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화
멘델스존의 봄의 노래, 모차르트의 작은 별 변주곡에 이어 연습이기도 하고 놀이이기도 한 시간은 계속되었다.
유피미아 앨런의 젓가락 행진곡,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모차르트의 장난감 교향곡 등이 편곡되어 피아노 듀엣으로 연주되었다.
비단 피아노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의 아이들 중에는 피아노가 아닌 바이올린을 배운 아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우리에겐 막심 선배가 있었다.
“숨을 참고 그렇게 휙 그으면 힘들어. 소리도 뻑뻑해지고. 자, 보라구.”
막심 선배는 바이올린을 들고 18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보케리니의 미뉴에트 5번을 연주했다. 난 거기에 맞추어 피아노 반주도 해 주었다. 바이올린을 든 아이들이 앞다투어 연주하길 원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우리는 조금 더 나아가보기로 했다. 난 모두에게 바흐의 칸타타 BWV 147을 합주해 보자고 제안했다.
이 곡은 예수는 만인의 기쁨이라는 부제를 지니고 있는 교회 칸타타였다. 수도원 소속의 아이들이니만큼 모두가 이 칸타타에 익숙했다.
두 대의 피아노와 네 대의 바이올린이 함께했다.
“일단 리허설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맞춰 보도록 해요.”
“좋아요.”
인원수가 많아졌기에 일단 연습부터 하는 것이 옳은 순서였다. 하지만 곡을 시작하니 가볍게 연주에 임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모두가 온 신경을 집중해 음악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 함께한다.
내가 이끄는 두 대의 피아노가 얼핏 단조롭지만 유려한 화음을 이끌었고, 막심 선배를 필두로 하는 바이올린들이 주 선율을 청아하게 노래했다. 딱히 화려한 변주 없이도 칸타타 특유의 웅장한 종교적 뉘앙스가 울려 퍼진다.
그렇게 연주한 바흐의 칸타타는 정말 아름답게 들렸다.
조금 더 대규모의 기악 형식을 갖추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까지 한다. 왜 과거 작곡가들이 오케스트라에 욕심을 가졌는지 이해가 갈 정도였다.
연주가 끝나자 에르네스트가 말했다.
“듣고 있자니 없던 신앙도 생겨날 것 같네.”
“고마워요, 에르네스트.”
그건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 중 하나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기쁨을 나누는 중이었다. 누가 들어도 성공적인 합주였으므로 아이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들도 감격해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모두를 보며 나 역시 가슴 벅찬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엔 피아노 한 대에서 두 대로, 그리고 바이올린들과 함께, 나중엔 꽤 큰 규모의 기악곡까지 한 번에 성공해 낸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이 아이들이 평소 음악을 얼마나 열심히 해 왔는지 충분히 증명되었다. 그건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정말 보람찬 일이었다.
“합창하자, 합창.”
“다 같이 하려면 그게 낫겠지? 그렇지?”
웅성거리던 분위기는 바흐의 칸타타에서 기세를 몰아 더 큰 합창곡으로 향하고 있었다.
단계별로 쌓아 나간 신뢰와 조화가 짧은 시간 내에 서른 명도 넘는 모두를 하나로 엮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꾸릴 것이 아니라면, 이 인원을 한 음악에 참가시키기 위해선 합창만 한 형식도 없었다.
몇 명의 아이들이 앞다투어 이야기했다.
“저희는 사실 합창을 더 자주 하거든요.”
“교회에서 맨날 해요.”
“대회도 나간 적 있어요!”
그렇게 재잘거리면서 아이들은 저마다 무슨 합창곡을 불렀었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떤 악기를 다루든 간에 일단 노래는 기본적으로 모두가 배우도록 하는 것 같았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다 같이 합창도 해 보도록 해요.”
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합창곡이라 하면 대부분 성가겠지만 바로 반주해 주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믿음직스러운 아나스타샤나 에르네스트가 있기도 했고.
내 허락이 떨어지자 아이들이 머리를 맞댔다. 그중에서도 열서넛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곡은 다 아는 걸로 정해.”
“물어보고. 아, 우리 성부 어떻게 해? 둘, 둘로 나눠?”
“그냥 그렇게 해. 바이올린 하는 애들도 몇 빼고.”
“세 명쯤 뺄까? 저기 바이올린 오빠 있으니까.”
“여자애들 쪽에서 빼. 더 많으니까.”
두서없이 웅성거리던 소리들에 갑자기 체계가 들어섰다. 이 서른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합창을 하기 위해선 적당한 조정이 필요했다.
아이들은 바쁘게 현재 있는 아이들로 성부를 구성하고 역할을 나누어 맡겼다. 그 일사불란함이 굉장히 놀랍다. 선생님들은 그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 아이들이 교회에서 합창을 자주 하고, 또 대회에도 나갔었다는 말은 정말인 것 같았다.
이윽고 한 아이가 날 돌아보았다.
“누나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전 피아노를…….”
“그런데 피아노 하는 분이 세 분이시잖아요. 피아노는 두 대고요.”
“……그렇네요.”
그 말대로 한 명이 남는다. 난 길게 생각하지 않고 한 발 뒤로 뺐다.
“그렇다면 저 말고 두 분이 피아노를 하시면 되겠네요.”
“그럼 누나가 같이 합창하시게요?”
“예?”
당연하다는 듯 그런 말이 나왔고 난 멍하니 되물었다.
확실히 아나스타샤나 에르네스트가 노래를 하는 것보단 조금이나마 체계적으로 성악을 배우고 노래를 익힌 내가 합창단에 들어가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조금 곤란하다.
“저 성가는 아는 곡이 없어요…….”
“누나 혹시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아세요? 그거 하려고 하는데.”
“…….”
난 입을 다물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정말 몇 안 되는 성가 중에 유일하게 부를 줄 아는 곡이었다.
주저하는 날 보고는 아이들의 눈이 내게로 향했다.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같이 노래해요, 언니.”
“실수해도 되니까요.”
“저희가 도와 드릴게요.”
조금 전에 세르주와 멘델스존의 봄의 노래를 연주했을 때 내가 했던 말을 이렇게 다시 돌려받을 줄은 몰랐다.
이전까진 내가 피아노로 모두의 음악에 맞춰 주고 협력해 주는 모양이었다면, 이번엔 정반대였다. 가만 보니 이 상황 자체를 즐거워하는 아이들도 많이 보였다.
결국 난 항복했다.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와!”
그렇게 피아노 연주자가 아닌 합창단원 중 한 명이 된 나는 아이들이 시키는 대로 자리에 가서 섰다. 소프라노들 중에서도 맨 가운데 자리였다.
거기에다가 첫 소절은 혼자서 부르라고 한다. 기왕 하는 것, 손님인 내게 메인 싱어의 자리를 줄 테니 제대로 해 보자는 것 같다. 이 애들은 내가 노래를 망치면 어쩌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타티아나, 혼자서 해도 되겠어?”
아나스타샤가 다가와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난 옅게 웃었다.
“해 보려고 해요.”
불안하지만, 그래도 해 보려고 한다.
아이들은 내게 노래 실력이 어떤지 묻지도 않았다. 한 번 불러 보라고 하는 일도 없이 그냥 무작정 메인을 맡겨 준 것이었다.
내가 어떤 노래를 하든 무조건 지지해 주겠다는 표현이었다. 그렇다면 거기에 호응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정말 빠르게 간이 무대가 완성되었다.
아나스타샤와 에르네스트가 나란히 피아노 앞에 앉았고, 그 옆에 막심 선배와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위치했다.
합창단은 세 줄을 이루어 옆으로 섰다. 계단식 단상이라면 좋겠지만 평탄한 음악실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그 합창단 가운데에 내가 섰다.
“…….”
상당히 긴장된다. 목이 뻣뻣해지고 눈이 아프다.
성악은 지금도 꾸준히 연습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피아노에 비하면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난 심호흡하며 어깨를 이완시켰다. 그리고 허리에는 더욱 힘을 주었다.
이 정도 되는 규모의 합창을 한 번에 잘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 지금, 최선을 다해서 잘 해내고 싶었다. 이쪽을 보는 선생님들을 청중들이라 생각하니 머리가 냉정해졌다.
과하게 긴장하면 목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정신을 가다듬으며 가사를 다시 확인했다. 동시에 작게 소리를 내어 목 상태를 점검했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피아노 앞에 앉았을 때와 다를 것 하나 없다. 어차피 난 늘 완전하지 않았고,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
말로 된 신호는 없었다. 준비가 갖춰지자 말소리들이 하나둘씩 점차 사그라들었고, 곧 완만하면서도 묵직한 침묵이 찾아들었다. 모두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깨닫는다.
아나스타샤와 에르네스트, 막심 선배가 눈을 마주치더니 동시에 나지막이 연주를 시작했다.
“…….”
바이올린의 선율이 길게 늘어지며 애상을 담은 곡조를 연주했다. 약간 쓸쓸하게 들리기도 하나, 애잔함뿐이 아닌 분명한 기쁨과 감사를 담고 있는 아름다운 선율이다. 거기에 맞춰 아나스타샤와 에르네스트가 피아노로 반주했다.
그렇게 주제가 한 번 흘러가고, 난 입을 열어 노래했다.
***
피아노 앞에 앉은 에르네스트는 뒤를 돌아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 성 니콜라 루그넨스키 수도원 소속 시설에 왔을 때만 해도 무언가 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하지만 타티아나가 의욕 있게 시설의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어 하자 덩달아 의욕이 조금 생겼다.
타티아나는 내버려 둬도 아이들을 잘 돌보는 편이었지만 혹시나 싶어 조금 과격하게 스타트를 끊었고, 목적했던 대로 타티아나가 쉽게 이곳의 애들과 친해질 수 있게 만들었다.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음악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어느 정도 받지 않는 이상, 이렇게 연습 몇 번에 합을 맞추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는데. 이 정도면 대단했다. 에르네스트도 그것은 확실히 인정했다.
그리고 본 실력을 보여 주겠다는 듯 합창을 하겠다는 것도 좋았다. 그 곡이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것도 좋았고.
하지만 타티아나에게 맨 처음 소프라노 솔로 파트를 맡긴다는 것은 약간 불안했다.
“…….”
건반을 누르면서 에르네스트는 생각이 많았다.
저 애가 성악을 배웠다고 하긴 했지만, 실제로 노래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런 자리에서 떨지 않고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기도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타티아나다. 그녀는 무대의 완성도에 있어선 굉장히 높은 자기 기준을 지니고 있으며, 또 실전에선 떠는 일 없이 자신의 실력을 100% 이상으로 발휘해 낼 줄 아는 초인적인 집중력과 승부욕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주변에서 시킨다고 해도 스스로 자신이 어느 정도 없었다면 하겠다고 했을 리가 없었다. 그 말인즉슨,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음악에 대해서만큼은, 에르네스트는 타티아나를 완전히 신뢰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함께 선율을 연주하고, 타티아나가 입을 열어 노래했다.
“놀라운 은총이여, 이 얼마나 감미로운 소리인가.”
“……!”
에르네스트는 하마터면 손을 미끄러트릴 뻔했다.
놀랍다 못해 당황스러웠다.
저 애가 성악을 부전공으로 공부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했지?
“…….”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는 타티아나의 노랫소리는 전율이 일 정도로 호소력 깊고, 마치 귓가에서 속삭이는 듯한 섬세함을 가지고 있었다.
아주 가볍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가운데로 빠져나와선, 퍼져 나간다. 소름이 돋을 정도의 음색이었다.
에르네스트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로 했다. 지금 연주를 망치는 것처럼 꼴불견도 없었다. 보다 집중했다. 타티아나는 천천히, 감정을 고조시키며 노래를 이어 나간다.
“나 같이 비참한 사람을 구해 주셨네.”
어메이징 그레이스.
이 곡은 18세기 영국의 노예선 선장이었던 존 뉴턴의 참회를 담은 곡이다.
존 뉴턴은 당시 시대상이 그러했듯 본래 노예들에 대한 가혹한 대우를 당연하게 여겼으나,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 배가 좌초될 뻔한 사건을 계기로 큰 깨달음을 얻어 회개하게 된다.
이후 성직자로서의 삶을 살며 영국 노예제도 폐지에 앞장선 그의 노래는 이후 전 세계로 퍼져 나가 큰 영향을 주었다.
“…….”
에르네스트는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 참회의 노래를 굳이 종교적으로 해석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타티아나의 목소리를 들으며 영적인 위안마저 느꼈다.
타티아나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연주하는 바흐의 칸타타를 들으며 없던 신앙도 생길 것 같다며 농담을 했지만, 직접 목소리를 내어 노래하는 가스펠 음악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노랫소리와 피아노, 바이올린이 엮여서 음악이 되어 간다.
타티아나는 노래도 정말 잘하고 있었지만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보단 분명 어려워할 것이다. 그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기 위해 에르네스트는 보다 앞으로 나아가며 선율을 인도했다. 타티아나가 편안하게 안심하며 노래할 수 있도록.
“한때 길을 잃었으나 지금 찾았고, 한때 장님이었으나 지금 볼 수 있네.”
거기까지 노래를 마쳤을 때, 합창단의 허밍이 들려왔다. 맑고 새하얀 음색이다. 마치 부드러운 바람처럼 이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모두의 등을 밀어 주는 것을 느낀다. 그 바람을 타티아나 역시 느꼈는지, 조금 남아 있던 긴장도 깃털처럼 날려 보내고 아이들과 하나 되어 노래했다.
“그 은총은 내 마음에 두려움을 가르쳤고, 또한 그 은총은 내 모든 두려움을 거두어 주었네.”
4개의 성부로 이루어진 상당히 말끔한 합창이다. 신비로운 가스펠 음악이 음악실에 빈틈없이 가득해졌다.
에르네스트는 노랫소리에 집중하면서 화성을 한층 더 두텁고 복잡하게 쌓고, 합창단 전원을 받칠 수 있도록 단단하게 키웠다.
아나스타샤는 그 옆에서 보다 풍요로운 소리를 내며 바이올린을 비롯한 모든 소리들이 잘 이어지도록 자유롭게 그 사이를 유영했다. 막심은 서른 명의 목소리에도 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에르네스트는 지금 연주 중인 피아노가 이런 업라이트 피아노가 아니라 그랜드 피아노였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혹은 파이프 오르간이거나.
하지만 주어진 악기가 무엇이든 역시 질 수 없었다. 지금 여기에서 타티아나는 이 소년소녀 합창단을 이끌고 있었다. 에르네스트는 그 합창단을 반주하는 기악단의 중심에 있다고도 할 수 있었다. 잘해야 했다.
그렇게 중앙음악학교의 학생들과 루네 고아원의 서른 명은 음악으로 하나 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