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화
카미유 생상.
1835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생상은 어려서부터 두각을 드러내며 프랑스의 모차르트라 불였다.
그는 열 살에 피아노 독주회를 열었고, 열다섯 살에 파리 음악원을 프리미에 프리로 졸업했으며 겨우 26세의 나이로 프랑스 에콜 드 니데르메이에르 음악원의 교수로 초빙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면모를 보였으며 피아니스트이자 오르가니스트였고, 작곡가, 지휘자, 음악학자임과 동시에 시인이자 철학자였고 심리학자, 천문학자, 화가이기도 했다.
요컨대, 천재의 길을 걸었다.
그렇지만 천재의 평생이 늘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다.
생상의 음악은 유럽의 음악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오페라가 주류였던 프랑스에서 그의 기악곡은 그리 인정받지 못했고 혹평을 당하기 일쑤였다.
인정받고자 썼던 13곡이나 되는 오페라도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거기엔 그가 차갑고 비사회적인 성격을 지녔던 탓도 있었다.
음악가가 아닌 남자로서의 삶도 평탄지 못했다.
양성애 성향이 있어 남색을 가까이했으며, 40세에 마리 트뤼포라는 여성과 결혼했지만 두 아들을 일찍 잃고 아내와 별거하게 된 후에는 다시는 보지 않았다.
그 후 홀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남으로서 심각한 우울증을 겪으며 자살까지 생각하다, 세계를 방랑하게 된다.
생상은 많은 부와 명예를 지니고 있었지만, 괴팍스러운 성격과 우울증으로 인해 중년 이후로 평생을 떠돌며 방랑하다가 폐렴으로 객사한다.
생상의 마지막을 지켜본 것은 알제리 소년 시종과 애완견뿐이었다.
위대한 음악가의 마지막이라기엔 굉장히 초라한 결말이다.
하지만 이런 약력으로는 생상의 음악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삶이 우울할지언정, 생상의 음악들은 경쾌하고 아름다운 선율로 명랑함을 물씬 드러낸다.
생상의 대표작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는, 낙천적이고 유머러스한 관현악곡인 동물의 사육제가 작곡된 것이 바로 그가 두 아들을 잃고 이혼한 직후였다.
살아온 삶이나 시대상, 정신 등이 음악으로 드러나는 대다수의 음악가들과 달리 생상의 음악은 아주 냉정하고 보수적이며, 음악 자체에 대한 존중을 담고 있었다.
“…….”
난 두 손을 모아 쥐고 에르네스트와 아나스타샤의 연주를 기다렸다.
생상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폴로네이즈.
폴로네이즈는 본래 폴란드의 춤곡이나, 쇼팽에 의해 독립적인 기악곡으로도 발전하게 된 음악이다.
건반 악기의 대가였던 생상은 쇼팽에 대한 존경을 담아 이 곡을 작곡했다.
눈을 감고 있던 에르네스트가 눈을 뜨고, 건너편의 아나스타샤를 바라봤다. 그리고 오른손을 들어 건반을 치기 시작했다.
낮고, 웅장함이 무대 위로 깔린다.
춤곡에 걸맞게 빠르고 리드미컬한 전주가 시작된다.
에르네스트는 뛰어난 박자 감각과 더불어 손목의 탄력을 다룰 줄 아는 연주자였다.
그가 준비한 박자에 맞춰 아나스타샤가 선율을 연주한다. 거대한 화성이 점차 커지다가, 두 피아노의 강렬한 아르페지오로 발전한다.
높게 치솟다가, 경쟁하듯 서로를 붙잡고 떨어져 내린다.
결코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 긴 트릴이 이어지고, 음악이 시작된다.
에르네스트와 아나스타샤가 연주하는 두 대의 피아노는 두 마리의 말이 끄는 쌍두마차와도 같이 폴로네이즈를 끌어 나갔다.
퍼스트 피아노인 에르네스트는 우아하고 깔끔한 음색으로 안정감을 보였다.
평소 성격에선 잘 드러나지 않지만 에르네스트가 연주하는 음악은 칼날과도 같은 정확성을 지녔으면서도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음색을 그려내고 있었다.
비르투오시티와 사색을 겸비한, 그가 늘 추구하는 러시아 피아니즘이다.
또각또각. 말발굽이 닿는 소리에도 고풍스러움이 서려 있다. 한 마리 말에 비유하자면 의장용으로 보이는 귀족적인 백마와도 같았다.
세컨드 피아노의 아나스타샤는 보다 열정적이고 화사한 멋을 보이고 있었다.
그녀가 만들어 내는 강렬한 음색은 여러 음들이 섞이는 와중에도 또렷하게 두드러졌다.
마치 안장도 없이 당당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흑색의 경주마와도 같다.
이러한 두 사람의 균형과 해석은 생상 특유의 스타일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생상은 대위법의 권위자답게 독일에서 꽃을 피운 보수적이고 정밀한 구성과, 프랑스 특유의 아름답고 낭만적인 선율을 동시에 추구하는 작곡가였다.
에르네스트에게선 냉정한 보수파 생상이, 아나스타샤에게선 변덕스럽고 낙천적인 생상이 느껴진다.
곡 자체가 함유하고 있는 개성과, 두 연주자의 특색이 합쳐지자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즐겁다.
“…….”
객석에서 이 연주를 듣고 싶었다.
두 사람이 연습을 할 때 몇 번이고 함께 들어 보긴 했지만, 이렇게 음향적 준비가 완비된 홀에서 다른 청중들과 함께 단지 청중으로서 음악을 감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연주자이기 전에 클래식 애호가로서 당연한 욕구이리라.
음악은 청중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배려하는지 잠시 잦아들었다가, 막 따라가서 붙잡는 순간 다시 내달렸다.
훨씬 더 거대해진 화성의 규모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두 피아노가 경쟁을 멈추고 전력으로 소리를 합쳐 화성을 쌓아 올리자 단순히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곱절로 소리가 풍부해졌다.
그대로 무대를 무너뜨려버릴 것처럼 두 사람의 피아노가 음악을 엮어냈다. 점점 피아노가 크고, 무거워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 애들도 진짜 장난 아니네.”
음악을 감상하는 도중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예의였지만, 막심 선배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난 내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음악은 다음 주제로 향했다. 두 피아노가 쌍두마차를 끄는 말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듯한 곡조가 지나가자, 이번엔 낮고 조용하지만 격렬하게, 피아노들이 주도권 다툼을 벌였다.
아나스타샤는 높고 가벼운 음을 다루는 데엔 익숙했지만, 낮고 무거운 음은 좀처럼 잘 만들지 못하곤 했다.
때문에 이러한 싸움에선 에르네스트에게 늘 밀려나곤 했었는데, 이젠 전혀 밀리지 않고 동등한 에너지를 보여 준다.
지금 두 사람 간에는 연주자로서의 역량 차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에르네스트는 표정에도, 연주에도 그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고 자신의 음악을 이어 나가고 있었지만, 난 어쩐지 그가 약간 당혹감을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간 함께 연습을 하면서도 아나스타샤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듯하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두 피아노가 주제를 연주하다가 고조되고, 다시 처음 주제로 돌아와서 얽혀 들었다.
보다 커진 마차가 무대를 가득 메운다. 곧 조성이 바뀌고, 더 산뜻하고 화려해진 색채감이 풍부하게 눈앞에 그려진다.
“…….”
전력을 다하는 에르네스트의 품격 있고 강렬한 음색은 프랑스나 폴란드의 것이 아닌 러시아의 것이다.
아나스타샤 역시 보다 집중해서 연주에 임했다. 한 치도 뒤떨어지지 않는 훌륭한 소리가 이 음악을 듀엣 그 이상으로 끌어 올린다.
가슴 벅찬 전진과 전진이 이어지고, 곡은 곧 피날레로 접어들었다.
약간의 변주로 주위를 환기시키고, 음악은 줄어들고 멈추는가 싶더니, 태풍처럼 다시 몰아치며 빠르게 돌진했다.
네 손이 동시에 연주하는 아르페지오가 마치 하나처럼 느껴진다.
쇼팽 특유의 피날레처럼 느껴지는 아르페지오에 이어 큰 화음이 몇 번이고 장식되면서, 곡이 마무리되었다.
연주자 대기실에서도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열기의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메아리쳤다.
나와 막심 선배, 니콜라이 선배 역시 경의를 담아 아낌없이 박수를 쳤다.
“브라보. 브라보.”
막심 선배는 그런 말밖에 하지 않았다.
니콜라이 선배는 박수를 치며 말했다.
“이거, 욕심나는데요. 저 두 분하고도 합주를 해 보고 싶어졌어요.”
“너도 그러냐? 나도 그런데. 특히 에르네스트, 저 친구랑은 정말 한 번쯤 맞춰 보고 싶어. 무대에 올려놓으니까 진짜 물건이네.”
“에르네스트요?”
“음? 어. 그래.”
난 막심 선배가 에르네스트와 연주를 해 보고 싶다고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두 사람은 은근히 서로를 까 내리는 모습을 자주 보였기 때문이었다.
내 시선에 묻어난 의아함을 눈치챘는지 막심 선배가 킥 웃었다.
“내가 평소 저 애를 대하는 것과, 연주자로서 같이 해보고 싶다는 건 별개의 이야기잖아? 그렇게 이상해?”
“……아뇨, 이상하진 않아요.”
정말 음악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면 그 사람 됨됨이가 어떻든 간에 손을 내밀고 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음악가들이었다.
에르네스트는 성격이 건방지지 않다고 할 순 없지만 천성은 착한 아이니까 함께하는 데에 아무 문제없었다.
난 막심 선배와 에르네스트가 합주를 하더라도 정말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저는 아나스타샤 후배님이 눈에 들어오네요. 연습 때 본 모습으로는 저 정도이리라 보진 않았는데……. 아주 개성적이고 멋져요.”
니콜라이 선배는 아나스타샤에 대해 냉정하고도 솔직한 평을 했다.
난 친구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에 마냥 기분이 좋았는데, 문득 니콜라이 선배가 이상한 소릴 했다.
“아, 혹여나 오해하진 마시고요, 타티아나 후배님. 바람피우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요.”
“……바람이요?”
“그래요. 저와 막심은 타티아나 후배님에게 완전히 반해 있으니까요. 지금 저 후배님들에게 한 칭찬으로 혹시 트리오의 피아니스트를 바꾸거나 하리라는 불안을 가지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
반해 있다는 건 당연히 음악적으로 그렇단 거겠지? 니콜라이 선배는 물론이고 막심 선배도 에르네스트를 평소 그리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음악적으로는 인정하고 같이 합주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할 정도로 담백하고 상식적인 사람이니까…….
“뭐, 뭐야?”
하지만 막 돌아본 막심 선배는 수상하게 말을 더듬었다. 내가 유심히 보니 막심 선배는 괜히 니콜라이 선배에게 화를 냈다.
“왜 쓸데없는 소릴 해. 그리고 무슨 바람이야? 피아노 주자야 다른 애랑 해 볼 수도 있는 거지.”
“네 말도 맞아. 타티아나 후배님, 우리 다음엔 막심을 빼고 바이올린과의 테스라는 친구랑 같이…….”
“야! 죽을래?”
막심 선배가 소리를 쳤고 니콜라이 선배는 부드럽게 웃었다. 막심 선배가 조용해졌다.
막심 선배도, 니콜라이 선배도, 나도. 우리 세 명은 느끼고 있다.
이 트리오를 이루고 있는 세 명이 이렇게 모이게 될 일이 얼마나 극히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이루어진 것인지.
세상에는 피아노 연주자도, 바이올린 연주자도, 첼로 연주자도 많지만 각각의 개성을 지니고 있고 서로 안 맞는 경우가 허다했다.
협연에 실패하는 연주자들은 정말이지 많다.
그에 비해 우리는 학교에서 만나 상당히 즉흥적으로 트리오를 결성하게 되었지만, 피아노 트리오 중에서도 까다롭기로 유명한 브람스의 피아노 트리오 3번을 겨우 한 달 만에 성공적으로 연주해 낼 수 있을 정도로 조화가 잘 어우러져 있었다.
이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막심 선배도 잘 알고 있다. 선배는 이제 막 실내악의 맛을 본 나와 달리 한참 이전부터 실내악의 명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괜히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니, 아니지. 어차피 상관없는 일이야. 우리 트리오는 이 연주회를 위해 구성된 트리오니까…….”
“…….”
본심이 아닌 말을 굳이 입 밖으로 낼 필요가 있나? 내가 조금 힐난하는 눈초리로 바라보자 막심 선배가 찔끔했는지 주저하다가, 내게 물었다.
“타티아나. 연주회가 끝나도 가끔…… 같이 할래?”
“당연하죠.”
난 즉답했다. 그리고 확실하게 말한다.
“아직 저희는 해야 할 곡이 한 곡 남아 있지만, 그 곡이 끝나도 아무것도 끝나지 않아요. 그렇죠?”
이 연주회는 중앙음악학교의 이름으로 하는 자선 연주회라 이름도 없는 우리 트리오의 데뷔 무대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우리를 묶어 무대 위에 한 번에 올려 보내는 연주회가 끝난들 이 관계가 휘발되어버리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이후에도 몇 번이고 함께 합주를 할 수 있었다. 이런 귀한 인연들은 쉽게 끊어버리기엔 너무나 아깝다.
진심 어린 내 말에 막심 선배가 결국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그래, 그렇네.”
번갈아 나와 니콜라이 선배를 돌아 본 막심 선배가 다시 힘차게 웃었다.
“남아 있는 곡은 최선을 다해 최고의 음악으로 보여 주기로 하고.”
선배가 연주자 대기실 출입구를 바라보았다.
“일단은 두 친구를 맞이해 볼까.”
“예.”
잠시 기다리자 끊이지 않는 우렁찬 박수 소리를 업고, 에르네스트와 아나스타샤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난 환하게 웃으며 친구들에게 찬사를 건넸다.
“브라보, 에르네스트. 아나스타샤.”
“고마워.”
“네 덕분이야, 타티아나.”
두 사람이 대답했다. 하지만 둘 다 표정에 조금 석연찮은 데가 있었다.
그렇게 잘된 연주였는데, 아쉬운 점이라도 있는 걸까?
두 사람은 선배들로부터도 축하를 받고, 답사를 하고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에르네스트가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곧 힘없이 피식 웃어버렸다.
“역시 연습 땐 안 보여 준 게 있었네. 너 그거 알아? 조금씩 타티아나랑 닮아 가는 게 있다는 거. 테크닉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스타일도.”
“그게 문제 있어?”
“없지. 잘하더라.”
“봐준 건 아니지?”
“내가 거기서 음악을 망치지 않고 더 뭘 어떻게? 내 실력으로는 못 해.”
놀랍게도 에르네스트는 실력을 운운했다. 난 정말 깜짝 놀랐다.
여태껏 그와 만나면서도 스스로 실력을 언급하는 경우는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아나스타샤는 마주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잘된 것 같으니 됐어. 대결 좋아하는 네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무승부쯤 되는 거야?”
“……그러지 뭐. 무승부로 하자.”
“묘하게 긍정적이네.”
“글쎄.”
에르네스트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슬쩍 내 쪽을 보며 말했다.
“모두 타티아나가 마법을 걸어 준 덕분이겠지.”
그렇게 웃는 그는 행복해 보였다.
아나스타샤는 그런 에르네스트를 보더니 갑자기 내게 와서 안겼다. 난 조금 놀랐지만 그녀를 껴안았다.
아나스타샤의 목소리가 내 머리 위에서 울렸다.
“잠깐 쉬면 다음 곡은 네 차례니까 아까 받은 건 돌려줘야지.”
“괜찮은데요, 아나스타샤.”
“아니야. 거기에다가 내 것도 줄게.”
그렇게 난 무언가 전해받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