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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여명-274화 (274/1,277)

##  274화

티가든에서 잠시 담소를 나누며 류보비는 디저트를 많이 먹지 않으려 애썼다. 점심 식사로 무엇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초콜릿을 많이 먹은 사샤처럼 후회하고 싶진 않았다.

타티아나도 초대한 사람들이 모두 모일 때까지 잠시 티타임을 가지긴 했지만, 굳이 오래 있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 듯했다. 이제 모두 모였으니 잠시 베르체노프가를 소개할 겸 산책을 하자는 타티아나의 권유에 모두가 일어섰다.

그렇게 7명은 타티아나와 아나스타샤를 필두로 베르체노프가를 산책했다. 베르체노프가는 저택도 화려했지만 그 앞에 펼쳐진 정원도 굉장히 아름다웠다.

작은 정원을 나와서 조금 걷자 예쁘게 꾸며진 산책로가 펼쳐졌다. 모두들 그 길을 따라 걸으며 화원도 구경하고, 벨카라는 이름의 커다란 개와 놀아 주기도 했다. 류보비는 벨카가 타티아나의 명령에 순종적으로 따르는 것에 놀랐으나, 그보다 타티아나가 벨카에게까지 존댓말을 한다는 것에 더더욱 놀랐다.

늘 예쁜 말씨를 쓰는 언니가 언제쯤 편한 말로 대해 줄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요원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타티아나는 기본적으로 상대가 말을 알아듣는다고 생각하면 거의 존대를 했다.

“…….”

그럼 아직 러시아어가 서툰 한승우에게 존대를 하지 않는 것은 말을 잘 못 알아듣기 때문인 걸까?

무서운 생각을 떠올렸던 류보비는 도리질 치며 그 생각을 떨쳐 버렸다.

평소 공부도 정말 열성적으로 가르쳐 주는 모습을 보면 절대 그건 아니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특별 취급 하고 있긴 하지만 적어도 무서운 이유는 아닐 것이라고 믿었다.

류보비는 한승우를 올려다보았다. 말이 아직 서툴러서 자주 대화를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수학은 굉장히 잘해서 류보비가 어려워하는 숙제를 도와준 적도 있었다. 자기 공부도 바쁠 텐데 친절한 사람이긴 했다. 류보비는 다음 학기엔 한승우와도 친해져 보기로 다짐했다.

지금 당장이 아닌 다음 학기로 미룬 데엔 이유가 있었다.

“사샤, 저기 꽃들 정말 예쁘다. 그치.”

“응. 예쁘다.”

“나 저기서 사진 좀 찍어 주면 안 돼?”

“찍어 줄게.”

류보비가 지금 당장 신경 쓰고 있는 사람은 바로 곁에 있는 사샤였기 때문이었다.

같은 또래라 자연스레 함께 있을 수 있어서 좋았다. 류보비는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서 사샤에게 말을 걸었다.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기도 하고, 부탁을 하기도 했다.

사샤는 류보비의 말에 짤막하게 대답했다. 아무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류보비는 흐뭇하게 웃었다.

한 살 차이밖에 안 나지만,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의 한 살은 엄청난 차이였다. 당장 키만 해도 류보비가 더 컸다. 류보비는 귀여운 동생과 대화하는 듯한 느낌으로 기분 좋게 산책을 즐겼다.

그때 조금 앞서가던 에르네스트가 되돌아오더니 류보비를 보며 말했다.

“류보비, 사샤와 친한가 보네. 공부할 때 친해진 건가?”

“아, 오빠.”

류보비는 조금 놀랐지만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르네스트가 피식 웃으며 사샤를 돌아보았다.

사샤는 물끄러미 에르네스트를 올려다보더니 말했다.

“응. 류보비 누나는 원래 아나톨리 형이랑 친하지만 오늘은 나랑 놀기로 했어.”

“오늘 못 온 그 친구 말인가.”

“응.”

류보비는 사샤를 아나톨리의 대신처럼 생각하고 있진 않지만, 사샤가 그렇게 말하는 데에 반박할 수도 없었다. 평소 아나톨리와 자주 아옹다옹했던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사샤가 손가락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형은 이쪽 신경 쓰지 말고 타티아나 누나한테 가.”

“어떻게 신경을 안 쓰냐?”

“아무튼.”

“나 참.”

에르네스트는 혀를 차더니 일행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따라오라고 전하곤 먼저 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류보비가 사샤의 팔을 톡 쳤다.

“사샤.”

“응.”

“에르네스트 오빠랑 타티아나 언니랑 잘되게 해 주려는 거야?”

사샤는 즉답했다.

“응. 맞아.”

“그렇구나…….”

류보비가 그럴 것 같았다는 듯 말했고, 앞만 보고 가던 사샤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방해할 거야?”

“내가? 왜?”

“류보비 누나도 타티아나 누나를 좋아하잖아.”

“……?”

뜬금없는 소리에 류보비가 어리둥절해했다.

타티아나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선망에 가까웠다. 그리고 류보비는 에르네스트도 선망했다. 동화 속 공주님과 왕자님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것처럼, 선망하는 대상들끼리 이어지는 건 류보비에게 있어선 당연한 일이었다.

“그건 맞아. 맞는데, 난 그만큼 에르네스트 오빠가 언니한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저길 봐 봐.”

그 앞엔 8학년들이 모여 있었다. 타티아나와 그 친구인 아나스타샤, 유학생 두 명. 그리고 에르네스트. 류보비는 저 안에서 공주와 왕자를 한 명씩 꼽을 수 있었다.

류보비가 어깨를 으쓱했다.

“누가 방해 같은 걸 하겠어?”

“모르지.”

“?”

“이제 가자. 늦기 전에.”

사샤는 더 이상 대답해 주지 않고 앞서갔다. 사샤가 향하는 쪽엔 타티아나와 아나스타샤가 기다려 주고 있었다.

류보비는 약간 뒤처진 채, 사샤를 그냥 착하고 귀여운 동생처럼 취급하는 건 정말 실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른 티타임 후 점심 식사 이전의 산책은 40분 정도로 끝났다.

류보비는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예쁜 정원을 산책하는 것이 기분 좋았지만 조금 더 길어졌으면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40분은 점심 전에 약간의 허기를 불러일으키기에 적당한 시간이었다.

타티아나는 모두를 저택의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식당에 놓인 기다란 테이블엔 7명이 충분히 앉을 수 있었다.

잠시 기다리자 몇 명의 사람들이 요리들을 날라 왔다. 류보비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점심 식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호화로웠다.

이름도 모를 음식들이 고급스러운 접시에 담겨 나왔다. 정말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예뻤다. 류보비는 살면서 고급 레스토랑에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때문에 이런 고급 요리들을 맛 본 적도 없었다.

어떻게 먹어야 할지 잘 모르겠는 요리들도 많아서 건너편에서 식사 중인 다른 선배들을 곁눈질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좌우에 있는 타티아나와 아나스타샤가 도와주었다.

“약간 매울 수도 있으니 조심해서 드세요.”

“아, 그건 장식이니 먹으면 안 돼.”

양쪽에서 언니들이 완벽하게 챙겨 주는 것을 받아먹으며 류보비는 처음엔 조금 부담스러웠으나 시간이 흐르자 즐기기로 작정했다. 어차피 혼자선 식기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르고 헤맸을 것이다. 시키는 대로, 해 주는 대로 받아먹는 것은 정말 좋았다. 무엇보다 엄청나게 맛있었다.

사샤는 에르네스트가, 류보비는 타티아나와 아나스타샤가 도와주었다. 한승우는 이런 자리에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으나 그래도 어색하지 않게 잘 어울렸다.

거의 1시간 동안 점심 식사를 하고, 류보비는 디저트인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선배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후엔 뭐 할래? 타티아나. 난 네 피아노 구경하고 싶기도 한데.”

“여기까지 와서 무슨 피아노야. 에르네스트.”

“상관없잖아? 어차피 우리 다들 피아노과인……. 미안, 류보비.”

갑자기 이야기가 류보비에게 향했다. 류보비는 깜짝 놀라며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에르네스트는 타티아나의 연습실이 구경하고 싶은 듯했다. 하지만 7명이나 되는 인원이 우르르 가서 피아노 한 대를 두고 앉아 봐야, 돌아가면서 연주를 한다고 해도 학교에서 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어 심심할 뿐이었다. 류보비는 조금 색다른 것을 기대했다.

타티아나는 그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다.

“저기, 오늘 무엇을 할지 생각을 조금 해 봤어요.”

“뭘 해도 상관없어.”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혹시 승마 해 보신 분 계신가요?”

“……뭐?”

누군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타티아나는 살짝 눈치를 보는 것처럼 다시 좌중을 훑고는 말했다.

“저희 집엔 승마장과 말도 여러 필 있어서요. 그런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해서…….”

“와우…….”

리처드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류보비 역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승마장이 있는 집은 처음이었다.

리처드는 잠시 주위를 보며 분위기를 살피더니 손을 들고 말했다.

“일단 나는 탈 줄 알아.”

“아, 혹시 리처드도 자택에서 말을 키우시나요?”

“아니?”

리처드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영국의 공작이라던 리처드도 집에 승마장이 있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냥 취미로 배워 봤어. 음……. 말 타는 것도 정말 재미있긴 하지. 그런데 진짜? 여기에 있다고?”

“예.”

“할 말이 없네.”

리처드는 피식 웃더니 항복이라는 듯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렇게 타티아나의 제안과 경험자인 리처드의 강력한 추천으로 일행은 승마장으로 향했다.

***

“살아 있는 말은 처음 봐요!”

승마장에 도착한 류보비는 마구간 안에서 푸르릉거리는 말들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부모님과 동물원에 가 본 적도 있긴 하지만 말이 있는 동물원은 없었다. 이렇게 실물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류보비는 말을 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좋아했고, 다른 모두도 흥미로워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커다란 동물을 보면 신기해한다.

한층 달아오른 분위기를 느끼며 타티아나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마구간 저편에서 한 남자가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타티아나 아가씨.”

“아, 글렙. 안녕하세요. 제 친구들이에요.”

“모두들 반갑습니다. 승마장 관리인 글렙입니다.”

글렙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의 키는 170cm정도였으나 그 체격이 무척이나 다부져서 말과 힘겨루기를 해도 이길 것 같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글렙은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는 말을 타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며 앞장섰다. 타티아나의 예상대로 남자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였다. 타티아나와 아나스타샤는 조금 뒤에서 류보비와 함께 따라갔다.

간단한 승마에 특별한 복장이나 기술이 필요하진 않은지 글렙은 짧게 주의사항 등을 설명해 주었고, 경험자인 리처드부터 가장 먼저 말에 오르도록 해 주었다.

리처드는 꽤 익숙한 폼으로 검은색 말에 올라탔다. 말에 오른 리처드가 웃으며 말했다.

“정말 순한데요.”

“특별히 순한 녀석 둘만 데리고 왔습니다.”

글렙이 데리고 온 말 두 필 중 한 마리는 칠흑같이 검은색이고 다른 한 마리는 새하얀 색이었다. 그 색만 보더라도 꽤 좋은 품종인 것 같았다. 류보비는 말의 품종에 대해선 전혀 모르지만 그 색 자체에 반했다.

리처드는 능숙하게 말을 타고 승마장으로 나갔다. 급하게 달리지 않고 천천히 걷고만 있는데도 그 모습이 너무 멋져서 류보비는 넋을 놓고 구경했다.

그다음은 모두 비경험자였지만 에르네스트가 용감하게 자원해서 말에 올랐다. 새하얀 말은 에르네스트가 등 뒤에 오르려고 하자 고개를 숙여 조금 편하게 탈 수 있게 해 주는 듯한 행동을 하기까지 했다. 에르네스트는 말의 그런 태도를 이해했는지 기분 좋게 목 옆을 쓰다듬었다.

글렙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벌써 친해지신 것 같습니다?”

“재밌네요.”

에르네스트도 기분 좋게 웃으며 글렙의 인도에 따라 승마장으로 나갔다. 분명 처음 타 본다고 했는데도 어쩜 저렇게 우아하게 잘 타는지 신비로울 정도였다.

류보비는 리처드가 타던 검은 말보다는 역시 에르네스트가 탄 하얀 말이 훨씬 더 눈에 잘 들어온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어울리기도 무서울 정도로 잘 어울렸다. 햇살에 비치는 하얀 말과 금발이 눈부셨다. 천천히 움직이는 한 마리의 말과 사람은 정말 동화 속 삽화에나 나올 그림처럼 느껴졌다.

류보비는 그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의 무언가가 충족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멋져요…….”

류보비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는데, 옆에서 같이 구경하고 있던 타티아나가 물었다.

“류보비도 바로 타 보시겠어요?”

“예?”

류보비는 타티아나의 제안에 되물었다가, 자신 역시 초대받은 손님의 입장이니 말을 타 볼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치마라서…….”

“갈아입으실 깨끗한 승마복을 빌려 드릴게요.”

타티아나 곧바로 말했다. 이미 그녀는 모든 준비를 다 마친 듯했다.

류보비는 그 제안을 듣고, 다시 승마장 쪽을 바라보았다. 말을 타는 것도 재미있어 보이긴 하지만 솔직히 커다란 말에 혼자 타는 건 조금 무섭기도 했다.

그래서 류보비가 해 보고 싶은 것은 저기 있는 에르네스트나 리처드와 함께 타 보는 것이었다. 무서움도 무릅쓰고 혼자 타는 것의 열 배는 재미있을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류보비가 문득 물었다.

“언니는요? 언니는 안 갈아입으시나요?”

“저요?”

타티아나는 문득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았다. 상아색의 원피스 차림의 그녀야말로 승마복으로 갈아입지 않으면 말에 오를 수 없었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괜찮아요.”

“안 타실 거예요?”

“예. 저는…… 몇 번이나 타 봐서요. 괜찮아요.”

“그런가요?”

이곳은 타티아나의 집이니 그녀가 몇 번이고 승마를 해 봤다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류보비는 무언가 조금 미심쩍음을 느끼긴 했지만 철석같이 타티아나를 믿고 있기 때문에 별달리 의아함을 표하진 않았다.

하지만 류보비는 맑게 웃음을 터뜨리며 타티아나의 팔을 잡았다.

“헤헤, 저도 그냥 구경만 할래요.”

“무서우신가요?”

“약간요.”

“안전은 제가 글렙에게 충분히 확인을 받아 놨으니 괜찮을 거예요. 그래도 무섭다면 글렙이나 저기 리처드에게 태워 달라 하셔도 좋을 테고요. 부탁드려 볼까요?”

“아뇨, 아뇨.”

류보비는 웃으며 거절했다.

누군가와 함께 말에 타 보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지금은 타티아나와 함께 있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류보비는 타티아나의 옆에 조금 더 가깝게 붙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서 승마장을 구경했다.

뒤이어 한승우와 사샤도 차례로 즐겼고, 여자 중에선 아나스타샤만이 승마복으로 갈아입고 기세 좋게 말 위에 올랐다.

운동신경이 무척이나 뛰어난 아나스타샤는 처음 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문제없이 말과 함께 승마장을 걸어 다녔다. 심지어 조금 속도를 올리기까지 했다.

류보비는 아나스타샤를 보며 감탄했다. 타티아나가 제일 좋긴 했지만 아나스타샤처럼 멋진 언니도 좋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한 바퀴씩 돌아보고, 에르네스트는 한 바퀴 더 돌았다. 두 바퀴째엔 처음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게 잘 타고 있었다. 두 바퀴를 돌고 난 에르네스트는 그제야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말에서 내린 모두가 저마다 소감을 토해 냈다. 잔뜩 고조된 분위기에서 흥분된 목소리들이 쏟아졌다.

“생각보다 진짜 높더라.”

“그래도 재밌던데.”

“사진 찍어 놓은 것 보시겠어요?”

“보여 줘. 이상하게 찍힌 건 아니겠지?”

“그런 건 이미 다 지웠어요.”

“그런 게 있었다고……?”

“농담이에요.”

타티아나가 까르르 웃으며 자신의 스마트폰에 찍힌 사진들을 보여 주었다. 류보비는 딱히 고를 것도 없이 모두들 잘 찍혔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시 옷을 갈아입은 아나스타샤가 돌아왔고, 타티아나는 모두에게 조금 더 말을 타 볼 것이 아니라면 다음 장소로 가자고 말했다. 리처드가 헛웃음을 흘렸다.

“뭘 이렇게 준비했어?”

“여러분을 모시는데 준비를 안 할 수가 있나요.”

타티아나는 리처드가 머쓱해할 정도로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말하고는, 싱긋 웃었다.

“하지만 그리 준비를 할 만한 것도 없었어요. 이미 있는 것들을 찾아냈을 뿐이죠.”

“그렇다면 다행이고.”

“음, 다음은……. 이번에도 리처드가 특히 좋아해 주실지도 모르겠는데요.”

“……? 내가 좋아할 만한 거?”

리처드가 말했다. 타티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번에 그러신 적 있었죠? 한승우와 함께 게임으로 총을 쏴 보신 적 있다고 말이에요.”

“어……?”

“저희 집에 실내사격장이 있어서요. 다음은 거기로 가 보도록 하죠.”

“실내사격장이 있다고!?”

“예.”

“실탄?”

“실탄이라고 들었어요.”

타티아나가 말했고 리처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리처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에르네스트와 한승우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류보비는 새삼 타티아나의 주위를 항상 맴도는 경호원이 세 명이나 된다는 것을 떠올렸다.

리처드는 상상도 못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는 흥분과 동시에, 무언가 떠올렸는지 타티아나에게 물었다.

“잠깐만, 타티아나. 너 그런데 저번엔 네 경호원에게 실탄 사격을 할 만한 곳이 있나 물어봐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

“저도 집에서 총소리를 들어 본 적은 없었거든요. 저나 아버지가 집에 없는 낮 시간에만 경호원 분들이 사용하곤 해서 저도 모르고 있었어요.”

타티아나가 대답했다. 집주인인 그녀도 집에 사격장이 있다는 것은 얼마 전에 안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그래서…… 가시겠어요?”

“……거절할 수가 없네.”

“나도.”

남자들은, 심지어 사샤까지 두 말 않고 찬성했다. 류보비는 조금 이해가 안 가기도 했지만 남자들에게 있어서 총이라는 것은 일종의 로망 같은 모양이었다. 모두들 눈빛이 초롱초롱한 것이 당장이라도 타티아나를 재촉하고 싶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류보비는 웃어 버릴 뻔했다.

리처드가 기분 좋게 말했다.

“정말 없는 게 없네. 롤러코스터 같은 것도 있는 것 아니야?”

“말 같잖은 소리 하네 또.”

그런 리처드에게 에르네스트가 찬물을 확 끼얹었다. 리처드는 분위기 파악 좀 하라는 듯 눈을 흘겼다. 하지만 에르네스트는 피식 웃으며 리처드를 도발했다.

“승마는 경험자가 있긴 했지만 사격은 모두 처음이겠지? 재미있겠네. 누가 이길지.”

“…….”

리처드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오는 승부를 무시할 정도로 순한 사람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눈빛만 교환했을 뿐인데 이미 승부에 나선 남자의 눈을 하고 있었다.

류보비도 사격장에 들어선 두 사람이 보고 싶어졌다.

“그럼, 가 볼까요.”

기대가 넘치는 모두를 둘러본 타티아나가 배시시 웃으며 모두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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