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290화 (290/1,277)

##  290화

과거 파리에는 교향악을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콘서트홀이 살 플레옐 단 하나뿐이었다.

여기엔 역사적인 이유가 있었다. 18세기부터 파리에서는 기악곡보다 오페라가 훨씬 성행했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교향악 등은 찬밥 신세에 가까웠다.

때문에 오페라하우스는 많아도 콘서트홀은 하나뿐이었고, 심지어 하나 있는 살 플레옐에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재정 문제로 매각되는 바람에 상주 오케스트라인 파리 오케스트라가 갈 곳이 없어져서 4년간 극장 등을 전전하기도 했고, 건물이 허물어지고 슈퍼마켓이 될 뻔했다가, 간신히 콘서트홀로 다시 기능하게 되었지만 교향악 등을 연주하기엔 음향 문제가 있어서 리모델링을 하는 등, 정말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하지만 오페라에는 엄청난 지원을 하면서 교향악은 소홀한 파리 시의 태도에 많은 음악가들의 굉장한 비난이 있었고, 결국 파리 시는 새로운 콘서트홀을 파리 외곽에 짓기로 한다.

그러한 계획하에 2015년 새로 지어진 그 콘서트홀이 바로 파리 19구 라 빌레트 공원 내의 필하모니 드 파리philharmonie de paris였다.

“정말 어떻게 봐도 콘서트홀처럼 보이진 않네요.”

“고대 유물처럼 생겼는데?”

리무진에서 내린 나와 아나스타샤는 눈앞에 있는 거대한 건물을 보며 그렇게 품평했다.

겉모습부터 정말 비범하단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누가 이 건물을 보고 클래식 연주회를 하는 콘서트홀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난 아나스타샤의 감상에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었다. 외계인이 만들어 놓은 고대 유물처럼 생겼다고.

기묘한 그러데이션이 칠해진 바위 덩어리들처럼 생긴 필하모니 드 파리를 잠시 멀리서 감상하다가, 우리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 그러데이션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새……죠?”

“그러네?”

지금 밟고 있는 땅부터 건물 외벽까지 모두 새의 형상을 한 패턴이 보도블록처럼 결합되어 있었다. 그 패턴은 각각 다른 색을 가지고 건물 외벽에 뿌려져 있어서 그러데이션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벌어진 중앙 부분에는 금속 패널이 얽혀서 기이한 광채를 내고 있었다. 현대예술의 영향을 받은 예술품으로서의 건축물이라는 것이 물씬 느껴졌다.

아나스타샤가 작게 웃었다.

“어제 봤었던 조르주 퐁피두 센터보다 여기가 더 현대미술관처럼 생기지 않았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음……. 그런데 설명을 보니 내부에 악기 박물관 등도 갖추고 있다고 하네요? 실제로 박물관의 역할도 하는 것 같아 보여요.”

“진짜 종합예술관이구나.”

“2400석을 갖춘 대형 홀이라는 점은 틀림없겠죠.”

외부는 기묘했지만 꽤 멋지기도 했고, 2000석이 넘는 대형 콘서트홀의 저력은 분명히 갖추고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어쨌거나 이 필하모니 드 파리는 이제 파리를 대표하는 대형 콘서트홀인 것이다.

필하모니 드 파리가 세워진 뒤에 살 플레옐은 아예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서 재즈나 록 등의 현대 음악 프로그램을 공연하는 홀로 탈바꿈했다. 그 직후 살 플레옐에 상주하던 파리 오케스트라도 필하모니 드 파리로 옮겨 옴으로써 필하모니 드 파리는 살 플레옐을 완전히 대체했다.

이제 파리에서 교향악 등을 제대로 공연할 수 있는 곳은 이곳뿐이다.

외부 감상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필하모니 드 파리는 내부도 상당히 복잡미묘했다.

다른 현대적인 분위기의 디자인들은 다 이해하더라도 대체 처마마다 기다란 바늘들은 왜 매달아 놓은 건지 이해가 안 간다. 물론 단단하게 고정해 놓아서 저 바늘들이 떨어질 일은 없겠지만,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잠시 걸으면서 라운지로 올라갔을 때, 우리는 낯선 남자와 만날 수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타티아나 유리예브나.”

“아, 혹시?”

“예. 라파rapa의 베르너 위넬입니다.”

중간 키에 마른 체격, 안경을 쓴 베르너 위넬은 나로선 처음 보는 낯선 남자이긴 하지만, 미리 약속이 되어 있기도 했다. 베르너는 사람 좋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난 그와 악수했다. 환한 미소로 답한다.

“반가워요. 타티아나 유리예브나 베르체노바입니다. 저번 저희 자선 연주회 땐 도움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별말씀을요.”

베르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챔버 오케스트라의 에이전시인 라파 소속의 에이전트이며 이전에 몇 번 전화상으로 통화도 했었고, 또 자선 연주회 때는 홀의 대관에 도움을 주고 프로모션까지 맡아서 해 준 정말 고마운 사람이었다.

사실 얼마 전까지 이름도 몰랐을 땐 러시아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름을 듣고 보니 독일 사람인 것 같았다. 말이 너무 유창해서 위화감이 전혀 없다.

그는 손을 놓고는 말했다.

“연주회장에 직접 가 보진 못했습니다만 영상이나 매거진을 통해 몇 번이나 보았던지라 한눈에 알아뵈었습니다. 옆의 분들은 친구분들이십니까?”

둘 다 친구라고 소개하고 싶었지만 빅토르는 그런 걸 바라는 사람은 아니었다. 난 짧게 소개했다.

“이쪽은 제 친구 아나스타샤, 그리고 여기는 제 전속 경호원이에요.”

“경호원이요? 아…….”

베르너는 조금 놀란 듯하지만 곧바로 이해했다는 듯 납득했다. 베르체노프라는 이름은 어지간한 것들은 사람들에게 쉽게 납득시킨다.

아나스타샤도 자선연주회 때는 고마웠다고 인사를 했고, 베르너와 우리들은 잠시 한가하게 담소를 나누었다. 파리 여행은 어땠는지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베르너는 딱딱하게 일 이야기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게 붙임성 좋게 이야기하던 베르너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자연스럽게 품속에서 티켓과 프로그램 북을 꺼냈다.

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목적은 이것들을 건네주기 위해서였다. 내가 파리에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챔버 오케스트라와 연주회 미팅을 위해 직접 오겠다고 하자 그가 그렇다면 연주회 관람도 하는 것이 좋겠다면서 티켓을 준비해 준 것이었다.

세 장을 꺼내긴 했는데 빅토르가 사양해서 두 장만 나와 아나스타샤에게 전달되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안 그래도 잘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오케스트라의 실력을 미리 볼 수 있는 기회이지 않습니까.”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자랑하는 오케스트라이니 그저 감상할 뿐이지요.”

“하하하, 겸손하시군요.”

베르너는 껄껄 웃었다. 그도 아는 것이다. 내가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결국은 피아노 연주자고, 그렇다면 함께할 오케스트라의 실력을 보고 싶어 할 것이란 것 정도는.

열다섯밖에 안 된 내가 훨씬 좋은 커리어와 실력을 갖춘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약간 재 본다는 것은 웃기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무조건 경의를 품고 찬사를 보낼 준비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나는 연주자였기 때문에.

베르너와의 이야기를 마치고, 그는 에이전트로서 가 봐야겠다며 자리를 떴다. 아직 연주회가 시작되기 전이라 해야 할 일들이 있는 와중 잠깐 틈을 냈던 모양이다.

“성공적인 연주회를 기원할게요.”

“좋은 연주회를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악수를 나누고, 베르너는 자리를 떴다.

전화상으로만 대화를 나누었을 때도 굉장히 좋은 사람처럼 느껴졌는데 실제로 만나 보니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떠나는 베르너를 잠시 배웅하다가 그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무언가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난 깜짝 놀라서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

기겁해서 옆을 보니 아나스타샤가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카페에 잠깐 가 있자. 옥외 테라스도 좋고.”

“아……. 그렇게 해요.”

그녀는 연주회가 시작되기 전에 충분히 쉬고 싶은 모양이었다.

우리는 일단 카페에 가서 마실 것들을 하나씩 주문하고는 잠시 앉아서 쉬었다.

쉬는 시간에 악기 박물관에 가서 수천 점이나 소장 중이라는 악기들과 예술품 등을 구경하고 싶긴 했지만 오늘 이미 본 예술품들도 많았고, 연주회 전에는 차분하게 연주회에 집중하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품 대신 연주회 프로그램 북을 살펴보았다. 홀에 들어가 감상하기에 앞서 프로그램 북을 꼼꼼히 읽어 보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책자엔 이전에 잠깐 찾아봤던 대로 프로그램과 연주자에 대한 간략한 소개 등이 나와 있었다.

난 오케스트라에 대한 것은 일단 차치하고 협연자에 대해 살펴보았다.

“루이 디아라…….”

난 피아노 연주자로 소개되어 있는 남자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프로그램 북에 삽입된 사진엔 순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약력을 보니 프랑스 파리 음악원에 재학 중이며 특히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2위 수상자라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을 아는 연주자는 아니지만, 어쩌면 오늘 루이 디아라라는 이름을 외우게 될지도 모르겠다.

약간은 그런 기분 좋은 기대를 하면서 프로그램도 다시 확인했다.

연주 프로그램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3번과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 딱히 특별하지도 않고 무난했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은 대편성 오케스트라가 있으면 좋겠지만, 챔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하기에도 적절한 프로그램으로 보였다.

“어떨까?”

“편안하게 듣기에 좋지 않을까 싶어요.”

“프로그램은 확실히 그렇게 보이긴 하는데……. 모차르트와 베토벤이라면 너무 무난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기도 해요. 저는 사실 프랑스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요.”

“라벨?”

“나쁘지 않네요.”

“그런데 어쩌겠어? 일단 오케스트라가 우리나라 챔버 오케스트라인걸.”

“그건 그렇지만요.”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연주회와 모르는 연주자를 두고 할 말이라곤 프로그램 정도였다. 난 아나스타샤와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곧 있을 연주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빅토르가 시간을 불러 주었다. 슬슬 홀 안으로 입장할 시간이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안내 방송도 흘러나왔다. 연주회 청중들은 콘서트홀로 입장해 달라는 방송이었다. 난 아나스타샤와 함께 필하모니 드 파리의 콘서트홀로 향했다.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다.

“대단하네…….”

아나스타샤도 놀란 듯 중얼거렸다.

필하모니 드 파리의 콘서트홀은 건물 외관만큼이나 굉장히 특이한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기본 형태는 일반적인 콘서트홀의 모양인 직사각형 모양이나 부채꼴 모양과 다르게 빈야드 스타일vineyard style이다. 빈야드 스타일의 콘서트홀은 무대를 중심으로 객석이 경사진 포도밭처럼 둘러싼 모양으로,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선보인 후로 세계 각지에서 새롭게 지어지는 콘서트홀들에 많이 적용되는 형태였다.

홀 안에 들어서자마자 저 밑에 툭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무대와, 그 주변을 빼곡하게 둘러싼 객석이 보인다. 다시 한 번 감탄한다.

빈야드 스타일이라는 것 자체에 감탄한 것은 아니었다. 빈야드 스타일은 이미 많이 도입되고 있어서 그리 개성적이라고 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놀라워했던 것은 이 콘서트홀에 쓰인 선과 색 때문이었다.

보통 클래식 콘서트홀이라고 하면 무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조금 어두운 원목색의 색상과 붉은 좌석 등을 떠올릴 수 있었다. 웅장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가 우리가 아는 클래식 콘서트홀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필하모니 드 파리의 콘서트홀은 그 모든 고정관념을 깨고 있었다. 클래식 콘서트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이고 세련되었다. 전체적으로 흰색이 바탕색으로 깔려 있었고, 유려한 곡선을 많이 이용한 감각적인 디자인을 보이고 있었다.

처음 들어서자마자 나는 이 콘서트홀이 우주처럼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무대 쪽으로 떠 있는 듯한 발코니 객석과 2층의 객석은 마치 우주선처럼 보였고, 1층의 검은 좌석들은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마치 별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객석을 둘러보며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이전에도 빈야드 스타일의 콘서트홀은 몇 번 본 적이 있었지만 여긴 특히나 무대까지의 거리가 가까워 보였다. 2400석이나 되는 대형 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아무리 빈야드 스타일의 콘서트홀이라 할지라도 로열석이 어딘진 분명히 보일 텐데, 여긴 정말 어디가 로열석인지 감을 잡기 힘들었다.

그리고 음의 반사를 위해 천장에 매달려 있는 음향 반사판들은 불규칙한 유선형으로 비틀려 있어서 주변을 날아다니는 하얀 비행선 혹은 새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른 콘서트홀에 있는 음향 반사판들이 이렇게 거대하고 아름답진 않다는 것과 비교하면 정말 인상적인 차이점이었다.

건물 외관을 보고 이미 예상을 하긴 했지만, 이러한 콘서트홀의 형태는 현대적이다 못해 거의 미래적으로 느껴진다.

“…….”

홀의 생김은 정말 예술적인데 과연 홀 자체의 역할에도 충실해 줄지 그건 잘 모르겠다.

클래식 콘서트홀이 갖춰야 하는 요건은 정말 많았다.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생음악을 청중들에게 풍성하면서도 깨끗하게 들려주어야 하는데 이 두 요소를 동시에 충족시키기는 정말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무대의 음악이 객석 구석구석까지 정확하게 전해지는지, 잔향은 교향곡을 연주하기에 적절하게 긴지, 음향학적으로 왜곡이 일거나 나쁜 반향이 있지는 않은지, 심지어 홀 안에 있는 공기의 총량도 중요했다. 소리는 공기를 타고 퍼지기 때문이었다.

물론 난 어쿠스틱 엔지니어가 아니었고,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내가 이 홀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것은 내 귀로 직접 음악을 듣고 난 뒤일 것이다.

지금은 몰라도 상관없다. 들어 보면 알 것이다.

“저쪽이네요. 가죠.”

“응.”

아나스타샤와 나는 티켓에 인쇄되어 있는 좌석으로 갔다. 로얄석 티켓답게 무대가 정면에서 보이는 아주 좋은 자리였다.

우리는 누가 먼저 말할 것도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어 전원을 껐고, 혹 부스럭거릴 수 있는 가방도 내려놓았다. 음악의 성당에서 요구하는 에티켓은 아주 간단했다. 조용히 할 것.

잠시 기다리자 곧 객석이 청중들로 만석이 되었다.

더 이상 어수선하게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게 되자 그때까지만 해도 여기저기에서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점차 사그라든다. 약속이라도 한듯, 천천히 가라앉는다.

연주회를 곧 마주하는 음악의 신자들이 각자 경건하게 스스로를 가다듬었다. 소리가 조용해지면 조용해질수록 음악에 목말라하는 아우성들이 객석에서 느껴져 온다. 기대감과 흥분이 조용히 홀 안에 흐르며 모두와 함께 공명한다.

홀 안의 조명이 살짝 어두워졌다.

“안녕하십니까, 신사 숙녀 여러분. 환영합니다.”

사회자가 무대 위로 올라와 영어와 프랑스어로 번갈아 인사를 했다.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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