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화
정신이 몽롱하다. 희미한 의식으로 느릿하게 손을 든다. 어쩐지 감각이 둔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난 무대 위에 올라야 하는데. 손에 이렇게 힘이 안 들어가선 피아노를 칠 수가 없다. 조금 초조해진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아니, 난 알고 있었다.
자각함과 동시에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손을 내려다보려는 순간,
“읏……!”
잠에서 깨어나며 짧게 비명을 질렀다.
급히 몸을 일으켰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으…….”
요동치는 심장을 움켜쥘 순 없어서 오른손으로 가슴께를 누르며 심호흡을 했다.
흐릿한 시야로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약하게 떨리고 있긴 하지만 별문제 없어 보인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조금 진정이 되고 나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작년엔 꽤나 자주 불안감을 느끼곤 했지만, 성악을 배우고 피아노 연주자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 가닥을 잡아 나가면서는 희미해졌던 불안감이었다.
막연하게나마 운명이라는 것이 내게 다시 피아노를 허락해 주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내가 피아노를 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아무것도 안 하고 방 안에만 있어도 손에 문제가 생길 것이고, 내가 피아노를 칠 운명이라면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더라도 멀쩡할 수 있을 것이다.
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조금 운명론자가 되어 있었다.
그건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언제 다시 거두어 갈지, 혹은 내버려 둘지 알 순 없지만 적어도 지금 난 조금 무리해서 연습을 하거나 주방에서 식칼을 다룰 수 있을 정도의 자신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악몽을 꿀 정도로 불안해진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슬립의 등허리가 식은땀으로 축축하다.
손을 들어 눈가를 닦아 내고, 스마트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2시였다.
11시 즈음 잠자리에 들었으니 내 기준에선 적당히 잔 것이지만, 그래도 이런 악몽을 꾸고 강제로 일어나게 되어서야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악몽을 꾸게 된 원인은 굳이 깊게 생각해 볼 것도 없었다.
오늘은 바로 연주회 당일이다.
수많은 연주자들이 겨루는 콩쿠르도, 학교에서 수업의 일환으로 하는 위클리 리사이틀도 아닌, 500석도 넘는 규모의 연주회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만, 처음이었다.
“…….”
1년도 더 된 일이고, 이젠 잊어야 할 때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트라우마처럼 내 가슴 한편에 깊게 각인되어 있는 기억들은 잊을 만하면 불현듯 깨어나 날 뒤흔들었다.
미련, 갈망, 후회, 분노, 열의. 날 망령으로 만들고 다시 피아노 앞에 앉힌 강렬한 감정들. 난 그것들을 어느 하나 쉽게 떨쳐 내지 못했다. 아직도.
링컨 센터 같은 곳에서 리사이틀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조금 나아질까? 잘 모르겠다. 확신할 수가 없다.
내가 무엇을 이루건 평생 이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우울해졌다.
“후…….”
스마트폰을 든다. 아무 생각 없이 메신저를 켜고 등록되어 있는 몇 안 되는 친구들을 살피는데, 그중 한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자?]
불과 2분 전에 도착한 에르네스트의 메시지였다.
난 반사적으로 답장을 보냈다.
[아뇨, 아직.]
[통화할래?]
조금 주저했다. 새벽 2시에 지금 에르네스트와 통화를 해도 되는가. 난 순간적으로 그런 계산까지 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렇게 갈등하는 사이 전화가 걸려왔다. 난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중얼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 타티아나.
“……에르네스트.”
그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맴돌다가, 어깨 근처에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안도감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르네스트가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 너도 잠 못 자고 있나 보네. 그래도 컨디션 조절은 해야지.
난 고개를 숙여 내 차림을 내려다보았다. 잠을 못 잔 것이 아니라 자다가 깬 것이지만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에르네스트야말로 긴장하셔서 못 주무신 것은 아닐 것 같은데. 왜 아직까지 깨어 계신가요?”
- 응? 나도 긴장해. 왜 안 하겠어?
“에르네스트는 이런 연주회를 자주 해 보셨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 그때마다 매번 긴장했었어. 지금도 그렇고.
에르네스트가 툴툴거렸다.
전날 막심 선배와 자존심을 세울 땐 연주회 같은 건 충분히 익숙한 것처럼 말하더니, 내겐 의외로 솔직하다. 난 그만 웃고 말았다.
내 웃음소리를 듣고 무엇을 생각했는지, 에르네스트가 중얼거렸다.
- 사실은 그냥…… 생각이 조금 많아서 뒤척이다 보니까 잠이 안 오길래.
“무슨 생각을 하셨는데요?”
- 벼, 별건 아니고. 그냥…… 아나스타샤랑 할 연주에 대한 거나 뭐 그런 거지.
에르네스트와 아나스타샤 두 사람은 내 기대 이상으로 열정적으로 연습했다.
본래 더할 나위 없이 천재인 에르네스트는 둘째 치고, 아나스타샤는 연습하는 한 달 사이 실력이 몇 계단은 뛰어오른 것처럼 느껴졌다.
에르네스트와 합을 맞추면서 엄청나게 성장한 것 같았다.
최종 리허설에서 본 두 사람의 듀엣은, 말 그대로 감동적이었다.
에르네스트에게 그대로 말해 줄 수 있었다. 연주는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역시 두 사람을 믿길 잘했다고, 듀엣을 부탁한 것이 잘한 선택인 것 같다고.
하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에르네스트는 자신이 여태껏 잠 못 이룬 것은 별것 아니라는 듯 픽 웃더니 말했다.
- 어쨌든, 혹시 타티아나 너도 못 자고 있을까 싶어서 말야. 그래서 메시지 보내 봤는데 안 자고 있었네.
“저도 생각을 좀 하느라.”
- 그래? 넌 무슨 생각 때문에?
“…….”
악몽 때문에 흘렸던 식은땀은 아직도 기분 나쁘다. 난 이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 살짝 주제를 돌렸다.
“내일 돔 무지키로 몇 시 정도에 오실 생각이신가요?”
- 어? 음……. 난 2시 정도에 움직이려고 했는데. 그 정도면 약속한 3시까진 여유 있게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연주회는 5시에 시작된다. 그 전에 연주회 멤버들이 준비를 마치고 모여서 마지막으로 서로를 점검하고 준비하는 데에 2시간 정도의 여유면 적절했다.
때문에 우리는 3시까지 돔 무지키로 모이기로 했다.
난 에르네스트가 1시간 정도 이동 시간을 잡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다시 물었다.
“혹시 지하철로 오시나요?”
- 그러려고. 왜?
에르네스트의 부모님이 태워다 주지 않으실까 했는데, 그렇진 않은 모양이다. 연주회에는 오신다고 들었는데. 따로 오시는 걸까.
어쨌든, 난 약간 두서없지만 당장 하고 싶은 말을 건넸다.
“전…… 아나스타샤와 조금 더 일찍 만나기로 했어요. 준비도 하고 의상도 갖추고 하려고요.”
- 힘들겠네. 여자애들은 준비할 게 많아서.
“……그 후에, 3시 전에 댁으로 모시러 가도 될까요?”
- 갑자기?
“곤란하신가요?”
- 아니, 아니야. 태워다 준다면 나야 고맙지.
에르네스트는 급하게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더니, 문득 웃었다.
- 푸하하.
“왜 웃으시나요?”
- 그거 생각했던 거야? 새벽 2시가 되도록?
“……안 되나요?”
- 안 될 건 없지만.
실실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약간 후회되었다. 그냥 날이 밝은 뒤에 이야기했어도 충분했는데, 괜히 지금 이야기를 꺼낸 것 같다.
하지만 말하고 싶었는걸.
적당히 다시 약속을 확인하고 전화를 끊을까 생각하는데, 에르네스트가 날 불렀다.
- 타티아나.
“예.”
- 너무 걱정하지 마.
“걱……정요?”
- 그래. 연주회건 다른 사람들이건.
순간 말문이 막혀서 멍하니 있는데 그가 이어 말했다.
- 앞으로도 이런 연주회를 할 일은 많을 테니까.
“……아.”
- 지금보다 훨씬 큰 홀에서도. 충분히.
그 말은, 다른 어떤 말보다 확실하게 내게 안도가 되어 주었다.
지금 어떠한 운명적 갈림길에 놓여 있다고 불안감에 떨고 있지 않고, 에르네스트는 그저 지나가는 도중일 뿐이라고 자신 있게 생각하고 있었다.
뻐근하게 목을 움켜쥐고 있는 듯하던 무언가가 풀어지고, 숨쉬기가 조금 더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
- 뭐, 그건 나중 이야기고. 오늘은 당장 있을 연주회에 집중해야겠지? 그러려면 컨디션 관리를 위해 지금 자야 할 거고.
“그렇지요…….”
- 그런고로 나는 잔다. 너도 자, 타티아나.
“……예.”
그가 전화를 끊었고, 난 잠시간 그대로 있다가 이어폰을 찾았다. 불안은 씻은 듯 사라지고 편안해진다.
아무 일 없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
날이 밝고, 난 편한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아버지와 루슬란 오빠는 연주회가 시작되면 오기로 하셨고, 그때까지 난 아나스타샤와 함께하기로 했다. 우린 준비할 것이 많았다.
아나스타샤의 아파트 앞까지 가서 그녀를 데리고, 우린 먼저 점심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가까운 레스토랑에 가서 파스타를 시키니 아나스타샤가 웃었다.
“저번에도 연주 전에는 파스타를 먹는 것 같더니, 무슨 이유라도 있어?”
“음……. 그랬나요?”
“그랬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난 거기서 연주 전에 뭘 먹었는지 기억도 못 하는데, 아나스타샤는 바로 어제 있었던 일인 양 이야기했다.
“메뉴도 지금 시킨 거랑 똑같아. 크림 파스타에 치아바타. 그리고 샐러드. 그렇지?”
“미안해요, 아나스타샤. 전 아무 생각이 없어요. 그때도, 지금도.”
“아하하하하. 뭘 또 미안하다고 그래.”
아나스타샤는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깔깔거리며 말했다.
난 그녀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웃기에 마주 웃어 주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 미안함을 느꼈다.
그렇게 점심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몸단장에 나섰다.
먼저 종종 가는 헤어숍에 들러 머리를 손질했다. 나도 아나스타샤도 딱히 파격적으로 헤어스타일을 바꾸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난 약간 특색을 주기 위해 머리를 한 줌 땋아 내렸고, 아나스타샤는 웨이브를 살짝 주었을 뿐이었다.
“나쁘지 않네. 그렇지?”
“예뻐요, 아나스타샤.”
“고마워.”
아나스타샤는 조금 변화를 주는 것으로 몇 배씩 예뻐지는 것 같았다.
환하게 웃음을 머금은 얼굴이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연주회에 간다고 했더니 네일숍도 추천받았지만 손톱은 손보지 않을 생각이었다.
혹시나 미세한 차이가 신경 쓰일지도 모르니 어제 마지막으로 다듬은 것으로 족했다.
때문에 다음으로 향한 곳은 드레스숍이었다. 며칠 전 아나스타샤와 함께 미리 와서 입어 보고 예약했던 드레스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때 아나스타샤가 두 벌의 드레스를 고르기 위해 드레스숍의 스타일리스트와 거의 2시간 가까이 논의했던 것이 떠오른다.
내가 한 일은 마지막으로 아나스타샤와 스타일리스트가 추려 준 열 벌 정도 되는 드레스에서 하나를 고르는 일이었다.
“다시 봐도 예쁘다. 그렇지?”
내가 고른 드레스는 감색의 편안한 연주회용 드레스였다.
난 편하기만 하다면 무엇이든 괜찮았는데 아나스타샤의 강력한 추천으로 조금 화려한 양식이 들어가 있는 걸 입게 되었다.
소매 부분은 쉬폰으로 되어 있었고 스팽글도 들어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과하지 않고 연주회용으로 입기에 딱 좋을 정도로 담백했다.
“난 어때?”
“잘 어울려요.”
아나스타샤는 평소 붉은 계열의 드레스를 좋아하는 편이고, 나 역시 붉은색이 그녀의 강렬한 이미지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아나스타샤는 연한 옥색의 홀터넥 드레스를 입을 계획이었다.
조금 의외였지만 색이 바뀐다 해서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은 없었다. 너무 잘 어울렸다.
드레스숍의 스타일리스트 도움을 받아 메이크업도 끝내고, 액세서리로는 티아라와 목걸이 등이 추천되었지만, 난 이미 가넷 목걸이가 있었고, 아나스타샤는 가지고 온 귀걸이를 차기로 했다.
준비를 마친 우리는 다시 차로 향했다. 빅토르가 우릴 보더니 한마디 했다.
“연주회 하고 나시면 극성팬들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되는군요. 제가 일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아하하, 빅토르만 믿고 있을게요.”
“걱정 마시죠.”
그리고 미리 약속했던 대로, 에르네스트의 집으로 향했다.
에르네스트가 사는 3층으로 된 주택은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한 고급 주택이었다.
집 앞에 도착했다고 에르네스트에게 전화를 하자 잠깐 들어와서 기다리라며 대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니 에르네스트의 어머니와 사샤가 우릴 맞아 주었다.
“어서 오렴, 타티아나, 아나스타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줌마.”
“정말 예쁘구나. 세상에…….”
에르네스트의 어머니는 찬사를 연발하며 어쩔 줄 몰라 하셨다.
그리고 5시에 연주회에 갈 땐 어머니도 드레스를 입어야겠다며 너무나 즐거워하셨다.
사샤도 예의바르게 인사해 왔다.
“안녕하세요, 누나들.”
사샤는 언제나 귀여웠다. 난 웃으며 사샤를 살짝 안아 주었다.
“오늘 형을 데리고 가겠다고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사샤.”
형을 차에 태워 가는 것에 불과한데도 사샤는 정말 본데 있게 인사했다. 얼마나 예쁘게 인사하는지 내가 황망할 지경이었다.
“형은…… 잠시만요.”
그러더니 사샤는 2층으로 올라갔다. 에르네스트를 재촉하려는 모양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잠시 기다리자 에르네스트와 사샤의 목소리가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내려오면서도 사샤는 재잘거리며 말이 많았다.
그리고 에르네스트가 1층에 도착했다.
연주회용 턱시도에 넥타이까지 매고, 머리는 단정하게 빗어 넘긴 모습이었다. 난 이것에 그의 무장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
나와 아나스타샤를 보더니 에르네스트가 말끝을 흐렸다. 예복에 맞게 절도 있게 각이 잡혀 있던 태도가 갑자기 모양을 잃고 툭 흐트러졌다.
“에르네스트?”
“일찍 왔네!?”
“……? 늦으면 안 되잖아요.”
“그렇지.”
그는 어물쩍 그렇게 말했지만 아나스타샤는 가차 없었다.
“에르네스트. 뭔가 할 말 없어?”
“할 말?”
“그래.”
에르네스트는 물론 나도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아나스타샤의 옆구리 찔러 절 받기는 그야말로 당당했다.
그는 힐긋 내 쪽을 보며 도와 달라는 듯한 시선을 보내다가, 나 역시 아나스타샤와 한편이지 절대 자신의 편을 들어 줄 리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크흠, 흠……. 예쁘네. 두 사람 다.”
“둘 중 누가 더 예…….”
“야, 거기까지 해. 진짜.”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 에르네스트가 날을 세웠고 아나스타샤는 킥 웃으며 그만두었다. 에르네스트의 어머니가 빵 터져선 정신없이 웃으셨다.
난 에르네스트에게 답례를 해 주었다.
“고마워요, 에르네스트도 오늘 멋지세요.”
“그래? 음……. 고마워.”
그는 오늘따라 유난히 쑥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이전에도 몇 번이나 서로 연주회용 복장으로 무장한 채 본 적이 많았는데, 이런 모습은 또 색다르다.
난 희미하게 웃으며 그의 모습을 살피다가, 옥에 티를 발견했다.
“에르네스트, 잠시만요.”
“어……. 음? 어?!”
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에르네스트는 피하려는 듯 어깨를 꿈틀거리다가, 그대로 돌이 된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그의 목께에 손을 뻗어 약간 틀어진 넥타이를 바로 고쳐 주었다.
그리고 어깨를 스쳐 지나가며 손을 내리고,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았다. 음, 완벽한 것 같다.
“조금 틀어져 있었네요.”
“……그래?”
에르네스트는 뒤로 조금 물러서며 중얼거렸다.
“사샤도 아까 내려오면서 틀어졌다고 고쳐 주던데……. 왜 이러지.”
“이젠 정말 문제없어요.”
활짝 웃으며 말하니 에르네스트가 다시 고맙다며 감사를 표해 왔다. 그렇게까지 고마워할 일은 아닌걸요.
그때 등 뒤에서 아나스타샤의 목소리가 들렸다.
“타티아나.”
“예, 아나스타샤.”
“너도 가만히 있어 봐, 어깨선이 흐트러졌네.”
그리고 아나스타샤는 등 뒤에 붙더니, 내 양어깨를 잡았다.
옷매무새가 흐트러졌다면 바로잡아야겠지만, 에르네스트가 바로 앞에서 보는데 그러긴 싫었다.
“자, 잠깐만요, 아나스타샤?”
“응?”
“이따가 하면 안 될까요?”
“지금 눈에 보이잖아?”
아니나 다를까 에르네스트는 눈 둘 곳을 못 찾고 천장을 보고 있었다. 나도 어쩐지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돌리다가, 사샤와 눈이 마주쳤다.
사샤는 미묘한 표정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