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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여명-225화 (225/1,277)

##  225화

난 눈만 깜빡이며 두 선생님들을 보았다.

미하일 선생님은 기막혀하는 날 보며 웃으셨고, 구세프 선생님은 곰곰이 무언가 생각하시는 듯했다.

“…….”

자선 연주회 총 수익이라며 알려 주신 금액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액수였다.

1400만 루블?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그건 우리가 연주회 한 번으로 벌어들이기엔 너무 많은 돈이었다. 대형 홀에서 특급 오케스트라가 연주회를 해야 이 정도일까?

“기부금이 그렇게나 많이 들어왔나요?”

티켓 수익은 200만 루블 정도라고 일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니 나머지는 전부 기부금일 것이다.

내 질문에 구세프 선생님은 잠시 고민하시더니 대답하셨다.

“그래. 거의 기부금이지.”

“이해가 안 가요. 그렇다면 연주회를 보러 와 주신 분들이 평균적으로 티켓값의 6배를 더 내 주셨다는 말씀이잖아요?”

“기쁘지 않느냐?”

“기쁘…… 기뻐요. 기쁘죠, 당연히. 하지만…….”

난 말꼬리를 흐렸다.

간단히 생각해 보면 몇 배나 되는 기부금을 성공적으로 모금했으니 기뻐해야 마땅했다. 한 푼도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지만, 기부금이 필요한 곳에 보다 많은 액수를 기부할 수 있으니 분명 좋은 일이었다.

다만, 놀라 있던 머리가 냉정을 되찾자 빠르게 숫자들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연주회에 만족하고 표값 이상의 기부금을 내는 건 그리 이상하지 않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부 6배 이상을 지불했다는 것은 많이 이상했다.

우리 연주회가 모금할 수 있는 수준을 현실적으로 너무 많이 넘어서 있었다.

“…….”

난 연주회를 마치고 청중들과 직접 가까이에서 인사를 나누고 꽃을 받았던 때를 떠올렸다. 그중엔 악수를 청하며 자신을 국방부 차관이라고 말했던 분이 있었다. 그렇게 중요한 요직에 계신 분도 오셨는데, 아마 내가 모르는 분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비상식적으로 높은 기부금의 액수. 난 사회의 구조에 대해 그리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연관성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복잡하고 길게 생각 않고 그냥 이 숫자에 맹목적으로 기대어서 우리가 이만큼 성공했잖느냐고 자랑스러워할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그렇게 할 기분이 들진 않았다.

내가 마냥 기뻐하지 않고 주저하자 구세프 선생님이 그런 날 바라보면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대로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아들이신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이윽고 구세프 선생님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도 고민을 해 봤다, 타티아나.”

난 고개를 들고 구세프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구세프 선생님은 옆에 앉아 계신 미하일 선생님을 곁눈질로 힐긋 살피시고는, 이어 말했다.

“원래는 이렇게 수익금이 얼마인지 학생들에게 공개하고, 또 직접 기부금을 전달하는 것까지가 공부다만, 액수가 너무 커서 이번만큼은 비공개로 하는 것이 어떨지 말이다. 이런 거대한 성공이 이제 막 세상에 뛰어들 너희들에게 어떤 영향이 갈지도 우리는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그것이 구세프 선생님이 이 레슨실에 계신 또 하나의 이유였다.

학생들이라고 해서 큰 성공을 거두지 말란 법은 없었지만, 이렇게 기획에서 크게 벗어난 성공은 충분히 선생님들이 걱정하실 만도 했다.

의도하지 않은, 예상 못 한 행운이 찾아온 것이지만 이것이 행운이 아니라 온전히 우리 자신의 실력이라고 생각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가만히 듣던 나는 약간 이상함을 느꼈다. 지금 구세프 선생님은 내게 변명을 하시는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한 팔을 들어 보이셨다.

“물론 그렇게 할 순 없었지.”

“왜…… 비공개로 하지 않으시고 말씀해 주신 건가요?”

“여러 이유가 있다만…….”

구세프 선생님은 손을 들어 수염이 자란 턱을 만지시다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

“말해도 문제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지.”

“…….”

그건 단순히 내가 돈에 무감각하리라 생각하시기 때문이 아니었다.

음악가인 내가 숫자에 취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신뢰하는 데에서 오는 믿음이었다.

미하일 선생님이 들고 계시던 서류를 한쪽 구석에 내려놓으시며 말했다.

“나와 구세프는 고액 기부자를 특정하지도 않고, 너희들에게 숨기지도 않기로 했단다. 있는 그대로 생각했으면 좋겠구나. 타티아나 너와 네 친구들은 훌륭한 자선 연주회를 선보였고, 우리 학교를 믿고 고액을 맡겨 주신 분들이 있으니 제대로 기부가 필요한 곳에 전달해 주는 것으로.”

천만을 넘는 기부금이나 우리 연주회의 가치 등에 대해 냉정하게 저울질하고 있던 나는 미하일 선생님의 말에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그건 정말 단순한 이야기처럼 들렸다.

엄청난 액수의 금액이지만, 우리의 마지막 역할은 분명했다.

난 한층 차분하게 대답했다.

“……선생님 말씀이 옳아요. 1400만 루블이나 모금하게 된 것은 놀랍지만 너무 기뻐할 이유도 없네요. 저희는 전달자이니.”

“아니지, 왜 기뻐할 이유가 없느냐?”

어리둥절해서 바라보자 미하일 선생님이 크게 웃었다.

“어쨌건 너희는 성공을 거두지 않았느냐? 과한 기부금을 제하고 따져 보더라도 연주회는 정말 성공적이었단다. 거기엔 반론의 여지가 없지.”

“그렇다고 항상 이렇게 성공하리라 생각하진 마라, 타티아나. 그냥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게 낫다.”

두 선생님은 번갈아 가며 내게 말했다. 그 외에도 모금액이 아닌 기사 등으로도 연주회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알아볼 수 있다는 것도, 평균적인 자선 연주회의 모금액이 얼마쯤 되는지도,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해 주셨다.

선생님들의 의견은 하나로 합쳐지지 않고 붕 떠 있는 것 같았지만. 난 궁극적으로 선생님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했다.

결국 나에 대한 걱정인 것이다.

그 온정을 느끼며 감사를 담아 답했다.

“이해했어요. 걱정 마세요.”

“걱정 같은 건 안 한다. 너보단 다른 녀석들이 걱정이지.”

“아하하…….”

구세프 선생님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실없이 웃고 있자, 선생님이 책상에서 서류를 몇 장 집어 드시더니 말씀하셨다.

“아무튼, 이해했다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 보자, 타티아나. 원래 우리 학교가 정기적으로 자선 연주회를 하면 기부를 하는 곳이 몇 군데 있긴 하다만, 네가 보기엔 어느 곳에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으냐? 리스트는 여기에 있다.”

“……예?”

선생님은 대충 보던 서류뭉치를 내게 넘겨주었다. 난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 들었다.

서류들엔 기부금을 필요로 하는 자선단체들의 목록과, 우리 학교가 그간 해 왔던 기부에 대한 기록들이 나와 있었다. 몇 장 넘겨 보니 굉장히 많은 기록이 있었다. 중앙음악학교의 자선 연주회는 역사가 정말 깊었다.

그렇게 찬찬히 서류를 살펴보는데, 이번엔 미하일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찾아본 바로는 이곳에 기부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구나. 고아들과 미혼모들을 돕고 일반 학교 지원이나 의료 지원도 하는 수도원의 복지회인데 재정 악화로 시설을 축소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하는구나. 자, 관련 자료다.”

“……?”

또 몇 장의 서류가 내 손에 넘어왔다.

멍하니 받아 들고 보니 어린 아동들을 위한 복지를 주축으로 하는 단체의 소개가 있었다. 거기에는 몇 년 사이 급격히 악화된 재정 상태와 시설 축소 시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나와 있었다.

난 그것들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잠시만요. 이런 서류들을 왜 저에게 주시나요?”

“말했지 않느냐? 기부금을 전달하는 것까지가 공부라고.”

“그렇지만요…….”

이 기부금을 어디에 전달해야 할지 결정하는 과정에 참가하는 것도 분명 중요한 일이겠지만, 난 어쩐지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미하일 선생님도, 구세프 선생님도 거의 내게 결정권을 맡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내가 뭘 안다고?

황망하게 바라보자 구세프 선생님이 담뱃재를 재떨이에 터시더니 말했다.

“우리가 그냥 선택할 수도 있지만 네 의견도 듣고 수용하기로 했을 뿐이다.”

“…….”

“가볍게 골라 보라고 할 순 없겠군. 신중하게 잘 고려해 보는 게 좋을 거다.”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봐도 그냥 선생님들이 정해 주시면 안 되겠느냐고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시 서류를 들었다. 선생님들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제대로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난 진지하게 말했다.

“정말 필요한 곳에 전달할 수 있도록 찾아볼게요.”

“그래.”

구세프 선생님은 흐뭇하게 웃었다.

***

별관의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다가 저녁 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향했다.

루슬란 오빠는 학교 일로 바빠서 없었고, 오늘은 아버지와 나 둘뿐이었다.

“…….”

“내일 안톤과 이야기하도록 하지. □□□□□와 □□□만 준비하게.”

아버지 역시 바쁜 분이셨다. 전화통화로 누군가와 사업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계셨는데, 생전 처음 듣는 전문적인 단어들이 섞여 있어서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전화를 하시는 아버지를 보다가, 나도 스마트폰으로 아나스타샤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내가 이제 저녁 식사를 하려고 한다고 메시지를 보내자 아나스타샤도 이제 막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다며 답장해 왔다.

다시 메뉴에 대한 이야기를 메시지로 보내려는데,

“나중에 보고하게.”

아버지가 막 전화를 끊으셨다. 나도 곧바로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고개를 들자 아버지는 무표정하게 날 바라보고 계셨다. 난 옅게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오늘은 둘뿐이네요.”

“그렇구나.”

아버지는 담담히 말씀하셨다.

이대로 아무 말 없이 침묵 속에서 기다리는 것도 어색해졌다. 난 그저께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아나스타샤와 니콜라이 선배의 아버지가 지켜보는 앞에서 절대 슬프게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또 사랑한다는 대답을 들었었다.

어렵게 각오를 다지고, 용기를 내어 한 그 모든 말에는 단 한 점도 거짓이 없었다.

난 무슨 이야기를 하면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지 적당한 화두를 떠올렸다.

“아버지.”

“그래.”

“저 오늘은 이전에 한 자선 연주회에 대해서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연주회 그 자체나, 기부금에 대한 이야기들도요.”

내 성공적인 연주회 이야기는 아버지가 듣기에 나쁘지 않을 것이다. 난 활짝 웃으며 이야기했다.

아버지 역시 희미하게 미소를 머금으며 말씀하셨다.

“마무리까지 잘 하거라.”

“예. 그런데 있죠, 아버지. 모금액이 1400만 루블도 넘었지 뭐예요? 원래 저희 목표는 200만 루블 정도였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선생님들도 놀라시더라고요.”

난 이 정도면 아버지도 놀라게 해 드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일부러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음…….”

하지만 아버지의 반응은 그리 극적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단지 조용히 날 보시면서 침음을 삼키셨다. 난 조금 맥이 빠졌다. 아무리 아버지라도 조금은 놀라시리라 생각했는데, 아버지에겐 1400만 루블도 그리 놀랄 액수가 아닌 걸까……?

기대했던 대로 대화가 흘러가지 않아서 약간 머뭇거리고 있자,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네 선생님들은 그냥 놀라시기만 하시더냐?”

“……예?”

그냥 놀라시는 게 아니라 엄청나게 놀라셔서 이 금액을 우리들에게 비밀로 해야 하는 게 아닐지 토론까지 나누실 정도였지만, 굳이 그런 이야기들까지 아버지에게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난 선생님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짧게 정리해서 말씀드렸다.

“예, 굉장하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이번엔 정말 많은 모금액이 모였지만 항상 있는 일은 아니니 흐트러지지 말라고만 하셨어요.”

“흐트러지다니? 그게 무슨 소리더냐? 타티아나.”

“아, 이 액수를 곧 우리의 실력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숫자는 성공을 나타내는 척도이지만, 연주자가 본질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그런 부분이 아니니까요.”

구세프 선생님이 걱정하시는 부분은 그런 것일 터였고, 난 분명히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해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무표정하게 유심히 날 바라보셨다. 그러더니 지나가듯 툭 물어오셨다.

“넌 어떠냐? 타티아나.”

“예?”

“혹시…… 기분이 나쁘거나 하진 않았나 싶어서 말이다.”

“아뇨, 그럴 리가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

약간 당혹스러웠다. 기분이 나쁘다니?

기부금이 넘치도록 모금되긴 했지만 괜히 넘겨짚어서 어떠한 순수성이 침해당했다고 생각하고 기분 나빠할 필요는 없었다.

미하일 선생님이 말씀하셨듯, 단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우리가 자선 연주회로 하고자 했던 대로 진행하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난 선생님들과 함께 자선단체들에 대해 알아보면서 이 기부금을 전달하면 살릴 수 있는 시설이 분명 있다는 것이 기뻤다.

1400만 루블은 사실 재정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가는 시설 등을 감쪽같이 되살릴 수 있을 정도로 큰 금액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당장 집기들을 팔아서 내일을 버텨 낼 돈을 만들어야 할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겐 너무나도 필요한 돈이었다.

적어도 티켓값만을 계산한 200만 루블보다는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난 기부금을 이렇게나 많이 지원해 준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감사했다.

“…….”

잠시 후, 아버지는 담백하게 말씀하셨다.

“네가 기뻐 보이니, 그렇다면 됐다.”

아버지는 내가 좋다면 무엇이든 상관없어하실 분이셨다. 이렇게 확실하게 지지해 주시는 건 정말 굉장히 큰 힘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금액을 모금할 수 있었는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희는 최선을 다했고, 또 뜻깊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에 정말 필요한 곳에 기부금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보람차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제가 연주자로…… 어려운 분들을 많이 돕고 싶어요.”

“그렇구나. 좋은 마음가짐이다, 타티아나.”

“예. 후후, 이번 기부금도 아직 전달을 하진 않았지만요, 이번 주말에 직접 찾아가기로 했어요.”

“네가 대표로 가는 것이냐?”

“아니에요. 모두가 함께 가야죠. 어디까지나 이 자선 연주회는 저희 학교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선생님들은 제가 반드시 직접 갔으면 하시는 것 같았어요.”

니콜라이 선배는 기부금 전달식에는 빠지겠다고 이야기를 전해 왔고, 선생님들은 그것까지 강제할 생각은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내가 빠지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무조건 같이 가는 것으로 확정을 하듯 말씀하셨다.

막심 선배도 있고 에르네스트도 있는데 왜 굳이 나인지 잘 모르겠다.

“어느 기관에 전달할지 결정하는 것도 제 의견을 많이 들어 주셨고……. 제가 이 자선 연주회의 발안자라서 그런 걸까요?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날 들여다보시더니,

“나도 잘 모르겠구나.”

드물게 장난스런 웃음을 보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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