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2화
연주회가 어떠했느냐.
청중의 입장에선 간단히 답할 수 있었다. 기대 미만이었다.
베르너가 호의로 선물해 준 연주회 티켓이었지만 무조건 좋은 말만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평불만을 마구 늘어놓기에도 미안하니 짧게 그저 그랬다고 답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연주자의 입장에선 조금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동시에 안타깝기도 했다.
그냥 쉽게 연주자에게 모든 분노의 화살을 돌리면 나야 마음이 편하겠지만, 피아노를 빌려서 써야 하는 피아노 연주자는 언제나 날벼락처럼 이런 트러블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기 때문이었다.
분노의 화살은 어느 한곳으로 집중되지 못하고 연주자, 조율사, 스테이지 매니저 등을 향해 몇 갈래로 분리되었고, 자연스레 힘이 약해졌다.
결국 난 힘없이 말했다.
“안타까웠어요.”
“…….”
“오케스트라가 피아노를 묻어 버리고 간신히 끌고 나가 마무리 지은 것이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네요.”
베르너가 묘한 표정으로 날 들여다본다. 더 자세히 말해 달라는 것 같았다. 난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감상을 천천히 말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에서 피아노는 단선율로 구성되어 있어요. 때문에 풍부한 화음으로 오케스트라와 맞서는 것이 아니라 가느다란 선율로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갈 수 있는 음색을 만들어야 하죠.”
“그렇습니까?”
“예.”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은 연주하는 데에 있어서 어렵다고 할 순 없었지만 연주자와 피아노의 음색이 상당히 중요하다.
어린 연주자부터 원숙한 프로 연주자까지 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연주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 색이 확연히 드러나는 굉장히 깨끗한 곡이기 때문이다.
이번엔 그 깨끗함을 전혀 보여 주지 못했다. 흙탕물 같은 음악이었다.
음울하게 말했다.
“하지만 전혀 뚫지 못했어요. 뭉개지고, 침잠하면서 음악의 색을 더럽혀 놓았죠.”
“실망이 크셨겠군요.”
“글쎄요……. 실망이라기보단 슬프네요.”
“프랑스 연주자에게 기대가 있으셨습니까?”
“그것보단…… 피아노의 음색에는 연주자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피아노의 크기와 사운드가 많은 영향을 끼쳐요.”
그제야 베르너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한 듯 눈에 이채를 띠었다.
“피아노라……. 스타인웨이였는데 말이죠.”
“스타인웨이는 모차르트를 연주하기엔 정말 좋은 피아노이지만, 그만큼 예민하고 섬세하기도 하죠.”
피아노에 문제가 있어서 1관 편성 챔버 오케스트라의 소리조차 뚫고 나가지 못한 피아노 연주자의 심정을 다시금 떠올려 보니 더욱 슬퍼졌다.
베르너에게 말했다.
“피아노, 교체해야 해요.”
“…….”
“혹시 가능하다면 전해 주시길.”
나보단 연주자인 루이가 문제를 더 심각하게 느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미 교체 중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기까지였다.
베르너는 꽤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안경 너머로 깊게 들어간 눈이 날 내려다보았다.
아나스타샤를 보니 그녀는 피아노를 바꿔야 한다는 내 말에 무언가 깨달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어렴풋하게 느껴지던 것들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 같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가 빠르게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피아노가 문제라는 내 의견에 동의한다는 의미였다.
“…….”
베르너가 무언가 고민하는 듯 손가락으로 턱을 쓸었다.
난 시간을 확인했다. 인터미션은 10분 남았다.
그와 무언가 조금 더 이야기를 하고 싶긴 했지만 에이전트인 그도 이 연주회에 책임이 있으므로 지금 무언가 길게 이야기를 하긴 어려울 것이다.
곧 베르너가 바쁘게 떠날 것이라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날 불렀다.
“타티아나 유리예브나.”
“예?”
“백스테이지에 같이 가 보시겠습니까?”
“무슨 말씀이신가요?”
나도 모르게 살짝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연주자 대기실을 구경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분위기가 좋든 나쁘든 직접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분위기라도 날 짜증 나게 만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티켓을 선물해 준 베르너에 대한 예의로 방금 전 연주에 대해 짧게 평했다 한들, 그걸 연주자들에게 직접 전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연주회가 다 끝난 후라면 또 모를까, 아직 다음 프로그램이 남아 있는데 인터미션에 관계자도 아닌 내가 연주자 대기실로 쳐들어가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딱 잘라 말했다.
“가고 싶지 않아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고요.”
“아,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냥 어떤 상황인지 보기만 하셔도 됩니다.”
“보기만요?”
“예. 아무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혹시 프랑스어도 하십니까?”
“……아니오.”
“루이도 러시아어는 할 줄 모릅니다.”
어차피 대화가 성립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 같다.
하지만 난 바보가 아니었다. 베르너가 내 감상에서 무언가를 읽어 내고, 상황 속에 날 던져 넣으려는 것 같다는 건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큰 에이전시의 에이전트였고 어른이었다.
하지만 더 교묘하게 속이려는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냥 다시 한 번 싫다고 말한다면 물러가 줄 것이다.
“…….”
잠시 고민하며 그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망설임과 미안함, 그리고 약간의 기대가 엿보인다.
대체 내게 뭘 기대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좋아요.”
일단 따라가 주기로 했다.
난 그에게 빚이 많았다. 오늘 받은 연주회 티켓도 그렇지만 자선 연주회에서 홀 대관과 프로모션을 도와준 것도 바로 베르너였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따라 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가 다음 연주회 협연자인 날 화나게 할 것 같지도 않았고.
아나스타샤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가서 뭐 하게?”
“그러게요…….”
연주자 대기실에 외부자가 들어가서 뭘 할 수 있을진 나도 잘 모르겠다. 베르너의 말대로 그냥 보고만 있을 생각이다.
아나스타샤는 잠시 고민한다. 하지만 날 말리는 대신 따라오는 쪽을 택했다. 대기실의 분위기가 안 좋다면 안 좋은 대로 볼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따라가 주긴 하지만 아무 말도 않고 구경만 할 것이라는 뜻을 전했음에도 베르너는 깍듯이 감사를 표하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이쪽이니 따라오십시오.”
내가 알면서도 속아 준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는 것이다.
***
베르너를 따라 연주자 대기실로 향하다가 갑자기 빅토르에게 메시지가 와서 깜짝 놀랐다.
그는 모두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다. 어디로 가냐는 메시지에 나는 베르너를 따라 연주자 대기실을 견학하러 간다고 답장했다. 이제 와서 견학이라니 웃기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콘서트홀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나쳐서 조금 돌아가자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명패가 붙어 있는 방이 있었다. 연주자 대기실이었다.
들어가기 전 베르너가 말했다.
“제 옆에 계시면 되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내가 대답했고, 베르너는 조심스레 대기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대기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우리는 빠른 프랑스어로 말다툼을 벌이는 두 남자를 발견했다. 한 명은 피아노 연주자였던 루이 디아라. 다른 한 명은 이 홀의 직원으로 보였다.
“□□□ □□□□□ □□□□!”
“□□ □□□ □□□ □□□□ □□□ □□ □□□ □□□□!”
두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진 모르겠는데 상당히 심각한 분위기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챔버 오케스트라로 보이는 사람들은 저마다 피곤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 가서 인사라도 해야 하는데, 분위기가 이렇게 살벌해서야 뭘 할 수가 없다.
옆에 있던 아나스타샤가 작게 소곤거렸다.
“팝콘이나 사 가지고 올 걸 그랬네.”
“아나스타샤……!”
살짝 힐난하듯 말렸다. 하지만 아나스타샤도 이 상황이 재미있어서 농담한 건 아니었다.
“쉽게 안 끝날 것 같은데.”
“…….”
여기 왜 오겠다고 한 걸까. 난 지금이라도 나갈까 고민했다.
그런데 베르너가 말했다.
“디아라는 피아노를 교체해 주길 요구하고 담당자는 거부하고 있는 것 같군요.”
“프랑스어 하세요……?”
“조금 합니다.”
난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차피 말 알아들을 일 없으니 와서 보기만 하라더니, 자연스럽게 통역을 해서 내가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한마디 할까 했지만 그냥 잠자코 있기로 했다. 어차피 오겠다고 결정한 건 나였으니까.
“□□ □□□……!”
“□□□ □□ □□□!”
어쨌든 두 사람이 왜 싸우는지 설명을 듣고 나니 조금 더 상황이 명백하게 보였다. 루이 디아라는 몇 번이고 피아노를 교체해 달라는 것 같고 담당자는 굳은 얼굴로 거절하고 있다.
이해가 안 갔다. 피아노 연주자가 피아노가 이상하다는데 왜 요구를 받아들여 주지 않는단 말인가?
한 발자국 더 들여놓음을 느끼며, 베르너에게 물었다.
“이상하네요. 피아노를 왜 교체해 주지 못한다는 건가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이유를 말하는 중이군요.”
베르너는 조용히 두 남자의 프랑스어 설전을 듣다가 천천히 통역해 주었다.
“피아노에는 아무 문제도 없고, 인터미션 사이 피아노를 교체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군요.”
“싸울 시간은 있고요?”
“그리고 문제도 없는 피아노를 입맛에 안 맞다고 교체해서 마치 피아노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 모습을 청중들에게 전부 보여 줄 순 없다고 합니다.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아 달라는군요.”
할 말이 없었다.
저 담당자도 음악 업계에 종사 중인 사람이라면 피아노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 텐데, 지금 하는 태도를 보면 과하게 까다로운 연주자를 대하는 듯한 태도였다.
물론 세상엔 그런 연주자도 많다. 홀의 음향이 마음에 안 든다고 연주회를 취소하는 건 양반이고, 피아노의 위치가 반 뼘 틀어졌다고 짜증을 내고 나가 버리고, 오케스트라와 리허설을 하다가 싸우고 그만두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
하지만 이 상황은 연주자가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난 내가 귀로 들은 피아노의 문제를 확신했다.
베르너가 날 왜 이곳에 데리고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청중이자 피아니스트로서 의견을 바라는 것이었다.
“담당자는 피아노에 문제가 있다면 시작 전에 말했어야 하지 않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르너는 태연하게 계속해서 통역했다.
“디아라가 강력하게 항의 중이군요.”
“…….”
얼마나 상황이 곤란하면 내 도움까지 바라는가 싶기도 하지만, 그건 상당히 기껍게 느껴지기도 했다. 적어도 베르너는 나를 제대로 의견을 낼 수 있는 음악가로 봐 주고 있었다.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 열다섯 살 학생이자 음악가로서 내가 무언가 할 수 있긴 한 건지.
난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말다툼을 벌이는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 일단 상황을 가늠할 필요가 있었다.
베르너가 혀를 차며 말했다.
“역시…… 문제가 조금 있군요. 본래 쓰기로 했던 피아노는 지금 무대에 올라가 있는 피아노가 아니었던 듯합니다.”
“그런가요?”
“예. 전날 조율사와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골라 놓았지만 운반 도중 페달에 고장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랜드피아노의 운반은 전문 기사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간혹 사고가 나기도 한다.
베르너가 이어 말했다.
“그래서 야마하나 다른 피아노를 제안했더니 그걸 거절한 건 디아라 쪽이 아니냐고 묻는군요.”
“모두 거절했나요?”
“거절하고 반드시 자신이 고른 피아노를 수리해서 올려 달라고 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부품도 수리공도 바로 움직일 수가 없었고, 시간 관계상 불가능했겠죠. 때문에 제5리허설룸에 있는 다른 스타인웨이를 올린 것 같습니다.”
“…….”
상당히 주먹구구식의 해결책이었다. 정말 책임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연주자의 입장에선 정말 화가 날 수밖에 없다. 뭐하러 콘서트홀에서 연주회를 한단 말인가? 길거리에서 하고 말지.
하지만 준비되어 있는 다른 피아노를 차선책으로 쓰자는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최선을 다해서 원하는 대로 해 줬는데 1부가 끝나자마자 또 무엇을 요구하는지 모르겠다며 귀찮아하는군요.”
“…….”
“어쨌든 까다롭게 굴지 말라고 합니다.”
통역된 말을 듣지 않고 담당자의 얼굴만 보더라도 다분한 악의가 느껴졌다. 그저 짐작이지만, 피아노를 수리해서 올려 달라는 말이 결코 곱지 않았을 테고 거기에서 이미 말다툼 비슷한 것이 벌어졌으리라는 것을 예상하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유치한 감정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각자 권한을 지닌 사람들이라면 그 감정싸움이 2400명에게 실망감을 안길 수도 있다.
“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성격이 그리 좋지 않은 두 사람이 자존심으로 맞붙으면 어떻게 되어 버리는지 보여 주는 아주 훌륭한 사례였다. 누가 더 잘못했는지 따져 보기도 싫었다.
정말 실망한 내 표정을 보았는지, 베르너가 조심스레 말했다.
“미안합니다.”
“……괜찮아요.”
“…….”
베르너도 답답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할 수 있다면 자신이 나서서라도 담당자를 설득하고 인터미션 시간을 늘려서 피아노를 교체하고 싶어 보였다.
하지만 에이전트의 권한은 거기까지 미치지 않는다. 연주회를 지연시키는 것은 홀의 직원들도, 연주자들도 청중들의 불평을 감수해야 하는 꽤 어려운 결정 중 하나다.
연주회가 길어지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피아노의 문제가 확실하다고 결정 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피아노를 교체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는 누가 피아노의 문제를 증명하느냔 것이었다.
“…….”
잠깐 생각해 보았으나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시간이 조금 더 있다면 모를까 연주회 도중의 몇 분 사이엔 할 수 있는 것이 극히 제한적이다.
내가 나서서 피아노 소리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들 저 담당자는 절대 피아노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음색의 문제를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가? 연주자 본인의 주장도 싹 무시했던 사람이다. 좁힐 수 없다.
내가 나가서 직접 쳐 보고 소리가 이상하다고 말해도 설득력이 없다. 난 열다섯 살짜리 연주자이니 완전히 무시당할 것이 뻔하다.
청중들에게 앙케트를 받는다는 정말 최악의 생각까지 들었지만 그게 가능할 리도 없고, 받는다고 한들 의미도 없다.
누군가 권위 있는 피아니스트가 있다면 간단하게 해결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모르겠다.
베르너에게 지킬 의리는 이 정도로 지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슬슬 정말 나가고 싶어졌는데,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모여 있는 쪽에서 누군가 이쪽을 힐끔거리더니 다가왔다.
큰 키에 갈색 머리를 단발로 짧게 친 여성 연주자였다. 걷는 모습만으로도 활력이 넘쳐 보였다.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러시아어였다.
“아가씨들은 누구죠?”
정중하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어요. 타티아나 유리예브나 베르체노바라고 합니다.”
“아……? 타티아나 유리예브나?”
그녀는 내 이름을 듣더니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반가워했다.
“이야기는 들었어요. 반가울 상황이 아니지만 반갑군요. 전 상트페테르부르크 챔버 오케스트라의 악장 크리스티나 안드레예브나 나미코바예요.”
난 그녀와 악수를 나누었다. 하지만 서로 웃으면서도 표정이 약간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저 옆에서 프랑스어로 시끄럽게 싸우는 데에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크리스티나가 작게 한숨을 쉬더니 베르너를 비난했다.
“그나저나 베르너, 가뜩이나 안 좋은 상황에 어린 아가씨들을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해요? 너무하지 않아요?”
“그게 아닙니다, 크리스티나. 타티아나 유리예브나는 피아노의 문제를 알고 있었어요.”
“뭐라고요?”
“청중석에서 듣고도 바로 알아봤다고 하더군요.”
크리스티나는 놀란 듯이 날 다시 바라보았다.
그녀가 물었다.
“음……. 왜죠? 왜 그렇게 생각해요?”
함께 가까이에서 합주를 한 그녀도 한 번에 피아노의 문제라고 확정 짓진 못한 모양이었다. 악장이면 제1바이올린의 수석일 테고 그만한 실력자겠지만, 바이올리니스트인 그녀가 다른 악기의 미묘한 문제를 짚어 내긴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들리니까요.”
하지만 나라고 해서 딱히 깔끔한 답을 내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바보 같은 소리를 하자 크리스티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다.
난 일단 오케스트라 단원들만 알 수 있는 부분을 질문했다.
“저야말로 궁금한 게 있어요. 리허설 때 저분의 연주는 들어 보신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본래 실력은 아시지 않나요?”
리허설 때 이미 실력과 음색을 파악했다면 연주자를 조금은 믿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크리스티나가 대답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해외 일정이라 리허설을 많이 맞춰 보진 못해서요. 그리고 리허설 땐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무대에 올라서 이상해지는 연주자들을 저희가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니고요.”
“루이 디아라가 긴장하신 것 같았나요?”
“약간은요?”
그 긴장 때문에 음색이 이상해진 것인지, 음색이 이상해서 긴장을 한 것인지 구분하긴 어려우리라.
크리스티나는 아직도 싸우고 있는 두 프랑스 남자를 일견하고는, 역시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아무튼, 피아노 소리가 우리 오케스트라를 정말 끈질기게 괴롭혔는데 어떻게든 마치고 나선 피아노를 바꿔 달라고 하니……. 30분 내내 괴롭힘 당하다가 그런 말을 들으니 변명으로밖에 안 들리더라고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이전에도 몇 번 그랬다는 이야기가 있어서요.”
크리스티나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원래 그런 사람인가 싶기도 했죠.”
“…….”
“지금 저 담당자도 뭐라고 하는진 모르겠지만 정말 시끄럽네요. 이래서 프랑스는 별로 마음에 안 든다니까……. 앗, 미안해요.”
결국 속마음까지 나온다. 그럴 만도 했다.
슬슬 상황이 정리되었다.
연주회가 시작되기 전 생긴 트러블은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고, 무대에는 문제가 있는 피아노가 올라왔다.
그 상태로 1부는 끝난 상황. 오해를 사기 쉬운 성격인 것 같은 루이 디아라는 모두에게서 신뢰를 잃었고 담당자는 자신이 책임을 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러시아에서 온 오케스트라는 거의 질려 있었다.
“…….”
큰 연주회를 준비하면 종종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이런 문제는 사람을 정말 피곤하게 한다. 내 일이 아닌데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게 내 일이었다면 정말 울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