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258화 (258/1,277)

##  258화

마카로프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타티아나는 긴 말 할 것 없이 연주로 증명해 보이겠다는 듯 빙그레 웃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다시 부스로 들어간 타티아나는 주저하지 않고 곧장 피아노 앞에 앉았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타티아나는 양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조용히 기다렸다. 마카로프의 신호가 떨어지기 전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

마카로프는 이렇게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님을 깨달았다. 빠르게 이전 녹음한 파일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음악을 녹음할 준비를 시작했다.

잠시 후 마카로프가 부스 안으로 말했다.

“시작하셔도 됩니다.”

타티아나는 마카로프의 목소리 잔향이 부스 안에서 맴돌다가 완벽하게 사라지는 것까지 끝까지 확인하고, 이윽고 고요해진 부스 안에서 손을 들어올렸다.

“…….”

단조의 착 가라앉은 음색이 울린다. 그 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분명한 형태를 지니고 마이크를 때렸다.

천천히 하강하는 화음은 처음엔 청명한 소리로 거대한 부피를 지니고 있었지만, 점점 묵직해지면서 바닥으로 깔리는 듯했다.

첫 마디의 진행을 듣자마자 마카로프는 이 곡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슈만의 교향적 연습곡symphonic etudes. op.13

곡의 이름만 들어보면 심포닉, 즉 여러 음들이 조화를 이루는 교향적인 구조를 지닌 연습곡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변주곡에 가까운 곡이었다.

그 첫 주제가 타티아나의 손에서 펼쳐졌다.

“…….”

차분하게 이어지는 선율은 마치 비극적인 오페라의 한 소절과 닮아 있다.

슈만은 1837년 출판된 교향적 연습곡의 초판 말미에 아마추어의 선율에 의해 작곡되었다고 적어 두었는데, 이 아마추어는 슈만이 사랑했었던 연인인 에르네스티네 폰 프리켄의 부친인 폰 프리켄 남작이었다.

폰 프리켄 남작의 주제로 출발하여 환심을 사려고 했는지, 아니면 에르네스티네를 위한 헌정의 의도였는지에 대해선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슈만의 손이 닿은 선율은 아마추어의 한계를 한참이나 뛰어넘어 훨씬 높은 곳에 닿아 있었다.

비극적인 오페라, 혹은 슬픈 영화를 보면 느낄 수 있는 노도와 같은 감정들이 단지 몇 초 음악을 들었을 뿐인데 강제로 뇌리에 쏟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야기를 이해한 뒤에 감정이 들끓어 오르는 것은 평범한 인간의 감상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정 반대로 지금 마카로프는 들끓어 오르는 감정으로부터 수백 가지도 넘는 이야기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타티아나의 손가락 끝에서 빚어지는 음악에는 그만큼이나 강렬하게 인간의 마음을 뒤흔드는 울림이 있었다.

슈만의 피아니즘다운 깊은 고찰과 풍부한 감성, 그리고 타티아나의 기적과도 같은 표현력이 합쳐져서 교향적 연습곡의 주제곡을 그려 낸다.

“…….”

마카로프는 이 뒤에 이어질 변주들을 기대하며 뚫어져라 유리 너머를 바라보았다.

타티아나는 그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했다.

주제를 푸가풍으로 변주한 경쾌한 변주곡이 시작되었다. 리듬이 바뀌고 음색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전체적인 느낌이 새로워진다. 선율 전체를 변주한 것이 아닌, 일부를 따와서 변주하는 방식은 베토벤식의 성격 변주에 가까웠다.

“…….”

축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하고 슬픔을 애도하기 위해 헌화를 하듯, 같은 꽃이라 해도 상황에 따라 쓰이긴 천차만별이다.

타티아나는 그것을, 곡마다의 상징을 정확하게 끌어올리고 이미지화시켜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삼는 재능이 있었다.

그렇게 음악을 도구로 삼는다 하더라도 이렇게나 노련하게 사용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천재적인 섬세함.

어딘가 조소하고 조롱하는 듯한 목소리가 알랑거린다. 그것을 잡으려고 손을 내뻗으려고 하는 순간, 뒤로 슥 피해버리고는 곧 뻐꾸기가 되어 다른 곳으로 날아가버린다.

이 기가 막힌 실력에 마카로프는 혀를 찰 뻔했다.

농락하는 뻐꾸기에게 두 번 놀아난 마카로프에게 곧바로 다음 변주가 파도처럼 밀려든다.

풍부한 울림과 부피를 지닌 화음이 연달아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주제는 처음 제시되었던 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표현적인 부분에서 완전히 다른 곡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거의 여덟 개가 훨씬 넘는 성부가 한 번에 합쳐지는 것 같은 착각은 이 곡이 왜 교향적 연습곡인지에 대한 첫 설명이 된다. 이전까지는 맛보기였다는 듯 거대한 부피의 음악이 연속적으로 울렸다.

그다음 이어지는 3번 연습곡, 비바체는 변주와는 상관없는 다른 선율을 그려 낸다. 그것은 마치 고도의 테크닉을 자랑하는 비르투오조 바이올리니스트의 솜씨를 감상하는 듯하다.

마카로프는 빠르게 펼쳐지는 아르페지오에서 분명하게 바이올린의 테크닉을 느꼈다. 피치카토 주법과 그것을 보조하는 현악군의 연주.

문득 마카로프는 피에트로 안토니오 로카텔리의 악명 높은 대곡, 화성의 미궁을 떠올린다.

분명 피아노도 바이올린처럼 소리를 내는 매개로 현을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피아노 한 대로 이렇게나 많은 현악기가 동시에 연주하는 것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그간 타티아나가 피아노로 바이올린은 물론이고 종이나 퍼커션류, 심지어 플루트나 호른의 소리까지 묘사해 내는 것을 들으면서 말도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몇 번이나 감탄하긴 했다.

그러나 오늘은 한층 더 놀라웠다. 지금 보여 주는 현악기들의 합주는 수준이 다르게 느껴졌다. 훨씬 명료하고 아름답다.

“…….”

누구보다 앞서 나가는 행진곡인지 두 박자쯤 늦게 따라가는 캐논인지 모를 경쾌한 화음의 변주나, 유쾌한 스케르초의 형태를 한 변주. 타티아나는 카덴차를 맡은 피아니스트처럼 매력적인 리듬으로 멋지게 연주를 해 나갔다.

스케르초 변주까지 마친 다음 타티아나는 그대로 다음 변주를 연주하는 대신 슈만 사후에 브람스가 찾아내어 합친, 누락된 변주곡들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 5곡의 사후 변주곡은 그전에 슈만이 출판한 곡과 사뭇 달라지기 때문에 해석이 많이 갈리곤 한다.

타티아나는 브람스가 연구했던 슈만에 대한 것까지 모두 소화해 내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주선율을 유지하고 반대편으로 빠른 아르페지오를 끼워 넣어 꾸밈음처럼 만드는 구조는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전체적인 화음을 어그러지지 않고 깔끔하게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고도의 테크닉을 집약시켰는지 짐작조차 어렵다.

그 뒤로도 타티아나의 솜씨는 온갖 변주를 거쳐서 발휘되었다.

지니고 있는 기교와 표현력이 아낌없이 드러나면서 교향적 연습곡을 보다 풍부하게, 피아노를 초월하는 교향곡처럼 그려 냈다. 그녀의 피아노에 순간적으로 많은 악기들이 다가와서 붙었다가 떨어져 나간다.

흔히 피아노의 한계를 초월해서 훨씬 거대한 규모를 지닌 악기로 만들고자 한 작곡가로는 프란츠 리스트가 잘 알려져 있었지만, 슈만 역시 이렇게 피아노를 한 대의 악기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다채롭게 쓰는 데에 초점을 두기도 했다.

“…….”

마카로프는 타티아나가 연주하는 교향적 연습곡을 들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피아노에서 오케스트라까지.

바다의 파도에서 밤하늘의 별까지.

타티아나가 피아노로 묘사해 내는 것들은 그 한계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별들이 반짝이는 듯한 음색으로 다정하게 노래하던 타티아나는 돌연 분위기를 바꾸어 강렬하게 피아노를 타건했다.

짧게 끊어지며 주제가 하강한다. 전투적으로 느껴지는 이러한 음향은 재빠르게 내리꽂히는 폭격기와 폭격이 작렬하는 듯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마치 음악만으로 영화의 한 장면을 그대로 그려 내는 듯한 화려한 연주였다.

그렇게 멋지게 한 장면이 지나가고, 이때껏 올림다단조였던 조성이 나란한조인 마장조로 변화한다.

그 와중에도 주 선율은 전혀 기준을 잃지 않고 완벽하게 중심을 지키고 있다.

큰 변화를 바로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단조에서 장조로 처음 조가 변하면서 음악은 보다 추진력 있고 활기차게 변화했다.

특징 있는 움직임을 지닌 리듬과 함께 주제도 변화했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는 듯한 느낌으로 드러난 이 장조의 주제는 곧 곡 전체를 꿰뚫는 중심이 되었다.

“…….”

그 후 다시 올림다단조로 변화하여 슈만 특유의 오이제비우스적 우울함으로 비틀리며 가라앉았다가, 다시 스타카토로 경쾌하게 뛰논다. 슈만의 이중적 자아인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의 대비가 느껴진다.

플로레스탄이 드러난 두 번의 변주는 매우 기교적이고 경쾌했다. 그 어떤 피아니스트라도 피로함을 느끼고 어려워할 수밖에 없는 구간이었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주를 이어 나갔다.

마지막으로 분위기가 차분하게 음악이 내려앉으면서 끝나고, 이로서 주제는 모두 마무리되고 음악이 끝나는 것처럼 들리다가,

내림가장조의 알레그로 브릴란테로 휙 변하면서 완전히 다른 곡처럼 바뀐다. 서두에 제시되었던 오페라적 주제와 그 규모는 비슷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

클래식 음악계에 상당히 오랫동안 있었던 마카로프는 이 곡의 구조를 알고 있었다. 마지막의 내림가장조의 주제는 독일의 오페라 작곡가 하인리히 마르슈너의 오페라 ‘성당 기사와 유대 여인’의 주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빛나는 화음의 행진은 심포닉하기 이를 데 없다. 피아노의 한계를 깨고 오케스트라의 심포닉을 추구한 슈만의 의도가 여실히 드러나는 거대하고 화려한 합창이었다.

곡 자체가 이렇게 웅장한 효과를 의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연주자의 실력이 따라 주지 않는다면 결코 제대로 연주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조금도 실력이 모자라 보이지 않았다. 긴 연주에 지쳤을 법도 한데, 원숙한 피아니스트들처럼 완벽하게 릴랙스된 손목과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컨트롤했다.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손가락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낸다.

거대한 합창곡은 소나타의 형식으로 이전에 지나간 주제들을 다시 회상하며 잠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는, 점점 나아가며 정열적인 코다로 보다 발전한 주제를 환상적으로 표출했다.

변화무쌍하게 청자를 유린하며 독주곡인지 교향곡인지, 유쾌한 소설인지 오페라인지, 연습곡인지 변주곡인지, 가장 단순하게는 단조의 곡인지 장조의 곡인지조차 고민하게 만들고, 30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한 번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만드는 슈만의 대곡, 교향적 연습곡은 그렇게 온전히 녹음되었다.

“…….”

마카로프는 생각했다.

이걸 열다섯 살짜리가 연주했다고 말하면 과연 누가 믿을까?

눈앞에서 본 자신도 못 믿을 지경이었다.

이 음악을 한시라도 빨리 세계 각지의 음악 애호가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마카로프는 어떤 반향이 있을지 상상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마카로프는 말로 무어라 할 것 없이 박수를 쳤다.

타티아나는 그 박수 소리를 들었는지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더니, 양손으로 롱 원피스 자락을 잡고 메인 컨트롤 룸 쪽을 향해 우아하게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그녀가 돌아왔다.

마카로프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마음 같아선 저 손을 잡고 찬사와 키스를 퍼붓고 싶지만 한창 예민할 소녀가 그런 것을 좋아해 줄 것 같진 않았다.

마카로프가 싱겁게 웃으며 말했다.

“이걸로 가도록 하죠.”

“괜찮을까요?”

그녀의 말은 단순했다. 이 곡을 음반에 담는 것으로 세계에 통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세상에 내놓아야 할 음반에 어떤 곡을 담아야 할지에 대해 타티아나는 지난 4개월간 마카로프와 연구했고, 지난밤에도 고민하여 이렇게 답을 내놓았다.

이번엔 마카로프가 대답할 차례였다.

마카로프는 단언했다.

“충분합니다.”

그 이상 가는 칭찬을 미사어구를 잔뜩 붙여서 해 줄 수도 있었지만, 마카로프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타티아나는 이해했고, 안도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기뻐하던 타티아나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물었다.

“저기, 프로듀서. 방금 연주했던 곡은 34분 정도 되나요?”

“……정확하군요.”

마카로프는 모니터를 살폈다. 33분 57초.

피아니스트들은 연주 시간을 거의 초 단위로 정확하게 맞추곤 하지만 곡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길이를 정확하게 맞추는 것은 어려웠다. 10분 남짓의 곡이라면 모를까 30분이 넘는 이런 대규모의 악곡에서 정확하기란 꽤 어려웠다.

타티아나는 그만큼 자신의 실력과 완성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모니터를 보던 마카로프가 웃으며 말했다.

“이 전에 연주한 테레제 소나타가 9분 54초입니다. 도합 44분쯤 되겠군요.”

“44분……. 30분을 더 채워야겠네요.”

타티아나는 일견 심각하게 중얼거렸다. 마카로프는 그 진지한 모습에 웃어버렸다.

일반적인 CD음반 한 장에 담을 수 있는 음악의 총 길이는 74분이다. CD라는 매체를 처음 개발할 당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한 장에 담기 위해 만들어진 기준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CD는 기술의 발전으로 조금 더 긴 음악을 저장할 수도 있었고, 더 짧아도 상관없었다. 마카로프는 껄껄 웃었다.

“하하, 타티아나. 딱 맞춰서 채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알지만…….”

타티아나는 이미 다음 곡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한 것 같았다.

마카로프는 이 진지한 연주자에게 다른 말을 해 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기대되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곡으로 마지막을 장식할 생각입니까?”

“……큰일이네요.”

“갑자기 무슨 말입니까?”

“생각해 놓은 게 없어요.”

이번에도 일단 들어 보고 생각하라는 듯 부스로 뛰어 들어가서 연주부터 시작할 줄 알았는데, 타티아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엉뚱한 소리를 했다. 준비한 곡은 두 곡이 전부인 모양이다.

두 곡밖에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두 곡이나 재녹음 없이 한 번에 연주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일이었는데, 타티아나는 그런 대단한 일을 이루어 놓고도 그건 당연하다는 투였다.

“한 곡씩 가지고 오는 것만 생각하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CD 재생시간을 되도록 맞춰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차라리 베토벤 소나타를 길게…….”

“타티아나.”

갑자기 처연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타티아나를 보던 마카로프는 급히 그녀의 말을 끊었다.

타티아나가 올려다본다. 마카로프는 그녀를 불러 놓고도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베토벤과 슈만이라는 작곡가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조언을 받아서 철저하게 그 두 작곡가들에게서 한 곡씩 추려 온 것은 칭찬받을 일이지 이렇게 풀이 죽을 일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슈만의 교향적 연습곡 같은 대곡을 연주하고도 그리 지친 기색도 보이지 않는 이 말도 안 되는 천재는 또 무슨 이유에서인지 불안해하고 있었다.

연주는 이미 원숙한 연주자와 비슷하게 느껴질 정도로 격이 높았고 프로 연주자로서의 정신력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단단했지만, 그 연주자의 태도를 조금만 벗어난 타티아나는 금세 이렇게 약해지곤 했다.

마카로프는 입바른 위로 대신 방금 그녀가 보인 연주를 다시 보라는 듯 말했다.

“타티아나. 잘했습니다.”

“……예?”

“이 이상이 없을 정도로 타티아나는 잘해 주었어요. 아시겠지요?”

이미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오늘 두 곡이나 한 번에 녹음한 것에 대해, 타티아나는 스스로 얼마나 엄청난 일을 한 것인지 좀 알 필요가 있었다. 마카로프는 그 점에 대해 몇 번이나 설명했고, 타티아나는 점차 웃음을 되찾아 갔다.

마카로프가 여유롭게 말했다.

“나머지 트랙은 천천히 찾아봅시다. 급할 것 없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도움이 안 되었으니 이젠 저도 돕게 해 주셔야죠.”

“마카로프 프로듀서는 충분히 절 도와주셨어요.”

“하하, 방향만 가리켰을 뿐이죠. 제가 뭘 했는진 잘 모르겠군요.”

마카로프는 책상 위에 놓인 노트와 자료 등을 힐긋 보았다. 여태껏 타티아나가 보여 준 레퍼토리들이 분석되어 있긴 하지만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거세게 도리질 쳤다.

“아뇨.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어요.”

“그리 말씀해 주시니 고맙군요.”

“진심이에요.”

이렇게 강렬한 어조로 말할 때의 타티아나의 목소리는 마술과도 같았다. 마치 피아노 연주를 할 때 감정 그 자체를 뇌리에 직접 강요하는 듯한 느낌과 닮아 있었다.

타티아나는 진심으로 마카로프가 지난 4개월간 자신과 함께 고민해 주고 이렇게 연주를 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건 고마운 일이었다.

마카로프는 웃으며 테이블 쪽으로 손짓했다.

“그렇다면…… 다시 이야기해 보죠. 어떤 곡이 좋을지.”

다시 타티아나를 소파에 앉혀 놓고 마카로프는 새 차를 끓여 왔다. 타티아나는 밤새 결정한 두 곡 외에 다른 곡을 또 찾아내기 위해 벌써부터 지난 레퍼토리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정말 오늘 끝을 볼 생각처럼 보였다. 그 성실한 모습에 마카로프는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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