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다음 날, 학교에 가서 니콜라이 선배를 만났다.
니콜라이 선배는 직접적으로 막심 선배를 설득해 줄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난 전화로 불러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바이올린과 10학년 반 옆의 복도에 서서 나와 니콜라이 선배는 막심 선배를 기다렸다.
니콜라이 선배가 스마트폰을 보다가 말했다.
“이제 다 왔다고 하니 조금만 기다리죠.”
“예.”
창밖을 내다보며 얌전히 기다리는 동안 약간 긴장됨을 느꼈다.
막심 선배를 연주회 멤버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반드시 내가 해야 할 일이었지만, 그래도 막상 내 주도로 이렇게 같이 하자고 말을 하려니 조금 부담스럽다.
학교에서 시키거나 선생님이 엮어 준 것과는 무게 자체가 다르다.
게다가 막심 선배는 내게 조금 실망해 있을 것 같고.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 난 각오를 다졌다.
그렇게 조금 기다리니 막 계단을 올라 온 남자가 있었다.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와 선명한 이목구비가 인상적이다.
평소 아웃도어 활동도 많이 즐긴다고 한 것처럼 체격도 상당히 좋았다.
막심 선배가 날 보더니 깜짝 놀란 듯 멈춰 서서는 날 불렀다.
“……타티아나?”
니콜라이 선배는 딱히 내가 있다고 말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긴장을 억누르고 명랑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 간만이야.”
선배가 놀랐던 건 잠시뿐이었다. 금방 여유를 되찾은 막심 선배가 다시 내 쪽으로 다가오며 인사를 건넸다.
“아직 코트 입는구나. 하긴, 그저께 비 오고 나서 날씨가 좀 추워졌지? 오늘 학교 오다가 말고 도로 기숙사 가서 코트 가지고 나올까 엄청 고민했었다니까.”
“그런데 그냥 오셨네요?”
“귀찮음은 모든 것을 이기는 법이지. 추위 따위에 아랑곳할쏘냐.”
“아하하.”
“타티아나 너는 추위를 많이 타나 봐?”
“전 작년까지만 해도 감기에 잘 걸리는 체질이었거든요. 그래서 따뜻하게 입고 다니는 것이 약간 버릇처럼 되어 있어요.”
“작년까지? 겨울만 되면 그런 거야?”
“아뇨. 그렇진 않아요.”
작년 겨울, 목소리를 피아노로 옮기는 것을 그녀에게 허락받기 전까지 난 굉장히 허약했었다.
그땐 정말 찬바람만 잘못 잠깐 쐬어도 곧바로 기침이 나올 정도였으니 상당히 심각한 상태였다.
하지만 온전히 몸을 느끼고 다룰 수 있게 된 지금은 그렇게까지 허약하진 않았다.
내 말에 막심 선배는 더 깊게 묻지 않고 가볍게 말했다.
“어쨌든 이젠 아니라면 다행이네.”
안부인사는 여기까지였다. 난 더 이상 이야기를 늘여 나갈 정도로 말주변이 좋지 못했다.
막심 선배 역시 내가 기다리고 있는 의도가 뭔지 살피는 것 같다.
난 조용히 입을 열어 말했다.
“막심 선배님.”
“어, 응?”
“저번엔 죄송했어요.”
먼저 사과부터 건네자 막심 선배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잠깐만……. 왜 네가 사과를 해?”
“이제 와서 말해 봐야 다 핑계겠지만…… 그땐 제가 정말 컨디션이 안 좋았었거든요. 선배님들께 이야기라도 제대로 했어야 했는데, 전 아무것도 못 했죠. 죄송했어요.”
“……허.”
막심 선배가 입을 벌리고 굳어버렸다.
너무 돌직구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늦어진 변명과 사과라면 괜히 말을 돌릴 이유도 없었다.
늦었으니 더더욱 제대로 해야 했다.
상황 파악을 하려는지 막심 선배가 내 뒤편의 니콜라이 선배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는 시선이다. 네가 시켰느냐고 묻는 것 같다.
물론 니콜라이 선배는 아무것도 내게 강요하지 않았다.
막심 선배는 다시 날 내려다보더니,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타티아나, 나야말로 미안해. 부끄럽다 정말.”
난 선배에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으리라곤 기대하지 않았는데, 약간 의외였다.
“솔직히 그때 네가 컨디션 난조였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어. 평소의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빤히 들렸으니까. 그런데 그 상태에서도 넌 연주만큼은 큰 문제없이 잘 해냈지.”
내게 사과를 한다는 것이 부끄러운지 연신 옆 목을 문지르고 있지만 그래도 진심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네게 그런 말을 했으면 안 되는 거였는데. 미안해.”
“아니에요. 연주에 관한 그런 질책이라면 언제든지 달게 받을 생각이에요.”
“그건 질책도 쓴소리도 아니었어. 그냥 내 투정이었지.”
서로 다른 다수의 연주자들이 협연을 하다 보면 당연히 가고자 하는 음악적 방향성에 의견 차가 있고, 그로 인해 다투는 일도 생긴다.
이 다툼이 늘 음악적 완성도를 위해 이성적이고 건설적인 다툼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연주자들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경계가 사라지기도 한다.
자신의 의견을 앞세우기도 하고, 강요하기도 한다. 난 충분히 이해한다.
차이코프스키의 트리오를 연주하면서 내가 막심 선배의 기대와 의도에 부응하지 못했단 것은 내 잘못이지만, 선배 역시 약간 경계를 넘었다는 건 자각하고 있는 듯했다.
막심 선배가 다시 말했다.
“아무튼, 나도 너무 애 같았지. 혹시 앞으로도 기회가 있다면 잘 할게. 나 원 참, 이거 너무 뻔뻔한가.”
그렇게 멋쩍게 말하면서 막심 선배가 웃었다.
난 그런 선배를 보며 마주 웃어 주었다. 막심 선배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 첫 번째 본론이었다면 이번엔 두 번째 본론이다.
“선배님.”
“응?”
“저야말로 뻔뻔한 사람이에요. 그래도 지금 부탁드려야겠네요. 이번 기회에 함께 해 보시지 않으시겠어요?”
“……무슨 소리야?”
선배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가 말했다.
“자선 연주회를 할 생각이에요. 혹시 관심 없으신가요?”
“자선 연주회?”
무슨 뚱딴지같은 이야기냐는 듯 의아해하더니, 곧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고 이해했다. 막심 선배가 다시 물었다.
“어……. 그래? 그건 베르체노프에서 하는 건가?”
“아뇨. 저희 집과는 아무 관계없어요.”
“그럼 뭐야?”
“중앙음악학교 학생 자격으로 하게 될 거예요.”
“학교에서 자선 연주회 하는 건 연말로 정해져 있을 텐데……?”
기본적으로 있는 행사는 연말에 많이 있지만, 자선 연주회 같은 경우엔 중요도가 한참이나 뒤로 밀려 있다.
“작년엔 취소되었다고 들었어요.”
“그…… 뭐 여러 일이 있었지.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하는 마스터클래스랑 또 이러저런 기념 연주회가 겹쳐서 말야.”
막심 선배는 약간 변명조로 그렇게 말했다. 아마 그대로 진행되었다 하더라도 지원자를 별로 찾지 못했을 것이다.
자선 연주회도 연주회다.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청중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음악을 선보여야 한다.
중앙음악학교 전교생 400명 중 어린 학생들을 빼고 정말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열 수 있는 사람들을 추려 보면 생각보다 적다.
그 학생들이 각종 중요한 행사에 집중하게 되면, 결국 미뤄지게 된다.
자선 연주회가 뜻깊은 행사라는 건 모두가 다 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이다.
“어렵다는 것 알아요. 하지만 연주회 경험이 필요하다면 때때로 할 수도 있겠죠. 이번엔 제 주도로 하게 되었어요.”
“자선 연주회를 선생이 아닌 학생이 주도한다는 건 내가 학교를 10년 넘게 다니면서도 처음 들어 보는 말인데.”
“물론 선생님도 계시죠. 미하일 표도로비치 선생님이요.”
“미하일 표도로비치? 모르겠네, 피아노과 선생님은.”
“제 지도 선생님이세요.”
“흠, 그래?”
진지한 눈으로 날 바라보던 막심 선배가 문득 미소를 지었다.
“학교에서 공문으로 올라온 것 없이 이렇게 부탁받아 보긴 또 처음이네.”
“공문을 올려 다른 분을 구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전에, 전 선배님들에게 이렇게 먼저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은연중에 거절해도 괜찮다는 뜻을 내비쳤더니 되레 막심 선배는 더욱 관심을 보이며 눈을 빛냈다.
선배가 조금 더 다가오며 물었다.
“그러면 궁금한 거 딱 하나만 물어볼게, 타티아나. 왜 우리야? 그럴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조금이나마 아는 사이라서?”
“아뇨.”
“그럼 무슨 이유인데?”
당연한 걸 왜 묻는지 모르겠다.
“실력이요.”
“뭐? 하, 하하.”
내 대답에 막심 선배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디에 웃을 거리가 있는지 모르겠다.
난 막심 선배의 바이올린과 니콜라이 선배의 첼로에 한 마디로 반했고, 다른 현악기과 학생들의 연주를 모두 들어 보진 못했지만 선배들이라면 충분히 최상위권의 연주자임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굳이 다른 사람을 찾아 헤맬 필요는 없었다.
진지하게 바라보자 선배의 웃음이 점점 잦아들었다.
“할게. 그렇게까지 말하면 안 할 수가 없잖아.”
“승낙해 주셔서 기뻐요.”
“거 참…….”
막심 선배는 연신 뒷목을 만지작거렸지만 화가 나서 혈압이 올라 그러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조금 기분 좋아 보이기도 했다.
난 나대로 기분이 좋았다. 어쩐지 잘될 것 같단 느낌이 들었다.
기분 좋게 웃고 있는데, 막심 선배가 날 불렀다.
“타티아나.”
“예?”
“잠깐 이리 와 볼래?”
무슨 일인가 싶어 손짓하는 대로 따라가니 선배가 바이올린과 10학년 반의 창문을 가리켰다.
“저기 봐.”
“…….”
그 너머를 보니 일찍 등교한 학생들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다섯 명 정도였다.
소수정예에 가까운 중앙음악학교의 특성상 학생이 많진 않다. 아마 모두 등교하더라도 열 명 남짓일 것이다.
막심 선배가 내 등 뒤에 서더니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한 명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 친구들이긴 하지만, 하나같이 다 괴물들이야. 저쪽의 얍실이는 비엔나 청소년 콩쿠르 우승자고, 저기 있는 갈색 머리는 과르넬리를 소유하고 있는 재단에서 연 콩쿠르에서 입상해서 과르넬리를 대여받아 가지고 다니고 있어.”
“과르넬리요?”
“그래.”
과르넬리라면 스트라디바리우스, 과다니니와 더불어 세계 3대 명품 바이올린으로 손꼽히고 있었다.
30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면서 대당 가격이 수천만 루블도 가볍게 넘어가는 엄청난 바이올린이다.
막심 선배가 설명해 주는 친구들은 모두 굉장한 연주자들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지만 저 중에서 네가 뽑은 카드는 나란 말이지.”
막심 선배가 내 옆에서 말했다.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선배가 씩 웃었다.
“교체당하지 않도록 열심히 해 볼게.”
“그, 그럴 생각은 없는데요.”
조금 당황스럽다. 내가 선배들을 선택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대로 교체를 하거나 할 수 있진 않을 텐데.
***
레슨이나 연습 등으로 빠진 사람을 제외하고 오늘 스터디룸에 모인 것은 아나스타샤, 발렌티나, 리처드, 사샤로, 나까지 5명이었다.
1시간 정도 함께 교과 공부를 하고, 음악이론에 대한 연구도 했다. 그리고 잠시 다과를 먹으며 휴식시간을 함께 가졌다.
크래커를 먹으면서 스마트폰을 잠시 보고 있는데, 사샤가 옆에 다가와서 말했다.
“누나. 너무 짠 거 많이 드시지 마세요. 건강에 안 좋대요.”
“어머……. 고마워요, 사샤.”
짜고 신 음식들이 많은 러시아에서 짠 걸 안 먹으면 뭘 먹어야 할까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샤가 이렇게 말해 주는 건 고마웠다. 귀엽기도 해라.
그런데 옆에서 딴지가 걸려왔다.
“그럼 이건 누가 먹어?”
“리처드 형이 먹으면 되겠네요.”
“이 녀석 봐라?”
리처드가 눈썹을 치켜세웠지만 사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웃음소리와 함께 환담이 오갔다. 적당히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무렵, 조심스레 모두에게 말했다.
“저기, 모두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응? 뭔데?”
아나스타샤가 과자를 집어 먹으며 물었고, 내가 말했다.
“모두 처음 들으시겠지만……. 저, 다음 달경 학교에서 하는 자선 연주회에 나가기로 했어요.”
“어?”
“자선 연주회?”
다들 황당하다는 듯한 반응이다. 모두 이 학교에 오래 다녀서인지 연말에나 하는 자선 연주회를 왜 지금 하느냐는 투였다.
게다가 거기에 내가 나가기로 했다는 말에 다들 놀란 듯했다. 아나스타샤가 말했다.
“그런 말 없었잖아? 타티아나.”
“갑자기 하게 되었네요.”
“미하일 선생님이 하라고 한 거야?”
“아뇨, 제가 하고 싶어서 하겠다고 부탁드렸어요.”
아나스타샤는 묘한 표정이다.
한참을 그렇게 날 바라보던 그녀는 갑자기 손을 뻗더니 내 손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유심히 내려다봤다.
“아, 아나스타샤?”
“……뭐 이런 애가 다 있어.”
난 아나스타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상황 파악을 했다.
내가 자선 연주회라는 단어를 이루고 있는 두 단어 중 ‘자선’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건 정말 오해였다. 난 자선 연주회의 ‘연주회’에 초점을 두고 있었으니까.
“그, 말이 자선 연주회이지 사실 제 부족한 연주회 경험 때문에 하는 거예요. 오해 마세요.”
“오해는 무슨 오해야? 난 오해 같은 거 한 적 없어.”
급히 말했지만 아나스타샤는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 손을 놓지 않고 그대로 그녀가 말했다.
“아무튼 그래서 뭐야.”
“혹시 찬조 연주자로 함께해 주실 분이 있다면…….”
“내가 할게.”
아나스타샤가 곧장 답했다. 내가 연주회가 아니라 전쟁터로 가자고 해도 즉답할 것 같은 기세였다.
“생각을 조금 더 해 보셔도 괜찮은데요…….”
“됐어. 그냥 할래.”
“……예. 고마워요.”
아나스타샤가 함께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흔쾌히 들어 줄 줄은 몰랐다.
난 손을 맡긴 채로 옆을 보았다. 발렌티나와 리처드의 의사도 물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남은 사람들 중 가장 먼저 의사를 밝혀 준 것은 발렌티나였다.
“음, 난 패스.”
“발렌티나?”
그녀는 손을 살래살래 흔들며 빙긋 웃었다.
“다음 달 바쁠 것 같거든. 대신 아나스타샤랑 잘 해 봐.”
“알겠어요.”
난 발렌티나의 일정을 다 알지 못하지만 바쁜 일이 있다는데 억지로 부탁할 생각은 없었다. 아쉽게 되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리처드는 오늘도 단호했다.
“난 안 돼. 알지?”
“그래도 한 번 나가 보시는 건…….”
“이러지 마.”
리처드의 비밀을 알고 있는 내가 그를 너무 곤란하게 하는 것도 좋지 않았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리처드는 참고로 한승우 역시 다음 달엔 콩쿠르가 잡혀 있어서 아마 다른 데에 시간을 내기 힘들 거라고 말해 주었다.
난 한승우가 학교생활이나 제대로 하는지 늘 걱정이었는데, 그 역시 연주자로서 착실히 커리어를 만들어 나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샤가 날 불렀다.
“누나.”
“사샤.”
사샤는 서 있어도 내 앉은 키와 비슷했다. 이제 여덟 살. 너무 어린 나이다.
“정말 미안하지만 사샤는 다음에 부탁드릴게요.”
“괜찮아요.”
“아니면 음…… 같이 듀엣곡을 할까요? 그 정도라면 사샤에게도 부담이 적을 테고……. 어떻게 생각하세요?”
혼자 무대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같이 해 준다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넌지시 물어본 것인데, 사샤는 다른 의견을 냈다.
“고마워요, 누나. 그런데 저 말고 에르네스트 형을 데려가세요.”
“……예?”
사샤가 이렇게 말할 줄은 몰라서 되묻고 말았다.
“에르네스트요?”
“형이라면 누나가 하자는 대로 할걸요.”
물론 나중에 에르네스트에게도 제안해 볼 생각이었다.
그가 연주회에 함께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연주회가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발렌티나가 말했다.
“가, 갑자기 에르네스트가 왜 나와? 여기에 없잖아?”
“형은 누나 친구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난 조금 의아했다. 발렌티나야말로 에르네스트가 얼마나 대단한 연주자인지 잘 아는 사람일 텐데, 이렇게 반대하듯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약간 당황해서 발렌티나를 보고 있는데, 사샤가 재촉했다.
“전화해 보세요. 형한테.”
“아…….”
“제가 할까요?”
“아뇨, 제가 해 볼게요. 레슨이나 연습 중일지도 모르니까 메시지로…….”
연주회에 함께해 달라는 말은 사샤를 통하기보다 내가 직접 하는 게 맞았다.
난 에르네스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잠깐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가능하겠냐는 짧은 메시지였다.
“……?”
답장은 거의 3초 만에 날아왔다. 당장 이곳으로 오겠다는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