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난 조용히 채점표가 올라온 모니터를 올려다보며 1시간쯤 전 있었던 연주를 떠올렸다.
그리고리가 준비한 곡은 슈만의 아베그 변주곡.
젊은 시절의 슈만의 첫 번째 작품으로 ABEGG라는 선율로 단순하게 쓴 곡 같지만, 막상 도전해 보면 결코 단순하지 않은 상당한 난곡이었다.
발랄하고 아름답게 이어져야 하는 스케일은 제1변주부터 2도 화음과 섞여서 연주자를 괴롭혔다.
그리고 제3변주부터 피날레까지 이어지는 스케일은 거의 일종의 무궁동으로 한순간도 지루할 틈 없이 청중들을 끌어들이고 매료시켜야 했다.
다른 변주곡들과 달리 아베그 변주곡은 커다란 하나의 선율을 이어 나갈 수 있어야 했다.
이건 그 본질을 파악하고 있지 않은 한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리고리는 아주 훌륭하게 아베그 변주곡을 연주했다.
탁월한 기교는 스케일을 처리하는 데에 있어 거슬림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했고 절제된 리듬감각은 꽤 인상적이었다.
그리고리는 러시아의 명문 음악학교 중 하나인 그네신 음악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아무 실력 없이 그 학교에 발을 붙이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당연히 점수도 굉장히 좋았다. 4점 밑의 점수를 준 심사위원이 한 명도 없었다.
단지, 어제 연주가 너무 좋지 않았다.
“…….”
그가 어제 연주한 쇼팽의 영웅 폴로네이즈의 점수를 확인했다.
1, 3, 2, 2, 1, 1, 1.
최악이나 다름없는 점수였다.
엉망으로 흐트러진 상태에서 미처 회복할 틈도 없이, 곧바로 무대 위에 올라간 결과였다.
하지만 콩쿠르는 참가자의 컨디션 따위를 신경 써 주지 않았고, 모든 것은 그의 책임으로 돌아갔다.
“…….”
“타티아나.”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옆에 있던 에르네스트가 문득 날 불렀다.
난 그의 목소리를 듣고도 한참이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잠시 후에야 정신이 들어서 그를 돌아보았다.
“예. 에르네스트.”
“30번을 보고 있었어?”
“……예.”
딱히 부정하지 않고 대답했다.
에르네스트가 가만 날 보더니 말했다.
“일단 나가자.”
“…….”
다시 에르네스트는 앞장서서 웅성거리는 인파를 빠져나갔고, 그 뒤를 나와 아나스타샤가 따라갔다.
점수가 공개되어 있는 모니터에 사람들은 몰려 있었고, 그 무리 밖으로 빠져나온 우리는 약간 조용해진 한편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당장 어떻게 설명해도 이상하게 들릴 것만 같았다.
그저 내 개인적인 감정에 불과한 이 이야기를 굳이 누군가에게 해야 할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입을 꾹 다물었더니 에르네스트가 먼저 말했다.
“……타티아나. 이전부터 말하지만 넌 너무 물러.”
“무르다뇨? 제가 어제 한 것을 보셨…….”
“그걸로 그에게 무언가 가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르단 말이야.”
“에르네스트!”
“넌 가만히 있어, 아나스타샤. 지금은.”
에르네스트는 평소 아나스타샤에게 한 수 접어 주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절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날 꿰뚫어 보기라도 할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말없이 잠시 눈을 마주치니, 에르네스트는 더없이 차가운 눈빛을 했다.
에르네스트는 늘 내게 친절하려 하지만, 적어도 피아노를 다루는 연주자의 입장에 서서는 늘 진지하고 냉정한 모습을 보였다.
“잘 생각해 봐, 타티아나. 네가 뭘 했는데?”
내가 한 일은 단순했다. 같은 곡에 함정을 심어 두어서 무대에 오르기 직전의 그리고리를 흔들어 놓았고, 그 탓에 그리고리는 어제 연주를 완전히 망쳐 놓았다.
이 모든 것을 정밀하게 기획한 것도 나였고 실행한 것도 나였으니 그 무엇도 변명할 순 없었다.
“보셨잖아요. 무슨 일을 했는지.”
“난 그걸 묻는 게 아니야, 타티아나.”
“……?”
에르네스트는 심지어 피식 웃더니 말했다.
“30번이 오늘 떨어진다 한들 뭘 하겠어? 조금 슬퍼하기야 하겠지. 하지만 보드카 병을 쥐고 길거리를 쏘다니다가 비관적으로 네바 강……을 내려다보거나 하진 않는다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가 우울증이어서일 테니 네 잘못은 아니지.”
“에르네스트!”
“나도 내 말이 심하다는 건 알아. 하지만 타티아나.”
그가 돌연 차갑게 일갈했다.
“너 역시 그만큼 대가를 치렀잖아. 넌 리스크를 감수하고 콩쿠르 무대에서 특정 개인에게 승부를 걸었고, 거기엔 어떠한 비겁함도 없어.”
난 예선전 1라운드에게 상당한 감점을 받았고 심지어 내 연주에 1점을 준 심사위원까지 있었다.
그것은 내가 받아들인 리스크였다. 그의 말이 맞았다.
“30번이 거기에서 버티지 못한 건 네 잘못이 아냐.”
“……혹시 아시나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그런 말을 하실 때마다 전 후회하게 된다는 것을.”
조금 더 어른스럽게 대응할 순 없었을까 자꾸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계속해서 난 후회해선 안 된다고 되뇌지만, 그래도 자꾸만 짓쳐드는 생각과 감정들에 조금만 방심하면 매몰되어 버릴 것 같다.
에르네스트는 딱 잘라 말했다.
“타티아나, 우린 연주자고 경합에 있어서 승자가 있다면 패자도 반드시 존재해.”
“…….”
“때문에 연주자란 늘 패배에 익숙해. 알잖아? 세계는 넓고 연주자는 많지만 스포트라이트는 한정되어 있으니까.”
모르지 않는다. 난 어떤 면에선 천재인 에르네스트보다 훨씬 더 이 잔인한 세계에 대해 잘 안다.
그것이 지금 내가 에르네스트처럼 냉정하게 굴지 못하고 조금, 그의 표현대로라면 물러져 있는 이유였다.
그렇다고 이 세계를 박차고 나가 버릴 수도 없었다. 난 이렇게 사는 방법 외엔 알지 못하니까.
최선을 다해서 어느 한순간 미끄러져 패배자가 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살아갈 뿐이었다.
난 지금 이 순간도, 불안하다.
약간 짜증이 났다. 하지만 에르네스트는 내 기분을 눈치채지 못했고 이어서 말했다.
“내 말은…… 저 30번이 제대로 된 연주자라면, 이번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하진 않을 것이라는 거야. 다음을 노리겠지. 다음이 안 된다면 그다음을.”
그는 명확하게, 전혀 흔들리지 않고 말을 맺었다.
“그러니까 실력으로 이겼다면, 고개를 들어. 그런 표정 보고 싶지 않아.”
“…….”
마지막 말에서 그의 배려를 느낀다. 에르네스트는 날 비난하거나 무언가 가르치려 드는 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친구로서, 날 위해 해 준 말이었다. 난 하마터면 쏘아붙일 뻔했던 마음을 추슬렀다.
하지만 그의 말 저변에 깔려 있는, 그가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이 오만함.
그 스스로는 미처 생각도 못 하고 있을 그 가치관에 난 견딜 수 없어졌다.
“에르네스트는…….”
난 나도 모르게, 그렇게 입을 열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겨 보신 적이 없잖아요.”
“…….”
에르네스트 스테파노비치 베샤스트니흐.
중앙음악학교의 샛별이자 러시아의 자랑. 10대의 나이에 러시아 공로 예술가 훈장을 받은 연주자는 결코 흔치 않다.
전 세계를 놓고 보아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천재 중의 천재였다.
3년마다 열리는 루빈슈타인 콩쿠르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그리고 4년마다 열리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5년마다 열리는 쇼팽 콩쿠르처럼 정말 음악계의 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콩쿠르에 그가 아직 이름을 올리지 못한 이유는 단지 나이 제한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대형 콩쿠르들에 참가 가능한 17세가 된다면 얼마나 이름을 날리고 다닐지 난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리고 그건 에르네스트 본인도 잘 안다.
그는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고, 스스로의 실력을 잘 알며, 러시아 피아니즘을 선도하고 싶어 하기까지 한다.
굉장히 거창한 꿈이긴 하지만 그는 그만한 능력이 된다.
때문에 그는 웃었다. 내 말마따나 그는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겨 본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웃음엔 특유의 오만함이 약간, 걷어져 있었다.
“아직까진 없지. 하지만.”
에르네스트의 말이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는 찰나, 그가 말을 이었다.
“곧 뺏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어.”
“……예?”
바보처럼 되묻자 그가 쿡쿡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굳이 너도 잘 알 만한 이야기를 다시 해 준 건, 앞으로 그 어떤 일이 우리 앞에 닥치든 갈등하지 말라는 뜻이야.”
다시 그가 했던 말들을 곱씹고 있자, 에르네스트가 이어서 말했다.
“물론 넌 이럴 때나 귀엽게 갈등하지 피아노 앞에 앉으면 상대가 누구든 고민 않고 최선을 다해 박살 낼 테지만.”
“귀엽……다고요?”
멀거니 되묻자 에르네스트는 순간 아차 하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난 내가 그를 귀엽다고 생각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거꾸로 이런 상황은 상상도 하지 않았기에 조금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에르네스트는 내 눈치를 약간 살피는 것 같더니, 아나스타샤를 보고는 귀신이라도 본 듯 창백해졌다.
“그…….”
“어떻게 갈등한다고?”
“그게 말이지…….”
웅얼거리던 에르네스트가 갑자기 화가 난다는 듯 인상을 쓰며 어깨를 폈다.
“생각해 보니 웃기네. 야, 아나스타샤. 내가 못 할 말 했냐? 솔직히 말하지. 너보다는 타티아나가 귀여운 축에 속하잖아?”
“너 진짜 미쳤어? 에르네스트?”
“미쳤으면 봐줄 건가?”
“아니, 죽여 버릴 거야.”
거의 십년지기 소꿉친구 사이에 험한 말이 조금 오갈 수도 있지만 난 아나스타샤가 이렇게 으르렁거리는 것이 정말 무서웠다.
“잠깐, 잠깐만요.”
“가만히 있어 봐.”
“아나스타샤, 그, 이건 제가 기뻐해야 하는 상황 아닌가요? 귀엽다는 건 칭찬이잖아요? 전 그렇게 알고 있는데요.”
“…….”
돌연 아나스타샤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날 바라보았다.
난 아나스타샤로부터 그런 시선을 자주 받곤 했지만 오늘은 특히 좀 심했다.
무슨 외계인을 보겠다는 듯한 시선이다. 심지어 에르네스트도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었다.
아나스타샤가 말했다.
“타티아나, 너 진짜 가끔 말하는 거 보면 너무 이상한 거 알아?”
“어…… 그런가요?”
“아니 그…… 뭐라고 해야 하지 이걸…….”
아나스타샤는 살면서 이런 상황에 처해져서 무언가 설명하게 되리라곤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는지 말을 더듬으며 황망해했다.
그때, 에르네스트가 항복이라도 하는 듯 양손을 올리며 말했다.
“미안. 내 잘못이야.”
“……?”
“다신 그런 소리 하지 않도록 하지. 그러니 없었던 걸로 하자.”
뭔진 모르겠지만 그가 지금 수습하려 한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고, 나와 아나스타샤 역시 기회가 된다면 이런 상황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싶었다.
“좋아요. 전 아무것도 못 들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피아노로 누구든지 박살 내 버린다는 것까지.”
“아, 그랬죠…… 아?”
에르네스트도, 아나스타샤도 입을 다물고 있는데 들려온 대답에 난 깜짝 놀라서 뒤돌았다.
“안녕.”
거기엔 미소를 짓고 있는 그리고리가 있었다.
“타티아나의 친구들도 안녕.”
“너 뭐야?”
에르네스트가 날 슬쩍 옆으로 밀어내더니 한 발자국 나섰다. 갑자기 나타난 그리고리에게 경계하는 듯한 태도였다.
그리고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30번이라면 알려나?”
“……무슨 일이지?”
에르네스트가 내 쪽을 일견했다. 지금 나와 그리고리가 마주하는 것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굉장히 냉정하게 승부의 세계에 대해 말하긴 했지만, 동시에 우리가 사람이라면 철저하게 냉정할 수만은 없다는 것 또한 이해하고 있었다.
그걸 귀여운 갈등이라고 표현한 것은 거부하고 싶지만.
“네가 그녀에게 말한 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서 말야.”
“비슷한 이야기?”
“그래.”
그러곤 그리고리가 날 불렀다.
“타티아나.”
“……예.”
조용히 대답하니 그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난 더러운 놈이지.”
그의 첫인상은 정말 최악이나 다름없었다. 그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이유도 없이 그랬던 건 아니야. 단지, 이 칙칙한 공간이 조금 짜증났을 뿐이지.”
“무슨 말씀이신가요?”
“각자 경쟁한다는 인간들이 서로는 얼굴도 잘 안 보려고 하고 연주도 잘 안 들으려 하잖아? 난 그게 굉장히 싫었거든.”
괴롭힘당하는 아이를 두고도 무시하던 광경이 문득 떠올랐다.
우리는 모두 경쟁자였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이 승부에서 승리하고 싶어 했다. 때문에 때론 그 누구보다도 차갑고 잔인해지기도 했다.
그리고리가 킥 웃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더럽고 싸이코처럼 굴었던 건 아냐.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중얼거리는 투로 말하던 그가 곧 스스로 듣기에도 웃기게 들린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원래 내가 좀 쓰레기였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이건 변명이니까 중요한 게 아니고.”
그리고리가 날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금부터가 이곳에서, 내 친구들을 둘이나 앞에 두고도 용기를 내어 내게 말을 건 이유였다.
그가 말했다.
“내가 이 콩쿠르에서 굉장히 많은 것을 얻어 간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었어.”
“…….”
“심지어 우승보다도 말이지. 우승해 봐야 상금와 상패를 받고 내 프로필에 한 줄 더 적을 뿐이잖아? 신문에도 조금 날지 모르지만…….”
몇 가지 꼽아 보던 그가, 양손을 훌훌 털어 버리며 말했다.
“그따위 것들보다 훨씬 더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 날 상대해 줘서 고마워. 좋은 승부였어.”
“…….”
그게 좋은 승부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젠 비열했고 오늘은 빈사 상태인 그를 일으켜 세워 모든 것을 쏟아 내도록 만들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리고리는 후회하지 않는 듯했다.
나도 후회하지 않았다.
가끔 빅토르가 보이는 분위기처럼 삐딱하게 팔짱을 끼고 이쪽을 보고 있던 에르네스트가 끼어들어서 말했다.
“할 말 끝났냐?”
“그래.”
“예선 탈락이 우승보다 낫다는 둥…… 별 웃기지도 않는 소릴 하는데, 그딴 소리는 집에 가서 하지 그래?”
“음, 아버지는 날 죽이려 하시겠네.”
심하게 비아냥거리는데도 불구하고 그리고리는 피식 웃어넘길 뿐이었다.
그는 에르네스트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어쨌든, 요 며칠 미안했어. 그리고 고마워.”
“……알겠어요.”
“11번한테도 사과하러 가야겠네. 두 사람 다 본선에 올랐으니까 입상했으면 좋겠어.”
그는 빈말로도 않던 응원을 이젠 할 수 있었다. 난 순수하게 그것을 받아들였다.
비로소 그와 나 사이의 대결은 정리되었다. 그리 긴말은 필요 없었다. 우린 이미 음악가로서 서로 충분한 것들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리는 그대로 쿨하게 뒤돌아서 가려다가 말고 문득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아, 그리고 타티아나. 혹시 브콘탁테 해? 아이디 가르쳐 줬으면 좋겠는데.”
브콘탁테는 러시아의 SNS다. 하지만 난 아예 아이디를 생성해 본 적조차 없다.
“안 해요.”
“정말?”
“정말이에요. 전 거짓말 안 해요.”
슈만의 아베그 변주곡을 칠 생각 없다고 말했을 때도 그는 몇 번이나 확인했고, 난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걸 떠올렸는지 그리고리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하긴 그랬지. 알았어. 다음에 볼 일이 있겠지.”
그러곤 다시 아나스타샤와 에르네스트를 슬쩍 일견하더니, 그렇게 떠나갔다.
인파들 사이로 사라지는 그리고리는 보고 있자니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아나스타샤와 에르네스트였다.
난 무언가 잘못이라도 했나 싶어서 조심스레 물었다.
“……왜 그러시나요?”
둘은 아까 으르렁거리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냐…….”
왜 그런 눈으로 날 보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