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309화 (309/1,277)

##  309화

에르네스트가 대답했다.

“진학해야지.”

마치 당연하다는 투였다.

그 말을 듣자마자 말문이 막혔다. 여긴 러시아 최고의 음악원인데 대체 안 갈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지러웠던 정신이 싸늘하게 식는다.

애초에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없었던 나는 입을 앙다물었다. 그를 붙잡는 것 같은 말을 할 순 없었다. 모스크바 음악원은 분명 에르네스트가 연주자로서 성장하기에 최고의 환경이 되어 줄 것이다.

내가 할 말은 오로지 올바른 결정에 대한 축하뿐이다.

하지만 기분이 왜 이런지 모르겠다. 지금 축하의 말을 하려면 억지로 지어내야 할 것이다.

난 왜 진지하게 축하도 못 해 주는 걸까.

잔뜩 뒤틀린 채 차갑게 식어 버린 머리로 일단 뭐라도 말을 하려고 하는데,

에르네스트가 이어 말했다.

“졸업한 후에는.”

“……?”

무슨 말이에요?

이해를 못하고 벙 쪄서 바라보고 있자 에르네스트가 태연하게 물었다.

“그래서 넌? 타티아나.”

“아니……. 무슨 말씀이신지 확실히 해 주세요. 졸업한 후라면 그게…….”

“11학년 다 마치고 졸업하면 진학해야지.”

“……아.”

당연히 음악원으로 진학은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는 조기입학이 아니라 중앙음악학교를 제대로 졸업한 후였다.

에르네스트의 학업 계획은 나와 같았다.

“……아.”

딱딱하게 굳어 있던 머리가 따뜻한 물에 들어간 얼음처럼 녹아내리고,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친구가 음악원에 조기 입학 한다는데 진심으로 축하해 주지 못하고, 그것이 오해였다는 것을 알자마자 마음이 편안해지다니. 이런 내가 과연 그의 친구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이기심이면서 질투가 아니고, 꼴사납지만 진실한 이 마음이 지금 내가 에르네스트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이었다.

내게 주어진 것도 아니고, 내가 얻어 낸 것도 아니고,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소중히 여기고 싶은 마음은 분명하게 있었다.

아무튼, 이제 와서 에르네스트가 말을 바꾸진 않겠지만 그래도 다시 물어보았다.

“그……. 저, 정말요? 그런데 왜…….”

“네 차례잖아?”

괜히 물어본 것 같다.

바보 같은 소리는 이쯤 하고 싶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확실하게 말했다.

“저도…… 11학년을 마칠 때까진 중앙음악학교에 있고 싶어요.”

“마음이 바뀌진 않았네?”

“……예.”

에르네스트는 내가 한 번 거절했었다는 것을 안다. 또 내가 허투로 결정하고 대답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그 역시 확인하고 싶은지, 다시 묻는다.

“음악원으로 올라가고 싶진 않아?”

“그야 그렇지만……. 전 1년밖에 못 배웠고…….”

“1년을 배웠건 한 달을 배웠건 그건 아무 상관없는 문제인데. 넌 실력으로 눈에 띈 거니까.”

“…….”

맞는 말이긴 했다. 중앙음악학교에 얼마를 있었건 아무 상관 없다고 말하는 건 에르네스트의 입장에선 당연한 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내게 있어선 정말 큰 문제였다.

살짝 반격하고 싶어져서 뾰로통하게 물어보았다.

“에르네스트는요? 음악원에 진학하고 싶지 않으세요?”

“하고 싶지.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태평하게 대답하는 그가 얄미워서 괜히 꼬투리를 잡았다.

“거짓말처럼 들려요. 당장 진학하실 생각이 없으시다면서 오늘 왜 여기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님과 같이 계셨던 건데요?”

“어? 그냥 레슨 좀 받았어.”

“그냥 레슨요? 콘탁이잖아요. 그러면 곧바로 진학을 하시겠단 의미 아닌가요?”

“어떻게 이야기가 그렇게 돼?”

“입학 제의를 받고 레슨을 받으셨다면 당연히…….”

“하나도 안 당연한데.”

에르네스트는 전혀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마구 몰아붙이던 내가 지칠 정도였다.

그게 말이 되냐고 찔러 봐야 소용없을 것 같다. 잠깐 할 말을 고르고 있자, 에르네스트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내가 처음 입학 제의를 받은 게 몇 살인 줄 알아?”

“?”

“열 살 때야.”

“예?”

얼빠진 소리가 절로 나왔다.

에르네스트는 별것 아니라는 것처럼 이어 말한다.

“그때부터 꾸준하게 싫다고 했는데 계속 부르시잖아.”

“……??”

“지금은 아니지만 그래도 공부하고 싶은 음악원이긴 하니까 괜히 무시했다가 교수님에게 밉보여서 좋을 것도 없고. 가끔 주말에 와서 레슨 받고 밥 먹는 게 다야.”

“잠깐만요. 세상에, 5년 동안이나요?”

“레슨 해 주겠다고 날 부른 건 3년쯤 되었던가.”

“…….”

모스크바 음악원은 부속 음악학교인 중앙음악학교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자체적으로 영재클래스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때문에 정말 어린 나이부터 조기 입학으로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하는 천재들도 있었다.

열 살에 천재성을 증명하고 제의를 받았다면,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열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 5년 내내 거절하고, 심지어 그 와중에 뻔뻔하게 교수님에게 레슨을 받아 왔다는 건 더더욱 대단했다.

“…….”

에르네스트…… 제게 이런 말 할 자격이 없다는 건 알지만.

어지간하면 가지 그랬어요.

“대체…… 왜 안 가셨나요?”

“……어차피 올 사람이라는 것처럼 구는 게 싫어서.”

“이유를 들을 순 없을까요?”

진짜 이유처럼 들리진 않아서 한 번 더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이번에도 말해 주지 않는다면 더 묻지 않을 생각이었다. 내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지금 중앙음악학교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에르네스트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에르네스트는 가만히 날 보더니 대답해 주었다.

“구세프 선생님 때문이지.”

“……구세프 선생님이요?”

생각도 못 했던 이유가 나왔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목소리가 떨린다.

“서, 설마 선생님께서 에르네스트를 진학하지 못하게 억지로 붙잡고 계셨던 거예요? 어떻게 그럴 수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도대체.”

“하지만 구세프 선생님 때문이라고 하셨잖아요.”

“타티아나…….”

에르네스트는 한숨을 푹 쉬더니 다시 자세히 설명했다.

“내 말은, 구세프 선생님의 피아니즘을 배우기 위해선 몇 년으론 턱없이 부족했단 뜻이야. 그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배우기 위해서 남아 있었을 뿐이라고.”

“아.”

“음악원의 환경도 좋고 다 좋지만 결국 피아노는 사람에게서 배워야 하는 거니까.”

“…….”

음악을 배우기 위해 좋은 학교를 찾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이지만, 사실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좋은 학교를 찾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그건 바로 좋은 교사들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음악 같은 경우엔 더더욱 교사들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분야였고, 때문에 사실 음악원을 고를 땐 이름값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고 고를 것이 아니라 어떤 교수가 가르치고 있는지를 보고 콘탁을 받는 것이 옳았다.

에르네스트는 그 근본적인 이유를 정확하게 짚고 있었다. 그가 피식 웃으며 이어 말했다.

“선생님은 이제 가르칠 것도 없다며 툴툴거리시긴 하는데, 그 괴물 같은 분이 남은 게 없을 리가 있나. 진짜 감춰 놓은 밑천까지 완전히 배워 가야지. 음악원은 그다음이야.”

자신만만하게 그렇게 말하며 웃는 에르네스트는 정말 눈부셔 보였다.

단순히 어리광을 부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나와 달리, 그는 철저하게 자신의 선택으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배우고자 다른 제의나 좋은 조건 등을 물리치고 탄탄하게 발을 내딛고 있었다. 겸허함과 어우러진 자신감이 당당했다.

적어도 학교에 남아 있고 싶다고 말하려면 저 정도는 되었어야 했다.

난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스스로가 정말 부끄러웠다.

에르네스트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한다.

“거기에 요즘은…….”

“……?”

막 무어라 하려던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내 눈치를 살폈다. 왜? 지금처럼 에르네스트는 자신의 의지와 자신감을 당당하게 말하는 편이 가장 멋있었다. 여기서 날 살필 이유는 없을 텐데?

내가 그런 의아함을 표하자 에르네스트가 손가락을 튕기며 장난스레 말했다.

“수석인 네가 있는데 2등인 내가 먼저 음악원으로 가 버릴 순 없잖아?”

정말 뜬금없는 이유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여태껏 수석이었던 건 그였는데 이제 와서 성적 같은 것이 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가고 싶다면 그냥 나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고 언제든 가면 그만인 일이었다.

하지만 난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에르네스트가 웃으며 묻는다.

“안 그래?”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난 그런데. 신경 쓰이잖아.”

“…….”

지금 수석인 내가 음악원으로 조기 입학 하지 않는다고 해서 차석이 가지 못한다는 법은 없었다. 학교 성적과 교수와의 콘탁은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니까.

하지만 적어도 에르네스트가 그것을 신경 쓰고 있다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구세프 선생님이 에르네스트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앞으로도 내가 어디론가 가지 않고 중앙음악학교에서 버티며 수석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적어도 그동안은 에르네스트가 있어 줄 것이라는 믿음.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지만 난 내가 에르네스트를 중앙음악학교에 붙잡아 두고 있는 이유 중 하나라는 것에, 약간의 기쁨을 느낀다.

난 정말, 정말 아주 나쁜 친구일 것이다.

“…….”

이야기들을 이해하고, 마음을 차차 가라앉혀가면서, 새삼 느꼈다.

그저 막연하게 에르네스트가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그 무게가 내 생각보단 훨씬 무거웠다는 것을.

정말 많이 진정되었지만 괜히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놀랐잖아요…….”

“뭐가?”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 그냥…… 오늘은 생각도 못 한 곳에서 만나게 되어서요.”

“그건 그러네. 나도 조금 놀랐거든.”

에르네스트는 정말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니 에르네스트는 몇 년간 그래 왔듯 오늘도 별생각 없이 아르카디 교수님의 레슨을 받으러 온 참이었다고 한다.

제의를 거절하고서 레슨만을 받아 챙기는 것이 과연 도의적으로 옳은지 정말 의문이지만 교수님도 그것이 괘씸했으면 진작 내치셨을 테니 일단 허락을 해 주신 것으로 치고.

어쨌건 에르네스트는 그렇게 레슨을 받던 중 아르카디 교수님이 전화를 받고 같이 가 보자는 말에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따라 나섰다고 한다. 그리고 이 연습실에 도착했을 때, 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후는 같이 있었던 대로다. 아르카디 교수님이 내 연주회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을 도와주셨고, 에르네스트는 옆에 오도카니 앉아만 있다가 지금 이렇게 대화하고. 나 혼자 오해를 조금 하긴 했지만, 잘 풀렸고.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난 에르네스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에르네스트 역시 날 간만에 본 것이 반갑긴 한지, 평소엔 잘 하지 않는 잡담에 어울려 주었다.

두서없이 흘러가던 이야기는 연주회를 거쳐 선생님들에게로 향했고, 구세프 선생님에게 닿았다.

우리에게 있어서 구세프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해도 재미있는 것이었다. 같은 선생님을 사사한 우리는 어떻게 보면 음악가로서 일정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에르네스트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도 살짝 알려 주었다.

“그 이야기는 몰랐지? 구세프 선생님이 여기 모스크바 음악원으로부터 교수직 제의를 수도 없이 받았다는 거.”

“처음 들었어요…….”

“솔직히 나나 네가 아니라 구세프 선생님부터 먼저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 가셔야 한다고 생각해. 왜 학교를 고집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어. 급료가 짜다고 매일 짜증이시면서.”

“……지금 중앙음악학교에 에르네스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뭐? 기절하겠네, 진짜.”

에르네스트가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인상을 썼다. 난 농담이긴 했지만 완전히 턱도 없는 소리는 아니라 생각하기에 그저 웃기만 했다.

그렇게 실력 있고 자기주장 강하신 분이 아무 이유 없이 중앙음악학교에 남아 계시진 않을 것이다. 무언가 이유가 있겠지.

그 제자인 에르네스트가 이렇게 확고하게 자신의 주장으로 살아나가는 것처럼.

나중에 살짝 여쭈어 볼까 생각했는데 에르네스트는 혹여나 그럴 생각 말라며 날 말렸다. 왜 중앙음악학교에 계시냐는 질문은 아무리 조심스럽게 여쭈어도 실례되는 질문임이 분명했고, 구세프 선생님을 어설프게 자극하는 것은 잠자는 불곰을 건드리는 짓이나 다름없다. 난 에르네스트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잠시,

에르네스트가 창밖을 보더니 멀거니 말했다.

“……방학도 한 달 조금 더 남았네.”

“그렇네요…….”

“남은 방학도 잘 지내. 아무렴 잘 지내겠지만.”

잠깐만요? 이렇게 갑자기?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그는 손을 흔들더니 씩 웃으며 등을 돌렸다.

“그럼 다음 학기에 봐.”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만났는데 어떻게 그냥 따로 헤어져? 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가면 어디 덧나나? 집에 갈 땐 차로 태워다줄 수도 있는데!

무엇보다, 지금은 그냥 보내기 싫었다.

난 그가 막 발걸음을 내딛기 직전, 급박하게 불렀다.

“잠시만요! 에르네스트.”

“?”

내 목소리에 그가 고개를 돌렸다. 왜 불렀냐는 눈빛이다.

순간 할 말이 없어져서 바보 같은 소리를 했다.

“어디 가세요?”

내가 말하고도 어이가 없다.

에르네스트도 어이가 없는지 짤막하게 말했다.

“집에.”

“집에 가시지 말고 같이 놀지 않으실래요.”

“……놀자고?”

조금 용기를 내어 한 내 말에 에르네스트는 분명히 관심을 보였다. 난 조금 더 그를 설득했다.

“괜찮잖아요? 방학인데다가 주말이고요. 집에 가서 하실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니, 없어.”

“그렇다면…….”

“조금 난데없긴 한데…….”

에르네스트는 중얼거렸지만 분명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오늘은 정말 좋은 기회였다.

난 리처드나 한승우, 발렌티나, 아나스타샤와는 따로 밖에서 놀러 다닌 적도 굉장히 많았지만 에르네스트와는 어울린 적이 의외로 정말 드물었기 때문이다.

맨날 학교 연습실에서 연습하거나 대결 스코어를 갱신하기나 했지 같이 공부를 하거나 논 적은 별로 없었다.

정말 단둘이 외출한 적이 한 번도 없었나 싶어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루슬란 오빠와 내가 싸웠던 날, 에르네스트와 함께 외출했던 적이 있긴 했었다.

그리고 그때를 떠올렸을 때, 에르네스트가 연습실 구석을 돌아보며 말했다.

“루슬란 유리예비치.”

“…….”

그 부름에 루슬란 오빠는 의자에서 스르르 일어섰다. 난 머리가 쭈뼛 서는 기분을 느꼈다.

아무리 에르네스트에게 신경이 팔려 있었어도 그렇지, 루슬란 오빠가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오늘 내 회의에 같이 와 주고 지금 에르네스트와 사담을 나눌 때까지, 루슬란 오빠는 정말 한 마디도 않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 준 것이다.

그 오빠가 침묵을 풀고 묵직한 말을 던져 왔다.

“이제 내 존재를 알아차려 준 건가? 정말 영광인데.”

“……계속 알고 있었습니다. 본의는 아니었고요.”

“그야 그렇겠지.”

에르네스트는 루슬란 오빠가 계속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당장 날 상대하느라 상황이 여의치 않았던 것 같은데, 루슬란 오빠는 굉장히 삐딱해져 있었다.

오빠가 슥 다가오며 말했다.

“그런데 나는 왜 불렀지?”

“그…… 타티아나가…….”

에르네스트는 내 이름을 부르다 말고,

갑자기 말을 바꾸었다.

“아뇨, 제가 저 애랑 오늘 놀고 싶은데요. 괜찮겠습니까?”

“허.”

루슬란 오빠가 웃었다.

그 웃음은 아버지의 그것과 굉장히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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