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9화
피아노 협주곡 협연자를 위한 개인용 분장실에서 에르네스트는 코디네이터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으로 의상을 점검했다.
“…….”
새 턱시도와 새 구두였지만 넥타이만큼은 새것이 아니었다. 에르네스트는 괜히 넥타이를 한 번 더 만져 보다가 실소를 흘렸다.
어차피 실력이 모든 것을 결정지을 것이다. 2천 석 홀에서의 연주회를 앞두고도 에르네스트가 크게 긴장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실력을 믿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불안 요소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 연주회는 리사이틀이 아닌,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었기 때문이었다.
『헤이, 에르네스트.』
닫혀 있던 분장실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휘적거리며 들어왔다.
루이스 비에리.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스위스 로잔 필하모닉의 악장이었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보수적인 구조의 오케스트라 악장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는데, 기적과도 같은 실력과 리더십으로 그것을 이루어낸 남자였다.
물론 그러한 평가는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의 이야기였고, 에르네스트는 단적으로 이 남자가 싫었다.
하지만 실력적으로 문제는 없고, 몇 시간 후면 무대에 올라 함께 협연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에르네스트는 오케스트라의 리더나 다름없는 루이스를 경시할 수 없었다.
딱히 자존심 세울 것도 없다. 프로정신으로 대하면 될 일이다.
에르네스트는 평이한 어조의 이탈리아어로 그를 맞이했다.
『무슨 일입니까? 비에리.』
『그냥 루이스라고 하라니까. 연주 직전까지 이럴 거야? 러시아 사람들은 보통 이름으로 잘 부르지 않던가?』
루이스는 경박하게 웃으며 러시아 이야기를 꺼냈다. 에르네스트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루이스는 슬라브인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다.
유럽 내에서도 가장 폐쇄적이고 외국인들을 배척하는 스위스인다운 대우라 생각하면 그만이었지만, 루이스는 개중에서도 조금 유별난 편이기도 했다.
딱히 잘못한 것 없이도 루이스가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에르네스트는 처음부터 직감했다.
에르네스트가 무표정하게 답했다.
『그건 러시아의 이야기고. 여긴 스위스죠.』
『그래 스위스지. 그러니까 내 말을 잘 들어 주는 건 어때?』
루이스는 기선을 잡으려는 듯한 언행도 보이곤 했다. 그것은 단지 느낌이나 의심이 아닌, 분명한 압력이기도 했다.
그건 처음 리허설 때부터 있었다.
기본적으로 오케스트라가 대편성 곡을 연주할 때 해석을 제공하고 곡을 만들어 가는 것은 오케스트라라는 거대한 악기를 다루는 지휘자의 역할이고, 그것이 솔리스트와 함께하는 협주곡이라면 솔리스트와 지휘자의 의견이 많이 들어가곤 했다.
하지만 이 로잔 필하모닉은 약간 달랐다.
독일에서 온 객원 지휘자 알베르트는 분명 자신의 의견을 내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이고 있는 것은 바로 악장인 루이스였다.
루이스는 에르네스트가 보이는 협주곡의 해석에 꼬치꼬치 의문을 제기했고 자신의 해석으로 옮겨 오려는 의지도 많이 보였다. 손에 쥐고 마음대로 휘두르고 싶어 하는 듯 했다.
에르네스트는 루이스에게 강하게 반발할 수 없었다. 촉망받는 천재이긴 하나 아직 열다섯 살에 불과한 에르네스트와 달리 루이스는 분명한 실력과 입지를 인정받고 있는 오케스트라의 악장이었다.
오케스트라의 실질적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악장의 힘은 막강했다. 모든 현악기의 보잉bowing과 조율 등은 악장의 지시를 따른다. 현실적으로 맞붙으면 상대가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에르네스트는 이런 상황에 말랑말랑하게 대처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에르네스트는 프로 의식으로 철저히 무장하고는 고집부릴 수 있는 부분은 확실하게 고집을 보이기도 하고, 루이스가 연주와 관계없는 잡담으로 정신을 사납게 하면 그냥 무시하곤 했다.
이 기 싸움은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지는 않고 있었지만, 타티아나가 약간 우려했던 대로 그렇게 시작부터 조금 삐걱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입니까?』
『하핫, 참.』
에르네스트가 다시 시큰둥하게 답하자 루이스가 경박하게 킬킬거렸다.
그는 양손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그냥 어떤지 한번 보러 왔어. 협연자에게 문제가 없는지 살피는 것 또한 악장의 일이기도 하거든.』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흠.』
에르네스트를 위아래로 보던 루이스는 손가락으로 목께를 가리켰다.
『넥타이를 하지 않고 목을 좀 풀어놓는 건 어때? 요즘 유럽에선 그런 게 트렌드인데.』
그 말처럼 딱딱하고 포멀한 의상 대신 편안하게 무대에 오르는 클래식 연주자들도 많다.
하지만 에르네스트는 딱 잘라 거절했다.
『싫습니다.』
그가 넥타이를 찬 이유는 단지 단정해 보이기 위함뿐만이 아니었다.
루이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인기 끌고 싶지 않나? 유행은 좀 따라주는 게 좋아.』
에르네스트는 관심 없다는 듯 무표정하게 입을 다물었다. 루이스는 옆의 의자의 팔걸이에 대충 걸터앉으며 말했다.
『어쨌든, 에르네스트.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건 장난 같은 게 아니야.』
『저도 비에리 악장님과는 친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그래, 그래.』
영혼 없이 대답하자 루이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난 유망한 피아니스트들과의 첫 단추를 되도록 잘 꿰고 싶어.』
들과?
미심쩍은 복수형의 사용에 에르네스트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을 때, 루이스가 구불거리는 갈색 머리를 손으로 쓸더니 히죽 웃으며 말했다.
『어제 재미있는 영상을 하나 봤거든.』
『……?』
『어제 널 응원하던 친구들 중에서 얌전하던 아이 있잖아. 마지막엔 서툰 이탈리아어로 우리 연주회의 성공을 기도해 준 그 착한 친구.』
에르네스트는 눈도 깜빡하지 않고 루이스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루이스가 계속해서 말했다.
『어쩌다가 인터넷에서 영상으로 그 친구의 연주를 보게 되었는데…… 꽤, 아니 상당히 괜찮더라고.』
어쩌다가 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찾아본 건지 짐작도 안 간다. 같은 학교 친구라는 정보로? 빌어먹을 인터넷에선 검색이라는 것이 너무 쉽다.
오케스트라의 악장의 평가는 중요했고, 그의 입에서 나온 괜찮다는 말은 친구로서 기뻐해야 했지만, 에르네스트는 자기도 모르게 어금니를 물었다.
『러시아 중앙음악학교의 수준이 이 정도인 줄은 미처 몰랐는데 조금 놀랍더라고. 어제 너와 리허설을 했을 때도 그렇고…….』
그렇게 칭찬을 이어 가던 루이스가 눈을 찡긋했다.
『그, 타티아나라는 친구의 실력도 그렇고.』
『…….』
무대를 앞두고 장난질할 거면 꺼지라고 쏘아붙이려던 에르네스트는,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 화내는 쪽이 미친놈이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간신히 이성을 붙잡았다. 참아야 했다.
대신 이전처럼 신경 쓰지 않겠다는 눈빛을 할 순 없었다.
루이스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흠. 왜 그렇게 보지?』
『……무슨 말이신지 모르겠는데요.』
『그 아이, 네 친구라고 하지 않았던가?』
『…….』
역시, 지금 반응을 보였다간 꼼짝없이 당했을 것이다.
머리가 차갑게 식는다. 대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지만, 어울려 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에르네스트가 차갑게 대답했다.
『친구입니다.』
『그 세 명 중에서도 특별해 보이던데.』
『착각입니다.』
대체 왜 초점이 타티아나에게 맞춰져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에르네스트가 대꾸했다. 어떻게 해서든 그 초점을 흐트러뜨려 놓고 싶었다.
루이스는 손가락을 하나 들어 좌우로 저었다.
『이거 참, 뻣뻣한 남자네. 그러면 여성들에게 사랑받지 못할 텐데.』
『신경 쓰실 일은 아니라 생각됩니다만.』
『본인 얼굴이 아깝지 않아?』
『……뭐라 하셨습니까?』
『재미없네.』
이 싸이코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에르네스트가 쳐다보자 루이스는 키득거렸다. 이제 이쯤 하려나 했지만, 루이스는 집요했다.
『아무튼, 그냥 친구라도 상관없어. 다음엔 그 친구도 스위스로 초대해 줄게. 곧 방학이니 얼마든지 가능하겠지. 로잔 필하모닉의 악장으로서 그냥 넘어가기 조금 아쉽네.』
마지막까지 신경을 긁기로 했는지 루이스가 제안했다.
『그러니 연주회 끝나고 소개 좀 해 주겠어?』
에르네스트는 싸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연신 웃음기를 띄고 있는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객관적으로 루이스가 하는 말만 놓고 보면 에르네스트가 나서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었다.
로잔 필하모닉은 스위스에서 규모와 명성이 상당한 오케스트라였고, 루이스는 실질적으로 이 오케스트라를 틀어쥐고 있는 악장이었다.
그런 그가 에르네스트 다음으로 타티아나도 함께 협연 상대로 삼아 주겠다고 제안하고 있었다. 성인도 되지 않은 어린 피아니스트에게 이런 기회는 꽤 귀했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타티아나에게 이 기회를 이어 주는 것이 옳았다. 그녀는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기회를 필요로 하고 있었고, 그렇다면 이 기회는 그녀에게 굉장한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잠시 고민한 에르네스트는 입을 열어 대답했다.
『싫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거절의 말이 튀어나왔다. 말하고 나서야 과잉반응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르네스트는 인상을 썼다.
루이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짜증이 났다.
아니나 다를까, 루이스는 에르네스트의 반응에 그냥 넘어가 주지 않았다.
『왜지? 친구라고 하지 않았던가?』
네가 뭔데 거절하느냐고 묻고 있다.
에르네스트는 지금도 충분히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피아노 연주자가 오케스트라가 협연하자고 하면 달려와야 합니까?』
『푸핫.』
당돌하기 짝이 없는 에르네스트의 말에 루이스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여태까지 아무리 괴롭히고 놀리고 자극해도 꿋꿋하게 있던 에르네스트가 성질머리를 보이자 조금 놀라기도 한 모습이었다.
루이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달려 오는 게 좋지 않을까?』
『그건 오늘 보면 알 수 있겠군요.』
『호오…….』
자신감에 넘치는 대꾸.
오늘 당신이 이끄는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해 보고 마음에 든다면 모르겠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달려오긴커녕 걷어차버리겠다는, 굉장히 오만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겨우 열다섯 살밖에 안 된 어린 연주자의 패기 넘치는 태도에도 루이스는 화를 내지 않고 싱글거리며 웃었다. 그 웃음에 에르네스트는 한층 더 시니컬하게 말했다.
『무대와 관계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도록 하죠. 당장 2시간 후 무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바쁘잖습니까?』
『오케스트라의 악장이…….』
『비에리께서 악장이라는 것은 저도 잘 압니다.』
『음.』
에르네스트는 분명히 선을 밟았다. 하지만 그 전에 루이스는 자신이 먼저 선을 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일을 더 확대시킬 수도 있지만 루이스는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우리 협연자를 필요 이상으로 화나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이쯤 할까.』
『필요 이하로 화나게 한 겁니까, 지금?』
『푸하하하. 무섭군, 무서워.』
낄낄거리는 웃음을 들으며 에르네스트는 한숨을 내쉴 뻔했다. 루이스가 뭘 하건 깔끔하게 무시했었어야 했다.
하지만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다. 에르네스트는 똑같은 상황이 다시 주어져도 똑같이 반응했을 것이다.
『지금 표정 굳었어, 친구. 얼굴 펴. 너무 긴장하진 말고.』
『…….』
능글맞게 웃는 표정을 조금 짜증스럽게 마주하자, 루이스는 앉아 있던 의자 팔걸이에서 훌쩍 뛰어내리며 말했다.
『이번엔 특별히 봐줄 테니까. 무대 위에서 마음껏 해 보라고. 받쳐 줄게.』
『……?』
『어제 분명히 부탁받았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루이스는 등을 돌려 분장실을 나가버렸다.
『…….』
봐주겠다고?
진짜 사이코인가?
에르네스트는 연주자로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정말 별의별 해괴한 사람들을 많이 봐 왔다. 세상엔 실력과 관계없이 상상 이상으로 정신 나간 사이코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루이스는 많이 미친 사이코였다.
에르네스트는 잘못한 것이 없지만, 어쩌면 루이스는 러시아에서 온 꼬맹이에게 본때를 보여 줬을지도 모른다. 정말 무대가 어찌되든 상관하지 않고.
특별히 봐 주겠다는 말은 결코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
오케스트라와 협연자가 서로 맞지 않아서 틀어지고, 심할 경우 협연 자체가 무산되는 일은 꽤 자주 일어난다.
타티아나는 에르네스트를 보내기 전부터 그런 경우를 염려해 주기도 했다.
그 염려가 이어져서, 타티아나는 화상 통화에서 오케스트라의 악장인 루이스에게 잘해 달라는 부탁을 했던 것이다. 할 줄도 모르는 이탈리아어를 외워서까지.
그렇게 타티아나가 한 부탁을 루이스는 상당히 기껍게 받아들인 듯했고, 그것은 에르네스트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해버렸는지도 모른다.
『…….』
에르네스트는 물끄러미 거울을 보다가 넥타이로 손을 가져갔다. 마법이 걸려 있는 넥타이가 오늘 연주회에서도 그를 지켜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후.』
그래도 역시 짜증이 난다. 상당한 과잉반응이라는 자각은 있지만 자중이 잘 안 된다.
물론, 그간 겪어 본 타티아나는 그리 호락호락한 성격이 아니었다. 착해 빠진 성격에, 보기엔 유약해 보이는 그녀는, 루이스가 헛소리를 한다면 단칼에 날려버릴 만한 결단력과 힘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다. 에르네스트가 굳이 신경 쓸 수준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에르네스트는 모른 척하지 못했다.
당연하잖아. 루이스 같은 사이코 말고도 소개해 주고 싶은 악장은 많아. 그 애가 날 응원하고 지켜 준 것이라면, 나도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지.
거울을 보며 에르네스트는 마음을 다잡았다. 연주회는 2시간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루이스는 에르네스트를 실컷 가지고 놀고는 타티아나의 부탁을 봐서 이쯤 하겠다는 듯 나갔다.
이젠 에르네스트의 차례였다.
“……마음껏 해 보라고?”
거울 속의 에르네스트는 신경질적으로 웃고 있었다.
***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나는 친구들과 외출하기 전 잠깐 쉬면서, 태블릿 컴퓨터로 이러저런 인터넷 뉴스들을 검색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집중해서 검색한 것은 스위스의 음악 언론사의 뉴스였다.
“……있을 텐데.”
내가 찾는 것은 어제 있었던 에르네스트의 연주회 결과였다.
직접 전화로 물어보면 간단하겠지만, 지금 동시에 서프라이즈를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약간 어색했다.
때문에 내가 택한 방법은 뉴스를 찾는 것이었다. 2천 석도 넘는 홀에서의 협연이니 있을 만도 했다.
“아, 찾았다!”
예상했던 대로 찾아낼 수 있었다. 러시아의 신동 에르네스트 스테파노비치 베샤스트니흐와 스위스의 로잔 필하모닉의 협연에 관한 기사였다.
난 빠르게 그 제목을 읽고는, 작게 심호흡을 하고 기사를 읽어 내렸다.
혹평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곧바로 사라졌다. 기사의 내용은 감탄과 찬사뿐이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인터뷰와 음악 평론가들의 평론도 굉장히 좋은 이야기들뿐이었다.
“…….”
난 안도했다. 연주회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에르네스트가 연주회를 실패하리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오케스트라와 잘할 수 있길 기도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영상 통화로 보았던 오케스트라의 악장이라던 이탈리아 남자는 에르네스트와 상당히 친근해 보였는데, 정말 좋은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잘해 주어서 너무 고맙다. 굳이 부탁까지 한 보람이 있었다.
그렇게 흐뭇하게 기사를 읽어 내리던 나는 조금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앙코르로 11곡을 쳤다고……?”
조금 읽어 내려가자 연주회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그 열기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었다. 난 중얼거리며 집중해서 자세히 읽어 보았다.
내용은 기가 막혔다. 에르네스트는 인터미션을 합쳐 2시간 동안 준비된 프로그램인 피아노 협주곡을 2곡 연주하고는, 그 뒤로 앙코르곡을 1시간 30분 동안 11곡이나 선보였다고 한다.
솔로 리사이틀이라면 이런 경우도 꽤 있었으나, 오케스트라의 협연에선 정말 드문 경우였다. 협주곡은 체력 소모도 심하고, 앙코르곡을 연주하는 사이 다른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앉아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앙코르 연주를 하더라도 두어 곡 정도에서 그친다.
하지만 에르네스트는 11곡을 연주했다. 대체 무슨 일인가요, 에르네스트?
아무튼 이 엄청난 앙코르곡의 파도에 청중들이 얼마나 만족했는지 놀라움이 가득한 글귀들이 적혀 있었다. 연주회 실황을 직접 관람한 2천 명의 청중들이 부러워졌다.
하지만 부러워해 봐야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나는 연습실에서나마 에르네스트에게 신청곡을 잔뜩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기사를 읽어 내렸다.
앙코르곡 11곡 중 독주곡이 8곡에 바이올린과의 소나타가 3곡이었다. 바이올린은 제1바이올린 수석 주자인 루이스 비에리가 맡았다고 하는데……. 제1바이올린의 수석 주자라면 악장이었다. 바로 그 사람인 것이다.
“정말 친한 사이인가 보네요.”
악장과 협연자가 함께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하다니, 보통은 없는 일이었다. 역시 오케스트라와 앙코르 곡을 10곡도 넘게 연주하기로 협의는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보다 에르네스트가 이렇게나 열정적인 사람이었나? 물론 피아노에 있어서 누구보다 열정적인 사람이긴 했지만 청중들을 위해 앙코르곡을 11곡이나 연주하진 않을 것 같은데, 청중들의 열기가 그만큼 뜨거웠나?
“…….”
모르겠다.
아무튼 에르네스트는 또 한 번의 연주회를 엄청난 찬사 속에 마쳤고 스위스의 로잔 필하모닉이라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와도 친분을 다졌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최고의 결과였다.
난 기분 좋게 웃으며 태블릿 컴퓨터를 내려놓고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