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2악장의 A부 마장조의 첫 테마를 서서히 연주하는 타티아나를 보며 막심은 경탄과 동시에 약간의 실망감을 느꼈다.
미묘한 기분이었다.
막심은 타티아나와 다시 놀아 보고 싶을 뿐이었다.
그는 심판도 없는 한가한 연습실에서 10대 음악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창한 음악 같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막심은 싸움과 술, 음악을 좋아했고 그 중에서도 술 먹고 음악으로 싸우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그것이야말로 슬라브 스타일이라는 것이 그의 평소 지론이었다.
그리고 막심은 재벌 집에서 자란 이 곱상한 후배에게서도 그러한 사나운 기질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막심은 그런 그녀에게 이렇게 날뛸 수 있는 링을 만들어 준다면 절대 피하지 않으리라 믿었다.
트리오를 한다면 이번에야말로 타티아나가 확실하게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
하지만 오늘의 타티아나는 누구와도 싸우고 싶지 않아 보였다. 때때로 보였던 호전성과 승부욕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의욕이 없을 리는 없다. 타티아나는 분명 피아노에게 맡겨진 모든 역할을 뛰어나게 잘 해냈다.
겨우 일주일간 공부했다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음악적으로도 기교적으로도 완성도가 깊었다.
최선을 다해 곡을 준비한다. 그리고 준비한 그대로 합주에 집중한다. 그저 다함께 곡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열연한다.
정말 칭찬할 만했다. 협연자로서 한 단계 성장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막심은 입을 열 수만 있다면 고함을 치고 싶었다.
어떤 개자식이 저 애를 저렇게 망쳐 놓은 거야?
막심은 1악장이 진행되는 사이 몇 번이고 부추기고, 약 올리고, 보란 듯이 바이올린 파트를 격정적으로 멋들어지게 표현했다.
도발이기도 하고 시비이기도 했다. 타티아나가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흥분하지 않고 바이올린과 첼로가 움직이는 대로 보조하고,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미움받지 않고,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는 이상적인 협연자가 되고 싶어 하는 듯했다.
확실히 그랬다. 정말 이상적이기 짝이 없었다. 빌어먹을 첼로 연주자 니콜라이는 이미 타티아나에게 반쯤 매료된 듯 보였다.
절망적이었지만, 막심은 활을 들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트리오 op.50은 2악장으로 구성된다.
1악장은 루빈슈타인을 추모하는 슬프고 애절한 작은 소나타 형식의 엘레지.
그리고 2악장은 루빈슈타인과의 한때를 단편적으로 추억하는 듯한 열한 개나 되는 변주곡과 마지막 피날레로 이루어진다.
이 두 번째 악장에서 피아니스트는 그야말로 진가를 드러내게 된다.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주제에서 변덕스럽고 귀여운 카프리치오소, 스케르초, 푸가, 마주르카, 절절한 애가까지 그 모든 것을 소화해 낼 줄 알아야 했다.
수많은 변주곡들 중에서도 이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트리오에서의 변주곡은 상당히 까다롭고 복잡한 변주곡에 속했다.
그중 분명 한 번은 타티아나가 본모습을 드러내리라 생각했다.
타티아나는 테마 선율을 연주한다.
변주곡인 2악장의 주요한 주제인 이 선율은 차이코프스키와 루빈슈타인이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들과 함께 산책을 나갔을 때, 춤과 노래를 하는 교외의 농부들을 보았던 추억에서부터 따왔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추모곡이었던 1악장과는 색다른 면모를 띄게 된다.
추억이란 좋았던 것들이 남기 때문이다.
따뜻하고 산뜻한 테마가 긴 프레이징으로 마무리되고 제1변주가 시작된다.
활을 든 막심이 기세 좋게 현을 울렸다. 타티아나가 피아노로 홀로 연주했던 것과 똑같은 선율을 바이올린이 따라간다.
막심은 타티아나를 철저하게 자극하며 크게 화려하게 연주했다. 우아하게 깔리던 피아노가 곧바로 예민하게 반응했다.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꿈틀거리더니 크고 웅장하게 반주해 낸다.
다음 제2변주는 첼로의 차례였다. 3/4박자로 조금 빠르게 다시 주제를 이어 간다.
첼로의 니콜라이 역시 거리낄 것 없이 연주한다. 이미 타티아나에 대한 신뢰가 엿보이는 음색이었다.
제3변주는 스케르초로 주제가 변화한다. 피아노가 주제를 연주하고 바이올린과 첼로가 피치카토로 보조한다.
그야말로 스케르초답게 익살스럽게 연주하더라도 막심과 니콜라이는 전부 받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타티아나는 결코 리듬을 비틀거나 과하게 연주하지 않고 정말 이해하기 쉬운 연주를 했다.
양손에 아무것도 든 것 없이 가볍게 발을 놀리며 산책을 하는 듯한 분위기다.
제4변주와 제5변주는 각각 한 장의 악보로, 짧지만 추억 사이의 슬픔을 표현한다.
올림다단조의 비가로 주제가 변화한다. 바이올린의 역할이 중대하다. 막심은 비통하게 우는 듯한 소리로 연주했다.
곧바로 제5변주에선 다시 올림다장조로 조성이 변화하며 피아노가 하이톤으로 노래한다.
복잡하게 몇 번이나 조성이 변하고 주가 되는 악기가 변하는데도 불구하고 세 명은 물 흐르듯 연주를 이어 나갔다.
리허설도 없이 이 정도의 연주력을 갖추는 트리오는 없을 것이다.
막심은 알았다. 이 완성도는 전적으로 타티아나의 실력 덕분이라는 것을.
막심은 타티아나가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한 실력자라는 것을 느꼈다.
제6변주로 돌입했다. 다시 첫 주제를 회상하며 보대 거대해진 규모로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선율을 노래했다.
막심은 일부러 조금 까탈스럽게, 바이올린을 변화무쌍하게 연주했다. 바이올린 소리가 심술궂게 뒤뚱거렸다.
이렇게까지 해 놓고, 다음 제7변주는 다시 타티아나의 차례다.
오로지 피아노만이 가능한 옥타브 다성화음으로 주제가 반복된다.
바이올린과 첼로는 꾸밈음을 넣을 뿐이고 타티아나는 양손으로 가득 건반을 움켜쥐듯 연주해 나갔다.
하지만 여기에도 어떠한 공격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타티아나는 그저 깔끔하게 연주할 뿐이었다.
제8변주는 푸가로 이어진다. 정교하게 맞물리는 바흐와 같은 푸가는 아니지만 세련되었다. 4도 푸가는 주제를 그려 나갔다.
제9변주는 우울하기 짝이 없는 피아노 아르페지오와 현악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마치 휘청거리는 듯한 아르페지오가 곧 넘어질 것만 같은 발걸음 같다. 그리고 바이올린과 첼로가 손짓하듯 흐느적거린다.
술에 취해 거리를 비틀거리는 한 사람이 그대로 그려지는 듯하다.
타티아나의 피아노는 한층 더 심원해지고 있었다.
막심은 타티아나를 돌아보았다.
묵묵하다. 표정은 변화라 할 만한 것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말을 걸면 표독스럽게 쏘아붙일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의 발걸음 같은 피아노 소리에선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헤메이는 듯한 절망이 묻어났다.
그 애처로움이 시선을, 마음을 끌어당긴다.
“…….”
제10변주는 마주르카다.
피아노의 주도로 연주되는 마주르카는 마치 쇼팽의 곡 같다.
수십잇단음표의 꾸밈음과 미묘한 악센트와 루바토까지 타티아나는 특유의 리듬감을 살려 익숙하게 마주르카를 연주했다.
외로움이 사무치는 듯한 이전 변주에 이어 이번엔 굉장히 애교스럽고 사랑스럽다.
겉으로 타티아나는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지만 피아노 음색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은근히 목께에 달라붙어 구애하는 듯한 음색에 숨이 멎을 것 같다.
그 사랑스러운 음색은 중간에 잠깐 끼어드는 바이올린과 첼로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듯 소름끼치게 휘감아 올라온다.
간신히 빠져나가며 피날레와 코다로 넘어가기 전 A부의 모든 변주들을 정리하는 11변주를 연주하고,
마지막 2악장 B부. 피날레와 코다 변주가 시작된다.
모든 것이 정신없이 계속된다. 막심은 숨을 가다듬고, 허리에 힘을 주었다. 거대한 합주가 시작된다.
이전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선율과 리듬이었다. 가장조의 열정적이고 화려한 음악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울렸다.
도입부가 지나자 본격적인 피날레가 시작되었다.
바이올린이 주선율을 연주하고 피아노가 아르페지오로 화답하면서 숨 쉴 틈도 없이 빠르게 주고받는다.
세 악기의 치열함이 돋보이는, 그야말로 피아노 트리오의 정수라고도 할 수 있는 합주였다.
이 격렬한 합주에서 어느 한 명도 앞서거나 뒤처지지 않고 트리오는 질주한다.
클라이막스에 치닫는 순간, 문득 이 곡 전체를 꿰뚫는 페이소스를 떠올려 내고 슬프게 마무리로 가라앉는다. 조바꿈도 없이 아주 교묘한 전환이었다.
즐거움에서 우울함으로. 그 전환은 굉장히 갑작스럽지만, 마음으로 느껴지는 음악은 생각보다 난해하지 않다.
차이코프스키가 얼마나 노련한 작곡가였는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대목이었다.
이후 2악장 내내 보이지 않았던 1악장의 추모하는 주제가 다시 등장한다.
주선율은 바이올린과 첼로가 가지고 있지만 피아노 주자는 거의 오케스트라처럼 다른 모든 것을 커버해야 했다.
엄청난 부담감이 피아노 연주자에게 쏟아진다.
40분의 연주가 주는 피로도는 상당했고, 지쳤을 만도 하지만 타티아나는 거의 기계처럼 정확한 손놀림으로 건반을 타건했다.
마지막은 딱 한 페이지로 이루어진 장송행진곡이다.
크게 울 힘도 없이 깊게 내려앉은 음색으로 바이올린과 첼로는 중간에 다시 주제를 채 마무리하지도 않고 잊히듯 사라지고, 터덜터덜 걷는 피아노가 마지막으로 쓸쓸하게 사라진다.
“…….”
자신의 연주는 끝났지만 미처 활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막심은 마지막 피아노의 발소리를 들으며 여운에 잠겼다.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트리오는 루빈슈타인과의 한때를 기억하는 듯한 즐거운 곡조도 있지만 결국 40분가량의 곡 전체를 꿰뚫는 큰 주제는 슬픔과 그리움이었다.
타티아나는 그것을 정확하게 그리며 마무리해 냈다.
연주를 마치고, 세 사람은 다시 서로를 돌아보았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니콜라이였다.
“이름은 뭘로 할까?”
“……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막심이 되물었고, 니콜라이는 첼로에 기대며 말했다.
“우리 트리오 말야. 이름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
“……?”
막심은 어이없어했고 타티아나 역시 조금 황망한 듯하더니, 열의를 띤 목소리로 말했다.
“트리오를 만드실 건가요?”
“전 그러고 싶군요. 타티아나 후배님은 싫은가요?”
“아뇨, 전…….”
“전 타티아나 후배님이 좋은데.”
“예?”
“아주 마음에 들어요. 기대가 없진 않았는데, 기대 이상이었어요.”
“아…… 예.”
타티아나는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로 웅얼거렸고, 막심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헛수작 하지 마. 트리오 같은 거 만들 일은 없으니까.”
“왜?”
“원래 그럴 생각 없었어.”
“없던 생각도 생겨야 하지 않아?”
니콜라이의 말에 막심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 말이 옳았다.
타티아나는 정말 이상적인 협연자라고 할 수 있었다.
기본적인 실력은 말할 것도 없이 뛰어났고, 어떻게 연주하더라도 따라와 주면서 어떻게 따라가더라도 상관없었다. 강인하면서도 세심하다.
이 정도 협연자는 결코 구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막심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변치 않았으면 했는데.
답답한 마음에 그가 대뜸 물었다.
“타티아나. 너 무슨 일 있어?”
타티아나가 눈을 크게 뜬다.
“무슨 말씀이세요?”
“타티아나. 몰라서 묻는 거야? 왜 안 어울리게 우리에게 맞춰 주고 있냔 말야.”
“……!”
스스로 말하면서도 막심은 이게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성질대로 하지 않고 점잖게 연주했다고 비난당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막심은 말이 나오는 대로 퍼부었다.
타티아나는 그 말이 어지간히 충격인지 한동안 말을 못 했다.
곧, 두 눈이 일그러진다.
“제가 마음에 안 드시는 건가요?”
“그래.”
“……협연자로서 제가 어떤지만 말씀해 주세요.”
타티아나는 변명 대신 그렇게 물었고, 효과적이었다. 막심이 대답했다.
“훌륭하지.”
적어도 거짓말을 할 순 없었다. 타티아나는 협연자로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단순하게 대답을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이진 않았다. 막심의 태도를 보며 그 말 이면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핀다.
그리곤 조금 억울하다는 듯 낮게 말했다.
“그렇다면…… 되었잖아요.”
막심은 살짝 짜증이 났다. 지금 진짜 무슨 트리오에 들어갈 피아노 오디션이라도 봤다고 생각하는 거야?
첫 시작부터 다툼이었고,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타티아나는 전의에 불타고 있었다. 오늘 역시 그것은 계속되어야 할 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김이 팍 샌다. 그 불같던 싸움꾼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이쯤에서 그냥 좋게 이야기해도 좋았다. 딱히 흠잡을 수 없었으니 칭찬이나 잔뜩 해 주면 기분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막심은 단호하게 지적했다.
“아니? 전혀. 네가 치고 나가야 할 때조차 눈치를 보고 있었잖아.”
“전 그런 적 없…….”
“거짓말하지 마. 피아노는 정직해. 내가 도중에 몇 번이고 기회를 주었는데, 타티아나 넌 그걸 모두 거부했어.”
“…….”
“그냥 해 보지 그랬어. 뭐가 그리 겁나?”
막 반론을 펴려던 타티아나가 입을 다물었다. 타티아나의 피아노는 너무 투명했다. 이제 와서 말로 변명한다 한들 무의미하다.
지금이라도, 막심은 타티아나가 화를 내며 대들길 기대했다. 일부러 시비를 걸듯 이렇게 말했으니 그녀로서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당신은 뭐 똑바로 했는 줄 아느냐고 날카롭게 따지기라도 해야 응당했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침묵했다.
“그쯤 해, 막심.”
그때, 니콜라이가 끼어들었다. 그는 무표정하게 막심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막심은 그의 오랜 친구가 지금 약간 화가 났다는 것을 알았다.
“네 마음에 안 든다고 그렇게 막말을 하면 안 되지.”
“막말 같은 소리 하네. 내가 진짜 막말 해 봐?”
“정신 차려. 내가 널 닥치게 하기 전에.”
니콜라이는 약간 독특한 성격이긴 했지만 주위에 적을 만들지 않는 순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끔 화가 나면 막심이 손도 못 댈 정도였다. 막심은 이쯤에서 입을 다물고 물러섰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은 타티아나에게 니콜라이는 한 걸음 다가가고, 또 한 걸음 다가가려다가 멈칫, 그 자리에 섰다.
타티아나가 키가 큰 니콜라이를 올려다보았다. 니콜라이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전 타티아나 후배님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저 녀석이 뭐라 한들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시죠.”
“……감사해요.”
“그런데 딱 하나만, 말씀드릴 게 있어요.”
막심이 이렇게 길길이 날뛰는 이유를 니콜라이 역시 모르지 않았다.
“이 트리오는 동료 음악가를 잃은 차이코프스키의 슬픔을 그려 내고 있죠.”
동료이자 선배이자 스승이었던 루빈슈타인을 잃은 슬픔의 곡이다. 누구나가 안다. 니콜라이가 이어 말했다.
“거기에 덧붙여 정말 잠 못 이루는 그리움까지. 잘 알고 계시는 것 같더군요. 타티아나 후배님의 표현력에 전 정말 감탄했어요.”
타티아나는 어깨를 흠칫 떨었다.
대체 어디에 놀랄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순간적으로 타티아나의 얼굴엔 폐부 깊숙한 곳을 찔린 듯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도 잠시, 그녀는 곧 평정을 되찾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전 그저…….”
“겸양은 필요 없어요. 이 곡을 작곡할 때의 차이코프스키는 마흔 살도 넘었지만, 그리움과 외로움을 느끼는 데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어요?”
니콜라이가 말했다. 타티아나는 입을 다물었다. 턱에 힘이 들어간 것이 이를 악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을 미처 보지 못하고 니콜라이가 이어 계속해서 말한다.
“열다섯 살의 타티아나가 느끼고 해석하는 외로움의 감정은 충분히 피아노로 전해졌어요.”
“…….”
니콜라이는 열렬하게 칭찬을 했다. 타티아나는 말이 없다.
그리고 니콜라이는 허리를 약간 숙이며 타티아나와 눈을 마주했다.
“하지만 그건 듣고 있는 관중들에게 전해 주어야 할 주제죠.”
니콜라이가 하고 싶은 말은 그저 칭찬이 아니었다.
“왜 우리에게 들리고 있죠?”
갑작스럽게, 니콜라이는 그렇게 근본적인 부분을 꼬집었다.
타티아나가 보였던 전체적인 피아노는 근본적으로 방향성이 틀어져 있었다.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라도 있나요?”
타티아나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다.
막심에게 심한 말을 들을 때보다, 니콜라이에게 격려를 받고 지적당한 것으로 더욱 큰 상처를 입은 듯했다.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 상태에 니콜라이가 당황하기도 잠시.
“그만들 해요.”
아나스타샤가 끼어들며 타티아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가 화를 내며 쏘아붙였다.
“대체 뭐가 그리 불만들이 많아요? 정말 못 들어 주겠네. 그만두세요.”
“아직 할 말이…….”
“됐다니깐요? 솔직히 저야말로 바이올린에게 한 마디 하고 싶은데 타티아나가 가만히 있고 전 부외자라 참고 있었거든요?”
“음…….”
모든 연주가 항상 만족스러울 순 없고, 이렇게 합을 맞춰 본 뒤엔 서로 토의하고 되짚어 보는 시간도 중요했다.
그 시간엔 웃음이 있을 수도 있고 설전이 있을 수도 있었다. 쓴소리 조금 듣는다 해서 못 견딘다면 이 세계에서 결코 오래 버틸 수 없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타티아나의 상태는 너무 안 좋아 보였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아나스타샤에게 비켜 달라고 말을 하곤 있지만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다.
막심은 이쯤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알았어. 내 주관적인 이야기는 이쯤 하고.”
“…….”
“타티아나, 내가 헛소리들을 많이 하긴 했지만 누가 봐도 넌 잘했어. 그냥 내가 미친놈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할게.”
막심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가 생각하던 트리오에서의 피아니스트는 굉장히 성격이 나쁜 피아니스트였어.”
“…….”
“뭐, 원래 같이 정기 트리오를 하자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늘은 이 정도로 하자, 일단.”
맥 빠진 그 목소리에 타티아나는 뭐라 답을 하려 입을 열었다가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