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213화 (213/1,277)

##  213화

모든 준비는 끝났다. 우리는 문이 열린 연주자 대기실 앞에서 기다렸다.

눈앞으로 피아노 트리오를 위해 마련된 무대가 보였다.

당장이라도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게 준비된 몸으로, 난 미하일 선생님의 사회가 끝나길 기다렸다.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인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에 대해 아실 겁니다. 31세라는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1,000여곡에 달하는 작품들을 작곡했고, 그중에서도 가곡 600여곡을 작곡해 가곡의 왕으로 불리고 있죠. 이전까지 가곡이란 작곡가들이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던 부분이었습니다만, 슈베르트에 이르러서 이러한 노래와 반주를 합쳐 예술가곡의 기틀을 잡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왕이라 불릴 만하죠.”

미하일 선생님은 차분히 슈베르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절한 음악가에 대한 슬픔과 동시에 그런 그가 남긴 유산에 대한 환희가 한데 어우러졌다. 관객석의 시선과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오늘은 가곡이 아닌 기악곡 작곡가로서의 슈베르트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슈베르트가 남긴 훌륭한 기악곡들, 그중에서도 실내악들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슈베르트는 현악 콰르텟을 15곡이나 작곡했을 정도로 콰르텟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미하일 선생님은 잠시 숨을 고르고, 이어 설명했다.

“때문에 슈베르트가 남긴 피아노 트리오는 2곡뿐입니다. 하지만 그의 실내악을 논함에 있어서, 또 나아가 클래식 세계에 남겨진 모든 피아노 트리오들을 통틀어 논할 때도 이 곡은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난 때가 왔음을 느꼈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 2번. 슈베르트 말년에 작곡된 최후의, 그리고 최고의 곡을 여러분에게 선보일 수 있어서 기쁩니다. 더 지체하지 않겠습니다. 피아노의 타티아나 유리예브나, 바이올린의 막심 드미트리예비치, 첼로의 니콜라이 콘스탄티네비치의 슈베르트 피아노 트리오 2번을 박수로 맞아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이름이 불리고, 박수가 메아리친다.

막심 선배가 먼저 무대로 향했고, 그 뒤로 니콜라이 선배와 내가 따랐다.

“…….”

쏟아지는 박수 소리는 1부에서 브람스 피아노 트리오 3번을 연주했을 때보다 더 커진 것 같다.

1부에선 우리 같은 학생들이 하는 자선 연주회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면 이번엔 정말 확연한 기대감이 느껴진다.

또렷한 시선과 열기. 콩쿠르 등에선 느낄 수 없는 완전히 일체화된 기대감이다.

이것이 콩쿠르와 연주회의 무대에서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였다. 각 연주자들의 가족, 혹은 팬들이 객석을 채움으로서 복잡한 관계성이 얽히는 콩쿠르장에선 시선과 박수에도 선망, 질시, 절망과 기도 등 수많은 것들이 드러난다.

그에 비해 연주회장에선 다른 사념 없이 하나로 통일된 열기를 느낄 수 있다. 오로지 연주회에서만 주어지는, 오롯하게 청중과 연주자들이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들.

“…….”

난 선배들과 나란히 서서, 이 하나 된 성원에 답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환호가 더욱 커졌다.

고개를 들고, 급하지 않게 차분히 청중들을 바라봤다. 어둠 너머로 반짝이는 눈들이 나와 마주쳤다.

우리가 이 친애하는 클래식 애호가 여러분들을 만족시키고, 세상의 클래식 애호가들을 만족시키고 더 나아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내게 주어진 현실을 다시 본다. 이 몸과, 무대.

그리고 동료 음악가들.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

피아노 앞에 앉아 의자를 당기고, 드레스를 정돈하고, 허리를 폈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막심 선배와 니콜라이 선배가 내 쪽을 보고 있다. 우리는 말없이 눈빛만으로 서로의 의사를 교환한다. 준비는 끝났다.

막심 선배가 활을 든 팔을 치켜들었고, 우리는 동시에 이 장대한 음악을 시작했다.

1악장 알레그로. 세 악기가 동시에 울며 강렬한 화음으로 막을 연다. 베토벤을 계승하는 듯한 시작이다. 하지만 곧 슈베르트의 선율로 돌아간다.

난 최대한 풍성하고 따뜻한 음색을 내기 위해 집중했다.

일전에 구세프 선생님에게서 내게 슈베르트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혹평을 듣기도 했지만, 난 그 후로 꾸준히 슈베르트를 연구했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슈베르트는 가곡의 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위대한 음악가이지만, 살아생전 그 영광을 다 누리진 못했다. 거의 모든 곡들은 그의 사후에 조명받게 된 것이다.

평생을 생활고에 시달리며 불우하게 살면서, 슈베르트는 피아노도 없이 기타로 작곡을 했다. 그러다 1828년 3월, 슈베르트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중들 앞에서 연주회를 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31세에 처음 열게 된 연주회에서 슈베르트는 가장 아끼고 신뢰하는 곡을 무대 위로 올려야만 했다. 천 곡 가까이 작곡한 대작곡가에게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만, 그가 선택하여 직접 연주회의 메인으로 초연한 곡이 바로 이 피아노 트리오 2번이었다.

이 연주회의 성공으로 슈베르트는 첫 피아노를 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겨우 8개월 후,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슈베르트는 등 뒤로 바로 다가온 죽음을 느끼면서도 피아노 앞에 앉아 작곡에 임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음악에는 노도와도 같은 비애나 처절한 사념이 드러나지 않는다.

운명에 대한 희망과 기도. 세상에 얽매인 바 없이 자유로이 방랑하는 영혼 등을 느낀다. 그것들은 결코 어둡게 가라앉지 않는다.

“…….”

우리 세 명의 트리오는 슈베르트의 연주회를 이곳에 다시 재현했다. 시간에 풍화되지 않고 더더욱 밝게 빛나며 현대에도 감동을 가져다줄 수 있는 슈베르트의 음악이 홀에 울렸다.

압도적인 기예보다는 보다 깊은 곳에서 끌어내는 감각적인 음색이 중요했다.

열렬하게 웅변하듯, 사랑스럽게 노래하듯 연주해 나갔다. 막심 선배도 자극적이고 폭발적인 음색보단 훨씬 상냥하고 화사한 음색으로 함께했다. 니콜라이 선배의 포근한 첼로는 마치 피아노와 하나 된 듯 똑같이 움직인다.

“…….”

극적으로 전개되던 주제가 살짝 잦아들며, 문을 열고 나오면 주변의 풍경이 바뀐다.

우리는 역할을 나눈다. 난 피아노로 별똥별이 떨어지는 밤하늘을 그렸고, 막심 선배와 니콜라이 선배는 오솔길을 걷는다.

앞의 길을 보는 것이 아닌, 턱을 치켜들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걷는 걸음걸이는 똑바르고 단호하지 못하다. 약간은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막심 선배와 니콜라이 선배는 마치 한 사람처럼, 내가 그리는 풍경 속에서 걸어 나갔다.

난 이 모든 것을 관할한다. 마치 바로 무대 위에 놓인 피아노가 아닌, 홀 천장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건반을 내린다. 보다 멀리 날아가도록 음들을 다듬는다.

누군가가 굳이 주도권을 가지고 갈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함께 그저 걸어 나갈 뿐이었다. 그저 아름다운 선율을 따라 함께 간다.

피아노는 따로 노는 듯하지만 별빛으로 밤하늘을 수놓고 바이올린과 첼로는 그 밤하늘을 바라보며 걷는다. 우리는 그렇게 음악을 만들어 나갔다.

잠시 내게 선율이 왔다. 연못에 얼굴을 비추어 보듯, 반복되는 선율이 잠시 되풀이되다가, 다시 바이올린에게 향한다. 난 그것을 굳이 틀어쥐지 않고 놓아주었다. 자연스럽게 풍경이 다시 변화한다.

방랑, 자유, 열정. 이것이 우리가 그간의 연구로 얻어 낸 이 악장의 해석이며, 그렇게 해석이 합치가 되었을 때, 우린 비로소 음악이라 불릴 수 있는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오솔길을 걸으면서 노래도 부르고 잠시 쉬기도 하며 우리는 천천히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했고, 이윽고 다다랐다. 마지막으로 바이올린과 첼로가 작게 발을 내딛고, 피아노가 잦아지며 1악장이 끝났다.

잠시, 마음의 프레이즈를 그린다. 1악장의 여운을 이어 가며 선율을 그리다가,

손을 들어 연주를 시작한다.

“…….”

이전까지의 드라마틱한 열정이 산화된 듯한 느낌으로 소리를 낸다. 느긋하지만, 멜랑콜리하다. 아주 독특한 리듬을 가지고 있다.

모든 분위기와 풍경은 내 손에 달려 있었다. 보다 신경을 집중해서 한 음에도 감정이 깃들도록 섬세하게 손끝을 놀린다.

그리고 내가 이끄는 리듬에 따라 니콜라이 선배의 첼로가 낮게 노래했다. 한 선율이 고즈넉하게 울린다. 스웨덴의 민요인 지는 해를 바라보며se solen sjunker에서 온 선율이다.

선율이 한 번 지나가고, 바이올린과 첼로의 반주 위에 내가 다시 반복해서 연주했다. 굳이 감정을 쏟아부을 필요는 없었다. 선율과 화성 자체가 가져오는 비창함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프레이징을 끊어지지 않게 이으며 일관성 있는 리듬으로 건조하게 노래했다.

첼로와 피아노 다음은 바이올린의 차례였다. 막심 선배는 보다 힘 있게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뻐꾸기가 우는 듯한 소리로 바이올린이 운다. 하지만 어디론가 자유롭게 날지 못하고 애처롭게 울고만 있다.

악장은 발전하며 보다 강렬하게 묘사된다. 막심 선배가 서서히 소리를 증폭시킨다. 난 건반을 강하게 터치했다. 막심 선배의 새는 날아오르는가 싶다가, 내 피아노에 부딪혀서 도로 내려앉는다. 다시 한 번, 또.

그리고 잦아든다.

그리고 다시 재현된 주제는 보다 더 애틋해져 있었다. 첼로의 풍부한 표현력과 심오함이 돋보인다. 그대로 우리는 긴장감을 유지하며 나아가다가 결실을 맺기 전에 잦아든다.

이러한 방식은 슈베르트 특유의 스타일이었다. 어떠한 한 주제를 극적으로 끌어올려서 클라이맥스에 올려놓는가 싶으면, 어느새 그 목적성을 잃고 다시 내려놓는다. 그리고 다시 이전보다 앞선 곳에서 곡을 시작한다.

다시 반복하며, 조성을 바꾼다. 갑자기 곡에 변화가 일면서 바이올린이 화사한 노래를 부른다. 이 피아노 트리오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뚜렷이 드러난다.

이 악장은 우울하고 구슬프기만 하지 않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슈베르트의 불안함과 멜랑콜리함을 명징하게 드러내지만, 좌절로 끝맺지 않고 애잔함과 동시에 세련된 명랑함으로 극복해 낸다. 이 대조는 슈베르트의 목소리와도 같다.

하늘로 날아오른 새가 유유자적 활공하며 땅을 내려다본다. 방금까지 딛고 있던 나무도, 땅도 모두 작게만 보인다. 새는 더 높게 날아오른다.

난 새에게 바람을 보내 줄 수도, 장애물이 될 수도 있었다. 왼손으로 청명하고, 또 안전하게 리듬을 잰다.

그렇게 새를 날려 보내고, 앙상한 가지의 겨울나무를 그렸다. 붓으로 길게 그리듯, 마지막까지 첼로가 그 끝을 붙잡고 천천히 마무리 짓는다.

소름이 돋을 만치 감성적이고, 몇 번을 들어도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니콜라이 선배의 신묘한 한 수였다.

난 잠시 숨을 고르고, 홀 전체에 감도는 감정들을 느낀다. 2악장의 노래는 이 피아노 트리오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니만큼 얼마나 이 주제가 잘 전달되었는지가 우리 연주의 성공여부를 판가름해 줄 것이다.

3악장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캐논이다.

세 악기가 돌아가면서 귀여운 주제를 이어 나갔다. 끊임없이 이어져 나가는 선율이 쌓이고 쌓여 하나의 음악을 이룬다.

어느 누구도 과하게 앞서 나가지 않고 서로를 지지했다. 내가 먼저 연주하고, 곧바로 이어서 막심 선배가 받아 주었으며, 난 니콜라이 선배를 반주할 준비를 한다.

우리는 슈베르트가 그린 그림대로 유기적으로 이어져서 마치 빙글빙글 도는 듯한 음악을 만들었다. 세 명이 손을 잡고 도는 와중에 어느 하나가 손을 놓거나 빠르게 돈다면, 원을 유지할 수가 없다.

원을 그리며 도는 것이 끝나고 나면 기분 좋게 술을 마신다. 술에 취한 듯 휘청거리는 박자가 유쾌하다. 난 경쾌하게 손을 움직여 이 단조로울 수도 있는 리듬을 조정해 나갔다. 막심 선배는 신이 난 듯 바이올린과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훨씬 자유롭게 긴 프레이징을 노래한다. 내 의도를 마치 미리 읽고 있기라도 한 듯, 막심 선배는 전혀 문제없이 따라온다.

딱딱 맞아 떨어지게 설계되어 있는 캐논과 달리, 이런 자유로운 구성은 정말 조화롭게 들리게 하기 어려운 음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정밀하게 잘 맞아 떨어지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막심 선배의 실력이 대단하기 때문이었다. 연습을 하면서도 몇 번이고 맞춰 보았지만, 막심 선배는 한 번도 내 의도를 잘못 읽은 적이 없었다.

그렇게 서로 장난을 치는 듯한 음색으로 음악이 만들어진다. 사실은 충분한 대화로 주도면밀하게 계산된 장난이지만 슈베르트가 고안한 장난은 정말이지 사랑스럽다. 자유롭게 음들이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모습은 보고만 있어도 즐겁다.

짧은 스케르초가 지나가고, 조성이 바뀌고 다시 캐논으로 회귀하여 우리는 우아한 원을 그린다. 천천히, 천천히.

내 마지막 발소리를 마지막으로 3악장이 끝난다.

“…….”

잠시 여운을 느끼며, 난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두 사람도 내 쪽을 보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고 있는 막심 선배와 니콜라이 선배를 보며 나 역시 미소를 그렸다. 작은 연습실에서보다 훨씬 더, 청중이 없던 리허설 때보다 훨씬 더, 우리는 본무대에서 그동안 축적해 온 음악적 역량을 십분 발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우리들의 하나의 수렴되는 음악을 마무리할 때가 왔다.

손을 올린 채 잠시 멈추었다. 난 음악이 멎고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도 마음속으로 리듬을 계산하고 있었다. 각 악장 간 얼마간의 텀을 주어야 하는지 명시되어있는 바는 없지만, 그림에 황금률이 존재하듯 음악에도 사람이 느끼기에 가장 적합한 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장 최적의 시간에, 우리 시간예술가들은 다시금 음악을 홀 안에 풀어놓는다.

슈베르트 피아노 트리오 2번. 그 마지막 악장의 시작을 내가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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