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1화
사회자는 유창한 영어와 프랑스어를 번갈아 말하며 앞으로 있을 연주회를 소개했다. 난 프랑스어는 전혀 모르고 영어도 잘 못하는 편이었지만 이해하는 데에 문제는 없었다.
간단한 인사말 후에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이어 연주자를 소개한다.
그리고 아래로 펼쳐진 무대 위로 여러 명의 사람들이 올라왔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챔버 오케스트라와 협연자 루이 디아라. 이 연주회의 주인공들이었다. 박수가 쏟아지며 그들을 환영했다.
“…….”
처음 보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챔버 오케스트라는 작은 규모의 신포니에타이니만큼 1관 구성의 오케스트라로 보인다. 일반적인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2관이나 3관 편성인 것에 비하면 확실히 작았다.
일반적으로 오케스트라의 규모를 말할 때 쓰는 기준인 몇 관 구성이란 목관악기의 숫자를 뜻하는데, 1관 구성이라면 플루트 1명 오보에 1명이 기준이라는 것만으로도 제1바이올린이 그 4배인 4명, 제2바이올린이 또 그 정도, 비올라는 2배인 2명, 첼로 2명, 콘트라베이스 1명 정도로 구성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 명씩 세어 보니 상트페테르부르크 챔버 오케스트라는 1관 편성의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이 한 명 빠지고 거기에 바순이 한 명 섞여 있었다. 총 15명의 사람들이 각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루이 디아라.
프랑스 출신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늘씬한 스타일의 남자였다. 클래식 연주자로서 깔끔하게 정돈한 머리와 웃는 인상이 보기에 좋았다. 꽤나 기대가 된다.
연주자들은 박수갈채에 묵례로 답례하고는 각자 자리에 앉았다. 의자와 보면대를 다시 살짝 조정하고, 자신의 악기를 점검한다. 미리 악기들의 조율은 하나로 맞췄을 테니 다시 하진 않…….
“……?”
루이 디아라가 피아노로 라 음을 쳤고 오케스트라가 다시 거기에 맞춰 조율을 하기 시작했다. 난 약간 당황스러웠다. 피아노 협주곡이니 피아노의 음에 조율을 하는 건 당연하지만 리허설 때 하지 않았단 말인가?
연주 전 준비가 미흡한 것처럼 보일 순 있지만 큰 매너 위반이나 문젯거리는 아니었다. 조율이야 연주 도중에만 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상관없는 일이니까. 청중들은 모두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조율은 길지 않았고, 잠시 후 지휘자가 지휘봉을 들었다.
지휘봉에 모든 시선이 향했다. 모두가 숨을 죽이는 적막이 앉았다가, 지휘봉이 휘둘러지면서 깨어졌다.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3번.
모차르트는 27곡이나 되는 피아노 협주곡을 썼고 모두 정교하고 높은 완성도를 지녀서 완벽한 협주곡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가 곡의 시작을 알리는 밝고 서정적인 주제를 제시한다. 피아노가 소리를 내기 전에 미리 앞장서며 노래를 하는 느낌이었다. 따뜻한 음색이 홀 전체에 머무른다. 순식간에 음악의 마법이 모두를 휘어잡는다.
바이올린과 첼로의 조화로움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리고 난 플루트 주자에게 정말 감탄했다. 오보에와 바순도 두드러지긴 했지만, 플루트 주자의 소리는 현악기들의 소리 위에 아주 절묘하게 레이어드 되어 마치 들판 위를 흐르는 상쾌한 바람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난 플루트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음악가로서 저 플루티스트가 정말 대단한 연주자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악기의 차이가 아닌 연주자로서의 실력 그 자체의 뛰어남을 느낀다. 러시아에 얼마나 대단한 연주자들이 많은지 다시 한 번 깨닫는다.
“…….”
음악은 그렇게 정해진 이야기를 따라 걸어 나가며 눈에 보일 듯이 확연한 길을 그려 냈다.
풀이 무성하게 자란 너른 들판 한가운데로 오케스트라가 나아가면서 풀들이 누워 주며 길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그 누구라도 그 뒤를 따라가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난 감탄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챔버 오케스트라는 1관 편성의 챔버 오케스트라임에도 이 홀을 확실히 꽉 채우는 소리를 내 주고 있었다.
어쩐지 조금 길게 느껴지는 홀의 잔향이 오케스트라의 크기를 약간 부풀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콘서트홀이 지니는 위력을 차치하고라도 오케스트라 자체가 지닌 단결된 소리의 아름다움은 첫 프레이즈만 듣고도 박수를 치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로 좋았다. 훌륭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프랑스의 홀에서 러시아의 오케스트라가 오스트리아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듣는 기분은 그야말로 유럽 클래식의 정수를 한순간에 받아들이는 기분이었다.
종종 느끼지만 클래식은 한 나라와 한 문화의 특징이 두드러질 때도 특색 있고 멋지게 들리지만 이렇게 여러 가지가 섞일 때 비로소 조화를 찾고 더 풍부해지기도 한다.
피아노 연주자인 나조차 피아노를 잊고 교향악으로만 이 음악을 즐기길 2분 정도, 세 명의 관악기 주자들이 섬세하게 주제를 살짝 내려놓듯 연주하며 오케스트라가 잦아들고, 주인공인 피아노가 모습을 드러냈다.
“…….”
피아노 소리가 앞으로 치고 나오면서 기존에 깔려 있던 오케스트라보다 조금 앞서다가, 자리를 맞추어 나간다.
피아노가 등장 한 뒤로 다시 제시되는 주제를 듣다가, 난 살짝 고개를 갸우뚱했다.
“……?”
약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느낌에 확신이 서는 순간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편안하게 있다가 난데없이 뺨을 맞은 것처럼, 처음엔 의아함뿐이었지만 곧 제정신을 찾으니 걷잡을 수 없이 기분이 안 좋아졌다.
이전까지 정말 예쁘다고만 느껴졌던 음악이 약간 비틀리며 묘하게 변질되었다.
들판에 먼지바람이 끼어들고, 이전까지의 이미지가 헝클어졌다. 귀로 듣는 음악이지만 뿌옇다는 기분이 든다. 그 답답함은 계속되었다.
난 기분이 상할 정도로 이상하게 들리는 음악을 귀에 집어넣으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생각은 길 필요 없었다. 음악에 피아노 소리가 섞이자마자 이렇게 되었다면 당연히 피아노 소리에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유심히 무대를 내려다보니 피아노 연주자 루이 디아라의 표정이 보였다.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다.
“…….”
좋지 않은 의미로, 저 이름을 외우게 될 것 같다.
내가 너무 기대가 많았던 걸까.
좋아하는 거장들의 연주처럼 굉장한 것을 듣게 되리라 기대하진 않았다. 단지 파리 여행 3일 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하고 싶었을 뿐이다. 덩달아 언젠가 같이 협연하게 될 상트페테르부르크 챔버 오케스트라의 음악도 들어 보고 싶었고.
그런데 오케스트라의 음악에서 정말 만족하고 있다가 난데없이 피아노에서 균형이 무너져 버리자 짜증이 났다.
난 지금 2400명의 청중 중 한 사람이지만 동시에 피아노 연주자이기도 한 것이다.
“…….”
내가 연주하는 것도 아닌데 창피함과 짜증, 그리고 그런 것을 느끼는 나 자신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연주자의 얼굴을 보니 더더욱 스트레스가 치솟는다. 적어도 무대에 올라서 준비한 연주를 하는 것이라면 저런 표정을 지어선 안 된다. 그건 기본 매너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한 번 실망하고 나자 모든 것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흥분을 조금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난 침착하게 자세를 고쳐 바로 앉았다.
“…….”
파리에서 듣는 첫 연주회라는 사실에 너무 들떴던 걸까. 기대치가 조금 높았던 것 같긴 하다. 조금만 낮추면 될 것이다. 이렇게 괜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정도로만.
연주회가 실망스러운 경우는 정말 많이 겪는 일 아닌가? 별일도 아니다.
하지만 보고 싶지 않으면 눈을 감고 맛을 보고 싶지 않으면 입을 다물면 되는 것과 다르게 음악은 내게 강요된다.
사람의 마음을 슬프거나 기쁘게 강제할 수 있는 마법들 중 음악이 가장 강력한 것으로 여겨지는 까닭은, 음악이 마음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쉽게 막을 수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귀를 막거나 무언가를 던져 연주를 막으면 되겠지만, 그런 무시무시한 무례를 저지를 순 없었다.
“…….”
옆을 보니 아나스타샤도 마침 날 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도 약한 실망감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무대에서 관심이 멀어진 것보단 내게 미안하다는 느낌이 훨씬 강했다.
대체 왜 그녀가 미안해하는지 모르겠다. 이곳으로 그녀를 데리고 온 것은 나였으니 모든 건 내 책임인데.
아니지 지금 책임을 따지자면…….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침착하기로 했다.
안 좋은 부분을 보지 말고 좋은 부분만을 골라 보기로 했다. 처음에 느꼈듯 플루티스트의 실력은 정말 들으면 들을수록 대단했다. 혼자임에도 불구하고 15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소리 위에 두드러지면서도 멋진 소리를 내는데, 그저 감탄할 뿐이다. 그리고 현악기들의 일치됨도 대단한……. 피아노 소리가 거슬린다.
살면서 피아노 소리가 거슬린다는 생각을 하는 일이 생길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지만, 스스로를 속일 순 없었다.
일부러 하는 짓이라면 정말 대단했다. 대놓고 엉망진창으로 연주를 망치는 것도 아니고 오케스트라가 다져 놓은 길을 정확하게 따라 걸으면서도 이렇게 음악을 망쳐 놓다니. 어찌 보면 엄청난 실력이다.
하지만 루이 디아라의 표정은 연주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좋지 않았다.
“…….”
가만히 무대를 내려다보다가 조금 달리 생각해 보기로 했다.
상식적으로 루이 디아라는 진지한 연주자일 것이고,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은 그렇게 연주가 까다롭거나 해석이 까다로운 곡이 아니다. 심지어 열 살 남짓한 어린 연주자들도 연주하곤 한다.
그런데 파리 음악원이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음악원의 학생이며 대형 콩쿠르 수상 경력도 있는 프로 연주자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이렇게 이상하게 연주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물론 연주자마다 제각각의 스타일과 경향이 있기 때문에 라흐마니노프를 완벽하게 연주하면서도 모차르트를 못 연주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멀리 가도 너무 멀리 간 생각 같았다.
가장 그럴싸하게 들리는 가정은 무언가 트러블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연주자나 혹은 피아노에.
아픈 걸까?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피아노를 연주함에 있어 리듬이 무너지거나 미스 터치가 많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귀에 들리는 소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눈으로만 보면 아무 문제없이 연주 중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소리의 문제인데, 즉 피아노의 문제다.
“……?”
설마.
특이한 몇 연주자를 빼놓고 다른 거의 전부라 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들은 콘서트홀에 있는 피아노를 쓰게 된다. 때문에 콘서트홀에서는 피아노를 몇 대나 두고 전문 관리인까지 두는 것이 보통이었다. 문제가 있는 피아노가 무대에 올라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드물다는 말인즉슨, 가끔 있기도 하다는 말이다.
어쩌면 종종.
“…….”
그래도 길거리에서 아무나 치고 다니는 피아노도 아니고 2400석이나 되는 콘서트홀의 피아노인데,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되는 다양한 협화음들이 한순간에도 몇 십 개씩 스쳐 지나가지만 그것들을 잠시 뒤로 하고 피아노 음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피아노를 다루는 연주자도 뒤로 하고 피아노 그 자체에 신경을 기울였다.
스타인웨이의 그랜드피아노는 특유의 명랑하고 밝은 음색을 지니고 있다. 그러면서도 풍부한 부피를 지닌다. 야마하나 뵈젠도르퍼 같은 무게감 있는 피아노보다는 조금 위에서 떠도는 듯한 자유로운 음색이 스타인웨이 그랜드피아노의 특색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 음색이 굉장히 이상했다.
연주자의 실력 때문이 아니라, 피아노 자체가 내는 소리의 문제였다.
축축하고, 기분 나쁘다. 기본음에 붙으며 음색을 만들어 내는 배음이 이상하리만치 길고 뒤틀려 있다.
감기에 걸린 가수가 노래를 하는 것처럼, 힘겹게 실낱같이 이어지는 소리가 너무나 괴롭게 들린다.
미묘한 차이이지만 모든 문제의 시작점을 느낄 수 있었다.
의심은 점점 확신이 되었다.
“…….”
홀 안의 몇 명이나 같은 것을 느꼈을까? 난 살짝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청중들의 표정은 무표정했다. 하지만 무표정이라도 그 감정과 분위기는 전해져 오기 마련이었다.
분위기는 꽤 가라앉아 있었다. 청중들의 관심이 무대에서 약간씩 벗어나 있다. 나처럼 분석까진 하지 않더라도, 특별히 거슬림이나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귀에 들리는 음악이 그리 감탄하고 싶을 정도로 멋지지 않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느끼는 것이다.
그래도 나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반쯤 되어 보인다. 오케스트라가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 리듬 속에 피아노가 어우러지고 있긴 때문인 것 같았다.
그나마 최악은 아니라 다행이라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후.”
약 30분. 내가 스트레스와 안쓰러움과 부끄러움과 불만을 견뎌 낸 시간이었다.
연주가 끝나고 15분간의 인터미션이 주어졌다.
조금 맥이 빠져서, 아나스타샤와 함께 홀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나스타샤와 나는 테라스로 나올 때까지 잠시 말이 없었다. 연주가 마음에 들었다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감상을 주고받았을 것을 생각하니 입을 열기가 두려울 지경이었다.
테라스에 서서 바람을 쐬며 있길 잠시, 아나스타샤가 입을 열었다.
“그냥 그랬지?”
“…….”
솔직한 감상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변호를 할 수도 있고, 별 관심 없다는 듯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변호를 할 생각도, 관심이 없지도 않았다. 연주자가 아닌 피아노의 문제라는 것을 느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나스타샤와의 대화를 불평불만으로만 점철하고 싶진 않았다.
“예, 뭐……. 오케스트라는 너무 좋았어요.”
“맞아. 1관 오케스트라인데도 정말 소리가 좋더라고. 이런 대형 홀에서 연주할 만하네.”
“그렇죠?”
어쨌든 그녀도 나도 서로 기분이 상하고 싶진 않은 것이다. 파리로 여행 와서 처음 본 연주회라는 점이 더더욱 우리를 얽맨다.
아나스타샤는 배시시 웃더니 프로그램 북을 들었다.
“다음 곡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순간 우리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좋은 이야기만 하고 싶지만, 연주회는 끝나지 않았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은 모차르트의 것보다 더 대규모의 곡이며 피아노 연주자의 실력이 돋보이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난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아나스타샤. 우리 솔직해져 볼래요?”
“응?”
“피아노 어떻게 들으셨나요?”
“…….”
아나스타샤는 내 친구이자 동시에 동료다. 음악을 감상하고 평가하는 데에 있어서 더 조심스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도 내 기분을 눈치챘는지 팔짱을 끼더니 삐딱하게 말했다.
“이상하던데.”
“그렇게 들으셨나요?”
“이상하기보단…… 글쎄.”
“테크닉은 문제없었죠?”
“응. 그냥 테크닉은 그럭저럭……. 그런데 음색이 정말 별로였어. 담백한 것도 아니고 느끼한 것도 아니고 진짜 처음 들어 보는 스타일이네. 이게 프랑스 스타일인가?”
“아닐걸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대체 뭘까.”
전형적인 까다로운 클래식 감상자의 태도로 우리는 의견을 주고받았다.
난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아나스타샤도 피아노 음색이 별로라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 피아노 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곤 별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나스타샤가 둔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조금 까다로운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인 고정관념도 있었다. 연주가 마음에 안 드는 이유가 연주자에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웠다. 비교해 볼 연주가 없는 처음 보는 연주자의 연주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녀가 정확하게 짚어 내지 못할 정도라면, 사실 정말 극히 미묘한 차이였다. 일반 사람들은 더더욱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하지만 그 작은 차이가 사람들이 음악에 빠져들고 감동하는 데에 결정적으로 장애가 되고 있었다.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할까. 저런 피아노를 무대에 올린 담당 관리자? 저런 피아노를 잡고도 그대로 연주를 다 해 버린 피아노 연주자? 둘 다?
항의하고 싶은 마음과, 연주회가 완전히 엉망으로 무너진 것도 아닌데 보통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했을 부분을 너무 까다롭게 항의하는 것도 정말 피곤한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충돌하며 날 괴롭혔다.
이미 난 충분히 스트레스를 받았고 피곤하기도 하다.
조금 지쳐서, 그냥 연주회가 기대보다 별로였다는 감상 정도로 마무리 지으려는 찰나,
“타티아나 유리예브나.”
“!?”
뒤에서 누군가 날 불렀다. 깜짝 놀라서 어깨를 움찔하며 뒤돌았다.
미안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에이전시 라파의 베르너 위넬이 사과를 건네 왔다.
“오,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미안합니다.”
“괘, 괜찮아요.”
왜 이렇게 깜짝깜짝 놀라는지 모르겠다. 난 막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것들을 치워 놓고 그와 마주했다.
베르너가 물었다.
“연주회 어떠셨습니까?”
“…….”
썰물처럼 잠시 빠져 있던 생각들이 다시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해 버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어린애가 아닌 이상 갖춰야 할 에티켓이자 사회성이었다.
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