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176화 (176/1,277)

##  176화

며칠이 흘렀다. 그사이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많이 안정되어 갔다.

“…….”

오늘도 혼자서 침대에서 일어났지만 이전처럼 사무치는 듯한 추위는 없었고, 그저 머리 어딘가 한군데가 서늘할 뿐이었다.

그 느낌조차 피아노 앞에서는 사라졌다. 적응은 어렵지 않았다.

난 혼자서 피아노에 더더욱 몰두했고, 그건 내게 정말 익숙한 일이었다.

저번 주 아나스타샤로부터 전해 받은 놀랐던, 기뻤던, 몰랐었던 기억 같은 건 서서히 희미해졌다.

여전히 방심하고 있자면 이따금 불쑥 깨어나 날 괴롭히지만.

적어도 연습실에서 피아노 앞에 선 나는, 홀로 오롯하다.

조명을 절반만 켠 어둑한 새벽의 연습실. 익숙한 분위기와 약간의 습기를 머금은 냉기가 뒷덜미에 스민다.

자연스럽게 목과 어깨가 옹송그려졌지만, 힘을 주고 자세를 바로 했다.

피아노는 손가락으로만 가지고 놀 수 있는 악기가 아니다.

체구의 한계를 뛰어넘는 소리와 울림을 낼 수 있는 것은, 정확하게 건반에만 힘을 쏟아낼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올곧게 허리를 세우고, 눈만 내리깔아 건반을 내려다보았다.

그대로 손의 무게를 건반 위로 내렸다. 손끝이 건반에 닿자, 양손은 스케일을 오르내렸다.

내가 없는 사이 조율을 했는지 소리가 보다 가지런해졌다.

그리고,

“…….”

검지만 움직여 가만히 건반을 눌렀다.

한 건반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이 손끝에 달라붙어 있는 것처럼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미세하게, 정말 미세하게 한 건반의 액션에 문제가 생겼음이 느껴졌다. 기계적인 비틀림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음…….”

오늘은 저녁 늦게까지 아나스타샤와 놀다가 저녁 연습을 빼먹었기 때문에 아침 연습 이후에 처음으로 내 피아노를 만져 보는 것이었다.

아침에 비해 소리가 바뀌었고, 건반엔 문제가 살짝 생겼다. 조율사가 다녀간 모양인데 무언가 잘못 건드린 듯하다.

아주 미세한 차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

하지만 다시 한 번 건반을 만져 본 나는 문제를 느끼면서도 연습을 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한낮이었다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 피아노에 대한 관리는 예고르가 신경 써 주고 있었기 때문에 예고르에게 말하거나, 아니면 혹 조율사에게 불이익이 갈 수도 있으니 조율사에게 살짝 연락을 해서 다시 봐 달라 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밤중이었고 날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연습은 해야지.”

난 차선책을 냈다.

손을 늘어뜨리고 보면대 너머를 바라보면서 머릿속에 있는 악보들을 펼쳐 들었다.

내 머리 한편에 새겨져 있는, 화성학에 기반을 둔 독해 능력이 깨어나 그것들을 읽기 시작했다.

내게 있어 화성학이란 하나의 어떤 학문이 아닌, 한국어나 러시아어처럼 습득하고 있는 하나의 언어였다.

수학에 기반을 두고 악기로 발할 수 있는 언어. 내가 구사할 수 있는 가장 편하고 자연스러운 언어다.

악보들 사이에서 내가 원하는 곡들을 찾아낸다.

피아노 건반은 여든여덟 개밖에 안 되고 그중에서도 아주 높은 고음과 아주 낮은 저음을 제한다면 피아노 연주자는 상당히 제한적인 건반을 다루게 된다.

거기에 제한을 하나 더 추가했다. 건반 하나를 제외했다.

그것만으로도 수백 곡이 사라져 간다.

그 모두를 밀어두고 가능한 곡을 계속 찾아 헤맸다. 그리 어렵고 복잡한 일은 아니었다.

“…….”

그렇게 추려 내니, 남은 것은 몇 곡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정도면 오늘 밤을 지새우기엔 충분했다. 문제가 있는 건반을 쓰지 않으면서도 연주자로서 피아노 앞에 앉아 있을 수 있다.

다시 손가락을 들었다.

***

방과 후, 일정이 달랐던 아나스타샤와 나는 다시 교실에서 만났다.

“연습 잘했어?”

“예. 아나스타샤는요? 레슨 잘 받으셨나요?”

“응. 지적받은 부분도 많지만……. 칭찬도 많이 받았어.”

그녀는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아나스타샤가 연습하는 곡은 쇼팽 발라드 1번. 테크닉적으로도 까다롭지만 특히 표현에 있어서 상당히 어려운 곡이다.

저번 그녀의 집에 가서도 꽤 오랜 시간 그 곡에 대해 연구하고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했던 것들이 빛을 발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 곡을 완성하고 나면 콩쿠르에도 나가 보려고. 어디 작은 곳이라도.”

“정말인가요?”

“2년이면 오래 쉬었잖아?”

날 만나기 전까지의 2년간, 아나스타샤는 실력 향상에 있어 커다란 벽을 마주하고 있었고 상당한 슬럼프를 겪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 앞에서 내가 들려주었던 것이 라흐마니노프의 악흥의 순간 4번.

그날 이후로도 몇 번이고 아나스타샤는 내게 말했다. 그 음악을 듣고 나서야 어떤 식으로 손을 움직여야 하는지 비로소 알게 된 것 같다고.

상당한 과장이겠지만, 어쨌건 아나스타샤는 그 이후로 슬럼프를 극복하고 정말 하루가 다르게 쑥쑥 실력이 늘고 있었다.

“사실 이대로 열일곱 살까지 연주회나 가끔 하면서 지내도 되겠지만, 무대 감각이라는 게 콩쿠르랑 연주회는 다르잖아?”

“그렇죠?”

“그렇지?”

아나스타샤는 그렇게 나아진 실력으로 콩쿠르에 나가서 실전 감각을 되찾고 싶어 하는 듯했다.

그건 기쁜 일이었다. 난 그녀가 연주자로서 성장하는 한 걸음 한 걸음을 사랑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아나스타샤가 문득 내게 물었다.

“타티아나.”

내가 올려다보자 그녀가 어깨 뒤로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렸다.

그리고 조심스레 내게 말했다.

“우리 어제는 종일 놀기만 했잖아?”

“예. 즐거웠지요.”

“오늘은 같이 연습하러 안 갈래?”

“…….”

선배들과 합주 이후 그간 한 번도, 아나스타샤는 내 앞에서 같이 연습하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었는데. 오늘 보니 일부러 안 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난 대답하지 않았다. 이유는 에르네스트 때와 똑같았다.

근래 많이 괜찮아졌지만 친구들 앞에서 혹여나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내가 침묵하자, 아나스타샤가 날 내려다보더니 툭 말했다.

“괜찮은데.”

그녀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나랑은 괜찮잖아, 타티아나.”

“…….”

선배들과는 싫겠지만 나랑은 괜찮잖아.

에르네스트는 안 되겠지만 나랑은 괜찮잖아.

아나스타샤의 말은 상당히 강력하게 날 옭아매었다.

난 아나스타샤가 슬퍼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고, 같이 연습을 하는 것 정도는 고민거리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만, 조금만 내게 더 시간을 줬으면 좋겠다.

“아나스타샤.”

나 역시 힘겹게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왜…….”

“저 오늘은 스튜디오에 가야 해요.”

“응……?”

아나스타샤가 예상치 못했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스튜디오?”

“예. 음반 작업이 있어요. 미안해요.”

“그, 그저껜 미뤘지 않았어?”

“미뤘기 때문에 더더욱 가 봐야죠.”

마카로프 프로듀서는 언제든 컨디션이 좋아지면 찾아와 달라 말했지만, 사실 내 컨디션 문제로 이렇게 일정을 취소하는 건 상당히 실례인 일이었다. 오늘은 가 봐야 했다.

아나스타샤의 표정은 약간 풀어졌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낮았다.

“가서 녹음 작업 할 거야?”

“아뇨. 아직 곡을 준비 중이라서요.”

“그렇구나.”

아나스타샤는 내 말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불쑥 손을 내밀었다. 그리곤 양손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손과 손이 마주하면서 따스함이 느껴진다. 사이에 피아노를 경유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맞닿은 손은, 건반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온기를 전해 왔다.

차갑게 굳혀 놓았던 마음이 깨어질 것 같았지만, 가까스로 버텨 냈다.

내 눈을 내려다보면서 아나스타샤가 생긋 웃는다.

“타티아나. 네가 하는 일도 잘 되었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고마워요.”

잘될 거예요. 아나스타샤도, 일리야도, 에르네스트도. 다른 모든 친구들도.

저도.

***

소로킨이 운전하는 차에 타고 에우테르페 레코즈의 모스크바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오늘은 차가 그리 막히지 않아 빨리 올 수 있었다.

난 빅토르와 함께 건물을 올라갔고, 곧 익숙한 문을 열고 들어섰다.

“왔습니까, 타티아나.”

“안녕하세요.”

마카로프 프로듀서와 베로니카 과장이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날 발견하고는 맞이했다.

일주일에 두어 번. 익숙한 광경이지만 오늘은 약간 어색하다.

“캐모마일차면 되겠죠? 타티아나.”

“예. 감사합니다. 베로니카 과장님.”

그녀가 일어나고, 난 앉아 있는 마카로프 프로듀서를 향해 사과했다.

“저번엔 일방적으로 일정을 취소해서 죄송해요, 마카로프 프로듀서.”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그 정도야 별일도 아닌걸요.”

정말 별일 아니란 뜻일까? 나보다 훨씬 더 제멋대로 구는 사람들이 있으니 상관없단 말일까?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해해 주는 것 같아서 한시름 놓으며, 가방에서 노트를 꺼냈다.

“오늘은 조금 더 진행시키면 어떨까 해요. 선생님들에게 추천받은 곡들을 적어 왔어요.”

“호오……. 그렇습니까? 이야기를 해 볼까요.”

지금 내 음반 계획은 진행 상황이 굉장히 더뎠다. 녹음을 진행하긴커녕 음반에 무슨 곡을 넣을지조차 아직 다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평범한 레퍼토리를 지니고 있었다면 그 중 가장 화려하게 선보일 수 있는 곡 몇 곡을 골라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레퍼토리는 마카로프 프로듀서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넓었다.

마카로프 프로듀서는 열다섯의 나이에 쇼팽 에튀드와 프렐류드 전곡을 녹음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를 뒤져도 없을 것이라며 기막혀 했다.

적당히 숨길 수도 있었지만, 음반에 뭘 올려야 할지 토의하는 자리에서 멋대로 숨길 수는 없었기 때문에 생각나는 대로 밝힌 결과였다.

그렇게 지금까지 해 온 음반 작업은 대체로 비슷비슷했다.

만나서 미팅을 하고 내가, 그리고 마카로프 프로듀서가 가능성 있다고 여겨지는 곡들을 골라잡는다.

그리고 녹음실로 들어가 실제 녹음도 해 보고, 그걸 다시 모니터링해서 판단하고. 괜찮다면 후보에 올리고, 아니라면 미뤄 둔다.

그것을 계속해서 반복할 뿐이었다.

시간을 내어 제대로 한다면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이기도 했지만, 나와 마카로프 프로듀서가 함께하는 시간은 주 2회 평일 저녁뿐이었고, 그것으론 시간이 턱도 없이 모자랐다.

이야기 좀 하고 대여섯 곡 정도 쳐 보면 금방 지나간다.

주말을 써서라도 음반 작업 진행률을 더 끌어올리면 어떻겠나 싶은데, 마카로프 프로듀서는 급하게 일을 추진하지 않았다.

그렇게 음반사 사장도 느긋하고, 음반의 퀄리티에만 관심이 있는 나 역시 신중하고. 때문에 음반 작업은 상당히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다.

“이 곡은 어떻게 고르셨습니까?”

“구세프 선생님의 추천이에요.”

“흥미롭군요. 괜찮을지도 모르겠어요.”

마카로프 프로듀서는 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노트에 있는 곡들에 동그라미를 치고, 메모를 하고, 다른 곡의 제목도 써 넣고는, 날 불렀다.

“흠, 좋습니다. 한번 들어 보죠.”

조금, 긴장되었다.

요 며칠간 계속 혼자 연습해 왔다.

에르네스트와 아나스타샤와도 함께하지 않고 오로지 혼자서만 피아노 앞에 앉았다. 내가 이겨 낼 수 있을 때까지.

덕분에 지금 난 상당히 안정적인 소리를 되찾았다.

또다시 크게 흔들릴 것 같지는 않지만, 마카로프 프로듀서가 듣는다는 생각을 하니 목이 뻣뻣해져 왔다.

“타티아나.”

“앗, 예.”

“무슨 일 있습니까?”

난 고개를 저었다.

괜찮을 것이다.

이미 스튜디오에 올 때부터 각오했던 일이니까. 아무도 없는 녹음 부스 안에 들어가 오로지 피아노와 나만 있는 것이다. 아무 문제없다.

프로듀서와 고른 몇 가지 곡들을 훑어보고,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

언제 봐도 감탄만 나오는 완벽한 녹음 환경이 날 반겼다. 기묘한 각도로 배치되어 있는 구조물들과 마이크들이 이제는 익숙하다.

난 피아노 앞에 앉았다.

허리를 펴고, 건반을 짚는다.

전람회의 그림. 19세기 러시아의 국민악파 작곡가 모데스트 페트로비치 무소르그스키가 절친한 친구였던 하르트만의 유작들을 전시한 전람회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곡한 명곡이다.

본래 독창적이기로 유명한 무소르그스키 특유의 또렷한 색채감과 이미지가 곡 전체에서 펼쳐진다.

“…….”

난 연주에 몰입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걸음걸이로 전시회 입구를 들어서자 그림들을 전시해 놓은 거대한 홀이 마주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웅장함을 느낀다. 발소리가 울린다. 계속해서 걷는다.

“…….”

피아노로 그림을 그렸다. 명확한 주제를 따온 표제음악이기에 조금 더 정확하게 작곡가의 시선을 따라 연주를 행했다.

절뚝거리는 난쟁이.

낡은 중세의 고성과 음유시인의 노래.

프랑스 튀일리궁전의 정원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커다란 바퀴를 굴리며 굴러가는 우마차.

막 껍질을 벗어던진 병아리들의 발레.

프랑스의 작은 도시 리모주의 시장 거리 풍경.

로마의 지하 묘지인 카타콤.

닭발이 달린 시계 모양의 오두막과 변덕스러운 러시아의 마녀 바바야가.

마지막으로 옛 도시 키예프의 웅장한 대문까지.

짧게는 1분에서 5분가량의 곡들과 중간중간 그림 사이를 거니는 프롬나드를 합하면 총 30분이 넘어간다.

난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작곡가를 따라 움직이면서 한 전시회를 묘사해 냈다.

재치 있고 유쾌하게 떠들기도 하고, 음울하고 거대하게 가라앉기도 했다.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하나의 음악을 이뤘다.

“…….”

연주를 마치고, 고개를 들었다.

모니터링룸 쪽 유리를 보니 마카로프 프로듀서가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그가 말했다.

“잠시 오시죠.”

모니터링룸으로 향했다. 프로듀서는 여느 때와 같이 파형이 그려져 있는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가 내 쪽으로 휙 돌았다.

“타티아나.”

“예.”

“훌륭한 연주였습니다만…….”

마카로프 프로듀서는 늘 좋은 말만 해 주진 않는다. 음악에 있어선 그 역시 프로였고 굉장히 엄격했다.

“무겁군요.”

“무겁……다고요.”

“예. 무겁습니다. 피아노에 담겨 있는 것이 너무 많아요.”

그래도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난 머리 뒤쪽이 스멀거리며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괜찮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잘못된 건가?

마카로프 프로듀서가 이어 말했다.

“애초에 사연이 그런 곡이기도 합니다만, 그렇게 보이진 않는군요.”

흠, 하고 숨을 고르고. 그가 안경 너머로 날 유심히 바라보았다.

“타티아나는 본래 또렷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능숙해 보였는데, 오늘은 꽁꽁 감추고만 있군요.”

“…….”

“들려주기 싫은 것이라도 있습니까?”

“…….”

들키진 않았다. 적어도 숨기는 데엔 성공했다.

하지만 숨겼다는 사실 자체가 탄로 났다. 마카로프 프로듀서는 상당히 의심쩍단 눈빛을 하고 있다.

식은땀이 흘렀다. 난 가까스로 말했다.

“그렇게나 답답하게 들렸나요?”

“답답하다기보단…… 말했잖습니까? 무겁다고.”

마카로프 프로듀서는 다시 말하곤, 날 본다.

보통 이렇게 프로듀서가 내 연주에 대해 평을 하면, 난 거기에 대해 답을 하고 확인한 다음, 다시 피드백을 해서 연주를 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굳어 있었다.

마카로프 프로듀서는 한동안 말없이 있더니 빙그레 웃었다.

“어떤 문제가 있는진 모르겠습니다만, 타티아나, 이런 말이 생각나는군요.”

그가 양손으로 깍지를 끼며 말했다.

“가진 도구가 망치뿐일 땐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인다. 혹시 이런 말 들어 보신 적 있습니까?”

“아……뇨?”

“그런 말이 있습니다.”

처음 듣는 말이었지만, 마카로프 프로듀서는 지금 내게 필요한 말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그는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가볍게 숨을 뱉으며 웃었다.

“타티아나는 매사 진지한 면이 있으니, 이해는 갑니다. 어쩌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다만 한번 차분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예.”

차분히 생각하기엔, 머리가 복잡하다.

내가 가진 도구라곤 피아노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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