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247화 (247/1,277)

##  247화

사샤는 반갑게 형을 맞이했다.

“형 왔어?”

“사샤.”

에르네스트는 연습실로 완전히 들어오지 않고 문가에 삐딱하게 선 채로 사샤에게 말했다.

“나한테 실기곡 봐 달라고 메시지 한 거 아니었어?”

“응 맞아.”

사샤는 천진난만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에르네스트는 미심쩍다는 듯 눈을 부라리다가, 내 쪽을 돌아보았다.

“타티아나 너도 사샤가?”

“예.”

“…….”

에르네스트는 무언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조용히 안으로 들어온 에르네스트는 내 옆에 의자를 끌어다 앉은 다음, 입을 열었다. 마치 사샤에게 잘 들으라는 듯한 목소리였다.

“미안해. 타티아나.”

“예? 왜요?”

“아니……. 그냥. 음, 스터디를 하면서 계속 사샤의 공부를 봐주고 있었다는 것 알아. 그것도 사실 내가 할 일인데.”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

난 싱긋 웃으며 답했다. 내가 자주 사샤를 돌봐 주는 것 같긴 하지만, 생색낼 것도 없었다. 난 이어 말했다.

“전 사샤도, 아나톨리도 류보비도, 그리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기뻐요.”

“그래, 형은 아무것도 모르잖아.”

“뭐야?”

“지금 타티아나 누나가 하는 말 듣고도 모르겠지?”

“……무슨 소리야?”

저도 모르겠는데요 사샤?

아무튼, 한참이나 나이가 많은 형에게 툴툴거리는 사샤는 깜찍하게 귀여웠으나 에르네스트는 이 자리에 나만 없었다면 무력을 썼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난 급히 끼어들었다.

“사샤, 연주하시던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다시 연주해 주시겠어요? 이젠 에르네스트도 왔으니 말이에요.”

“알았어요.”

사샤는 더 이상 에르네스트를 화나게 할 생각은 없다는 듯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피아노 건반에 집중했다.

에르네스트는 사샤가 연주를 시작하자 입을 꾹 다물고 팔짱을 꼈다. 친동생이라고 할지라도 피아노 앞에 앉아서 연주를 할 땐 침묵을 지켜 줘야 하는 것이 도리였다.

“…….”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8번의 또랑또랑하고 맑은 소리가 다시 연습실 내에 울려 퍼졌다.

힐끗 옆을 보니 에르네스트는 팔짱을 낀 채 동상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손가락으로 팔을 치거나 발장단을 맞추는 등 버릇없는 행위는 일체 없었다. 정말 시간을 정지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간간히 눈을 깜빡이지 않는다면 그대로 기절했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다시 에르네스트의 눈이 감겼다가 떠지면서, 눈동자가 내 쪽을 향했다. 난 화들짝 놀라 사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사샤에게 집중할 때였다. 뭘 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사샤의 연주를 들으며 감탄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혹시 도움이 될 만한 조언들을 정리했다. 그중에서도 사샤가 쌓아 올린 탑에 큰 변화를 주지 않도록 되도록 곧바로 피드백할 수 있는 조언들만을 추렸다.

“…….”

그렇게 연습실에선 감미롭고 해맑은 피아노 소리와 함께 평화로운 시간이 흘러갔다. 사샤의 피아노는 약간 드리웠던 내 마음의 어둠도 모두 거두어 가는 듯한 해맑음을 담고 있었다.

난 미소를 지으며 피아노에 잠겨들어 갔다. 늘 있으면서도 늘 특별한 시간이다.

깔끔하고도 격렬한 클라이맥스로 20분가량의 소나타가 끝나고, 사샤가 손을 늘어뜨렸다. 나와 에르네스트는 짧게 박수를 쳐 주었다. 사샤가 우릴 돌아보며 활짝 웃었다. 귀여워라.

에르네스트는 사샤를 보고 짧게 평했다.

“잘하네.”

그리고 어떤 조언을 덧붙일까 싶었는데, 그대로 에르네스트는 입을 다물었다.

더 할 말 없나요? 저렇게 예쁜 연주를 듣고도?

사샤는 살짝 실망한 듯 볼을 부풀렸고 난 매정한 에르네스트 대신 나라도 사샤에게 도움이 되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전체적인 노래의 흐름도 잘 잡고 있고, 아주 음악성 있고 멋진 연주였어요. 정말 좋았어요, 사샤.”

“고마워요. 누나.”

“전반적으로는 흠잡을 곳이 없지만, 제가 몇 가지만 말씀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당장 내일 실기시험인데 괜히 어려운 조언을 했다가 사샤의 피아노가 흔들리기라도 하면 본말전도다.

그래서 난 몇 가지 기억해 두었던 것들을 조심스레 권유했다. 어떠한 이미지나 해석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다소 기술적이고 간단한 조언들이었다.

“이 프레이징을 기억하시려면 따라서 허밍을 해 보시는 것도 좋을 거예요.”

“노래요?”

“예, 이렇게 말이죠.”

그리고 난 사샤가 이해하기 쉽도록 즉흥적으로 소나타의 멜로디를 따라서 허밍했다. 어떠한 가사 없이 호흡과 호흡으로 이어지는 허밍이지만 피아노로 노래하기 위해 프레이징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보다 좋은 방법도 드물다.

작게 읊조리고 있는데, 사샤는 눈을 크게 떴다.

“누나, 노래도 정말 잘해요.”

“고마워요.”

“전 누나가 피아노를 연주할 때마다 피아노로 노래한다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어요. 이런 느낌이었네요.”

대부분 피아니스트의 꿈은 피아노로 노래하듯 연주하는 것이라지만, 난 정말 내 노랫소리의 음색을 꽤나 연구했었다. 그래도 사샤가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

사샤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올려다보았다.

“누나, 노래로 이 소나타를 다 부를 수도 있어요?”

“아, 그건…….”

할 수는 있겠지만…….

잠깐 고민하고 있는데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에르네스트가 불쑥 말했다.

“타티아나. 정말 미안해서 그러는 건데, 사샤가 떼쓰는 걸 다 들어주진 마. 그…… 너도 피곤할 테니까.”

“그렇지 않아요. 에르네스트.”

“넌 맨날 괜찮다고만 하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사샤가 떼를 썼던 것은 없었다. 사샤는 열 살도 안 된 나이인데도 자신의 연주를 들어봐 달라며 정중하게 부탁할 줄도 아는 착한 아이인 것이다. 그런 부탁을 내가 어떻게 안 들어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사샤는 부탁에서 끝내지 않았다. 사샤가 말했다.

“형, 누나.”

“왜.”

“예.”

“제 실기곡 봐 준 답례로 음료수 사 올게요.”

부탁을 했으면 답례를 해야 한다는 것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난 괜찮다는 뜻으로 손사래를 쳤다.

“괜찮은걸요.”

“그래도요. 잠시 기다리세요.”

하지만 사샤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다는 듯 빠른 걸음으로 연습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냥 떼를 쓰고, 주는 것을 받는 것으로 충분할 텐데. 사샤는 마냥 귀엽게만 굴지 않고 꽤나 철이 든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난 몇 년 후의 사샤의 모습일 에르네스트를 문득 바라보았다.

에르네스트는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중얼거렸다.

“기다리긴 뭘 기다려…….”

“에르네스트, 가시게요?”

“뭐……. 아니면 피아노라도 칠까? 우리 요 근래 전적이 어떻게 되더라.”

마침 잘되었다는 듯 에르네스트는 손가락을 움직이며 말했다. 난 에르네스트와 자주 대결을 하곤 했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이 별로 들지 않았다.

“아뇨, 잠깐 이야기 좀 해요.”

“이야기……?”

“예.”

이야기하자는 말이 그렇게나 이상하게 들려요?

에르네스트는 저 좋은 피아노 두고 왜 말로 이야기를 하자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단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여간, 웃음이 나왔다.

난 다시 그의 옆으로 가서 의자에 앉았다.

“저기, 있잖아요. 에르네스트.”

“응?”

“스위스엔 언제 가시나요?”

연주회는 토요일이지만 아마 그 전에 갈 것 같아서 물어보았다. 에르네스트가 대답했다.

“목요일에.”

“금요일 시험은요?”

“목요일 오전에 몰아서 봐야지. 선생님들에게 허락은 받아 놨어.”

일정에 맞추기 위해 필기시험들을 몰아서 치르고 갈 모양이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였다. 나는 떨떠름하게 말했다.

“히, 힘들겠어요…….”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까.”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시험도 연주회도 모두 해야 할 일이니 간단히 해내버리겠다는 듯한 어투였다.

난 가만히 그를 보다가 물었다.

“저기……. 혹시 하시는 연주회, 홀에서 라이브 방송 같은 건 안 해 주나요?”

“그런 걸 해 주는 곳이 훨씬 드물 텐데.”

“그런가요. 그건 유감이네요. 그럼 어떻게 연주회를 관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

중얼거리다가, 문득 사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같이 가진 않느냐고 했었지. 하지만 그건 에르네스트가 분명 부담…….

“같이 갈래?”

“……!?”

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깜짝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에르네스트는 내 쪽을 보지 않고 있었다. 난 멍하니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분명 이전에 물어보았을 땐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 역시 생일날 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원치는 않았을 테지만 결국 연주회를 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에 친구들이 따라갈 이유는 없다는 듯 깔끔하게 거절하기까지 했다.

난 그것이 에르네스트 나름의 프로 정신이라고 생각하고 존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에르네스트의 제안에 순간적으로 머리가 멈춰버렸다. 심장 소리만이 귓가에 요란했다. 뭐라고 하지? 알겠다고 해?

“하하하하.”

그런데 난데없이 에르네스트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데, 그가 히죽 웃으며 내 쪽을 돌아보았다.

“농담이야 농담. 하하, 하하하. 당일에 와서 연주회만 보고 간다고 해도 그건 너무 부담스럽지. 안 그래? 심지어 사샤도 안 오는데.”

“전용기가 있긴 해요…….”

“전용기? 아, 그렇지……. 그래도 아무튼 신경 쓰지 마. 혼자 갔다 올 테니까.”

그는 정말 장난이었다는 듯 손을 휙휙 흔들며 말했다.

“…….”

물끄러미 그런 에르네스트를 보다가 어쩐지 나만 당한 듯한 기분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툭 던졌다.

“정말 같이 갈 수도 있는데요.”

“……어?”

“…….”

아까 전보다 두 배는 더 주위가 고요해졌다.

분위기가 심하게 어색해지기 전에 급히 웃음으로 덮어버렸다.

“아하하, 저도 농담이에요.”

“그, 그렇지?”

“갈 거였다면 몰래 가서 놀라게 해 드리지 이렇게 말하겠어요? 안 그런가요?”

“모, 몰래?”

“놀라는 게 아니라 화내실 건가요?”

“아니? 아니. 놀라겠지. 엄청 놀랄걸.”

에르네스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내게 물었다.

“진짜 몰래 전용기 탈 건 아니지?”

“아하하, 말씀드렸잖아요. 농담이라고요. 안 가요.”

“정말 안 가?”

“그렇다니까요. 아하하, 이렇게 말했으니 몰래 할 수 없잖아요?”

“그것도 그런가?”

에르네스트가 헛웃음을 흘렸다. 가벼운 말과 웃음소리가 오가며 잠시 어색해졌던 공기를 걷어 냈다. 우리는 그 후로도 한참이나 실없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나 참…….”

“아, 정말…….”

난 계속 웃다가 눈물까지 맺힌 눈가를 닦아 내며 중얼거렸다. 에르네스트도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서로 장난으로 넘어갔고, 내가 몰래 찾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실하게 말하기도 했으니 끝난 이야기가 되었지만, 다음 주에 난 생각해 두고 있는 것이 있었다.

에르네스트의 서프라이즈 생일파티를 하면 그가 어떤 반응을 보여 줄지 생각만 해도 즐겁다.

“후후.”

“뭐야, 지금 또 뭔가 무서운 생각 하는 것 같은데?”

“예? 아뇨, 억울해요.”

“글쎄…….”

“정말 억울한데요?”

“알았어. 미안해.”

사실 찔리는 구석이 많았지만 무조건 억울하다고 우기자 그가 두 손을 들고 항복했다.

웃음소리가 잦아들고, 고즈넉한 연습실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함께 피아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에르네스트와는 늘 피아노로만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해서 그런지 이런 대화는 조금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어쩐지 에르네스트와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늘 에르네스트와 피아노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닐지도 모르겠다.

지금 그에게 해 줄 말은 많았지만 어떤 것은 어색하고 어떤 것은 이상해서 약간 고민하다가, 가장 무난해 보이는 이야기를 골라냈다.

“에르네스트.”

“응.”

“스위스에 가서 잘하고 오세요. 에르네스트는 늘 잘하시지만요.”

“오케스트라랑 같이 하는 거라서, 내가 잘하고 싶다고 잘해질지는 또 모르겠네.”

피아노 연주자가 아무리 연주에 능숙하더라도 그것이 오케스트라와 잘 어울릴 수 있는지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피아노 연주자나 오케스트라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한 무대에 올려 두면 엉망이 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건 그렇죠 하고 웃어넘길 일은 아니었다. 그의 연주회는 반드시 잘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연습실 문이 끼이이 열리며 사샤가 들어왔다.

“뭐 해요?”

“아, 사샤.”

음료수를 사 온 사샤는 나와 에르네스트에게 캔을 건네주었다.

“여기요. 누나 거.”

“무겁지 않았나요?”

“괜찮았어요.”

조금 미안해졌다. 사실 여기서 에르네스트랑 이야기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사샤를 따라 나갔어야 했던 게 아닐까.

하지만 똑같은 상황이 다시 주어져도 곧 스위스에 갈 에르네스트와 이야기하고자 했을 것 같다.

내가 종종 사 마시는 오렌지 주스 캔을 쥐고 내려다보고 있자 에르네스트가 손을 내밀었다.

“줘 봐, 따 줄게.”

“고마워요.”

그에게 주니 순식간에 탁 따서는 내게 돌려주었다. 난 아직도 이걸 맨손으로 따려고 들다간 손톱이 부러지진 않을지 걱정이 되어서 결국 동전을 꺼내들곤 하는데, 이렇게 누군가 있으면 편하긴 했다.

난 열린 주스 캔을 바로 마시지 않고 그를 불렀다.

“에르네스트. 잠깐 이쪽 보세요.”

“?”

에르네스트가 고개를 기울이며 이쪽을 본다.

난 환하게 웃으며 제안했다.

“우리 건배할까요.”

“……뭐?”

“에르네스트의 성공적인 연주회를 위해.”

“캔으로?”

“뭐 어떤가요?”

에르네스트는 음료수 캔을 내려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잔이 아닌 캔으로 건배한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난 재촉했다.

“어서요.”

이윽고 그는 킥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사샤도 캔을 들었고, 우리 세 명은 연습실에서 캔 음료로 조촐하게 건배를 하기 위해 둘러앉았다. 건배사는 내가 맡았다.

“자, 에르네스트의 스위스 연주회의 성공을 위하여.”

“위하여.”

“고마워.”

에르네스트는 이런 자리도 약간 부끄러운지 작게 말했다. 그 모습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난 건배를 한 음료를 호쾌하게 쭉 들이켰다.

“콜록, 콜록콜록.”

“타티아나!?”

“누나!”

바보 같은 짓의 결과는 즉시 감당해야 했다. 사레가 들린 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기침을 했다.

마시던 걸 뱉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긴 했지만 이게 무슨 꼴인지 모르겠다. 입을 막고 최대한 보이지 않도록 허리를 숙였다.

에르네스트가 걱정스레 말했다.

“아무리 건배를 했어도 그렇지, 그걸 한 번에 원샷으로 마실 생각을 했어!?”

“괜찮아요?”

사샤는 내 뒤로 와서는 조막만 한 손으로 등을 토닥거렸다. 날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안 그래도 너무 세게 기침을 해서 머리가 다 흔들리는 것 같은데 등 뒤에서 무언가 통통 치니 급속도로 울렁거렸다. 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부탁했다.

“콜록, 자, 잠깐만요…… 사샤……. 등…… 콜록…….”

“더 세게요?”

“그만이라잖아.”

순진하게 묻는 사샤의 손을 치우며 에르네스트가 말했다.

고마워요. 큰일 날 뻔했네요…….

잠시 후 조금 진정되어서 살짝 고개를 드니 걱정 어린 시선이 내게로 모여 있었다. 창피해서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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