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소름 끼치는 쇳소리와 함께 음악이 중단되고, 타티아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카로프는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컨트롤 룸을 나와 메인 부스로 향했다.
타티아나가 창백한 얼굴로 아나톨리를 살피고 있었고 아나톨리는 어안이 벙벙한 듯 바이올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괜찮, 괜찮아요? 잠시만…… 여기 봐 주세요.”
“…….”
“어디 다치진 않았어요? 예?”
타티아나는 정말 당황해하며 아나톨리의 얼굴과 팔을 살폈다. 불안해하는 목소리에 물기가 섞인다.
마카로프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아나톨리의 바이올린 현이 끊어진 것이다.
튜닝 중이나 연주 중에 끊어진 바이올린 현이 튀어오르면 얼굴이나 손등을 베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꽤 자주 있는 일이었고, 눈에 맞지 않는 이상 보통은 괜찮았다.
“전 괜찮아요.”
다행히 어딘가 베이진 않은 듯했다.
마카로프와 베로니카도 가까이 다가가 끊어진 바이올린 현과 아나톨리에게 아무 문제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별일 아니었다. 아나톨리는 다치지 않았고, 조금 놀랐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연주자로 살게 된다면 꽤 자주 있는 일이었다.
매번 현이 끊어지는 것에 불안해해야 한다면 얼굴 가까이에 대고 연주해야 하는 바이올린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강심장들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아…….”
하지만 아나톨리가 괜찮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도 타티아나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주저앉아 있었다.
당사자인 아나톨리보다 더 놀랐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베로니카가 다가가서 아나톨리보다 타티아나를 진정시켰다.
“타티아나. 괜찮아요. 아무도 안 다쳤어요.”
“……예.”
“왜 그렇게 놀랐어요?”
“……예.”
그리 큰일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심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나톨리는 현이 끊어져서 놀란 것보다 타티아나의 모습에 놀란 것 같았다.
마카로프도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간 음악을 대하는 타티아나의 태도로 보자면 현이 끊어지든 말든 코웃음 치며 그대로 합주를 강행하자고 해도 안 이상했다.
타티아나의 연주자로서의 강단과 프로페셔널함은 그 누구 못지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너무 놀라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굉장히 힘겨워 보인다.
아나톨리 역시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는지 타티아나에게 가까이 다가가 쾌활하게 입을 열었다.
“정말 괜찮아요. 와, 그리고 저 연주하다가 E현 끊어 먹은 건 처음이에요.”
“지금 웃으면서 말씀하실 때가 아니에요!”
하지만 타티아나는 바락 소리를 질렀다. 아나톨리는 깜짝 놀라 뒤로 반걸음 물러섰다.
타티아나는 고개만 들어 아나톨리를 올려다보며 음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다가,
“다치기라도 했으면…….”
기어이 울먹이고 말았다.
“미안해요…… 미안…….”
아나톨리는 할 말을 잃고 서 있다가, 무릎을 꿇고 타티아나와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이 협연을 하기엔 격차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도, 냉정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후배를 채찍질해서 더더욱 높은 연주를 만들어 낼 정도로 가차 없었던 타티아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
잠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타티아나가 진정했다.
손등으로 눈물을 찍어 내더니,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엔 창피함과 죄책감이 혼재되어 있었다.
곧바로 고개를 돌려 버린 타티아나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보지 마세요…… 죄송해요.”
아나톨리뿐이 아니라 스튜디오의 모두에게 하는 말이었다. 마카로프는 헛웃음을 흘렸다.
아나톨리가 웃으며 말을 걸었다.
“누나. 괜찮아요. 바이올린을 하다 보면 자주 겪어야 하는 일인걸요.”
“하지만 제가 무리시켜서…….”
“무리라고 생각하시지 않았잖아요?”
타티아나가 중얼거리는 말을 아나톨리는 대번에 잘라 냈다.
“제가 할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
“전 무리한 적 없어요.”
바이올린을 한계까지 쥐어짜 낸 대가로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지만, 아나톨리는 손을 살짝 옆으로 숨기며 태연하게 말했다.
“계속해요.”
“아나톨리, 정말 미안하지만…… 다음에 해요.”
타티아나는 고개를 저었다. 도저히 더 할 자신이 없는 듯했다.
“도망치지 마세요.”
“…….”
그리고 이번엔, 아나톨리에게 했었던 말이 다시 그대로 되돌아왔다.
타티아나는 눈을 크게 뜨고 아나톨리를 돌아보았다. 아나톨리는 조금 머쓱한 듯했지만 그래도 눈을 피하진 않았다.
마카로프는 이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타티아나가 느끼는 만큼은 아니지만 허점을 찔린 기분이었다.
그렇게 아나톨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와중, 아나톨리가 불쑥 마카로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근처에 악기사 있나요?”
“악기사?”
“예. 전 바이올린 현을 갈 줄 몰라서요. 악기사에 가서 현을 갈아 달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아니면 혹시…… 해 주실 수 있나요?”
“흠. 미안하지만 해 본 적이 없군요.”
“그러신가요.”
“악기사라…… 베로니카. 근처에 악기사 있나?”
아나톨리는 정말 연주를 계속 진행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마카로프는 어지간해선 그 바람을 들어주고 싶었다.
연주를 하다가 현이 끊어진다고 해서 항상 연주를 중단시켜 버리고 다음 날을 기약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이 끊어졌다면 교체하면 되고, 다치지 않았다면 연주는 이어 나가면 될 일이다.
문제는 타티아나의 상태였다.
“…….”
도망치지 말라는 말을 그대로 되돌려 받은 타티아나는 멍한 얼굴로 아나톨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나톨리가 악기사를 찾아 나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말없이 그를 지켜보다가 고개를 잘래잘래 젓고는 입을 열었다.
“아나톨리.”
“예?”
막 부스에서 나가려던 아나톨리가 타티아나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한층 가라앉아 있었다.
“……예비 E현은 가지고 계시나요?”
“있어요.”
“제가 갈아 드릴게요.”
마카로프는 피아노 전공인 타티아나가 어떻게 바이올린 현을 갈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갔지만, 아나톨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이올린 케이스에서 예비 현을 꺼내 바이올린과 함께 건네주었다.
그걸 받고서도 타티아나는 스스로 잘하는 일인지 확신이 없는 표정이다.
아나톨리를 다시 바라보며 조금 주저하더니, 결국 현을 갈기 시작했다.
그 손길이 꽤 능숙해 보인다. 바이올린의 부품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내고는 끊어진 현을 순식간에 제거했다.
마카로프가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대체 타티아나는 어떻게 바이올린 현을 교체할 줄 아는 겁니까?”
“별로 어렵지 않아요…….”
“어렵지 않은 문제가 아니라, 현 교체 같은 건 직접 해 볼 일이 없었던 거 아닙니까?”
그 질문엔 아나톨리가 대신 대답했다.
“타티아나 누나는 바이올린도 배운 적이 있거든요.”
“……그렇습니까?”
여전히 조금 이해가 안 가는 구석이 있었지만 재능 있는 클래식 연주자가 몇 가지 악기를 배우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당연하다는 듯 바이올린 현을 교체하는 모습은 꽤 생경하게 보였다.
타티아나는 바이올린 케이스에서 조절기 같은 장비도 꺼내선 능숙하게 사용했다.
“…….”
조용히 바이올린을 만지면서 타티아나는 점차 안정되어 갔다. 그것을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아나톨리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타티아나 누나. 왜 그렇게 놀랐어요? 누나는 바이올린에 대해 잘 알잖아요.”
현을 교체하는 방법도 안다면, 현이 끊어져도 크게 다치는 일은 매우 드물다는 것 정도는 알 것이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정도 이상으로 당황해했다.
말없이 현을 감던 타티아나가 조용히 말했다.
“저도 알아요…… E현은 자주 끊어지고, 괜찮다는 건. 하지만 그 쇳소리와 함께…….”
낮게 읊조리던 타티아나가 목을 움츠리며 말했다.
“제 눈앞에선 피가 튀었어요.”
“……예?”
아나톨리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되물었으며 양손을 들어 보였다. 그 어디에도 핏자국은 없었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굳이 아나톨리를 이해시킬 생각은 없는 듯 했다. 그녀는 바이올린을 세워 들고는 이어 말했다.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순간적으로 조금 놀란 것이겠죠. 제가 이럴…… 몰랐어요. 너무 신경 쓰진 말아 주세요.”
“…….”
약간 횡설수설하는 것이 이상했다.
아나톨리는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타티아나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타티아나는 재차 활을 들고 조율을 하려다가, 아나톨리에게 바이올린을 건네주었다.
그녀가 말했다
“지금 이 바이올린, 1/2사이즈라 하셨죠.”
“예.”
아나톨리가 바이올린을 받아 들며 답하자 그제야 타티아나는 살며시 웃음기를 보였다.
“내년엔 3/4사이즈를, 내후년엔 풀 사이즈 바이올린을 쓰게 되실 거예요.”
어릴수록 성장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다. 그리고 팔 길이에 맞춰 쓰게 되는 바이올린은 열한 살 정도면 풀 사이즈를 쓸 수 있게 된다.
타티아나는 아직은 작은 아나톨리를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때가 되면…….”
“……?”
“그때의 즐거움으로 남겨 두도록 하죠.”
갈수록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아나톨리가 의아해하는 사이 타티아나가 무릎을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계속하실 거라 하셨나요?”
“예.”
“좋아요, 아나톨리.”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간 어떠한 불안감 때문에 연주고 뭐고 다 그만두고 싶어 한 듯했지만, 이성을 되찾은 타티아나는 다시 날카로운 눈을 빛냈다.
자신의 피아노에 아나톨리가 따라오려면 얼마나 무리를 해야 하는지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설프게 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타티아나는 그렇게 할 줄 몰랐다.
그녀가 말했다.
“다시 해 보죠.”
다시 합주가 시작되기 직전 마카로프가 끼어들었다.
“잠시 기다려 주시죠.”
“마카로프 프로듀서?”
막 건반을 누르려던 타티아나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마카로프가 말했다.
“이쯤에서 레코딩 엔지니어인 제가 도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도움이요……?”
마카로프가 음향 전문가로서 클래식을 녹음할 때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녹음 환경의 구성이었다.
얼마나 원음 그대로 디지털화시키느냐가 그가 가진 관심과 기술의 전부였다.
특히 타티아나처럼 표현력이 뛰어난 연주자의 음악을 녹음할 땐 원음 그대로를 녹음하는 것 외에 다른 곳에 신경을 쓸 겨를조차 없었다.
하지만 마이크가 네 개나 들어가는 세션 녹음에서 믹싱과 마스터링 과정에 완전히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마카로프가 말했다.
“예. 사실 제 입장에선 아주 쉬운 방법을 제시해 드릴 수 있었습니다.
필터를 쓸 것도 없이 사운드 레벨을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간단히 해결될 문제이기 때문이죠.”
“간단하다고요?”
“아주 간단합니다.”
타티아나의 존재감을 희석시키기 위해서 쓸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간단하고도 음원에 크게 손을 대지 않는 방법은 피아노 소리를 줄여 버리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믹싱으로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설명할 수도 있었지만, 마카로프는 그렇게 하지 않고 이제야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왜냐하면 타티아나의 표정이 그리 좋지만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타티아나와 아나톨리가 어떻게 해결할지 조금 궁금했기 때문에 지켜봤습니다. 혹시 기분 나쁘게 느껴지신다면 죄송합니다.”
타티아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진 않아요.”
“저도요.”
“다행이군요.”
마카로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맺었다.
“믿고 지켜본 결과, 전 정말 감동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레코딩 엔지니어로서의 제 역할을 수행할 때가 온 것 같군요.”
그렇게 말을 마무리하고, 마카로프는 조용히 타티아나의 반응을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원리주의자에 가까운 타티아나는 조금 거부감을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믹싱이라는 일이 레코딩 엔지니어의 본 업무라는 것을 아는 타티아나는 마카로프에게 실례되지 않도록 조심스레 물었다.
“그건 음원에 손을 대는 일인가요?”
“아닙니다. 필터를 써서 음 자체를 조작한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사운드 레벨은 음량일 뿐이니까요. 그리고 애초에 음량의 설정값이라는 것이 다 똑같지만은 않습니다.”
“그게…….”
“그게 싫으시다면 마이크를 하나만 두고 바이올린을 가까이, 피아노를 매우 멀리 두면 됩니다. 실제 오케스트라를 구성할 때도 이러한 음향적 효과를 모두 고려해서 배치를 하지 않습니까? 성악 반주를 할 땐 그랜드피아노 상판을 닫아 소리를 줄이기도 하고요. 똑같습니다.”
“…….”
전체적인 음악의 사운드를 듣기 좋게 만들기 위해 오케스트라의 숫자와 위치를 세심하게 변경하고 좋은 홀을 고르는 것처럼, 녹음을 할 때 좋은 스튜디오를 고르고 마이크의 위치와 음량을 조정하고, 여러 마이크에서 녹음된 소리들을 믹싱하는 것 역시 당연한 것이었다.
마카로프는 이런 음악가를 설득하는 데엔 수많은 말이 필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그냥, 다시 협연을 해 보시고, 완성품을 들어 보신다면 알 겁니다.”
그렇게 세 번째 협연이 다시 처음부터 시작되었다.
마카로프는 혹시라도 타티아나가 자신감을 잃어버리진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녀는 더더욱 중후한 음색으로 반주를 만들어 나갔다.
매 연주마다 발전하는 것은 비단 아나톨리뿐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나톨리는 손이 떨릴 정도로 무리하면서도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
메인 컨트롤 룸에서 연주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던 마카로프는 서서히 피아노 쪽에 설치된 보조 마이크 음량을 줄여 나갔다.
본래 서라운드를 위해 설치된 마이크라 그리 큰 음량으로 설정되어 있진 않았다.
음량을 줄이자 피아노의 울림이 점차 줄어들면서 바이올린에 맞춰졌다. 음악 전체를 지배하고 있던 거대한 존재감이 점점 희미해져 갔다.
“…….”
그렇게 중심을 잡은 마카로프는 더욱 세심하게 음악의 균형을 세팅해 나갔다.
세 번째 협연이 끝나고, 타티아나와 아나톨리는 컨트롤 룸으로 들어왔다.
연주를 마치고 두 명이 컨트롤 룸으로 들어오는 그 짧은 사이에, 작업을 끝마친 마카로프가 타티아나를 보며 말했다.
“들어 보시죠.”
마카로프가 음원을 재생시키자 이전까지의 것과 확연하게 다른 음악이 흘러나왔다.
음량만 조금 건드린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하게 큰 차이가 생겨났다.
피아노의 고풍스러운 음색이 죽어 버리는 일은 없었다. 단지 한 걸음 뒤로 물러난 것이다.
대신 바이올린이 앞으로 자신 있게 치고 나왔다.
훨씬 자연스럽고 완성도 높은 라 폴리아 소나타가 연주되고 있었다.
어색함은 전혀 없었다.
타티아나는 이렇게 차이가 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마카로프를 바라보았다.
“피아노 소리가 많이 가라앉았지만 이 오디션이 피아노 소리를 듣는 심사는 아니지 않습니까?”
“…….”
타티아나는 원리주의자에 가깝긴 하지만 그래도 귀가 있다면 어느 쪽이 더 좋은 음악인지는 뻔했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 거절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마카로프 프로듀서. 하지만 그냥 원본 그대로 만들어 주세요.”
아나톨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마카로프는 훨씬 안정적으로 균형 잡힌 이 음악을 듣고도 고개를 젓는 아나톨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만족했다는 듯, 활기찬 목소리로 아나톨리가 타티아나를 불렀다.
“타티아나 누나.”
“……예.”
“우리 협연은 오늘을 마지막으로 해요. 정말 감사했어요. 일방적인 제 생떼를 받아 주셔서.”
“…….”
난데없는 폭탄발언에도 타티아나는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묻지도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나톨리가 어떤 마음인지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나톨리는 억울해하거나 슬퍼하는 기색 없이 말했다.
되레 그 태도엔 자신감이 넘쳤다.
“제가 풀 사이즈 바이올린을 다룰 수 있게 된다면…… 그때 다시 부탁드릴게요.”
싱긋 웃으며 아나톨리가 말했다.
“그래도 되나요?”
그 평온한 목소리에 타티아나가 답할 수 있는 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타티아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물론이에요.”
마카로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길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 두 사람이 2년 후에 함께 만들어 낼 음악엔 손댈 곳이 없을 것이라고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