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화
에르네스트는 연회장을 막 나가려다가 일리야에게 붙잡혀 끌려갔다. 그리고 일리야와 루슬란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물론 남자들밖에 없는 테이블에서 그것은 대부분 술을 뜻했다.
“절대 안 마셔.”
“와, 중앙음악학교 학생 아니랄까 봐 진짜 깐깐하네.”
“우리 학교 문제가 아니라 형들이 정도를 모르는 것 아닌가 싶은데.”
“이 녀석 말하는 거 보게?”
일리야가 고개를 까딱였다.
에르네스트는 몇 년 전 일리야를 보았을 때 일을 아직도 기억했다. 아나스타샤와 평소처럼 투닥거리는 모습이 거슬렸는지 일리야가 은근히 위협을 가했던 것은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지만 당시엔 정말 겁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에르네스트는 일리야가 무섭지 않았다. 고개를 들고 일리야를 마주 보자 그는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아. 알았어. 알았어. 논알코올 칵테일로 만들어 줄게. 그건 어때?”
“…….”
그것까지 거절하긴 힘들었다. 에르네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건 실수였다.
일리야는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테이블 위에 있는 음료들을 들고 와서 잔에 붓기 시작했다. 주스에 콜라, 온갖 음료들이 섞이면서 독극물 같은 느낌이 되어 갔다.
“우리 집이었다면 얼마든지 다양한 논알코올 칵테일들을 보여 줬겠지만, 여기선 오리지널밖에 보여 줄 수 없어서 아쉽네.”
일리야는 아쉽다는 듯 말했지만 눈은 웃고 있었다. 에르네스트는 잘못 걸렸다는 것을 느끼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자, 네 거야. 논알코올.”
잠시 후, 일리야가 잔을 내밀었다.
“러시안 발레라는 칵테일이 있지. 그리고 이건 러시안 피아노. 내 오리지널이야.”
“…….”
마시면 죽을 것 같은 잔을 내려다보면서 에르네스트가 말했다.
“그거 알아? 형은 뭘 할진 모르겠는데 일단 바텐더에 재능은 없어 보여.”
“응. 바텐더 안 할거야.”
“그럼 뭐 할 건데. 킬러?”
“네가 내 첫 희생자가 되어 줄 거야?”
에르네스트는 그냥 지금이라도 도망칠까 생각했다.
그때였다.
“그거 다 마시면 보내 줄게.”
같은 테이블에 있던 루슬란이 손가락으로 독배를 가리켰다. 이것 때문에 도망칠까 생각 중인데 다 마시면 보내 준다니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에르네스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루슬란을 바라보았다. 이 형은 상식인인 줄 알았는데, 보드카를 대체 얼마나 많이 마신 거지?
그런데 루슬란은 그리 취해 있지 않았다. 살짝 눈이 풀리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의자에 똑바로 앉아서 에르네스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
그 눈빛에서 에르네스트는 정말 복잡한 감정들을 읽어냈다. 그리고 이것이 일종의 시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유치하고 쓸데없지만, 남자들의 호기로움은 가끔 미친 짓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한다.
에르네스트는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빌어먹을, 콜라는 타지 말지.”
그런 유언을 남기고, 에르네스트는 일리야가 탄 잔을 원샷했다.
일리야도 루슬란도 눈을 크게 뜨고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에르네스트가 잔을 다 비우고 소리 나게 테이블 위에 내려놓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박수를 쳤다.
“넌 아직 어리지만 분명히 남자다 에르네스트.”
“…….”
상대할수록 바보가 될 것 같아서 에르네스트는 대꾸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속이 부글거리고 입에선 이상한 맛이 사라지지 않았다.
에르네스트는 가까스로 입을 열어 말했다.
“바람 좀 쐬고 올게.”
“토하려면 테라스로 가지 말고 화장실로 가야지, 여기 메이드분들이 얼마나 고생하시겠냐?”
에르네스트는 더 이상 상대하지 않고 테이블을 떠났다. 일리야와 루슬란은 또다시 건배를 했다. 에르네스트는 둘 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테라스 쪽을 힐긋 보니 이미 막심과 니콜라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에르네스트는 테라스로 나가려던 생각도 접고 그냥 연회장 밖으로 나갔다.
“…….”
문을 닫고 나니 머리가 띵했다. 대체 그걸 왜 마셨지. 불과 30초 전의 자신이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루슬란이 권하지만 않았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텐데.
격렬하게 후회하면서 에르네스트는 속을 잠재울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일단 식당 쪽으로 가 보기로 했다. 속을 달랠 만한 식빵 같은 것을 조금 부탁하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
복도를 걸으면서 에르네스트는 새삼 감탄했다.
베르체노프 콘체른이 얼마나 큰지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사택을 보니 정말 말도 안 되게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타티아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늘 느끼는 점이지만, 이런 곳에 살면서 대체 어떻게 평소에 그렇게 내색을 안 하고 살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였다.
물론 에르네스트 역시 그녀의 이러한 배경에 신경을 안 쓰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타티아나와 평범하게 친구로 지낼 수 있는 것이겠지만.
반대로 에르네스트가 이런 대저택에 사는 입장이었다면 절대 타티아나처럼 굴진 못했을 것이다.
“…….”
그 피아노밖에 모르는 타티아나는 이곳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 에르네스트는 잠든 친구를 신경 쓸 이유가 없다는 생각과, 가서 얼굴을 보고 싶다는 상반된 기분을 느끼면서 멈칫했다.
그 애는 잠에 드는 걸 늘 힘들어했다. 지금도 그럴지도 모른다. 그냥 잘 자는지 확인만 하는 것도 안 되는 걸까.
아직 우린 이성친구일 뿐이고 그 정도 관계는 아니니까?
그냥 연습실에서 피아노로만 서로 이어져 있으면 그만이니까?
“…….”
연회장에서 니콜라이가 대놓고 타티아나에게 왈츠를 신청하던 모습이 떠올라서 약간 짜증이 났다. 에르네스트는 되도록 느긋하고 싶었지만 세상은 그보다 훨씬 빠르게 돌아가곤 했다. 위기감을 느끼고 발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답답함을 느끼지만 조급한 마음을 다시 내려놓았다. 지금은 타티아나와 친구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괜찮았다. 세상 다른 모두가 무슨 생각을 할진 모르겠지만, 에르네스트는 자신이 조급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피아노로 이어진 인연은 다른 그 무엇보다 강하다. 에르네스트는 그 힘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지금 타티아나가 혼자 있을 리가 없었다. 아나스타샤가 수호신처럼 지키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남자인 에르네스트가 못 하는 것들을 아나스타샤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에르네스트는 약간의 안도를 느꼈다.
자기 멋대로인 면이 많은 아나스타샤가 그렇게 다른 사람을 잘 챙길 줄은 미처 몰랐는데, 타티아나에게 있어서 아나스타샤는 꽤나 좋은 친구였다.
물론 불만이 없지는 않다. 아나스타샤가 다른 남자들은 물론이고 에르네스트에게까지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부분에선 약간의 배신감마저 느꼈다. 타티아나를 그만큼 좋아하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적당히 할 필요도 있다.
가만 생각하던 에르네스트는 약간 이상함을 느꼈다. 무언가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싸늘하게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미처 되짚어 보기 전에, 에르네스트는 식당에 도착했다.
그곳엔 고용인들뿐만 아니라 낯익은 얼굴도 있었다.
“아나스타샤?”
“?”
아나스타샤는 길게 내린 금발을 휘날리며 에르네스트 쪽을 돌아보았다. 두 눈이 의아함을 담았다가, 묘하게 휘어졌다.
에르네스트가 물었다.
“뭐 해? 잠옷 바람으로.”
아나스타샤는 가벼운 나이트가운만 입은 채였다. 가운만 입고 돌아다니는 것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손님으로 그러기 쉽지 않을 텐데. 정말 마이페이스적인 성격은 어디로 가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복장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삐딱하게 턱을 틀었다.
“마실 것 좀 부탁하려고.”
“그래? 나도 먹을 것 좀 부탁하고 싶어서 왔는데.”
“……응? 연회장에 있잖아.”
아나스타샤가 말했고 에르네스트는 어둡게 웃었다.
“네 오빠가 나한테 독약을 먹였어.”
“뭐? 너 술 마셨니?”
“아니. 논알코올 칵테일. 일리야 형 특제 오리지널로. 나 아마 앞으로 일주일은 맛을 느끼지 못할지도 몰라.”
“아.”
그것만으로도 아나스타샤는 어떤 상황인지 이해한 듯했다.
“아하하, 내가 오빠 대신 사과할게.”
깔깔거리며 웃는 아나스타샤를 보며 에르네스트는 화낼 기운조차 사라졌다.
에르네스트는 괜히 투덜거려 봐야 나아질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주방에 있는 드미트리에게 부탁했다.
“혹시 식빵 같은 것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식빵 말입니까?”
“다른 게 섞이지 않은, 백 퍼센트 밀가루였으면 좋겠어요.”
“잠시 기다리시죠.”
드미트리는 곧 적당한 걸 내어 주겠다며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기다리면서 에르네스트는 식탁에 앉았다. 아나스타샤는 가운을 입은 상태로 옆에 기대어서서 주스를 홀짝이고 있었다.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에르네스트는 이대로 가만히 있기도 어색해서 먼저 말을 걸었다.
“그래, 아나스타샤. 왜 너만 나와 있어? 타티아나는 자?”
“네가 왜 신경을 써?”
대뜸 그런 말이 돌아왔다. 에르네스트는 스트레스 지수가 확 치솟는 것을 느꼈다.
아니, 궁금하면 안 되냐?
“대체 뭐가 그리 못마땅한 거야?”
“뭐?”
“너 말야…….”
무어라 하려던 에르네스트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하고 싶은 말은 있었지만 지금 여기에서 할 말도 아니었고, 해 봤자 싸움밖에 안 날 말들이었다.
“아니다, 됐어.”
“…….”
에르네스트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언제나 아나스타샤와는 투닥거리곤 했지만 근래 들어 조금 더 잦아진 것 같았다. 타티아나를 과잉보호하는 게 아무래도 그 이유 같다.
이러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나스타샤가 에르네스트의 맞은편에 앉았다. 에르네스트는 조금 놀라서 아나스타샤를 보았다.
그녀는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고는 유심히 에르네스트를 바라보았다. 에르네스트는 어쩐지 품평당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약간 긴장되었다.
아나스타샤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윽고 말했다.
“못마땅한 건 아냐. 솔직히 말할까. 너한텐 조금 미안해.”
“……뭐라고?”
갑작스런 사과에 에르네스트는 당황했다. 아나스타샤가 이렇게 솔직하게 사과해 오는 일이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에 없다.
비현실적인 광경을 마주한 에르네스트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아나스타샤는 피식 웃었다.
“우리 정말 오래 알고 지냈잖아.”
“……그렇지.”
“넌 어떻게 생각하는진 모르겠지만 난 네가 괜찮은 남자라는 걸 알아.”
아나스타샤는 에르네스트를 놀래서 죽일 심산인 것 같았다. 에르네스트는 이어지는 비현실적 상황에 모든 생각들이 멈춰 버리는 것을 느꼈다.
새삼 나이트가운만을 입고 있는 아나스타샤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 치장도 없이 가운만 걸치고 있지만 그의 오랜 친구는 언제 보더라도 미인이긴 했다.
에르네스트는 입만 벙긋거렸다.
“야, 그……. 어…….”
“말더듬지 마. 짜증 나게. 고백한 거 아니니까.”
“……너 진짜 너무하지 않냐?”
갑자기 현실감이 확 찾아들었다. 늘 이런 식이었다. 아나스타샤는 입만 열면 가차 없었다.
에르네스트는 말로는 투덜거렸지만 속으로는 조금 안도했다. 얘는 원래 이런 애였지. 평소 같은 아나스타샤였다.
하지만 역시 평소와는 약간, 달랐다. 날카롭게 올라간 눈매는 오늘따라 조금 처져 있다. 아나스타샤는 주스 잔을 흔들거리다가 말했다.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난 더더욱 어쩔 수가 없어.”
“무슨 소리 하는질 모르겠는데.”
“모르겠다면 그냥 몰라도 돼. 그저 내가 너한테 하고 싶어서 하는 말이니까.”
여자애들은 진짜 모르겠다니까. 에르네스트는 혀를 내둘렀다.
더 이상 무언가 물어보더라도 무의미해 보였다. 에르네스트는 태연하게 물었다.
“아나스타샤. 넌 자고 갈 건가 보네.”
“응. 넌?”
“난 그냥 갈까 싶은데 부모님들이 이야기를 끝낼 생각을 안 하시네.”
“택시타고 가지 그래.”
“너 나한테 왜 그래 진짜?”
에르네스트는 결국 짜증을 냈고 아나스타샤는 쿡 하고 웃었다.
“아 웃겨 정말…….”
무엇이 그리 웃긴지 한참을 웃다가, 아나스타샤는 물었다.
“에르네스트.”
“뭔데.”
“너 생일 언제였지?”
진짜 일부러 이러는 건가.
에르네스트는 오늘따라 유난히 자신을 괴롭히는 아나스타샤를 조금 섭섭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나스타샤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네 생일까지 외우고 다닐 순 없잖아? 안 그래?”
“왜 못 외워?”
“넌 내 생일 알아?”
“알지 당연히. 5월 14일이잖아. 8년을 봤는데 내가 그걸 모르겠냐?”
“와, 역시 머리 좋네.”
아나스타샤는 감탄했다는 듯 칭찬했지만 도저히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냥 됐으니까 가서 자라고 할까?
하지만 아나스타샤는 할 말이 더 있었다. 그녀가 물었다.
“그럼 난 무슨 별자리게?”
“……?”
“그건 모르나 보네.”
“난 그런 거 안 믿어서 잘 몰라. 내 것도 모르는데 뭘.”
“아이고, 여기 한 명 더 있네.”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아나스타샤가 웃음을 터뜨렸다. 에르네스트는 영문을 몰라 아무 대꾸도 못 했다.
다시 아나스타샤가 물었다.
“어쨌든, 언제냐고.”
“6월 16일이야. 너랑 별로 차이도 안 나.”
“그리고 보니 그랬던 것 같아. 내 생일파티 하고 한 달쯤 있으면 네 생일파티 했었지.”
“이제 기억 나냐?”
“그건 그렇고. 음…….”
에르네스트의 생일을 알아낸 아나스타샤는 스마트폰을 들더니 무언가 검색하기 시작했다. 생일 선물이라도 사 주려는 건 아님이 분명했다. 에르네스트는 아무 기대 없이 아나스타샤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에르네스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쌍둥이자리네?”
“쌍둥이자리?”
“응.”
고개를 끄덕여가면서까지 대답하는 아나스타샤에겐 이전까지의 시니컬하던 태도가 전혀 없었다.
“엄청 좋네. 재주도 많고 머리가 좋고 재치 있는 성격이래.”
“…….”
대체 왜 얘가 좋아하지?
에르네스트는 어이가 없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것처럼 굴더니 갑자기 왜 이런단 말인가? 쌍둥이자리라서 그녀가 좋아할 이유가 뭔지 설명이라도 좀 해 주었으면 좋겠다.
뭔진 몰라도 순수한 의도로 별자리를 물어본 것 같진 않다는 느낌이 든다.
에르네스트는 중얼거리며 물었다.
“너 원래 그런 거 찾아보고 그랬어? 아나스타샤.”
“아니. 별로.”
“그런데 왜?”
“약간은 재미있더라고.”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하고는, 아나스타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먼저 갈게. 에르네스트, 잘 자.”
그리고 쿨하게 인사말을 던지고는 그대로 식당에서 나가 버렸다.
홀로 남겨진 에르네스트는 아나스타샤가 별자리에 왜 그렇게나 기뻐하는지 궁금해지기도 해서 스마트폰을 들었다.
쌍둥이자리에 대한 것들을 찾아보아도 별 감흥이 일지 않았다. 재치 있고, 변덕스러운 성격의 별자리. 천천히 읽어 봐도 무슨 소리들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에르네스트는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게 뭐가 그리 잘 맞는다는 건지 모르겠다.
다시 스마트폰을 껐다. 여기에서 아나스타샤가 뭘 읽어 냈든 상관없는 일이다.
낭만도 없는 현실주의자라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에르네스트가 믿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과 피아노뿐이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운명을 대하는 것이야말로 낭만적이지 않은가?
잠시 기다리자 드미트리가 가볍게 정말 새하얀 식빵을 가져다주었고, 에르네스트는 감사 인사를 하고 곧바로 한 입 베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