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작은 규모의 청소년 콩쿠르에도 특별상이 주렁주렁 달리기 마련인데, 이 정도 규모가 되는 콩쿠르에 특별상이 없으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단지 내가 관심 있었던 부분은 콩쿠르 순위뿐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클래식 음악 평론가협회상은 클래식 전문 평론가 분들이 협의하에 선출하여 특출 난 기량을 보인 참가자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상패와 부상으로 2천 유로를 전달하겠습니다.”
하지만 특별상도 나에게 주어졌다.
축하의 박수를 배경으로, 평론가 협회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와서 상패를 내밀었다.
“축하합니다. 타티아나 유리예브나.”
“감사합니다…….”
“인터뷰 시간은 꼭 길게 내 주셨으면 좋겠군요. 물어볼 것이 많아서.”
“아…….”
숨이 턱 막힌다. 인터뷰? 평론가라면 곡에 대한 평론만 하시는 거 아닌가요?
마음도 무겁고 팔도 무거웠다. 유리로 만들어진 듯한 두 개의 상패는 묵직하기 짝이 없었다. 난 떨어뜨리지 않도록 꽉 잡았다.
“…….”
다행히 옆을 돌아보니 누구도 내가 특별상까지 받은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이로써 내가 이곳에서 얻어 간 것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청소년 음악 콩쿠르 피아노 부문 대상과 부상인 상금 1만 유로, 그리고 특별상인 상트페테르부르크 클래식 음악 평론가협회상과 부상으로 2천 유로였다.
왜 러시아에서 열리는 대회인데 상금을 루블이 아니라 유로로 주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부상으로 받은 돈은 거의 다 선물로 나가지 않을까 싶다.
당장 내가 무언가 사고 싶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날 응원해 준 사람들에게 물질적으로도 보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뭘 어떻게 골라야 할진 아나스타샤와 생각해 봐야겠다.
그나저나 1만 2천 유로로도 모자라는 건 아니겠지?
물론 너무 비싼 물건은 받는 입장에서도 부담이 될 테니 적당히 할 것이긴 한데, 그렇다고 무슨 연필과 공책 세트 같은 걸 선물할 수도 없지 않은가? 적어도 백화점에선 골라야 최소한의 성의로 보일 것이다.
“다음 특별상. 세계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 유럽협회 우수 신인상 수상하겠습니다.”
이러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비아체슬라프 블라디미로비치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타티아나 유리예브나 베르체노바.”
“예?”
시상식에서 딴생각하지 말라고 부르는 줄 알고 화들짝 놀라 대답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조금 잦아들던 박수 소리가 다시 커졌고, 또 일렬로 서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나와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난 부담을 넘어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왜 또 나야?
보통 특별상이라는 다른 참가자에게 돌아갈 만도 하지 않아요? 1만 2천 유로로도 모자라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해서 일부러 이러는 거예요?
하지만 내 마음속 비명이 들릴 리 만무했고, 상패를 든 또 다른 남자, 이번엔 세계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 유럽협회에서 나왔을 남자가 내 앞에 섰다.
난 두려움에 찬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양팔이 무거워 죽을 것 같다.
제발 살려 달라는 내 눈빛은 간신히 전달되었는지, 남자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양손이 꽉 찼군요. 상패는 제가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전달하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얼굴을 보니 부담스러워하시는 것 같은데, 그렇게 부담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타티아나 유리예브나. 저희 측에서 신인상 투표는 현장에서 세 명, 중계를 보는 세계 각지에서 열세 명이 투표권을 행사했는데, 총 16표 중 16표가 타티아나 유리예브나에게 향했습니다. 그야말로 만장일치였습니다. 사상 최초로 있는 일이었죠.”
“…….”
“그러니 자신 있게 어깨를 폈으면 좋겠군요. 전 세계가 천재 피아니스트의 비상에 주목하고 있으니까.”
뭐라도 대답을 해야 했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감사합니다.”
되는대로 인사를 하고 나자 비아체슬라프 블라디미로비치가 이 특별상에 대해 설명했다.
“세계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 유럽협회 우수 신인상은 앞으로도 클래식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 신인에게 수여됩니다. 축하합니다. 수상자인 타티아나 유리예브나에겐 상패와 부상으로 2천 유로. 그리고 협회에 소속된 유수의 음악가들에게 마스터클래스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난 안 그래도 여러모로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는데 이건 정말…….
지금 이 청소년 콩쿠르를 마지막으로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진 콩쿠르에 나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점점 더 확고해진다.
커리어만을 생각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청소년 콩쿠르에 나가야겠지만, 난 수많은 상패들보단 내실을 다지고 당당한 연주자가 되고 싶었다.
내가 할 일은 언제나 명료했다.
“…….”
무슨 일이 있든 간에 연주자로서 내가 할 일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니 어지러웠던 머리가 조금 차분해졌다.
당연한 일이니 복잡할 것도 없다. 생각이 점점 정리되면서 마음이 약간 편해졌다.
그렇게 난 우승과 함께 특별상을 두 개나 거머쥐었다. 총 상금은 1만 4천 유로. 열다섯 살이 한 번에 획득한 상금치고는 굉장히 높은 액수였다.
“그다음은 챔버 오케스트라상입니다. 수상자는.”
제발.
“타티아나 유리예브나 베르체노바. 축하합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챔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기회와 함께 부상으로 1천유로를…….”
총 상금은 1만 5천 유로가 되었다.
***
그 후 시상식은 꽤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각자 언어도 다르고, 많아 봐야 열다섯 살밖에 안 된 참가자들에게 수상 소감 등이 준비되어 있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우리에게 마이크가 돌아오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정말 다행이었다. 시상식이 10분만 더 길어졌다면 난 팔이 부러졌을지도 모른다.
무대에서 내려와 아버지의 수행원 분들에게 상패를 맡기고 나서야 비로소 난 홀가분해질 수 있었다.
“하하하하, 타티아나. 네가 받은 상이 총 몇 개지? 네 개? 맞느냐?”
“예. 맞아요.”
“대단하구나!”
로비로 향하는 내내 아버지는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특별상까지 너무 독차지해 버려서 싱숭생숭했던 마음은 아버지의 웃는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혼자 다 쓸어 간다고 욕을 먹어도 내가 먹겠지. 그 정도는 감수할 만했다.
“타티아나.”
“예?”
뒤에서 따라오던 아나스타샤가 날 불렀다.
내가 슬쩍 뒤돌아보자 그녀가 약간 걱정스러운 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나저나 힘들지 않아? 괜찮겠어?”
“……괜찮아요.”
“아마 로비로 나가면 바로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소감 정도는 준비해 둬. 어차피 너무 귀찮게 하진 않겠지만 그게 너도 장차…… 아니지, 내가 무슨 소리람…….”
아나스타샤는 날 너무 애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간 내가 그녀에게 그리 믿음을 주진 않았지만…….
어쨌든 그녀가 걱정할 만도 했다.
내 본선 프로그램을 이루고 있던 세 곡은 모두 난곡이었고 난 결코 그 곡들을 설렁설렁 연주하지 않았다.
정말 가능한 모든 것을 피아노에 퍼부어 버린 나는 지금 굉장히 지쳐 있는 상태였다.
팔다리도 아프고, 자꾸만 가슴이 답답한 것이 마음 같아선 저녁은 룸서비스로 시키고 당장 호텔에 가서 드러눕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오늘 내 일정은 앞으로도 바쁠 예정이다.
당장 사진도 찍어야 했고, 소감은 물론 인터뷰도 해야 할지도 모르고, 모두와의 저녁 식사를 빼놓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많이 피곤하느냐?”
조금 멍하니 걷고 있는데 아버지가 불쑥 물었다.
난 발걸음을 멈춘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사업가인 아버지는 기자들 앞에 설 일을 많이 가졌을 것이다.
따라서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또한 알고 계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피곤하다고 하면 두말 않고 날 그대로 호텔로 데리고 가실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난 고개를 저었다.
“아뇨, 괜찮아요. 아버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콩쿠르의 우승자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마치고 싶었다.
로비로 나왔다.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요청이 쇄도했다.
“타티아나 유리예브나! 이쪽 좀 봐 주세요!”
“인터네셔널 피아노에서 나왔습니다. 사진 부탁드립니다!”
“엔테베 방송국의 알랭입니다! 질문 가능합니까?”
“베르체노프라잖아! 특종으로 돌려야지, 무슨 소리야!”
“유리 알렉세예비치……?”
콩쿠르와 관계없는 목소리들도 들리는 것 같은데, 신경 쓰지 않았다.
수많은 시선들이 내게 향한다.
“…….”
부끄럽다. 난 카메라가 싫다.
내 음악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 자체가 창피했고,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뒤에 아버지가 계신데 꼴사납게 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피로한 허리를 펴고, 턱을 당겼다.
너무 과하지 않게, 좋은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지만, 마가리타 선생님에게 헛배우진 않았는지 이렇게 긴장한 상태에서도 어깨가 움츠러드는 일은 없었다.
그대로 좌중을 죽 훑었다.
한순간에 카메라 렌즈가 몇 번이고 찰칵이는지 모르겠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바라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기자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을 돌아보았다. 목에 기자증을 걸고 있으니 확실해 보인다.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짧게 부탁드려요.”
내가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더니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조금 사그라들었다.
그건 조금 고마웠다. 여러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것은 정말 머리 아픈 일이었으니까.
“으, 흠.”
내가 처음으로 지목한 기자는 목을 가다듬더니, 질문했다.
“질문하겠습니다. 베르체노프가의 영애라는 것이 사실입니까?”
“…….”
저 사람은 내 뒤에 있는 아버지의 얼굴이 안 보이는 모양이다.
“지금 장난합니까?”
“당신 어디서 나왔어? 그따위 걸 질문이라고 하고 있어?”
“저리 비키세요!”
내가 미처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다른 기자들의 거친 비난이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처음 내게 질문한 기자는 뒤통수에 욕설을 무더기로 얻어맞고는 본전도 못 찾고 울상이 되었다.
물론 나보단 아버지가 훨씬 더 유명한 사람이니 그쪽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주인공인 것 아니야?
조금 한심해하는 내 눈빛이 전해졌는지, 다른 기자들은 자기들도 조금 혼란스러워했던 주제를 하나로 모으기로 한 듯 보였다.
특히 클래식 전문 잡지 등에서 기사를 쓰는 기자들의 행동은 빨랐다.
“클래시카의 루이스입니다. 질문드리겠습니다. 중국의 후안 시우란이 2등으로 불렸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1등으로 확정되었다고 생각하셨나요?”
이런 질의응답을 준비해 온 것도 아니었고, 난 그냥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기로 했다.
“생각도 못 하고 있었어요. 후안 시우란은 꽤 인상적인 분이었기 때문에……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있었죠.”
“1등을 하실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하셨던 건가요?”
“등수는 제가 정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말해 놓고 나 스스로에게 조금 실망했다. 더 깔끔하게 잘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난 그렇게 달변이 아니었다.
다음 기자가 이어 질문했다.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의 그류센카입니다. 본 콩쿠르에서 가장 까다롭다고 생각하셨던 곡이 있다면 어떤 곡인가요?”
“음……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2번이요. 까다롭고, 어려운 곡이라서요.”
“하하, 혹시 오늘 연주에 만족하지 못하십니까?
그 질문에 난 약간 긴장하면서 답했다.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2번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소나타 중 하나이고…… 무대 위에서 제가 보일 수 있는 부분은 최대로 보였다고 생각해서 만족합니다. 하지만 아직 연구하고 깊이 있게 추구해야 할 부분은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군요.”
잘 대답한 거야?
갑자기 불안감이 짓쳐 든다.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라면 러시아에서 가장 큰 신문 회사인데 여기에 이상한 기사라도 실렸다간 정말 밤에 잠도 못 자고 이불을 펑펑 차게 될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말을 한 마디 할 때마다 부담감이 어마어마했다.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 있을 수도 없고.
간신히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등 뒤에 아버지가 말없이 서 계시기 때문이었다.
“인터네셔널 피아노의 유디트입니다.”
곧이어 조금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이쪽으로 마이크를 내밀며 말했다.
“예선전 1라운드에서 연주하신 쇼팽의 영웅 폴로네이즈. 거기에 1점을 주신 심사위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내게 직접 우승 상패를 건네주기까지 했던 마트베이 아파나시예비치 옐라긴 심사위원.
대단한 분이라 생각한다.
쇼팽의 폴로네이즈를 연주했을 때, 연주 이면의 날 꿰뚫어 보고는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셨기에 1점을 주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불만이라고는 있을 수가 없다.
“심사위원께서 주신 점수는…… 겸허히 받아들일 뿐이에요.”
“타티아나 유리예브나의 예선전 1라운드 점수는 1점을 제외하고 평균을 내면 4.17점입니다. 4점 이상이죠.”
“제게 1점을 주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해요.”
“부당하다고 생각하진 않으십니까?”
예선 1라운드 이야기를 왜 아직도 꺼내는지 잘 모르겠다.
조금 집요하게 묻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 무언가 기삿거리가 되리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약간 껄끄러웠다.
솔직히 말해서, 난 마트베이 아파나시예비치만큼 공정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마트베이 심사위원은 나와 그리고리에게 똑같이 1점을 주었던 것이다.
그건 콩쿠르에 와서 누군가를 개인적으로 공격하고 싶다면 자신의 무덤도 파 놓으라는 경고성 메시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마트베이 심사위원을 직접 변호할 순 없었다.
그것은 다른 심사위원 여섯 명을 깎아내리는 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피해자는 나였다. 곤란했다.
모른 체 두자니 마트베이 심사위원이 엄청나게 공격당할 것 같고, 변호하자니 다른 여섯 명의 심사위원이 걸린다. 어떻게 하지.
“타티아나 우승자가 정말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제가 모든 심사를 취소하고 사과하겠습니다. 더불어 앞으로 그 어떤 심사직도 맡지 않도록 하죠.”
“마트베이 아파나시예비치!”
그때, 마트베이 심사위원이 내 뒤편에서 나타나며 말했다.
난 깜짝 놀라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보다 한참이나 큰 마트베이 심사위원은 내 시선을 느끼고는, 씩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