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129화 (129/1,277)

##  129화

다시 대기실로 들어간 나는 남은 본선 참가자들의 연주를 마저 다 들었다.

“…….”

차례를 끝낸 참가자들은 입을 다물고 앉아 있다.

가진 바 모든 실력을 다 보였는지 표정이 밝은 쪽도 있었고, 어떠한 이유로든 간에 연주를 망쳤는지 표정이 어두운 쪽도 있었다.

난 그 어느 쪽에도 끼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가능한 모든 음악을 내보였지만,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요란한 환호 소리와 함께 마지막 본선 진출자가 연주를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박수를 쳤다.

“모두들 멋졌어.”

“□□□ □ □ □□□□.”

“□□□.”

“이봐, 이름 뭐더라. 너 진짜 잘하던데.”

“□□□□□.”

한층 풀어진 분위기에서, 대기실에 모인 다섯 명은 서로 박수와 인사를 나누었다.

말이 통하든 안 통하든 상관없었다. 어깨에 닿는 손과 웃음에서 모든 것이 전해진다.

결과가 어떻든 관계없이, 이 하나의 거대한 경합을 사고 없이 정정당당하게 마무리했음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이었다.

나 역시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렇게 상트페테르부르크 청소년 음악 콩쿠르 피아노 부문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대기실을 지키고 있는 직원이 성큼 다가와 말했다.

“참가자분들, 본 콩쿠르의 결과가 나오고 시상식이 준비되기까진 1시간 남짓 걸릴 예정입니다. 그사이 자유롭게 움직이시되, 일찍 준비될 수도 있으니 건물 밖으론 나가지 말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

“시상식 복장은 자유이나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되도록 지금 입고 계신 드레스 그대로 입고 계셔 주시면…….”

이러저러한 간단한 안내가 이어졌고 내용은 별것 없었다.

곧 대기실에 있는 다섯 명은 자유로워졌다.

이대로 여기에 있어도 되겠지만, 날 기다리는 분들이 많으니 찾아가 봐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모두들 사이에 끼어서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나왔습니다!”

난데없는 외침과 함께 불빛이 번뜩였다.

카메라와 사람들이 사방에 즐비했다. 기자로 보이는 사람이 수십 명도 넘었고 열성적으로 응원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인터미션 사이 나갔을 땐 전혀 없었던 인파였다.

순간 식겁했지만, 일정 선 이상 넘어오지 못하게 줄이 쳐져 있어서 아무도 이쪽으로 다가오진 못했다.

“…….”

무언가 인사라도 해야 하나 싶었지만, 다른 참가자들을 보니 앞만 보고 걷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움찔거리는 것이 약간 긴장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일부러라도 신경 쓰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다.

굳이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는 모양이었다.

다른 참가자들처럼 무시하고 지나가려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가 한 기자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쳤는데도 너무 무시하는 것도 너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고정시켜 놓고 있던 기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타티아나!”

그렇게 걸어 로비로 나오자, 저편에서 기다리고 있던 누군가가 불쑥 손을 내밀었다.

“아나스타샤!”

그녀의 얼굴을 보니 이제야 정말 다 끝났다는 실감이 들며 안심이 되었다.

활짝 웃으며 아나스타샤와 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자, 그녀는 보는 눈도 아랑곳하지 않고 갑자기 덥석 날 끌어안았다.

“아, 아나스타샤!”

“잘했어!”

난 머뭇거렸지만, 곧 팔을 뻗어 그녀를 마주 안아 주었다.

“고마워요. 아나스타샤 덕분이에요.”

“어쩜, 그렇게 잘 해 놓고도 이렇게 겸손해?”

“겸손이 아니에요.”

“아무튼 잘했으니 됐어. 괜찮아!”

아나스타샤는 잔뜩 흥분해서는 한참을 잘했다며 호들갑을 떨더니 놓아주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버지와 루슬란 오빠, 에르네스트의 가족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잘 했다, 타티아나.”

“감사해요.”

“결과에 관계없이 이 아비는 네가 자랑스럽구나. 네가 피아노를 하고 싶다고 했던 것은 바로 이런 무대를 위해서였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자 아버지는 내 목에 걸린 목걸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빅토리아도 널 자랑스러워할 게다.”

“……예.”

아버지가 어떤 생각으로 이 가넷 목걸이를 내게 주셨는진 아직 잘 모르겠지만, 후회하고 계시는 것 같진 않아서 마음이 놓인다.

“정말 훌륭한 연주였어요.”

“감사합니다.”

에르네스트의 어머니가 칭찬을 건넸고, 에르네스트의 아버지인 스테판 니콜라예비치는 농담조로 말했다.

“이거, 이거. 타티아나가 에르네스트보다 나은 것 같은데? 1등상은 따 놓은 당상인 것 같고…… 에르네스트, 분발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그, 감사합니다. 스테판 니콜라예비치. 하지만 결과는 나와 봐야 알 수 있으니깐요…….”

난 나도 모르게 눈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옆에 있던 에르네스트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 피식 웃었다.

“왜 그래? 맞는 말인데.”

“……예?”

“나도 분발해야지.”

에르네스트는 중얼거리더니 슥 다가와선 킥킥 웃었다.

“어쨌든 잘했어, 타티아나. 연주도 훌륭했지만 그것 참 누가 짠 프로그램인지 기가 막히단 말야? 안 그래?”

“…….”

예선부터 본선까지 에르네스트가 상당히 도움을 주긴 했다.

물론 내 지도 선생님은 미하일 선생님이지만 에르네스트는 당장 현장에 가까이 있고, 또 바로 재작년에 있었던 전 회차 우승자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예선전 2라운드에서 조커를 꺼내라던 그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난 본선에 오르지 못하고 떨어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난 사실은 사실 그대로 인정하려 한다.

“맞아요, 에르네스트. 이 프로그램은 다 에르네스트가…….”

“하지만 네 레퍼토리가 그렇게 폭넓지 않았다면 상상도 못 할 프로그램이었잖니.”

“……?”

낯익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미하일 선생님!”

“타티아나.”

옆을 돌아보니 모스크바에 있어야 할 미하일 선생님이 와 계셨다.

분명 도저히 캔슬할 수 없는 스케줄이 있으시다고 들었는데, 이게 대체……?

스케줄은 어떻게 하신 건가요? 상트페테르부르크엔 언제 오신 거예요? 콩쿠르 시작 전에 오셨다면 왜 절 보지 않으셨던 거예요? 연주는 청중석에서 다 보신 건가요?

묻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았지만 미하일 선생님은 그저 조용히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딱 한 가지만을 대답해 주셨다.

“정말 좋은 연주였다.”

“……아.”

본선 무대에 오르기 직전에 미하일 선생님과 통화를 하진 못했지만, 난 선생님이 지켜보고 계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실황이든, 중계든.

그리고 정말 지켜보고 계셨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넌 멋진 연주자다. 타티아나.”

미하일 선생님은 언제나, 심지어 내가 제대로 피아노를 연주하지도 못했던 1년 전에 나를 연주자라고 인정해 주시고, 아버지와 싸워 가면서까지 확신 어린 긍정을 불어넣어 주신 분이었다.

지금 내가 이렇게 빠르게 연주자로서 무대에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미하일 선생님 덕분이었다.

“정말…… 정말로 감사합니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웅얼거렸다.

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인지 모르겠다.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제자를 보러 오신 분에게 고개를 들고 똑똑히 감사를 표하진 못할망정 이게…….

“……!”

하지만 멍청한 나와 다르게 미하일 선생님은 말없이 양팔로 날 감싸 안아 주셨다.

***

“앉아 있으면 부르는 거야?”

“예. 그렇다고 하네요.”

난 모두와 함께 객석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곧 결과 발표와 시상식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별로 긴장도 안 되는 건 나뿐인가?”

“그런 말 마세요, 에르네스트.”

난 무대에 올라가 있을 때보다 더 긴장해 있는 상태였다.

잠시 기다리자, 피아노가 치워지고 시상식용으로 만들어진 무대 위로 여러 사람들이 올라왔다.

사회자와 이번 콩쿠르 심사를 본 심사위원과 그 외 관계자들인 것 같았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신사숙녀 여러분. 오래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나흘간 총 마흔한 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진행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청소년 음악 콩쿠르, 피아노 부문 시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조금 진정되었던 가슴이 뛴다.

아무리 태연하려고 해도 콩쿠르 결과 발표를 앞두곤 어쩔 수 없이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시상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청소년 음악 콩쿠르 총 책임자인 비아체슬라프 블라디미로비치 바즈니젠스키께서 맡아 주시겠습니다.”

그러곤 마이크를 넘긴다. 비아체슬라프 블라디미로비치는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였다.

이 정도 되는 콩쿠르의 총 책임자라면 본래 음악가로서 꽤 명망 있으신 분인 것 같았다.

“올해…… 참가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발전하는 피아니즘으로 나날이 콩쿠르의 수준이 올라가는 것 같아 저 개인적으로 굉장히 기쁘고, 감탄하고 있습니다…….”

저분을 알진 못하지만, 분명 어딘가 음악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을 역임했음이 틀림없다. 난 확신했다.

어쨌든 비아체슬라프 블라디미로비치는 계속해서 연설을 이어 나갔다.

“이 훌륭한 마흔한 명의 연주자들을 놓고 공정하고 격렬한…… 경합을 거쳐 열 명을 뽑았지만 그 안에서 또다시 순위를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안타깝습니다. 심사위원 전부가 굉장히 고뇌하고, 어려워했습니다.”

얼핏 상투적인 멘트로 들렸지만 난 거기에서 상당한 진심을 느꼈다.

심사위원직이라는 것도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닌 것이다.

“전…… 여러분 모두가 앞으로 러시아의, 전 세계의 클래식 음악을 이끌어 나갈 인재들이라 믿습니다. 부디 앞으로도 더욱더 공부하고 연습해서 이 시대의 클래식을 견인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자연스럽게 박수가 이어졌고, 비아체슬라프 블라디미로비치는 한 손을 들어 보이며 화답했다.

그리고 이제 정말 결과를 받아들일 시간이다.

“결과, 발표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5위.”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하게 가라앉은 홀에서 엄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임세연, 한국.”

박수가 쏟아지고, 저 옆에 앉아 있던 임세연이 일어난다. 그러곤 정말 기쁘게 단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사실 5위면 사람에 따라 그리 만족하지 못할 등수일 수도 있는데, 세연은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밝은 표정이 보기 좋았다. 나 역시 열렬하게 그녀를 축하해 주었다.

세연이 무대 위에 오르자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상패를 가지고 와선 무언가 말을 하며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세연은 가볍게 인사하며 그것을 받아 들고는 객석으로 돌아서서, 이번엔 깊게 허리를 숙였다. 축하의 박수가 이어졌다.

함께 따라서 박수를 치던 비아체슬라프 블라디미로비치가 이어 심사위원 총평을 해 주었다.

“축하합니다, 임세연. 정말 개성 있고 행복한 피아니즘으로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잘했습니다.”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이를 불문하고 임세연은 상당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비아체슬라프 블라디미로비치가 짧게 박수를 몇 번 더 치고는 말했다.

“이어서 4위.”

다시 조용해진 가운데, 이름이 호명된다.

“글렙 레오니예비치 야크닌, 러시아.”

조금 눈여겨보고 있던 참가자였다.

글렙은 실력도 뛰어났고 전체적으로 지닌 우아한 맵시가 상당히 인상적인 남자였다.

그는 유려하게 무대 위로 올라가서 상패를 받아 들었다.

“축하합니다, 글렙 레오니예비치. 섬세하고 고풍스러운 터치가 아주 매력적이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이 보기에도 그렇게 보인 모양이었다.

축하가 사그라들고 다음 순위가 불린다.

“다음, 3위. 클라우스 쉬퍼, 독일.”

박수와 함께 한 남자아이가 일어섰다. 정말 아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참가자였다.

“축하합니다. 클라우스 쉬퍼는 본선 진출자들 중 최연소 진출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수준 높은 연주를 보여 주었습니다. 훌륭합니다.”

나 역시 기억하고 있었다. 클라우스 쉬퍼는 본선에서 모차르트 소나타를 연주했었다.

그냥 듣기엔 훨씬 복잡해 보이는 낭만시대의 소나타들을 연주한 참가자들도 많았지만, 콩쿠르는 테크닉만을 겨루는 자리가 아니었다.

클라우스 쉬퍼는 고전 소나타가 보이는 그대로 연주하는 것과, 제대로 음악성을 갖추면서 연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선험적으로 깨닫고 있는 듯한 리듬감각을 갖추고, 정말 대단한 모차르트 소나타를 연주해 냈다.

난 클라우스 쉬퍼 역시 훗날 굉장한 연주자가 되리라 확신했다.

그런데 몇 살인 거야?

“2위.”

난 순간적으로 한 이름을 떠올렸다.

“후안 시우란, 중국.”

머릿속을 스친 그 이름이 홀에 울렸다.

알 수 없는 중국어로 울리는 환호성과 함께, 후안 시우란이 무대 위로 오른다. 굉장히 만족한 듯한 미소였다.

“자신감 넘치고 개성이 뚜렷한 터치가 장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연주자입니다. 후안 시우란. 축하합니다.”

난 그의 수상을 축하하며 박수를 치다가 문득 상황을 깨달았다.

잠깐만……?

“타티아나! 타티아나!”

“……어?”

옆에 있던 아나스타샤가 내 팔을 잡고 흔들흔들했다. 그녀를 바라보니 잔뜩 열의에 찬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나도 모르게 에르네스트 쪽을 돌아보았다. 그는 픽 웃을 뿐이었다.

비아체슬라프 블라디미로비치가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1위.”

그리고.

“타티아나 유리예브나 베르체노바. 러시아.”

내 이름이 들렸다.

갑자기 양옆에서, 뒤에서 폭발하는 듯한 환호와 박수가 울려 퍼졌다.

난 귀가 먹먹해짐을 느끼며, 그 소리에 등을 떠밀리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게 생시인가 싶어 아나스타샤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나보다 더 기뻐하는 것처럼 꽃처럼 웃으며 말했다.

“해낼 줄 알았어!”

“…….”

멍하니 무대 위로 향했다. 그 위에서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이미 상을 받은 참가자들 모두 날 바라보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제야 현실감각이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

해냈다는 충족감과 기쁨이 물밀듯이 넘실거렸다.

등 뒤에선 계속해서 환성이 이어졌고, 난 무대에 올라서 사회자가 인도하는 대로 한 심사위원 앞에 섰다.

거대한 체구의 심사위원은 들고 있던 상패를 내게 내어 주며 말했다.

“정말 대단한 연주였습니다, 타티아나 유리예브나.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예의 바르게 대답하자 심사위원이 사람 좋게 웃었다.

“장담하건대, 제가 준 1점이 당신이 평생 받을 마지막 1점이 될 겁니다. 영광이로군요.”

“예……?”

기쁘게 웃는 것과 상반되는 뜬금없는 소리였지만, 난 단번에 이 심사위원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마트베이 아파나시예비치 심사위원?”

“큭큭, 이름까지 알고 계셨군.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앞을 보세요.”

“…….”

앞을 보니 멀리 카메라 렌즈와 플래시가 번쩍번쩍한다.

없던 공포증도 생길 지경이다. 하지만 지금은 웃어야 할 때였다.

난 청중 모두를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고개를 들고, 다시 각도를 조금 틀어서 허리를 숙인다. 날 축하하는 박수와 환호는 끝없이 계속 이어졌다.

옆에서 비아체슬라프 블라디미로비치의 목소리가 들렸다.

“타티아나 유리예브나는 다채로운 음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마치 피아노로 그림을 그리듯 능숙한 연주를 보여 주었습니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1위는 타티아나 유리예브나입니다. 대단했습니다. 저 역시 이 빛나는 신성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바입니다.”

어렴풋하게 예상은 하고 있었다. 미하일 선생님도, 구세프 선생님도, 에르네스트도 내가 충분히 우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기도 했고.

하지만 그건 기대와 예상일 뿐이었다. 그것과 현실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쭉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현실로 이루어지자, 정말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기쁘기만 했다.

날 응원하고 지켜봐 준 모든 사람들, 그 기대에 조금이라도 보답을 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놓였다.

웃으면서 모두에게 화답하고 있는데, 아직 시상식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로써 상트페테르부르크 청소년 음악 콩쿠르 피아노 부문 시상은 끝났고, 특별상 시상이 있겠습니다.”

보통 큰 콩쿠르엔 스폰서가 많았고, 장학금처럼 이러저러한 이유를 단 특별상들도 많았다.

보통 어린 피아니스트를 지원하는 상이나, 오케스트라의 협연 등을 추진해 주는 상이었다.

“가장 먼저, 상트페테르부르크 클래식 음악 평론가협회상입니다.”

그런 상들은 심사위원과 관계없이 주어지곤 한다. 음악을 듣는 사람들마다 그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순위에 관계없이 주어지곤 하는데…….

“수상자는, 타티아나 유리예브나 베르체노바.”

“……?”

기존 수상자와 겹치기도 한다.

잠깐만.

객석에선 기립박수가 쏟아지고 있고, 옆에 있던 남자가 흐뭇하게 웃으며 상패를 들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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