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250화 (250/1,277)

##  250화

주말이 지나갔다. 학교에 등교한 나는 바로 반으로 향하지 않고 아나스타샤, 발렌티나와 한 연습실에 모였다.

“…….”

어제도 우리 세 명은 모여서 함께 쇼핑을 하고, 에르네스트를 위한 서프라이즈 파티를 열어 주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이 파티는 이미 지나간 그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과 스위스에서의 성공적인 연주회를 축하하는 두 가지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었다.

아나스타샤는 리처드도 끌어들여서 일을 키우고 싶어 하는 듯했으나, 리처드가 작정하고 에르네스트를 도발하면 서프라이즈 파티를 위한 몰래카메라 수준의 장난이 아니라 정말 서로 정색하게 되는 살벌한 상황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때문에 우리의 계획은 상당히 단순하게 세워졌다. 거의 모든 역할이 아나스타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에르네스트를 도발하는 것도, 다투는 것도, 파티를 준비한 스터디룸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모두 아나스타샤의 역할이 되었다.

상대적으로 나와 발렌티나의 비중은 적었으나, 그래도 성공적인 계획을 위해선 우리에게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

“너무 어색하게 할 필요는 없지만 살짝 무심하게. 알지?”

아나스타샤가 장난스레 웃으며 손가락을 세웠다.

“딱히 걔를 화나게 만들 필요는 없어. 바라지도 않고. 그냥 무심하게 대해 줘. 할 수 있지?”

“응. 할 수 있어.”

발렌티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난 약간 불안하게 말했다.

“할 수 있을까요.”

“해야지.”

“……그렇죠.”

에르네스트의 생일은 이미 이틀 전에 지나갔고, 그는 우리가 파티를 준비하고 있는 줄 전혀 모른다. 때문에 저번 아나스타샤의 생일 때와는 달리 이번엔 정말 성공 확률이 꽤 있었다. 성공시켜야만 했다.

애초에 내가 제안한 일이기도 했으니 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연주회 이야기를 하는 건 괜찮겠죠? 그 이야기도 하지 않으면 거꾸로 의심을 살 테니까요.”

“응. 그렇게 해.”

아나스타샤가 괜찮다는 듯 말했다.

우리 세 명은 마지막으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나와서 반으로 들어섰다. 나와 아나스타샤가 먼저 들어갔고 발렌티나는 잠시 뒤에 오기로 했다.

에르네스트는 이미 와 있었다.

“…….”

왠지 모르게 오랜만에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조금 이상했다.

에르네스트가 날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언제나처럼 손을 까딱이며 인사해 왔다.

“안녕. 타티아나. 아나스타샤.”

“좋은 아침이에요, 에르네스트.”

“안녕.”

평범한 인사가 오가고, 우리는 그의 근처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에르네스트의 스위스 연주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해외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생일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이 아나스타샤는 에르네스트와 연주회에 대한 이야기만을 했다.

나도 그 사이에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기사를 봤어요, 에르네스트.”

“기사……? 기사가 있었어?”

“예. 스위스 인터넷 신문에서요. 정말 좋은 연주회였다는 극찬이 끊이질 않던걸요?”

“아, 그래? 고마워.”

“실황으로 듣지 못해서 후회가 막심해요.”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상당한 본심이 섞인 말이었는데 에르네스트는 별다른 말 없이 그냥 그렇게 넘어가버렸다. 어쩔 수 없다는 건 나도 잘 알지만, 정작 이런 대답을 들으니까 살짝 황당했다.

갑자기 왜 내 쪽에서 서운해지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난 말을 하지 않으면 엉뚱한 생각이 자꾸 들 것 같아서 계속 말했다.

“앙코르곡을 11곡이나 연주하셨다면서요?”

“어……. 응.”

“바이올린 소나타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어쩌다 보니까.”

대답이 왜 이래 정말?

에르네스트는 더 이상 이야기하기 싫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해외에서 그렇게 큰 오케스트라와 함께 대형 홀에서 연주회를 하고도 이렇게 할 말이 없어요? 말하기 싫은 건가요?

난 내색하지 않고 방긋 웃으며 물었다.

“로잔 필하모닉의 악장님과 친해지셨나 봐요?”

“뭐라고?”

돌연 에르네스트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난 깜짝 놀랐다.

그가 낮게 물었다.

“누구랑 친해져?”

“어……. 그때 뵈었던 악장님이요. 성함이 루이스 비에리라고 하셨죠.”

“그때 뵙긴 무슨, 이름은 또 어떻게 아는…….”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리던 에르네스트는 자신이 아무 이유 없이 이런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곧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 그…… 사람에겐 신경 꺼.”

“오해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간다. 오해라니?

조심스레 다시 물었다.

“그분이나 지휘자님이 편의를 봐주지 않으셨다면 앙코르곡을 그렇게 연주하실 수가…….”

“아니라고 했잖아.”

그는 살짝 짜증스러움을 내비쳤다.

우리는 서로 피아노로 공격성을 보이는 일도 자주 있었고, 그 정도는 즐길 수도 있는 사이였다. 연주자로서 그와 나는 라이벌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이유도 없이 그가 내게 짜증스레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갑자기 억울함이 치민다. 하지만 똑같이 짜증으로 맞설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난 멍하니 물었다.

“가, 갑자기 왜 그러세요.”

“하……. 내가…….”

에르네스트는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하나 묻자, 타티아나. 너 그때 왜 비에리에게 얼굴을 보여 가면서 그렇게까지 말한 거야?”

“……예? 그게 그렇게까지라고 할 일인가요?”

“나 진짜…….”

내가 오케스트라의 악장인 비에리에게 말한 것은 에르네스트와 함께 멋진 무대를 만들길 기도하겠다고 했을 뿐이었다. 내가 대체 뭘 잘못했단 말인가?

약간 따져 묻듯 말했다.

“제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주세요. 왜 짜증이 나신 건가요. 전 그저 에르네스트를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그러니까 그걸 왜 네가 부탁해.”

“…….”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내 기분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데엔 단 한마디면 충분했다. 내 표정을 본 에르네스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도 자신의 말이 심했다고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기분처럼 끔찍하진 않을 것이다.

난 낮게 읊조렸다.

“미안해요.”

“……타티아나.”

“제가 주제넘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타티아나, 잠깐만.”

뒤따라오는 말을 듣지 않고 난 그대로 교실에서 나와버렸다. 실례라는 것을 알면서도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

차가운 복도로 나와서도 한참을 걷다가 인적이 드문 곳에 멈추어 섰다.

목 뒤로 무언가 울컥하고 치미는 게 느껴진다. 이게 분노인지 수치스러움인지 억울함인지, 뭔지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요즘 들어 부쩍 정신력이 약해진 것을 느끼지만 이렇게 나약할 줄은 몰랐다. 난 창틀을 꽉 쥐며 기분을 추슬렀다.

조금 차분하게 생각했다. 내가 평소에 정도 이상으로 간섭이 심하고 그게 오지랖이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다는 건 잘 안다.

그리고 또래 남자애들이 그런 간섭에 자존심이 상하고 불쾌하게 여길 수도 있다는 것도 이해한다. 응. 난 이해할 수 있어. 이해하니까.

“…….”

이해한다고 계속해서 되뇌어도 기분이 끔찍하게 우울해졌다.

만약 올해 처음으로, 그것도 시험을 앞두고 조퇴하면 그게 얼마나 무책임한 행동이 될지 생각하고 있는데,

“타티아나.”

“아나스타샤.”

곁에 다가온 아나스타샤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괜찮아?”

“무슨 말씀이세요? 다, 당연히 괜찮죠. 그보다…… 잘됐죠? 계획엔 없었지만 어쨌건 제가 에르네스트를 화나게 만들었으니 말예요.”

“타티아나.”

“이따 오후에 그를 놀라게 할…….”

모든 것이 다 계획이었다는 듯 뻔뻔하게 말해서 아나스타샤도 놀랠 생각이었는데,

“…….”

머리 어딘가가 마비된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난 입을 다물고 아나스타샤를 올려다보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전 좋은 뜻으로 그랬던 건데……. 오케스트라와 트러블이 생기는 일도 많으니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음……. 타티아나?”

“그걸 그렇게 불쾌해하실 줄은 몰랐어요.”

영상통화 너머로 당시의 에르네스트는 괜찮아 보였는데, 사실은 이렇게 짜증스러워할 정도로 불쾌해할 줄은 몰랐다.

왜 이렇게 소심해졌지. 울적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갑자기 반항기가 치솟았다. 그냥 방금 그 자리에서 확 화를 내며 싸워버릴 걸 그랬다.

대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고 따졌다면 지금 이렇게 우울하진 않았을까. 하지만 그가 냉랭하게 쏘아붙이기라도 했다면, 결국 그를 이기진 못했을 것 같다.

아니, 못 이길 건 또 뭐야? 당장 가서 들이받아버려 그냥?

온갖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치 내 생각을 들여다보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던 아나스타샤가 날 다독이며 말했다.

“타티아나. 너 에르네스트가 왜 앙코르곡을 그렇게 많이 쳤는지 전혀 모르지?”

“……? 그날 연주회 분위기가 좋았던 것 아닐까요.”

아무 생각 없이 답하자 아나스타샤가 맑게 웃음을 터뜨렸다. 대체 왜 웃어요? 저 심각한 거 안 보이세요?

살짝 힐난하는 눈초리를 하니 아나스타샤가 여전히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냥 내버려 두면 넌 에르네스트를 이상한 애라고 생각하겠지?”

“아, 아뇨. 그렇진 않을 거예요.”

“나야 상관없는 일이지만…… 네 기분이 안 좋아 보이니 상관없지도 않고, 어쨌든 친구 된 이상 그럴 순 없겠네. 오늘은 걔를 위한 날이기도 하고……. 공평해야지.”

“……?”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무어라 묻기도 전에 그녀가 결심이 섰는지 말했다.

“타티아나.”

“예?”

“내가 그 귀찮은 남자에 대해 한 가지 가르쳐 줄게.”

아나스타샤는 정말 선심 쓴다는 듯 가늘게 웃었다.

“에르네스트는 정말 완벽하게 연주회를 끝냈다고 생각했을 땐 앙코르를 아예 안 쳐.”

“……?”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연주회가 완벽하면 완벽할수록 앙코르를 안 한다고?

“왜요?”

“나도 모르지. 그냥 그게 걔 고집이야. 불필요한 앙코르는 연주회의 완성도에 저해가 된다나. 웃겨.”

연주회의 본 프로그램이 완벽했다면 그 여운을 앙코르로 망칠 수도 있다는, 지극히 완벽주의자스러운 이유였다.

난 이전에 봤었던 그의 무대를 떠올렸다.

“저번 자선 연주회에선 앙코르를 연주하셨잖아요?”

“그땐 혼자 무대에 올라간 게 아니라, 나랑 걘 찬조연주자였잖아. 개인적인 고집을 내세울 자리는 아니었지.”

그건 사실 고집이 아니라 일종의 신념인 것 같았다. 같은 연주자로서 납득할 수 있는 이유였다.

잠깐만……. 정말?

“그러면 이번엔?”

“마음에 안 들었던 게 있었던 게 아닐까. 연주나, 오케스트라나,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거기에 화가 난 거야.”

“……?”

난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이 완전히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11곡이나 되는 앙코르는 분명 기분 좋은 이유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순간 소름이 돋았다.

“제가 전화로 악장님께 말한 게 그렇게까지 화날 일이었다고요?”

“아니? 그건 아닐걸. 다른 게 문제지.”

“뭐죠……?”

오케스트라와 잘하라고 한마디 했다고 해서 화가 날수록 점점 늘어난다는 앙코르를 11곡이나 쳤다니. 황당하기도 하고 이해가 안가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멍하니 물었다.

아나스타샤는 음, 하고 생각한다.

“난 알겠는데.”

“뭐, 뭔가요?”

“안 가르쳐 주지.”

“왜요!?”

에르네스트와 오래 지낸 만큼 그에 대해 잘 아는 아나스타샤가 날 이해시켜 주리라 생각했었는데, 그녀는 딱 여기에서 설명을 그만두었다.

그러고는 장난스레 말했다.

“그냥. 난 오늘만큼은 에르네스트가 이해가 돼서 말이지.”

“아나스타샤!?”

난 거의 비명을 질렀다.

말도 안 돼.

무슨 일이 있어도 아나스타샤가 반드시 내 편을 들어 줘야 한다는 법은 없었지만, 지금 이렇게 에르네스트를 이해한다는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난 기가 막혀서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녀의 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가르쳐 주세요!”

“싫어.”

“그러시지 말고요. 제발요.”

“아하하, 싫어.”

내가 매달릴수록 아나스타샤는 더 재미있어했다. 정말 울고 싶어진다. 나한테 왜들 이러는 거야?

“저, 저 지금 배신감 느껴요. 정말로요!”

“아하하하하.”

애원하고 협박하고 무력을 써 보려 해도 아나스타샤에겐 아무것도 통하지 않았다. 애초에 난 그녀에게 무언가 할 수 있지도 않았다.

온몸에 힘이 빠져서 풀이 죽어 있자 아나스타샤는 미안하다는 듯 날 끌어안으려 했다. 난 반항적으로 그녀를 밀쳐 냈다.

아나스타샤는 멈칫하더니 말했다.

“그래, 걔 사정이 어쨌건 타티아나 넌 화를 낼 만하지.”

“아나스타샤 때문에 더 화났어요.”

“미안해 타티아나. 미안해. 화내지 마.”

“…….”

난 정말 단순한 사람임이 분명했다.

여기서 한 번 더 화를 내야 내가 원하는 정보들을 얻을 수 있을 텐데, 못 하겠다.

그렇게 잠깐 아나스타샤에게 안겨 있는 사이, 울적했던 감정들이 깔끔하게 증발했다.

약간 냉정해진 머리는 상황을 다시 이해하려 애썼다.

에르네스트는 스위스에서의 연주회에서 짜증이 나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거기엔 내 영향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뭔진 몰라도 아나스타샤는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저 웃으면서 그럴 수도 있다는 투였다.

아나스타샤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내가 심각해질 이유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 수동적인 논리로 조금씩 정리를 하고 있는데 아나스타샤가 날 놓아주더니 매력적으로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잘됐어.”

“……?”

“걔 자기도 모르게 화는 냈어도 그게 너한테 하면 안 될 일이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거야. 너한테 사과하러 오겠지.”

아나스타샤는 당연하게 그렇게 되리라고 예언했다. 별 것 아닌 해프닝으로 가볍게 끝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듯했다.

약간 안심하려는 찰나,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걷어차버려.”

“예?”

“사과하면 받아 주지 말라고.”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놀라서 멀거니 바라보니 그녀가 후훗 하고 웃었다. 난 그제야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기왕에 벌어진 상황이니 이용하자는 뜻이었다.

불안해하며 물었다.

“그, 그래도 되나요?”

“되고말고. 오늘 무슨 날이야? 걔한테 서프라이즈 해 주려는 날 아니었어? 점심 까지만 시간을 끌어 보자.”

“정말 화내버리시면 어떡해요?”

“자기가 먼저 잘못해 놓고는 사과를 안 받아 줘서 화를 낸다고?”

아나스타샤는 그게 말이 되냐는 듯 말했다. 이럴 때 그녀는 정말이지 차갑다.

아나스타샤가 재차 내게 강조했다.

“절대 받아 주지 마. 알겠지?”

“자신 없는데요…….”

“타티아나. 네게 오늘 이벤트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어.”

“그…… 저기, 오늘 혹시 제 몰래카메라든가 그런 건 아니겠죠?”

“어? 아하하하.”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서 그렇게 물었더니 아나스타샤는 생각도 못했다는 듯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다시 와락 날 끌어안는다.

“정말, 정말로 얘를 어쩌면 좋지.”

“아나스타샤, 놓아주세요.”

“싫어.”

그녀가 날 누르는 힘은 그리 강하지 않아서 아프거나 하진 않았지만, 이런 건 조금 창피했다. 아무리 보는 사람이 없어도 그렇지. 너무 서슴없는 것 아닌가?

잠시 후에야 그녀가 날 놓았고, 우리는 같이 교실로 향했다.

복도를 거닐면서 생각했다.

에르네스트가 먼저 사과를 한다면 무시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난 누군가가 진심으로 사과하면 그걸 매정하게 무시해버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도…….

문득 방금 전 느꼈던 감정들이 떠올랐다. 억울하고 슬펐다. 반에 돌아가긴커녕 바로 집으로 돌아가버리고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정도는 되갚아 줘도 되지 않을까.

난 독하게 마음을 먹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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