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화
타티아나는 드물게 들뜬 모습으로 에르네스트를 재촉했다. 조금 더 미적거리면 숫제 손까지 잡아끌 기세다.
에르네스트는 식사하러 가자고 성화인 그녀의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졌지만 그 이유가 자신이 아니라 동생이란 점에선 살짝 패배감마저 느꼈다.
어쨌건 약속은 약속이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사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타티아나, 그리고 거의 자연스럽게 아나스타샤까지 함께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으니 다른 곳으로 새지 말고 교실에 있으란 메시지였다.
그리고 즉시, 전화가 걸려왔다.
“…….”
에르네스트는 짜게 식은 눈으로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다가 전화를 받았다.
- 형.
“어.”
- 타티아나 누나도 있어?
“어.”
- 정말? 누나가 밥 먹자고 해?
“어.”
시큰둥하게 대꾸하거나 말거나 사샤는 신이 난 듯 꼭 교실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답했다.
에르네스트는 조금 심란했다. 타티아나와 사샤 두 사람이 즐거워한다면 뭐라도 좋다고 생각했건만, 막상 정말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이렇게까지 유치한 감정이 들 줄은 몰랐다. 심지어 사샤는 친동생이고 여덟 살밖에 안 되었는데도.
전화를 끊고,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막 식당에 갈 채비를 하는데, 옆에 있던 타티아나가 묘한 시선을 하며 물어왔다.
“에르네스트? 혹시 사샤인가요?”
“맞아.”
가볍게 대답하자 타티아나가 약간 힐난하는 듯한 눈초리를 했다.
“에르네스트. 동생의 전화를 그렇게 받으시면 어떻게 하나요?”
“……어?”
순간 무슨 소리인지 파악하지 못해 되묻자 타티아나가 반걸음 더 바짝 다가오며 올려다본다. 종종 타티아나는 이렇게 사나운 눈을 할 때가 있었다.
그녀가 야속하다는 듯 말했다.
“동생에겐 잘해 주셔야죠?”
방금 전화를 받던 태도가 타티아나에게 어떻게 비춰졌을지 생각한 에르네스트는 급히 사과했다.
“음……. 미안.”
“제게 미안할 일이 아니라 사샤에게요.”
“응…….”
억울했다.
평소 에르네스트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샤를 잘 챙기는 편이었다.
하지만 평소 사샤와의 사이를 증명할 방법은 없었다. 이제 와서 타티아나에게 평소엔 그러지 않는다고 말해 봐야 바보 같은 변명처럼 들릴 수밖에 없었다.
억울해봐야 소용없겠다고 생각한 에르네스트는 벌떡 일어나 앞장섰다.
“가자. 밥 먹으러.”
“그래요.”
그렇게 에르네스트와 아나스타샤, 타티아나 세 명은 함께 교실을 빠져나갔다.
에르네스트는 앞서 걷다가 문득 뒤를 바라보았다. 타티아나가 따라오다가 에르네스트와 눈이 마주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르네스트는 다시 앞을 보고 걸었다.
같이 놀러 다닌 게 몇 번이고 밥 먹은 게 몇 번인데 이제 와서 상당히 웃긴 소리였지만, 학교에서 함께 점심을 먹는 것은 처음이었다. 에르네스트는 약한 긴장감을 느꼈다.
1층으로 내려와서 에르네스트는 피아노과를 찾았다. 문을 열자마자 시선들이 확 쏠린다.
뭐야? 누구야? 라는 물음조차 없었다. 난데없이 들이닥친 선배들을 보고 1학년 피아노과 학생들은 모두 얼어붙었다.
단 한 명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형!”
“사샤.”
사샤가 환한 얼굴로 웃으며 다가왔다. 마음 같아선 달려와 안기고 싶은 모양이지만, 반 친구들이 보고 있는데도 그렇게 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문가까지 다다른 사샤가 인사했다.
“오랜만이에요 타티아나 누나, 아나스타샤 누나.”
“안녕? 사샤.”
아나스타샤는 가볍게 손을 들어 보이며 인사를 받아 주었지만 타티아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보고 있는 시선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무릎을 굽혀 사샤와 포옹했다.
“미안해요. 제가 먼저 찾아왔어야 했는데.”
“아녜요. 괜찮아요.”
에르네스트는 조금 당황한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어른스럽게 대답하는 사샤와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는 타티아나를 보며 대체 누가 애인지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슬쩍 옆을 보니 아나스타샤 역시 미묘한 얼굴이다. 에르네스트는 아나스타샤가 느끼고 있는 기분이 지금 자신이 느끼는 기분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넷은 식당으로 향했다. 타티아나와 사샤는 그간 못한 말이 무엇이 그리 많은지 쉼 없이 재잘거렸다.
“그보다, 누나.”
“예. 사샤.”
“전화번호 가르쳐 주세요. 답답했어요.”
“아!”
타티아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사람처럼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더니 사샤로부터 스마트폰을 받아 번호를 찍어 주었다.
타티아나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은 그녀 개인 용도로 쓰는 것으로, 다른 공적인 모든 일엔 그녀의 경호원이나 집의 번호가 사용된다.
때문에 타티아나의 주소록엔 정말 몇 안 되는 친한 사람들만 저장되어 있었다. 거기에 이젠 사샤도 추가된 것이다.
에르네스트는 사샤가 이렇게 당당하게 전화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요구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여덟 살에게 두려움이란 없는 것인가.
그는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앞장서는 타티아나와 사샤를 잠시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식당 안은 한산했다.
“사람도 별로 없네.”
에르네스트는 별생각 없이 식판을 들고 급식을 받으러 갔고, 곧 사람이 왜 없는지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 학교의 급식으로 어떻게 올라오게 된 건지 이유를 모를 생선 커틀릿이 메뉴에 있었다. 외부 식당으로 도망친 학생들이 어지간히 많은 듯했다.
솔직히 혼자라면 대충 먹어도 상관없었지만, 지금은 혼자가 아니었다. 에르네스트는 지금이라도 나가서 먹지 않겠느냐고 제안해야 하지 않나 고민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이, 타티아나는 식판을 들고 앞서가서 급식을 받고 있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웃으며 급식소 직원에게 인사하는 걸 보니 얼이 빠질 정도다.
“…….”
에르네스트가 약간 벙 쪄서 바라보자 옆을 지나치던 아나스타샤가 말했다.
“왜. 나가서 먹게?”
“아니……. 그렇잖아?”
“포기해.”
아나스타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타티아나는 입학하고 한 번도 점심을 밖에서 먹은 적이 없으니까.”
“뭐라고? 진짜?”
“응. 진짜.”
“대체 왜?”
에르네스트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중앙음악학교의 급식 수준도 물론 다른 학교들에 비하면 엄청나게 호화로운 편에 속했지만, 재벌가에서 평생 좋은 것만 먹고 자랐을 타티아나의 입맛은 어떻게 생각해도 평균 이상이어야 했다. 가끔 이렇게 생선 커틀릿 같은 지뢰가 나온다면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한 번도 피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해가 안 간다. 대체 왜?
아나스타샤가 대답했다.
“밖에 나갔다 오는 시간도 아깝고, 뭣보다 학생은 급식을 먹어야 한대.”
“그러니까 대체 왜.”
“그게 규칙이라던데.”
“무슨 규칙? 우리 학교에 그런 규칙 없는데.”
“나도 모르지.”
아나스타샤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미 달관한 표정이다.
에르네스트는 헛웃음을 지었다. 천하의 아나스타샤가 이렇게 만사 포기한 듯한 표정을 짓는 건 정말 타티아나와 함께 있을 때뿐이었다.
“……하하.”
여전히 모를 구석이 많지만, 약간의 안도를 느끼며 에르네스트는 타티아나의 뒤를 따라갔다.
사샤는 타티아나와 바로 옆자리에 앉았고 에르네스트와 아나스타샤가 같이 앉았다.
식전 기도를 올리고, 모두 포크를 들었다.
가벼운 환담은 대부분 타티아나와 사샤의 입에서 이루어졌다. 타티아나는 평소 말이 그리 많다고 할 수 없는 성격이었지만 사샤의 앞에선 그렇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 몫의 소시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소시지 조금 더 드시겠어요? 사샤.”
“네.”
사양도 안 하고 넙죽넙죽 받는다. 에르네스트는 묵묵히 입안에 든 것들을 씹으며 사샤를 바라보았다. 언제 집에서 그렇게 가르쳤냐? 사샤.
사샤는 그 시선을 느끼지 못했는지 타티아나가 포크로 소시지를 찍어 건네주는 것을 해맑게 웃으며 받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피로조크, 러시아식 고기만두를 타티아나에게 주었다.
“누나에겐 이걸 드릴게요.”
“고마워요.”
저게 정당한 교환비인가? 잘 모르겠다. 사샤가 생선 커틀릿을 답례랍시고 타티아나에게 줬다면 에르네스트가 끼어들어서 한 마디 했겠지만, 피로조크는 상당히 애매했다.
도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서로 안 만나고 버텼을까 싶을 정도로 타티아나와 사샤는 화기애애했다. 정말 그림으로 그린 듯한 광경이었다.
“…….”
에르네스트는 말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보기 좋다. 그런데 그의 입안에 든 생선 커틀릿은 정말 맛이 없었다.
이 기묘한 구도를 먼저 깨뜨린 것은 아나스타샤였다.
“사샤, 저번엔 못 물어봤는데. 요즘 1학년들은 뭘 배워? 우리 때랑 조금 바뀌었다던데.”
“배우는 거요?”
사샤는 음, 하고 생각에 잠기더니 지금 배우고 있는 곡들과 음악 이론 등을 이야기했다.
“바르톡은? 안 해?”
“어……. 모르겠어요.”
“많이 바뀌었네, 정말.”
아나스타샤는 고개를 저으며 늙은이 같은 소릴 했다. 타티아나는 사샤와 아나스타샤를 번갈아 보더니, 뭐가 그리 우스운지 갑자기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한동안 그렇게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사샤가 이제 학교 이야기는 재미없다는 듯 타티아나에게 물었다.
“타티아나 누나 이제 유명해진 건가요?”
“……예?”
갑작스런 질문이었다. 타티아나는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 되물었다가, 곧 그것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청소년 콩쿠르 우승 이후의 근황에 대해 묻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고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윽고 타티아나가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사샤.”
“에르네스트 형도 그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나서 엄청 유명해졌어요. 연주회도 많이 하고요. 누나는 뭐 해요?”
“전…….”
타티아나가 말끝을 흐렸다.
그도 그럴 것이, 타티아나는 그 후에 딱히 이렇다 할 활동이란 것을 안 하고 있었다. 얌전히 학교에 다닐 뿐이었다.
때문에 텔레비전이나 신문 같은 각종 매체에서도 앙팡 테리블이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반짝 조명했다가, 금방 사그라들었다. 매체들이 조용해지자 학교 친구들 역시 조용해졌다.
에르네스트 때와는 달랐다. 에르네스트는 우승 이후에 적극적으로 에이전시와 프로모터 등을 찾아 연주회를 열었던 것이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듯, 느긋하게만 보인다.
그 점도 에르네스트에겐 의문이었다. 늘 성실하고 스토익한 그녀는 느긋한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어 보였다.
잠시 생각하던 타티아나가 말했다.
“연주회…… 해야죠. 그리고 음반도 내려고 하고 있어요.”
“음반요? 에르네스트 형도 음반 없는데. 형이 졌네.”
“아하하, 사샤. 에르네스트는 마음만 먹는다면 음반은 언제든지 낼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요?”
“그래요.”
실제 가능한지 여부는 둘째 치고 타티아나는 다시 한 번 강하게 긍정했고, 사샤는 에르네스트를 쳐다보았다.
아나스타샤가 옆에서 작게 비아냥거렸다.
“그거랑은 별개로 네가 졌던 건 맞잖아?”
“시끄러워. 조용히 안 해?”
“솔직히 지금도 자신 없지?”
“뭐?”
에르네스트가 매섭게 눈을 뜨며 아나스타샤를 노려보았다.
분명 비공식적으론 타티아나에게 패배를 인정하긴 했다.
하지만 한 번뿐이었고, 그땐 조금 방심하기도 했었다. 져 놓고 무슨 변명이 필요하겠느냐만, 그 내용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아나스타샤가 멋대로 떠드는 건 상당히 불만이었다.
“붙어 봐야 알지. 조만간 할 거야.”
“조만간? 언제?”
아나스타샤는 조금 놀라며 물었고, 에르네스트는 약간 당황했다. 지금 타티아나는 컨디션이 안 좋다. 에르네스트는 더듬거리며 답했다.
“다, 다음 주 정도면 되지 않겠어?”
“다음 주? 글쎄…….”
“왜, 뭔데.”
아나스타샤는 사샤와 이야기 중인 타티아나를 힐긋 곁눈질하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쟤 이번 건 조금 오래 갈 것 같아서…….”
“뭔 소리야 또.”
그게 오래 가기도 해?
에르네스트가 떨떠름하게 묻자 아나스타샤는 고개를 팩 돌려 버렸다.
“몰라.”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에르네스트는 인상을 썼지만 입 밖으로 내어 물을 순 없었다. 내용도 내용이었고, 아나스타샤의 눈빛이 낮게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에르네스트는 다시 타티아나를 돌아보았다. 사샤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타티아나에겐 그 어떤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
식사를 마친 네 명은 음료를 하나씩 들고 학교 앞 벤치로 나왔다.
여전히 3월의 날씨는 추웠지만, 낮 기온은 벌써 상당히 올라가 있었다. 4월까지도 겨울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야외에 나와 활동하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날씨였다.
에르네스트는 근처를 대충 서성였고, 아나스타샤와 타티아나, 사샤는 나란히 붙어 앉았다.
“제가 열어 줄게요.”
“정말요?”
사샤가 타티아나의 음료를 받아 갔고, 타티아나는 조막만 한 손으로 뚜껑을 열려고 하는 사샤가 귀여운지 싱글벙글 웃으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동안 애를 쓰더니, 간신히 사샤가 뚜껑을 열었다.
“고마워요. 사샤. 힘도 세네요.”
사샤는 칭찬을 받아 기쁜지 흡족하게 웃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에르네스트는 묘한 시선을 느꼈다.
“……뭐야.”
“따 줘.”
“미쳤어?”
“그냥 따 봐. 말 많네 진짜.”
아나스타샤가 캔을 내밀었다. 에르네스트는 오랜 친구가 미쳐 있길 바라진 않았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 얘 왜 이래?
에르네스트가 정말 미친 사람 보는 눈을 하자 아나스타샤는 에휴, 하고 한숨을 쉬더니 직접 캔을 땄다. 그리고 목이 타는지 벌컥벌컥 마셨다. 호쾌하기도 했다.
“전에 레슨을 받았는데요……. 지도 선생님을 골라야 한다고 해서요. 잘 모르겠어요.”
“에르네스트는 어떻게 말하던가요?”
“좋아하는 사람을 고르라고 하던데요? 그런데 선생님을 그렇게 고르는 거예요?”
“괜찮지 않을까요? 중앙음악학교의 선생님들은 모두 굉장하신 분들이니깐요.”
“그래요?”
타티아나와 사샤는 무슨 할 말이 그리 남았는지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선후배로서의 이야기 역시 거기에 들어갔다.
그렇게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막 다 마신 음료 병을 내려놓으며 사샤가 물었다.
“누나.”
“예.”
“오후엔 뭐 해요?”
“연습해야죠.”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사샤가 말했다.
“저랑 같이 하면 안 되나요?”
가만히 듣고만 있던 에르네스트가 순간 어깨를 움찔했다.
요 며칠간 신경 쓰였던 일이다.
타티아나는 평소 친구들의 연습을 도와주는 것에 대해 자신의 연습도 뒤로 미뤄 두고 발 벗고 나서는 편이었지만, 요 며칠은 무슨 일로 충격을 받았는지 같이 놀 땐 놀아도 연습을 할 때만큼은 혼자서 집중하고 싶어 했다.
그건 에르네스트는 물론이고 가장 친한 아나스타샤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나스타샤는 거기에 조금 더 속상해하는 것 같긴 했지만, 어쨌든 타티아나는 얼핏 공평하게 둘 모두를 대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를지도 모른다. 타티아나가 사샤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정말 애틋해 보인다.
“…….”
타티아나는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에르네스트는 정확히 그것을 읽어 냈다.
바로 허락이 떨어지지 않자 조금 의아하게 쳐다보던 사샤가 재차 말했다.
“안 돼요?”
“…….”
어쩌면 승낙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샤가 이렇게까지 부탁하면 어지간해선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 특히 타티아나는 더더욱 약할 것 같았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요, 사샤. 오늘은 안 되겠어요.”
설마, 정말로 거절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에르네스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한숨이 일종의 안도를 담고 있다는 데에, 약간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