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3화
구세프 바실리예비치 알레니체프는 채점지를 바라보았다.
타티아나의 실기곡은 로베르트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였다.
구세프는 작년을 떠올렸다. 타티아나는 작년 8학년 1학기 위클리 리사이틀 때 슈만의 피아노 소나타 3번을 연주했었고, 그 연주 이후 순간적으로 7, 8학년들 사이에서 슈만 열풍이 불기도 했었다.
모종의 이유로 이렇게 학교 내에서 어떠한 음악가나 장르에 대한 유행이 부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일반 학교에서 놀이나 옷에 대한 유행이 바뀌듯 음악학교에선 음악에 대한 유행이 계속해서 바뀐다.
하지만 그것이 동급생의 연주에서 비롯되는 경우는 정말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타티아나는 모두를 매료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그녀의 슈만엔 그만한 파괴력이 담겨 있었다.
“…….”
그렇게 모두를 휘어잡는 음악성이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구세프는 아직도 잘 알지 못했다.
음악을 들어 보면 슈만이라는 작곡가에 대해 깊고 진한 해석을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 당시 타티아나는 자신이 한 것에 대해 별다른 감흥조차 없어 보였다. 섬뜩하게 풀린 눈으로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실기시험에서 또 슈만을 준비해 왔다. 타티아나의 8학년은 슈만으로 끝마치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슈만에 대해 자신 있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크흠.”
자세한 건 들어 보면 알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타티아나는 하고 싶은 말을 음악으로 전하는 데에 능숙한 학생이었으므로.
타티아나는 의자를 조절하고는 반듯하게 어깨를 폈다. 그대로 피아노 테크닉 교과서에 싣고 싶을 정도로 감탄이 나오는 자세였다. 구세프는 타티아나가 저러한 자세에서부터 힘을 끌어내어 피아노에 쏟아 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체중을 손가락 끝에 담는다는 것은 기본적인 테크닉적인 이야기이긴 했지만, 그것을 실제로 제대로 구현하는 피아니스트는 손에 꼽는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할지 터득하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 천부적인 재능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앉은 타티아나도 아주 긴장되지 않는 것은 아닌지 구세프 쪽을 힐끔 돌아보았다. 구세프는 시험 중에 무슨 짓이냐는 뜻으로 인상을 썼고, 타티아나는 찔끔하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다시 피아노에 집중하는 타티아나의 뒷모습을 보며 구세프는 약간 후회했다. 예브게니아가 옆에 있어서 일부러 조금 퉁명스레 대한 것도 있었는데, 잘하라고 작게 격려라도 해 줬어야 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후회를 되잡을 시간은 지나가버렸고, 곡이 시작되었다.
“…….”
문학과 음악을 결합하는 성격소품에 심혈을 기울였던 슈만. 그리고 그가 작곡한 대표적인 성격소품 중 하나인 크라이슬레리아나.
그 제목은 크라이슬러의 세계라는 뜻을 지니고 있었다.
독일의 작가 에른스트 테오도르 아마데우스 호프만이 쓴 소설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인 크라이슬러는 성가대 지휘자이며 이상적인 음악가이지만 동시에 괴팍하고 충동적이며 광기 어린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 매력적인 인물에 슈만은 크게 심취했고, 단 사흘 만에 이 작품을 써 내리게 된다.
이렇게 예술적 영감을 받아 또 다른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단지 문학에서 음악으로만 일방적으로 향하진 않았다.
슈만은 호프만의 소설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호프만은 본래 빌헬름이었던 미들네임을 아마데우스로 바꿀 정도로 모차르트의 열렬한 숭배자였기 때문이다.
낭만주의 시대의 클래식 음악은 문학과 굉장히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
크라이슬레리아나를 이루고 있는 8개의 짧은 환상곡 중 첫 번째 곡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그저 빠르게 아르페지오를 연결하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들리지만, 학생들 중 열에 아홉은 이 특유의 당김음 리듬과 악센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재미없는 음악을 만들어 내고 만다. 같은 선율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 하는 이 곡에서 밋밋한 음악밖에 보이지 못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아주 능동적으로 열정과 고뇌를 흩뿌렸다. 얼핏 기이하게 들리는 박자로, 라단조의 화성이 아르페지오로 펼쳐졌다.
그 특유의 리듬 감각은 악센트가 들어간 셋잇단음표를 연속으로 이어 가며, 그 와중에도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숨이 차는 호흡을 보여 주었다. 세심한 터치로 조절하는 그러한 테크닉은 절묘하고 노련하기까지 했다.
그다지 외향적인 연주자로 보이지 않는 타티아나는 피아노 앞에 앉아 크라이슬레리아나를 마주하는 순간 광기 어린 연주자가 되어 있었다.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정신없이 표류하듯,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파도가 끊임없이 흔들린다. 이는 예술과 세계에 대해 고뇌하며, 좁힐 수 없는 간극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이상적인 음악가 크라이슬러의 이야기와도 같다.
동시에 플로레스탄적이다.
“…….”
손가락 부상으로 연주자로서 활동하지 못하고 작곡가, 그리고 음악평론가로 활동했던 슈만은 1834년 라이프치히에서 음악신보를 창간한다.
그때 사용했던 두 개의 필명이 부드러운 몽상가인 오이제비우스eusebius와 공격적인 열정가인 플로레스탄florestan이었다. 슈만은 긍정적인 평론을 할 땐 오이제비우스의 필명을 쓰고, 부정적인 평론을 할 땐 플로레스탄의 필명을 썼다.
슈만이 평론을 할 때 쓴 이 펜네임은 단순한 필명이 아니라 두 개의 자아이기도 했다.
곧 슈만은 자신의 곡에도 이 두 자아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1836년 작곡된 다비드 동맹 무곡집에선 이러한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서, 슈만은 각 무곡에 오이제비우스의 E와 플로레스탄의 FL 이니셜을 붙이고 해석을 달아 놓았다.
이 크라이슬레리아나도 그러한 자아가 담긴 곡 중 하나였다.
크라이슬러라는 가상인물의 삶과 이야기를 주제로 삼지만, 동시에 슈만의 자아인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가 주고받는 대화이기도 했다.
총 8곡의 환상곡 중 1, 3, 5, 7번 곡은 플로레스탄적 성격의 곡으로 단조를 띠고, 빠르고 열정적이다. 그리고 2, 4, 6, 8번 곡은 오이제비우스적 성격의 곡으로 8번을 제외하고는 장조의 곡이며 지적이고 우아하다.
이러한 대비를 명료하게 잘 살려 연주하는 것 또한 연주자가 슈만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기도 했다.
“…….”
구세프는 엄격한 선생의 시선으로 타티아나의 연주를 하나하나 뜯어 해석했다.
모티브가 된 원작을 쓴 호프만도, 음악으로 소설을 옮긴 슈만도 어느 하나 쉽지 않았다. 호프만의 원작에서 크라이슬러는 괴팍하고 광기 어린 인물이었으며 슈만의 두 개의 자아 역시 복잡한 이중성을 갖추고 있었다.
이 복잡 미묘한 예술 작품을 이 시간대에 펼쳐 놓기 위해선 작가와 작곡가, 거기에 연주자의 이해와 예술성이 한데 아름답게 뒤섞여야 했다. 구세프는 타티아나가 이 음악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려 내는지에 대해 집중했다.
빠르게 반복되어 나아간 폭풍우는 조용하게 흩어졌다. 내림나장조로 이조되며 새로운 주제가 작게 노래한다.
타티아나는 아무리 작은 소리라도 귓가에 맺히게 할 줄 알았다. 나지막하게 부르는 노랫소리는 끝없이 이어질 듯 살랑거리며 날아다니다가, 다시 라단조로 이조되어 첫 주제로 돌아온다. 느닷없이 다시 불어닥친 폭풍이 복잡하게 휘몰아치면서 독특한 리듬감을 선보인다.
이 정도로 간단하게 가지고 놀 듯 할 수 있는 리듬이 아닌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휘둘러버리는 타티아나를 보며 구세프는 내심 감탄했다.
그리고 타티아나가 숨기고 있는 내면의 광기, 충동을 어렴풋하게 느꼈다. 어둡고 음울하게 울부짖는 어둠이다.
슈만이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라는 자아를 동시에 지니고 있었듯 음악가라면 누구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한 부분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한 예술가적이고 시적인 자아를 얼마나 잘 분리하여 내보일 수 있는가가 예술가가 지닌 재능 중 하나라면, 타티아나는 정말 재능이 많은 편에 속했다.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이런 깊이를 지닌 고뇌를 표출하는지 늘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분명하게 느껴져 온다.
“…….”
첫 번째 환상곡이 끝나고, 곧바로 두 번째 환상곡이 이어진다. 마치 소설책에서 한 이야기가 끝나고 다음 이야기가 시작되듯, 이 곡은 음악으로 된 소설책과 같았다.
두 번째 이야기는 다른 분위기에서 시작되었다.
내림나장조의 느긋한 박자로 시작된 곡은 이전에 있었던 격정적인 파도가 아닌, 호수의 잔잔한 너울을 그렸다. 부드럽고 행복하게 노래하는 모습은 오이제비우스적 성격을 나타낸다.
소설 속 크라이슬러의 모습은 풍부한 생명력이 넘치는 들판에 누워 자연스럽고 즉흥적인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신경질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크라이슬러도 홀로 들판에 누워선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가식 없는 음악으로 그저 행복하게 취해 있을 뿐이었다. 노래를 부르다가, 일어나서 달음박질을 치기도 한다. 무언가를 쫓는 듯한 모습이지만 급박하지 않다. 크라이슬러는 다시 작은 걸음으로 들판을 거닐며 춤을 춘다.
타티아나는 이 잔잔한 노래를 말끔하게 연주해 나갔다.
몇 초 전만 하더라도 광기에 물들어 있었던 것이 정말 거짓말처럼. 이중인격자가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의 변환이었다.
하지만 정말 조울증을 앓았던 슈만처럼 단순히 감정의 기복이 심한 건 아니다.
모음곡이라는 것이 본래 그렇고, 연주자라면 음악의 구조에 맞추어 언제라도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고 정확한 강도와 방향으로 강조하는 데에 특화되어 있어야 했다. 다만 타티아나의 경우엔 그 정도가 너무 뚜렷할 뿐이었다.
음악적으로는 이 대비가 정확했다. 하나의 아리아와 같은 성악적 표현력으로 부드럽게 오르내리는 주제는, 간주로 섞이는 인터메쪼와 함께 세 번을 반복하면서 더더욱 따스하고 밝은 풍경을 그린다.
그야말로 오이제비우스적 슈만을 나타내고 있었다.
연주자에겐 자신의 성향에 맞는 음악가와 상성이 존재했는데, 타티아나는 슈만에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타티아나는 자신이 슈만에 대해 얼마나 심도 있게 연구했고 얼마나 자신 있는지 증명해 냈다.
“흠…….”
8학년을 마무리하는 실기시험에 타티아나가 슈만을 연주하게 한 것은 지도 선생인 미하일의 결정일 것이다. 지금 연주하는 것을 보니 미하일의 듣는 귀는 아주 정확했다. 타티아나는 슈만과 잘 맞았다.
하지만 어쩐지 머리 한편에선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슈만과 슈베르트. 타티아나는 두 음악가의 음악을 자주 연주하고 정말 잘 이해하고 있는 듯 했지만 가끔은, 약간의 위화감을 느낀다.
구세프는 유심히 타티아나를 바라보며 음악으로 타티아나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그보다 더 깊은 그녀의 자아를 찾았다. 음표 하나하나도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감정과 이미지를 그리지만 결국 감추지 못하는 것들은 있기 마련이다.
“…….”
음악은 제3곡으로 넘어갔다.
또다시 분위기는 반전하여 촉박함과 긴박함을 나타내는 리듬의 곡이 시작되었다. 타티아나는 왼손을 보다 크게 들며 무게를 가득 싣고 건반을 누른다. 독립된 두 선율은 마치 두 대의 피아노가 동시에 연주되는 것처럼 들리기까지 했다.
크라이슬러는 음악에 몰입하며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핏 주문을 외우는 주술사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핏줄이 선 눈으로 악보를 바라보던 크라이슬러가 양손으로 책상을 누르며 고개를 들었다.
잠시 서정적인 멜로디가 흐르며 주위가 환기되었다. 시를 읊는 크라이슬러의 모습이 모이는 듯했다. 그렇게 잠시 이성을 되찾는가 싶으면,
다시 크라이슬러가 자신의 음악에 몰두했다. 점점 음악에 도취되면서 역설적으로 자신을 잃어 가고, 음악이 가져오는 강렬한 충동에 몸을 맡겨 더더욱 이끌린다.
타티아나의 연주는 갈수록 고조되었다. 낮게 중얼거리는 듯 건반을 만지던 오른손은 보다 깊어졌고, 더욱 커졌다. 음악에 이끌려 광기를 내보이는 크라이슬러를 나타내는 것처럼 격렬하게 건반을 타건한다. 공격적이고, 파괴적이었다.
크라이슬러는 광기에 휩쓸려 악보를 쥐고 울부짖는다. 과격하게 주먹을 휘두르고, 발을 구른다.
“…….”
거대한 감정을 쏟아내는 것은 반드시 크고 화려한 음표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몇 개의 화성만으로도 소름 끼칠 정도로 분명한 감정을 쏟아 내는 곡들이 분명 존재했고, 타티아나는 그러한 곡들을 최선의 형태로 그려 내는 데에 능숙했다.
성가대 지휘자 크라이슬러는 거대한 괴물이나 신화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저 한 명의 사람일 뿐이었고, 그의 광기는 한 음악가의 광기였다.
때문에 타티아나가 만들어 내는 크라이슬러의 고함 소리는 무작정 크고 요란스럽진 않았다.
음악에 도취된 광기와 전율이 함께하는 소리는 단순히 크고 거대하게 울려 피부에 와닿는 것이 아닌, 한 걸음 더 들어와서는 보다 깊숙한 폐부를 날카롭게 저미는 듯한 느낌을 안겨 주었다.
“……!”
그 와중, 구세프는 음악에 이어 더더욱 소름 끼치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타티아나는 거대한 홀이 아닌 작은 연습실에서 생겨나는 음향적인 효과까지 신경 쓰며 터치를 조절하고 있었다. 크라이슬러의 목소리가 괴물이나 사탄의 목소리처럼 들리지 않는 것은 이러한 세심함이 만들어 낸 마술이었다.
연주자가 악기는 물론이고 무대의 모든 조건에 대해 신경 쓰고, 그에 맞추어 연주를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학교 연습실에서 시험을 치는 학생이 이렇게까지 주의 깊게 갈고닦은 터치를 선보이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구세프는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어디까지 연구를 한 건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심도 깊고 아카데믹한 연주다.
“…….”
크라이슬러가 의자에 털썩 파묻히는 것을 끝으로, 미처 숨을 돌리기도 전에 4번째 곡이 시작됐다.
이전까지 보였던 광기 어린 고함 소리에 대비되는, 실의에 빠진 목소리가 울린다. 크라이슬러는 힘이 빠진 듯 느리게 노래하고 있었다.
타티아나는 정말 섬세하게 이 크라이슬러의 감정 변화를 표현하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서 한 손을 치켜든 크라이슬러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크라이슬러의 내면에 보다 주목하는 낭만적인 선율이 길게 흘러간다.
본래 테크닉적으로도 결코 쉽지 않고, 표현력으로는 말할 것도 없이 까다로운 곡이었다. 학생들이 마주한다면 악보를 읽는 것과 제대로 연주하는 것에 수십 개나 되는 벽이 있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기에 딱 좋은 곡이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이번에도 손쉽게 크라이슬러의 모습을 그려 내고 있었다. 훌륭한 실력이다.
“…….”
구세프는 문득 옆 자리의 예브게니아를 돌아보았다.
예브게니아는 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타티아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엔 감탄과 더불어 기묘한 감상이 함께했다.
단순히 열다섯 살이라곤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보이는 학생에 대한 감탄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한 사람의 음악가로 타티아나가 보이는 해석에 대해 보다 깊게 생각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지 고심하는 표정이었다.
구세프는 조금 웃어버릴 뻔했다.
타티아나는 그의 제자라고 할 순 없었다. 그녀는 누군지 모를 전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중앙음악학교에 와서는 미하일의 영향을 받았다.
구세프는 그저 그녀가 피아노에 현실적으로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을 뿐이었다.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잔가지를 치는 것은 선생인 구세프의 역할이었다.
그렇게 타티아나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는데, 정말 얼마 되지 않아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역시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곤 했다. 그건 학생을 제대로 지도한 선생으로서의 보람과 같았다.
“…….”
칭찬을 제대로 해 줘도 될까.
잘하고 있는 학생에게 솔직하게 칭찬을 하지 못하는 것은 구세프의 고질적인 단점이었지만 타티아나가 이렇게 열심히 한다면 못 해 줄 것도 없었다.
칭찬을 받고 기고만장해진 타티아나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괜찮을 것 같았다.
다만 한 가지, 오래 전 타티아나와 약속했던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
타티아나는 이전 선생에게 배웠던 음악을 되찾길 원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건 구세프에게 있어서 생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상당히 묘한 감정이 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