을 지으며 아나스타샤가 말했다.
“내 스타일은 아니었나?”
“아니었지요.”
“타티아나 네가 생각하는 내 스타일은 어떤 건데?”
“전 아나스타샤처럼 되고 싶었어요.”
“뭐?”
아나스타샤가 깜짝 놀라서 포크를 툭 떨어뜨렸다.
“가,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게?”
“그렇잖아요? 피아노 말곤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저에 비해 아나스타샤는 멋지고…….”
“잠깐, 그만. 그만해, 제발.”
그녀는 창피해 죽겠다는 듯 앓는 소리를 내며 움츠러들었다. 난 그런 그녀를 보다가 루슬란 오빠에게 말을 걸었다.
“루슬란 오빠, 오늘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관조하는 태도로 우리 둘을 지켜보던 루슬란 오빠는 갑자기 내가 부르자 의외라는 듯 대답했다.
“무슨 부탁이지?”
“오늘은 아나스타샤와 함께 자고 싶은데요. 안 될까요.”
나는 에두르는 일 없이 곧장 말했다.
루슬란 오빠는 짧게 웃더니 대답했다.
“알았어. 아가씨들 계시는 방에 난 필요 없겠지. 경호원들이 있는 객실에서 잘 테니 걱정하지 마.”
“죄송해요.”
“신경 쓰지 마.”
루슬란 오빠는 손을 내저으며 그렇게 말했다.
***
아나스타샤. 난 그녀에 대해 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친구로, 어떨 땐 그보다 더 다정하게 날 지지해 준 사람이었다.
그만큼 내게 있어서 아나스타샤의 존재는 소중했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람이 되어 갔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난 경계하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피아노 외의 모든 것을 내버렸다고 생각하는 내 이성 뒤편에 무언가가 잔류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난 나 자신을 믿지 않는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야 할 무언가에 의해 모두가 망가지는 일을, 난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
물론 그건 나 혼자 지레 겁먹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그녀와 나는 친구 관계에서 머물러 있는 것이다.
호텔로 돌아와 가방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는 사이, 아나스타샤는 신기하다는 듯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내게 말했다.
“타티아나. 난 여행도 꽤 많이 다녔고, 당연히 호텔에서도 많이 묵어 봤거든?”
아나스타샤가 기가 막히다는 듯 팔을 벌려 보였다.
“그런데 이런 방은 처음 봐. 세상에.”
여행을 자주 다닌 그녀도 이 정도 스위트룸은 처음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게 내 것인 것도 아니었고, 내가 벌어서 빌린 것도 아니었기에 딱히 내가 우쭐해할 이유는 없었다.
“여기 앉아요, 아나스타샤. 마실 것이라도 드릴게요.”
“응.”
난 주방으로 들어가서 간단한 티타임을 즐길 만한 것들을 꺼내 왔다.
어메니티로 제공되는 차와 과자들은 상당한 고급품들이라서 딱히 고르거나 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거실의 테이블 위에 세팅을 해 놓으니 아나스타샤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툭 내뱉었다.
“타티아나. 갑자기 미안해.”
“……예?”
“넌 연습에 집중해야 하는데 시간이나 뺏고…….”
이제 와서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난 그녀가 저녁 식사를 하면서 보였던 모습을 떠올렸다. 내가 일방적으로 틀어막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론가 해소되진 않았다.
누군가 들어 주어야 한다면, 그건 다른 누가 아니라 내가 할 일이었다.
“제게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으신가요?”
“…….”
손을 멈추고, 복잡한 눈으로 날 쳐다보던 아나스타샤는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에르네스트가 나한테 혹시 네 콩쿠르 티켓 없냐고 묻더라고.”
난 아나스타샤가 갑자기 비행기를 타고 온 이유를 조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에르네스트와 사귀어 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물었던 그녀다.
그녀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 나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난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에르네스트만이 아니에요.”
“……?”
“에르네스트의 어머니와 그의 동생이 제 콩쿠르를 보고 싶다고 하셔서 말이죠.”
난 간단하게 푸쉬킨스키구에서 에르네스트를 만나 그의 동생인 사샤와 인사하고, 함께 놀다가 별장으로 쓰고 있는 아파트에까지 방문했던 이야기를 간추려서 전해 주었다.
“걔네 가족들이랑도 만난 거야?”
“예. 에르네스트의 아버지인 스테판 니콜라예비치는 만나지 못했지만 말예요.”
“…….”
아나스타샤는 잠시간 생각에 잠겼지만 내가 워낙에 태연하게 이야기해서인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이유로 그녀는 열이 받는 듯했다.
“생각해 보니 말이 안 돼, 타티아나.”
“무슨 말씀이신가요?”
“어떻게 내가 널 집에 초대한 적이 한 번도 없을 수가 있지?”
그런가?
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분명 아나스타샤가 사는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의 앞까지 갔었던 적은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집에 들어가 보진 못했던 것 같다.
아나스타샤는 이제야 그게 어처구니가 없이 느껴진 모양이다.
“대체…….”
“아나스타샤는 집에 있는 게 답답하시다면서요?”
늘 그렇게 말하며 집 밖으로 나돌던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이니 조금 이상했다.
하지만 내 말에 아나스타샤는 다시 빽 소리를 쳤다.
“그건 상관없어!”
“……그런 거예요?”
“그래.”
바보 같은 대화가 오가고, 아나스타샤는 한숨을 푹푹 쉬더니 내게 말했다.
“타티아나. 다음에 반드시…… 우리 집에도 와 줬으면 좋겠어.”
“아나스타샤가 좋다면 언제든지요.”
“난 언제든…… 상관없어.”
중얼거리며 아나스타샤가 소파 위로 축 늘어졌다.
멍하니 텔레비전 화면을 보던 그녀가 문득 넋두리 같은 말을 꺼냈다.
“정말 웃기지, 타티아나. 갑자기 찾아와서 이상한 소리나 하고.”
“그런 말 말아요, 아나스타샤.”
내가 아나스타샤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그녀도 미처 모를 것이다.
“덕분에 이런 시간도 가질 수 있었잖아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아나스타샤는 훨씬 편안하게 풀어지며 찻잔을 기울였다.
“그래. 당장 지금은 너랑 나랑 둘만 있을 수 있으니까. 아, 진짜 보면 볼수록 방 좋네.”
난 행복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아나스타샤를 바라보면서 약간의 상념에 잠겼다.
에르네스트가 표를 구한다는 말을 듣고 이곳으로 직접 찾아온 아나스타샤.
그녀를 하여금 그리 움직이도록 만드는 감정의 이름을 사람들이 무어라 부르는지, 내 주위를 빙그르르 돌며 감싸 오는 이 포근함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그 정체를 나는 어렴풋이 느낀다.
하지만 차마 그것을 단어로 단정 지을 수 없었다.
아직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
“와, 여기 조식 정말 괜찮다, 타티아나.”
조식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최고의 호텔답게 최고급이었다. 아나스타샤는 만족스럽다는 듯 말했다.
난 팬케이크인 블린을 조금 썰어 먹다가 그녀를 불렀다.
“아나스타샤.”
“응?”
“오늘…… 어때요? 저와 함께 연습실에 가시는 건?”
아나스타샤와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거리로 놀러 나가고 싶기도 했지만, 콩쿠르를 코앞에 두고 그렇게 말할 순 없었다.
“그래, 그래야지.”
“아나스타샤가 봐 주신다면 안심이에요.”
“내가 뭘 한다고?”
아나스타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웃으며 말했다.
“루슬란 오빠는 삼십 분도 못 가서 잠들어 버리더라고요.”
”그건 일반인이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야, 절대.”
그런데 아나스타샤는 포크를 내려놓고 양손으로 엑스 자를 그려 보이며 말했다.
“네 오빠가 하는 말 못 들었어? 모스부호 전송하는 줄 알았다 하잖아. 난 그 정확한 비유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던데.”
“너무하세요, 정말.”
“같은 피아노 전공자인 나도 네가 연습하는 걸 옆에서 보고 있자면 속이 터질 것 같은데, 루슬란이 널 정말 많이 좋아하지 않고서야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건 불가능하지.”
흥미롭다는 듯 말하던 아나스타샤가 물어왔다.
“그래서.”
이 여행의 목적 중 하나였던 부분에 대해 그녀는 내 생각보다 꽤나 신경을 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떻게 네 오빠랑은 많이 친해진 것 같더라?”
“…….”
서로 말도 거의 안 섞던 예전에 비하면 훨씬 나아졌지만 난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았고 오빠는 말을 아꼈다.
심지어 점점 아버지처럼 굴고 있었다.
그냥 사이좋다고 말하는 것은 쉬웠으나, 난 말을 골랐다.
“그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어요. 사실 아직…….”
“아직 뭐? 타티아나. 넌 가끔 막 나가는 것 같다가도 그런 부분에선 조심스러워하더라.”
아나스타샤가 한심하다는 듯 턱을 괴었다.
“어제 루슬란이 대뜸 나한테 에르네스트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 하는 것 못 봤어?”
난 루슬란 오빠가 에르네스트와 상당히 친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빠가 대번에 태도를 바꾸어 더 깊은 이야기를 물어 온 것에 대한 이유는 한 가지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날 위해서였다.
“보통 그렇게까진 신경 쓰지 않아. 창피해서라도 말이지.”
“그럴까요?”
“그래. 하지만 루슬란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한테 물었잖아.”
“…….”
그리고 아나스타샤는 그것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는 편향된 정보를 전달하려 했었다.
내가 말리지 않았다면 그녀는 분명 그리했을 것이다.
내 눈초리를 의식했는지, 아나스타샤가 헛기침을 했다.
“어쨌든 다행이다, 타티아나.”
“……아나스타샤.”
아나스타샤는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듯 그렇게 말했다.
친구가 오빠와 사이가 좋아졌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까지 안도해 주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따뜻하게 바라보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어제도 말했지만 나도 오빠가 하나 있거든. 성격이 좀 거지 같…… 아니, 별로라서 나랑 자주 싸우긴 하는데 그래도 꽤 친하다고 생각하거든. 어쨌거나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더라고.”
아나스타샤는 모스크바에 있을 오빠를 떠올리는지 가늘게 눈을 뜨더니, 곧 웃어 버렸다. 풉 하는 웃음소리가 듣기에 나쁘지 않다.
그러더니 갑자기, 걱정스런 눈으로 날 돌아보았다.
“그래서 오빠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네가 작정하고 어떻게든 친해 보고자 여행까지 왔는데, 혹시 아직도 그러고 있을까 싶어 신경이 조금 쓰이더라고.”
“꽤 노력했지요. 저 나름대로요.”
남들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로선 정말 많은 노력을 한 것이었다. 생전에 안 하던 짓을 대체 얼마나 많이 했던가? 내 도전 정신에 나도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노력했다는 내 말에 아나스타샤가 관심을 보였다.
“정확히 어떻게 했어, 그런데?”
“궁금하세요?”
“궁금하지. 솔직히 말해, 네가 피아노로 최면을 걸어서 네 오빠를 매료시켰다고 하더라도 믿겠는데.”
“아나스타샤…… 제가 그렇게 미덥잖나요?”
“아무렴?”
그녀가 날 놀리며 웃었다. 난 인정하기 싫었지만 피아노 외에 마땅한 재주랄 게 없는 건 사실이었기에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입을 내밀며 말했다.
“피아노를…… 연주해 드리긴 했어요.”
“그랬겠지.”
“아침 식사도 만들어 드렸어요. 직접.”
“와우…….”
아나스타샤는 이번엔 조금 놀라워했다.
생활력이 최저에 가까운 내가 요리를 했다는 사실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꽤 괜찮았겠네. 내 망할 오빠도 내가 뭔가 입에 넣을 걸 가져다주면 적어도 그날 하루만큼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잘 들어 주더라고.”
“그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어쨌든, 그게 다야?”
“글쎄요?”
아나스타샤는 오랫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나와 루슬란 오빠와의 화해에 무언가 큰 이벤트 같은 것이 있었으리라 기대한 모양인데, 생각보다 별 이야기가 없자 약간 흥미를 잃은 모습이었다.
사실 그 외에도 내가 차고 있는 이 목걸이에 대한 일이나, 이것저것 있었지만 아나스타샤에게 이야기해 주어서 재미있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내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섞일 테고.
“…….”
“뭐야? 뭔데?”
가만히 바라보자 아나스타샤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물었다. 난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일어나죠.”
“아니, 왜 말을 하려다가 말아!”
아나스타샤는 급히 따라 일어섰지만 난 혀를 내밀곤 먼저 나와 버렸다.
언젠가 기억에 대한 것 정도는 말씀드릴 때가 올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안 돼요, 아나스타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