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272화 (272/1,277)

##  272화

저녁에는 드미트리가 이탈리아풍의 디너를 준비해 주었다.

양고기 스테이크와 이탈리아의 빵인 포카치아, 그리고 고르곤졸라 피자 등등. 그 외에도 내가 미처 잘 모르는 이탈리아 요리들도 엄청나게 많이 나왔다. 드미트리의 요리 레퍼토리는 대체 얼마나 넓은 것인지 경탄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대망의 메인 디시는 바닷가재였는데, 커다란 바닷가재를 반으로 잘라서 치즈를 올린 것과 버터를 올린 것으로 두 마리가 나왔다.

그 어떤 것도 전혀 느끼하지 않고 훌륭했다. 입안에 퍼지는 고소한 치즈와 바다가재의 절묘한 풍미는 내 입에서 거의 강제로 감탄을 끌어냈다.

드미트리의 요리들은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먹어 본 그 어떤 요리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매번 느끼곤 하지만 드미트리는 정말 대단한 셰프였다. 이런 사람에게서 요리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른다.

아나스타샤 역시 입에 요리들을 넣자마자 감탄을 금치 못하고 행복해했다. 아나스타샤의 찬사에 드미트리는 점잖게 응대했고, 아버지와 루슬란 오빠는 기뻐했다.

그렇게 환상적인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사실 아나스타샤와 연습실에 가서 그녀의 피아노 소리를 조금 더 듣고 싶었지만, 저녁 식사의 여운이 미처 가시지 않아서 무언가 할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식도락에 그리 취미가 없는 편인 나조차도 행복한 무력감을 느낄 지경이었는데, 아나스타샤는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졸려…….”

“주무실 건가요? 아나스타샤.”

“아니. 바로 자면 살찌잖아.”

아나스타샤는 신음을 내며 드러누웠던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솔직히 난 그녀가 대체 뭘 신경 쓰는지 모르겠다. 아나스타샤는 170cm가 넘는 큰 키에 마른 체형이었다. 사실 먹어도 다 키로 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아무튼 난 이 좋은 시간을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다. 뒹굴거리고 싶어 하는 아나스타샤가 다시 드러눕지 않도록 난 그녀를 졸라 체스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녀는 8학년 비공식 체스 대회에서 우승했을 정도로 체스를 잘 두기도 했다.

체스 강국인 러시아에 살면서 어느 정도는 체스를 둘 줄 알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내 머리에 의지를 불어넣었다. 적어도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니 배우면 배우는 대로 늘긴 할 것이라는 자신감 또한 있었다.

그렇게 다시 기본적인 전법들을 배우고, 말을 몇 개나 빼고 시작해도 날 농락하다시피 하는 아나스타샤와 접전을 벌이고 있는데, 스마트폰에서 메시지 알람이 울었다. 난 아무 생각 없이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

“왜 그래?”

내가 놀라는 것이 아나스타샤에게도 느껴졌는지, 그녀가 말을 들고는 내게 물었다.

그냥 놀란 것은 아니었다.

“한승우한테 온 메시지예요. 오늘 성적표를 받았는데 9학년 진급에 문제없을 것 같다고 하네요.”

아직 기숙사에 있을 그도 빠르게 성적표를 받아 본 듯했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이다.

시험이 끝나고도 일부러 성적을 물어보지 않고 있었는데, 이렇게 결과를 듣고 나니 정말 뿌듯함이 느껴졌다.

내가 한 것이라곤 별로 없고 어차피 그가 열심히 한 결과이지만, 그래도 러시아에서의 유학 생활을 앞으로도 그가 더 잘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자 마음이 놓인다. 정말 다행이었다.

아나스타샤는 기뻐하는 날 보더니 웃었다.

“아하하, 잘 되었다고 승우 한에게 보고받은 거야?”

“보, 보고라뇨.”

“솔직히 말해서 그 애가 멀쩡히 9학년이 될 수 있었던 것엔 네 도움이 엄청 컸을걸?”

“엄청 크진 않아요……. 대부분은 리처드의 도움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열심히 한 보답일 뿐이고요.”

“얘는 또 이런다.”

있는 사실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 아나스타샤는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넌 어떻게 생각할진 몰라도 승우 한은 그렇게 생각 안 할걸.”

“그럼 어떻게 생각할까요?”

“지금 날아온 그 메시지 보면 모르겠어?”

“…….”

한승우와 나는 꽤나 친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소에도 메시지나 전화를 주고받는 사이까진 아니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성적표를 받자마자 자신의 성적을 내게 메시지로 말해 주기로 결정한 것은, 내가 그의 보고를 들을 만한 입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난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답장을 해 줘야겠죠?”

“그래야지.”

“무어라 해야 할까요. 대견하다고 썼다간 큰일 날 텐데요.”

“뭐? 아하하하, 뭐 어때? 그렇게 써 버려.”

“아뇨, 안 돼요.”

농담조로 위트 있게 대견하다고 해 줄 순 있겠지만, 난 장난으로라도 그렇겐 말 못 한다. 그는 내 학생이 아니라 친구였다.

그냥 이런저런 생각 하지 않고 확 전화를 걸어서 잘 했다고 칭찬해 버렸으면 시원할 것 같은데.

잠시 어떻게 답장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게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멍하니 화면을 내려다보고 있자 아나스타샤가 물었다.

“보냈어?”

“예. 축하한다고 보냈어요.”

“너처럼 수석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진급했을 뿐인데 축하한다니 그것도 조금 우스운데.”

“……그런가요?”

“아니 뭐, 그 애는 축하받을 만하긴 하지만.”

갑자기 후회된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고 보낼 걸 그랬다. 방학 동안 한승우는 한국에 돌아가 있을 테니 조금 더 기분 좋게 해 줘도 괜찮았을 텐데.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내 상념을 깨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 메시지가 또 날아왔다.

혹시나 한승우인가 해서 봤더니,

에르네스트였다.

[타티아나. 수석 축하해.]

“…….”

난 화면을 내려다보며 침묵했다.

간신히 어려운 메시지를 답장하고 또 후회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이번엔 정말 답장하기 까다로운 메시지였다.

수석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차석에게 대체 무슨 답장을 해야 하는 거야?

가만히 굳어 있자 아나스타샤가 또 무슨 일이냐며 내게 물었고, 난 에르네스트에게서 온 메시지를 보여 주었다.

메시지를 보고 아나스타샤는 대뜸 인상을 썼다.

“제발 부탁이니까 남자애들은 메시지 좀 길게 보내는 버릇 좀 들였으면 좋겠어.”

어지간해선 에르네스트를 변호해 주고 싶지만 솔직히 나도 아나스타샤와 같은 심정이었다.

난 멍하니 맞장구쳤다.

“그러게요.”

“자기가 수석을 못 했으니까 당연히 너일 거라고 확신하고 보낸 건데, 그럼 조금 더 길게 써도 되는 것 아냐? 이렇게 짧게 보내 버리니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잖아.”

그녀의 말대로 에르네스트가 축하한다는 말 뒤에 조금만 더 길게 문장을 이어붙였어도 지금보단 조금 나았을 것 같다.

사실 아무 생각 없이 답장해도 될 일이긴 하지만, 이런 메시지를 아무 생각 없이 답장해서 생각 없는 애처럼 보이긴 싫었다.

아나스타샤가 중얼거렸다.

“고맙다고 해도 무슨 양보받은 것 같아서 조금 그렇고, 다른 말을 해도 이상하고……. 아예 무시해 버릴 수도 없고.”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할까요.”

“놀리는 것 같이 들릴걸. 네가 운이 아닌 확실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모두가 다 알아.”

단순한 겉치레였지만 그렇게 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혼란스러웠다.

스마트폰을 쥐고 메시지 창을 내려다보니 자판이 울렁거리는 것같이 보였다. 메시지에 답장 하나 보내는 것이 이렇게 버거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막상 에르네스트 쪽에선 이런 고민도 않고 편하게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얄밉기까지 했다.

나한테 할 말이 그렇게 없나? 조금 길게 축하해 주면 어디가 덧나는 것일까. 그리고 난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살짝 오기가 생겨서 대충 보내려는데, 덜컥 에르네스트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난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머뭇거리다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천천히 받았다.

“에르네스트.”

- 타티아나.

에르네스트는 조금 어색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뭔가 잘못한 사람 같다.

- 음……. 좋은 저녁이야.

“좋은 저녁이에요.”

- 좋은 방학이기도 하고.

“……그러네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 침묵을 깨야 하는 건 먼저 전화를 건 에르네스트 쪽이었다.

가만히 기다리자 그가 말했다.

- 다름이 아니라, 성적표 왔더라고. 받았어?

본론이 나왔다. 짧게 대답했다.

“예. 받았어요.”

- 네가 수석이지?

“맞아요.”

- 그럴 줄 알았어. 내가 차석이더라고. 이런 성적표 정말 오랜만이야.

그걸 확인하자고 전화까지 한 건가? 약간 황당해하고 있는데 그가 차분하게 말했다.

- 아무튼 그것 때문에 안 그래도 메시지를 보내긴 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까 그냥 메시지로 축하하고 말 일이 아닌 것 같아서.

“……그래요?”

- 응.

“그럼 어떤 축하를 해 주시려고 전화하신 건가요?”

- ……음.

아까 그에게서 느꼈던 얄미움을 되갚아 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내 입이 절로 그를 몰아세웠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담백하게 말했다.

- 타티아나, 수석 축하해.

“……메시지와 다른 게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 아, 그런가.

에르네스트는 실수했다는 듯 웃음소리를 내더니 조금 더 가볍게, 하지만 진지하게 말했다.

- 다른 의미는 없고……. 그냥 이 말은 해 주고 싶네. 넌 그만큼 열심히 해 왔으니까, 내가 스위스로 연주회를 가지 않았더라도 아마 이번 수석은 너였을 거야. 난 그렇게 생각해.

“…….”

- 축하해. 타티아나.

그의 축하는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 내가 품고 있었던 약간의 불안과 불만은 씻은 듯이 날아가 버렸다.

난 그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고마워요. 기뻐요.”

- 물론 다음 학기엔 내가 도로 빼앗을 테지만.

“…….”

그렇게 말하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굳이 이 타이밍에 해야 했나요.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난 장난기를 담아 한결 편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얼마든지요.”

- 그래. 그…… 아, 야. 이거 놔, 사샤.

전화 건너편에서 사샤의 목소리가 종알거렸다.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하냐는 비난이 대부분이었다. 뭔가 이해할 순 없었지만 잠자코 기다렸다.

잠시 후, 에르네스트의 목소리가 아닌, 변성기가 오지 않은 소년의 목소리가 전화를 울렸다.

- 타티아나 누나. 수석 축하해요!

“아, 고마워요, 사샤!”

활기찬 목소리에 나도 덩달아 활력이 생기는 것 같았다. 웃으며 대답하자 사샤가 이어 말했다.

- 저도 누나가 가르쳐 주신 덕분에 성적이 많이 올랐어요.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사샤도 잘했어요. 오늘 좋은 소식을 많이 듣게 되어 기쁘네요.”

- 좋은 소식요?

“예.”

- 아, 혹시 유학생 형도 시험 잘 봤나요?

“맞아요. 어떻게 알았나요?”

- 누나가 가르쳐 주는 걸 봤으니까요.

확실히 내가 스터디를 하면서 한승우에게 이것저것 많이 가르쳐 주긴 했다. 사샤는 그것을 다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의외로 예리한 사샤에게 조금 놀라워하고 있는데, 사샤가 말했다.

- 스터디에 오지 않은 형만 바보죠. 그렇죠?

“그……런가요?”

에르네스트는 딱히 스터디를 필요로 하지 않을 뿐인데, 이번에 한 번 내게 수석을 빼앗겼다고 해서 그간 쭉 수석이었던 그가 바보 소리를 들어야 하는진 잘 모르겠다. 사샤도 에르네스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아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우리는 잠시 사사로운 잡담들을 나누었다. 가끔 옆에서 에르네스트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사샤는 전화를 넘겨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 누나.

“예.”

- 혹시 약속 기억해요?

약속이요?

순간적으로 되물어볼 뻔했다가 간신히 목에서 멈추었다. 무슨 약속인진 몰라도 사샤와 한 약속이라면 기억해 내야만 했다.

내 머리의 잠재력을 믿으며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사샤는 날 길게 괴롭히지 않고 말해 주었다.

- 언제든 놀러 와도 좋다고 해 주셨죠? 전 기억해요.

“아, 맞아요. 그럼요.”

- 내일 가도 돼요? 형이랑.

“내일요?”

사샤와 에르네스트를 집에 초대하고 싶다는 건 오래전부터 했었던 생각이다. 실제로 약속을 하기도 했었고. 그리고 난 계속 집에 있을 예정이었으므로 당장 내일 초대한다고 해도 별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난 아나스타샤를 돌아보았다.

지금 내 곁엔 아나스타샤가 있었다. 난 아나스타샤와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고, 당분간은 그녀에게 충실하고 싶었다. 이제 겨우 사흘째였다.

여기에서 친구들이 더 늘어난다면 지금처럼 느긋한 분위기는 아닐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거기에 에르네스트도 사샤도 남자 애들이었다. 여자인 아나스타샤와는 달랐다.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아나스타샤는 싫다고 하지 않을까? 하지만 난 에르네스트와 사샤도 한 번쯤 초대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돌아간 뒤에 오라고 해야 할까? 그건 그것대로 기분이 이상했다.

그렇게 갈등하고 있는데, 아나스타샤가 툭 물어왔다.

“내일 뭔데?”

“아……. 에르네스트와 사샤가 놀러 와도 될까 해서요.”

“아, 그래?”

“예…….”

“혹시 그거 내가 허락해야 하는 거야?”

“…….”

내가 말없이 바라보자 아나스타샤는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며 웃더니 쿨하게 말했다.

“부르자.”

“예? 그래도 되나요?”

“집주인은 너야 타티아나. 그리고 넌 그 애들 부르고 싶어 하는 것 같고. ……그렇게 하자. 차라리 나 있을 때 부르는 게 낫지.”

“……?”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다 함께 노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로선 반가운 소식이었다.

사샤에게 내일도 와도 좋다고 말하고, 출발 시간을 알려 주면 차를 보내 주겠다고 하자 사샤는 정말 좋아하며 최대한 일찍 오겠다고 말했다.

에르네스트도 전화를 받았다. 그는 사샤 혼자 보내면 안 되겠냐고 했다가, 어떻게 어린 동생을 혼자 보낼 생각을 하느냐고 내게 된통 혼이 나고는 같이 오겠다고 말했다.

“…….”

전화를 끊고 나자 상황이 단순해졌다.

난 내일 에르네스트와 사샤가 집에 온다는 생각에 조금 기분이 들떴다.

지금처럼 아나스타샤와 단둘이 느긋하게 지내는 것도 정말 즐거웠지만, 사람이 더 늘어난다면 시끌벅적하면서 즐거울 것이 분명했다.

난 아나스타샤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내일은 에르네스트, 사샤와 함께 무엇을 할지 함께 생각해 봐요. 아나스타샤.”

“글쎄?”

그녀는 내 머리 너머 먼 산을 바라보는 표정으로 곰곰이 생각하더니,

갑자기 묘안이 번뜩였는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예 다른 애들도 부르면 어때?”

“다른 분들이요?”

“응. 승우 한이랑…… 리처드도. 그 애들 곧 있으면 각각 자기네 나라로 돌아갈 텐데 그 전에 불러서 파티라도 하는 거야. 내용은 대충 승우 한 9학년 진급기념이라고 하지 뭐.”

“아……. 아?”

단순히 아나스타샤와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만 하고 있어서 생각도 못 했던 일이었는데, 아나스타샤의 제안은 너무 매력적으로 들렸다.

“그래도 될까요?”

“집주인은 너라니까?”

“아뇨, 혹시…….”

난 갑자기 든 불안을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꺼냈다.

“그간 아나스타샤가 심심하셨던 건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무슨 소리야 그게.”

아나스타샤는 기가 찬다는 듯한 얼굴을 하더니 갑자기 날 와락 끌어안았다. 난 빠져나갈 생각도 못 하고 그녀에게 안겼다.

아나스타샤가 싱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말도 안 되는 걱정 하지 마. 요 사흘간 내가 얼마나 좋았는지 알기나 해?”

“그런가요……? 다행이에요.”

“응. 유리 아저씨도 환영해 주시고 식사도 맛있었고 넌 사흘 내내 나랑 놀아 줬고. 널 사흘이나 독점했으니까 난 괜찮아.”

난 아나스타샤가 내게 얽매여 놀아 주느라 고생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나스타샤는 정 반대로 말하고 있었다. 난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곧 아나스타샤가 날 놓아주었고 나는 다시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아나스타샤는 옆에서 도와주었다.

시간은 어떻게 해야 할지, 친구들이 오면 뭘 해야 할지, 또 파티를 열게 된다면 준비는 어떻게 부탁해야 할지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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