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6화
아나스타샤와 함께 스터디룸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동시에 열 개의 눈동자가 내게로 향했다.
“누나.”
“타티아나 왔네.”
스터디룸에는 리처드와 한승우, 그리고 아나톨리와 류보비, 사샤가 책상에 앉아 있었다. 다들 정말 집중해서 공부를 하는 듯한 모습이다.
리처드는 날 보더니 손을 들며 말했다.
“집에 간 줄 알았는데 학교에 있었네?”
“연습실에 있더라고.”
“실기시험을 치고 바로 연습실에 갔다고?”
날 잡아온 아나스타샤가 말하자 리처드는 조금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딱히 잘못한 것은 없지만 상식적이진 않았다는 자각 정도는 있어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싶을 때도 있지.”
하지만 리처드는 픽 웃더니 싱겁게 말하고 넘어가 주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든 이제 어지간해선 이해할 수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고맙긴 하지만……. 리처드 안에서 내 이미지는 도대체 어떻게 되어 있는 걸까. 약간 걱정된다.
“언니!”
류보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달려와서 내 허리춤에 안겼다. 난 허리를 숙이며 그녀를 마주 안아 주었다. 요 며칠 못 봤을 뿐인데 그사이 더 자란 것 아닌가요? 류보비.
하지만 류보비는 여느 때처럼 칭얼거렸다.
“있잖아요, 언니. 들어 봐요. 제가 오늘 시험 어려웠다고 하니까요 아나톨리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아하하, 무슨 말을 들었길래 속상하셨나요?”
언제나 그랬듯 아나톨리와 또 말로 투닥거린 모양이었다. 류보비는 내가 없는 사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일들을 털어놓았고 아나톨리는 마음대로 하라는 듯 만사 포기한 얼굴로 찡그리고 있었다.
좋은 말로 류보비를 어르고 달래면서 동시에 아나톨리에게도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잘 이야기했다. 아나톨리는 내가 난처해하지 않도록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류보비를 앉혀 놓고, 잠시 돌아가면서 사샤와 아나톨리, 류보비의 공부를 봐주고 이러저런 질문을 들어 주었다.
아나스타샤는 이 애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면서 곤혹을 치른 것 같지만, 셋 다 이해력이 좋고 똑똑한 것은 사실이었다. 난 이 애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이 또한 내게 맡겨진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한 명.
“거기서 한나 아렌트를 언급하는 건 너무 외운 티가 많이 나는 것 같은데……. 야, 너 한나 아렌트가 쓴 책을 제대로 이해하긴 해?”
“아니, 전혀.”
“그럼 쓰지 마. 어쩌자고 그래?”
“그게 나을 것 같네.”
한승우는 펜으로 공책에 줄을 찍찍 그어 넣고 있었다.
분명 논술시험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는 듯했다. 거기에다가 외웠을 뿐이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철학가를 인용한 것을 리처드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지적한 것이다.
난 살짝 걱정이 되어서 그쪽으로 다가가서 물었다.
“잘 안 되니?”
“음……. 아니. 잘되고 있어.”
한승우가 대답했다. 하지만 공책은 온갖 메모와 첨삭으로 빼곡하게 필기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어려워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이곳에서의 논술은 철학적인 담론에 대해 다루곤 한다. 인간의 권리와 의무, 욕망, 지각, 예술, 진리, 자아 등에 대한 주제들이 그것들이었다.
심지어 외국어로 공부해야 하는 한승우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그는 웃는다.
“사람의 생각은 비슷하니까. 난 그걸 러시아어로 잘 쓸 수 있길 바라고 있어.”
“그렇구나.”
그는 바보가 아니다. 충분히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지만 단지 그것을 외국어로 써 내려가기 힘들어할 뿐이다.
살짝 공책을 보니, 예상되는 문제들을 몇 가지 추려서 미리 답안을 써 보고 있는 중이었다.
난 그의 공책을 조금 더 읽어 보았다. 머리가 냉정해졌다.
현실적으로 학교 선생님들도 유학생인 한승우에게 많은 것을 바라진 않을 것이다. 아주 바보멍청이 같은 대답만 내놓지 않는다면 이 논술시험에서 불합격을 주진 않겠지. 깔끔하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복잡하게 늘여 쓰지 않고도 키 포인트가 될 단어들은 조금 더 외우는 게 좋겠어.”
난 약간 아쉬운 부분들을 짚으면서 어떻게 하면 그에게 도움이 될지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때, 한승우가 말했다.
“타티아나. 이거, 물어보고 싶어.”
그가 한 가지 문제를 내밀었다.
자기 정체성이란 어디에서 비롯되며, 그건 변화하는가 아니면 지속되는가.
“…….”
정말 흔해 빠진 문제였다.
10대들도 접하고 고민할 수 있는 철학적인 담론들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몇 번이고 마주치는 주제라 이제는 별생각도 들지 않고 재미있지도 않은 문제.
하지만 머리 한편이 저릿해져 온다. 난 그렇지 않아도 약해져 있는 감정이 혹여나 뛰쳐나오지 않도록 경계하고 조심했다.
한승우가 다시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답안이야 얼마든지 쓸 수 있었다.
자기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테세우스의 배처럼 끊임없이 변하며 아예 달라지기도 하지만 과거의 흐름에서 지속되는…….
이렇게 생각 없이 주르르 나오는 답들을 외워서 그냥 써 내려갈 수도 있었다. 난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는 것도 역시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허리를 쭉 빼고, 간단하게 말했다.
“난 그냥 넘길 것 같은데?”
“넘겨?”
“세 문제 중 하나를 고르는 것 아니겠니? 그럼 굳이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질문에 답하고자 할 필요는 없겠지.”
논술시험은 세 개의 문제가 주어지고 학생은 그중 한 문제만 선택해서 답하면 된다. 그렇다면 피해 가는 것도 방법이었다.
한승우도 그 점엔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긴 해.”
“다른 문제 보자. 만약 나온다면……. 이런 문제도 나올 테고, 답하기도 쉬울 거라고 생각해.”
난 그 대신 문제로 나온다면 음악가로서 답하기도 편하고 공부했던 것들을 응용하기도 편할 만한 문제들을 찾아내었다.
예술가는 자기 작품의 주인인가, 모든 예술은 아름다워야만 하는가, 예술은 모든 인간에게 가치가 있는가 등등.
이 역시 흔해 빠진 질문들이지만 그래도 어느 하나쯤은 꼭 문제로 나올 법했다. 이런 문제나 잘 골라서 답하면 될 것이다.
“어때?”
“응. 네 말이 맞아.”
한승우가 얌전히 답했다.
난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가 덧붙인다.
“하지만 외워서 답할 수 있는 대답, 있지 않아?”
“있어도, 이건 아니야.”
다른 문제들이라면 외워서 답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겨우 열다섯인 우리에게 무슨 특별한 생각이 있겠는가?
그냥 똑똑한 분들이 이러쿵저러쿵해 놓은 것을 읽고, 조금 생각해 보고 맞는 것 같으니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난 그렇게까지 공부나 철학이라는 것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자신에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선, 이야기가 다르다.
그저 남들이 하는 이야기를 옳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건 피아노에 대해 논할 때 내가 무슨 혹평을 듣는 한이 있어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버리는 것과 비슷했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리처드가 차라리 피해버리라는 내 조언에 관심을 보였다.
“굉장히 현실적이네, 타티아나.”
“……현실적일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전 원래 현실적인 사람인걸요?”
난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지금 여기서 나만큼 현실적이고 타협에 능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리처드는 약간 의외라는 듯 물었다.
“그래도 네가 그렇게 생각도 않고 점수만 보자고 할 줄은 몰랐어.”
“실례네요 리처드, 저도 생각은 해요.”
“아, 미안. 그런 의미는 아니었어.”
리처드가 급히 사과했다. 나도 그가 내게 생각이 없다는 의미로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는 것을 안다.
난 두루뭉술하게 말을 돌렸다.
“다른 사람의 대답이더라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한 줄도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한 것을 자기 생각으로 적어 내면 안 되잖아요? 리처드가 한나 아렌트를 인용하지 말자고 했듯이 말이죠.”
“한나 아렌트는 정말 무슨 소릴 하는질 모르겠으니까. 그런데 자아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는 딱히 특별대우 받을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
리처드는 상당히 날카로웠다. 난 말문이 막힐 뻔했지만 간신히 이어 말할 수 있었다.
“많은 담론들 중에서도 어려운 이야기니까요.”
“음.”
잠시 날 지켜보던 그는 조금 진지하게 물었다.
“아무튼…… 자기 생각이 되지 않은 것을 글로 쓰면 안 된다는 거야?”
“그런 행위는 꾸준히 자신을 파고들며 정신을 오염시키고 결국 영혼을 망가뜨린다고 하더군요.”
“재미있는 말이네.”
“전 그게 한 치 틀림없는 진실이라고 생각해요.”
빙빙 돌던 말은 부메랑처럼 다시 내게 날아와 꽂혔다.
그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난 체감하고 있었다. 실제로 눈에 보이거나 뚜렷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망가지면 망가질수록 세상에 맞춰져 간다는 기분이 든다.
내 내면의 저울이 이전과 같지 않다고 느끼지만, 동시에 지금이 정상일지도 모른다고 느껴지는 것처럼.
그러니 이제 와서 무언가 글로 쓰는 것을 하지 않는들, 무엇이 달라질까? 이미 난 글보다 훨씬 강력한 음악을 휘두르고 있는걸.
생각해 보니 무의미했다. 희한하게도 슬프지 않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잘하고 있어. 타티아나. 그렇네.
“나도 논술 문제는 잘 골라 써야겠군.”
리처드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그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누군가를 속이고 스스로를 감춘다는 점에선 그 역시 똑같았으니까.
이야기가 뚝 끊어졌다. 우리는 각자 생각할 거리에 잠겼다. 솔직히 나는 별로 생각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냥 시험이나 잘 치르면 그만이었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서 내 팔에 와 닿는 손길이 있었다.
놀라서 보니 사샤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사샤?”
사샤는 옆에 오도카니 서서 내 블라우스 소매를 잡고 있었다.
어린 에르네스트를 닮은 눈빛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물끄러미 날 올려다본다. 난 미소를 지었고, 사샤는 작게 말했다.
“누나.”
“예, 사샤.”
“에르네스트 형 주말에 스위스 가는 건 알고 계세요?”
“들었어요. 연주회가 있다고 하셨죠.”
“혹시 누나는 안 가세요?”
“예……?”
사샤는 순수한 얼굴로 날 바라보며 그런 말을 했다.
뭐라 답하기도 전에 사샤가 이어 말했다.
“조금 멀긴 하죠? 그래도 누나는 비행기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나라면 따라가 줄 수 있지 않냐는 질문에 난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사샤의 말처럼 내게 있어서 그건 큰 문제가 아니지만 에르네스트의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내 마음대로 쉽게쉽게 할 일은 아니다.
“…….”
하지만 사실 이젠 그게 이렇게 어렵게 고민할 일인지도 잘 모르겠다.
사실 나 혼자라도 불쑥 찾아가서 에르네스트를 놀라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았다.
굉장히 놀라고 화를 낼지도 모르겠지만, 결국엔 기뻐해 주겠지. 불쾌해하진 않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싶긴 했다.
하지만 지금 난 하고 싶은 대로 무엇이든 멋대로 할 생각도, 여력도 없었다. 난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할 수는 있겠지만, 에르네스트는 저희가 시험에 집중하길 바라고 있을 거예요.”
사샤는 잠시 날 바라보았다.
“누나.”
“예.”
“형이 좀 바보 같죠?”
“……아뇨? 시험 기간에 연주회를 잡은 건 어쩔 수 없었을 거예요.”
에르네스트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는가? 물론 에이전시가 한 번 추진하는 큰 연주회 기회가 열다섯 살 연주자에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사샤는 아직 잘 모를지도 모른다.
“제가 보기에 형은 바보가 맞아요.”
하지만 사샤는 고집스레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오늘따라 별일이다. 난 부드럽게 사샤에게 말했다.
“아하하. 사샤가 보기에 에르네스트는 그런 형인가 보네요?”
“틀림없어요.”
“저도 종종 루슬란 오빠가 바보 같다고 생각하곤 한답니다. 사실은 모스크바 대학에 다니는 똑똑한 분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말이죠.”
“…….”
한숨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사샤는 자신의 교과서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빨리 크고 싶어요.”
“후후, 저도 사샤가 빨리 자랐으면 좋겠어요.”
사샤가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졌다. 내 생각에 사샤는 시간이 흘러 열다섯 살이 되어서도 계속 귀여울 것 같았다.
싱글벙글 웃으며 열다섯 살의 사샤를 떠올리고 있는데, 생각해 보니 굳이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현실에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왠지 약간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서 멍하니 사샤를 바라보고 있는데, 사샤가 말했다.
“누나. 부탁이 있어요.”
맑은 눈망울로 올려다보는 사샤의 부탁은 정말 무엇이든 간에 다 들어주고 싶게 느껴졌다.
“무슨 부탁인가요? 말씀만 하세요.”
“내일 시험에 칠 곡을 봐주실 수 있나요?”
그런 사샤의 부탁은 생각보다 현실적이었다. 내가 다시 물었다.
“실기시험 과제곡 말씀이신가요?”
“예. 선생님은 됐다고 했는데 잘 모르겠어서요.”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요. 제가 사샤의 도움이 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도와 드릴게요.”
사샤도 이 중앙음악학교에 입학할 만큼 재능을 지닌 아이였지만 아직 어렸고, 시험이라면 불안해할 만도 했다. 내게 다시 확인받고 싶은 것이다.
현실적인 부탁이라도 못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난 흔쾌히 승낙하고는 사샤의 손을 잡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습실로 갈까요?”
“예.”
자리에서 일어나는 날 보며 아나스타샤가 물었다.
“어디 가? 타티아나.”
“잠시 사샤의 과제곡을 봐 드리고 올게요.”
“아……. 그래?”
그녀가 따라와서 같이 도와주진 않을까 싶었는데, 아나스타샤는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다.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배웅할 뿐이다.
난 사샤와 함께 스터디룸에서 빠져나와 다시 연습실로 향했다.
시험기간이라 그런지 근처의 비어 있는 연습실을 찾아가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렸고, 이윽고 4층의 한 연습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떤 곡을 연습하셨나요?”
“모차르트 소나타요.”
“그렇겠죠?”
“그렇네요.”
사샤와 나는 평소처럼 대답을 주고받고는 웃었다.
그리고 사샤는 곧장 피아노 의자에 앉더니, 의자를 올려서 높이를 조절하고 연주에 들어갔다.
“…….”
몇 번 들어 보았지만 참 맑고 청명한 소리다.
이 소리는 나이와 관계없이 사샤가 피아노라는 악기에 대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냐를 보여 주고 있었다.
에르네스트의 영향도 꽤 받았는지 속도를 필요로 하는 패시지를 바람처럼 빠르고 가볍게 처리해 낸다. 물론 그 와중에 미묘하게 리듬이 급박해지는 것은 아직 공부가 부족한 탓이겠지만, 같은 또래 중에서도 이런 실력이라면 대단하게 느껴졌다. 사샤 역시 천재인 것이다.
그렇게 만족스럽게 사샤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에 빠져들고 있는데,
갑자기 끼익 소리와 함께 연습실 문이 열렸다. 사샤의 연주가 우뚝 멈추었다.
연습 중엔 연습실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매너였지만 가끔 이런 일도 있다. 누군가 싶어 돌아보니 낯익은 남학생이었다. 조금 마른 듯하지만 큰 키와 탄탄한 어깨, 밝은 금발에 영화배우처럼 생긴 얼굴이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예상치 못했는지 깜짝 놀란다.
나도 놀랐다. 멀거니 물었다.
“에르네스트?”
“……타티아나.”
그는 나와 사샤를 번갈아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난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무릎을 내려다보다가, 에르네스트를 올려다보았다.
사람을 보자마자 한숨부터 내쉬다니 실례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