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0화
루슬란 오빠는 집에서 보여 주는 평상시의 모습과 다른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상당히 다른 편이다.
집에서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과제를 하다가 늘어져 있거나 게임을 하는, 살짝 못미더운 평범한 스무 살인 것에 비해, 옷을 갖춰 입고 밖에 나가서 있을 땐 대학생이 아니라 젊은 사업가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고 교육도 받은 사업가로서의 태도는 꽁꽁 언 빙하의 벽처럼 느껴져서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렇게 스스로를 무장한 오빠는 정말이지 무섭다.
문제는 그 무서움이 에르네스트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서늘한 목소리가 칼날처럼 들린다.
“뭘 하고 놀 건지 조금 들어 보고 싶은데.”
“…….”
그건 마치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고 프레젠테이션 해 보라는 것처럼 들렸다. 어떻게 놀 건지 이야기해 보란 말을 어떻게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할 수 있는지 황당할 지경이다.
에르네스트는 루슬란 오빠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긴 하지만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계획이라는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같이 놀자고 한 건 그가 아니라 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슬란 오빠는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싸늘하게 에르네스트를 압박했다.
“계획도 없나?”
“즉흥적인 것도 상관없습니까?”
“즉흥적인 것? 트베르스코이 산책로에서 아이스크림이나 먹고 싶다는 둥 그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니지?”
“…….”
말문이 턱 막힐 정도로 너무했다.
루슬란 오빠가 이렇게까지 삐딱하게 에르네스트를 대할 줄 알았더라면 붙잡지 말고 보낼 걸 그랬다. 하지만 붙잡고 나서야 루슬란 오빠가 있었다는 걸 알아차린 나도 정말 제정신이 아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에르네스트가 쓸데없는 오해나 기 싸움은 싫다는 듯 말했다.
“루슬란 유리예비치.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전 타티아나와 학교 친구일 뿐입니다.”
“그렇겠지.”
루슬란 오빠는 그렇게 말하면서 날 바라보았다. 난 순간 숨을 멈췄다.
에르네스트와는 저번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부터 시작해서 몇 번이고 만난 적도 있었고, 더군다나 가문끼리 사업으로 관계성이 있기도 하기에, 루슬란 오빠가 적어도 에르네스트에 대해선 신뢰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 착각이었다. 루슬란 오빠는 차가운 얼굴과 어투였지만, 눈빛만큼은 걱정과 안쓰러움이 혼재된 감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지금은 단순히 내가 같은 학교 남자애랑 놀러 나가고 싶어 한다고 해서 걱정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정말 오빠로서도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남자인 오빠가 보기에도 에르네스트가 나쁜 애가 아니라는 건 잘 알 텐데. 그런 건 오빠에게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닌 듯하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 남매를 보며, 에르네스트가 한 걸음 물러섰다.
“남매 데이트 중이셨다면 방해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나도 동생이 학교 친구와 외출하겠다는데 방해할 생각은 전혀 없는데.”
말은 없다고 하지만 당장에라도 에르네스트를 윽박지를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목소리 뒤편에서 으슬으슬한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나서야 할 것 같아서 입을 열려고 하는데, 루슬란 오빠가 날 불렀다.
“타티아나. 어떻게 할래.”
“어, 어떻게요?”
“그래.”
갑자기 무슨 말인지 몰라서 올려다보자 두 명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난 상황을 이해했다.
에르네스트와 루슬란 오빠. 두 사람을 놓고 어떻게 할지 내게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
어려웠다.
루슬란 오빠라면 오늘 내 회의에 일부러 따라와 주기도 할 정도로 내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지금 에르네스트에게 날을 세우는 것까지 그 모든 것이 내 걱정이라면,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기껍기도 했다.
그리고 에르네스트는 미리 가겠다고 하는 것을 내가 억지로 붙잡아 놓은 상태였다. 루슬란 오빠에게 그가 곤혹을 치르는 것은 불합리했다. 내가 붙잡았으니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인 것이다.
고민이 부딪치면서 결국 내 손에 달린 문제라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어쩌지, 솔직한 마음으로는 에르네스트와 더 길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루슬란 오빠를 홀로 집에 보내자니 그건 너무 미안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한참이나 고민하던 나는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내었고, 대답했다.
“모두 같이 가면 안 될까요?”
“……뭐?”
에르네스트도 루슬란 오빠도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황당하다는 시선을 보내는 두 사람을 번갈아 올려다보았다.
우유부단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지금 내가 무언가 결정을 해야 할 시점은 아니지 않은가? 루슬란 오빠는 친오빠고 에르네스트는 본인 입으로 날 학교 친구라고 했는데. 지금은 어떻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명이서 다니면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루슬란 오빠가 조금 소외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할 생각이다. 차라리 남자 둘이서 재미있게 놀고 내가 소외감을 느끼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런 각오까지 하고 있는데, 루슬란 오빠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됐어.”
어깨가 조금 늘어지면서 딱딱했던 분위기가 사라져 갔다. 루슬란 오빠는 여전히 삐딱하게 서 있긴 했지만 아까처럼 그런 태도는 없었다.
불안하다는 눈빛만 남아 있다.
루슬란 오빠가 날 보는 시선을 떠올렸다. 오빠가 보는 나는 아직 한 살이다. 난 그런 자각이 옅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살고 있지만 루슬란 오빠가 보기엔 그렇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실제 내 나이는 열다섯 살. 때문에 루슬란 오빠도 날 어떻게 해야 할지 어려워하는 것 같다. 지금 내 팔을 잡고 집으로 끌고 가면 내게 미움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일 지경이다. 아나스타샤도 종종 이런 태도를 보이곤 한다.
그 어려워하는 마음이 고맙고도 미안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난 그저 걱정 말라는 뜻으로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루슬란 오빠나 아나스타샤를 미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루슬란 오빠는 팔짱을 끼더니 말했다.
“저녁 전까진 반드시 와.”
“아……. 알겠어요. 약속드릴게요.”
“늦으면 잡으러 간다.”
“…….”
절대 농담이 아니었다. 난 얼른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마지막까지 날 바라보던 루슬란 오빠는 고개를 휙 돌리더니 에르네스트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이리 잠깐 와 봐.”
“……?”
에르네스트는 가기 싫어하는 것 같았지만 루슬란 오빠의 부름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뭔진 몰라도 별일 있겠나 싶어서 가만 보는데, 루슬란 오빠는 근처까지 온 에르네스트에게 팔을 휙 뻗었다. 깜짝 놀랄 틈도 없이 루슬란 오빠가 에르네스트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내가 보지 못하도록 등을 돌렸다. 무어라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
멀리 있는 데다가 등을 돌리고 머리를 맞댄 채 속삭이는 터라 무슨 말인지 전혀 들리진 않았지만 분위기가 살벌했다. 흡사 돈이라도 뜯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야기가 그리 길진 않았다. 잠시 후 루슬란 오빠는 에르네스트의 어깨가 아니라 목을 감는 것처럼 세게 한 번 당겼다가, 툭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조금 후련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남자들의 이야기는 끝났어.”
“…….”
의외로 루슬란 오빠도 상당히 무서운 사람일지 모르겠다.
난 걱정이 되어서 에르네스트를 돌아보았다. 그는 살짝 비틀거리다가 목이 뻐근한지 손으로 잡고 있었지만 그리 불만 어린 표정을 짓고 있거나 하진 않았다.
아무튼 할 말은 끝났으니 먼저 가 보겠다며 루슬란 오빠가 연습실에서 나가려고 했다.
난 마지막으로 루슬란 오빠에게 말했다.
“오빠.”
“?”
“오늘 고마웠어요. 정말로요.”
루슬란 오빠는 날 빤히 내려다보더니 손을 뻗어 왔다.
나한테도 어깨동무를 걸거나 심하면 헤드록을 할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 얌전히 당해 주어야겠다고 각오하고 있는데, 오빠는 그저 내 옆머리를 살짝 쓸어내렸을 뿐이었다.
“당연한 거니까 매번 고맙다고 할 필요 없어.”
“……세상에 당연한 건 없어요.”
“…….”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그걸 알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지만, 난 이제 안다.
루슬란 오빠는 약간 놀란 눈빛을 하다가, 곧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말이 맞아. 그러니 고맙다고 할 필요 없어.”
“……예?”
“놀다 와. 늦지 말고.”
루슬란 오빠는 손을 두어 번 흔들고는, 연습실에서 나갔다.
“…….”
난 에르네스트와 이제 단둘이 남게 되었다.
그를 돌아보니 짓궂은 물음이 날아들었다.
“뭘 하고 놀 건지 조금 들어 보고 싶은데.”
“복수하겠단 건가요?”
***
에르네스트는 날 약간 곤란하게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어림없는 소리였다.
난 그를 데리고 근처에 있는 트베르스코이 산책로로 가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벤치에 앉았다.
“…….”
“날씨 좋네요.”
카페에 가는 것도 좋겠지만 모스크바에서 이렇게 햇빛을 쬘 수 있는 여름엔 야외에 있는 편이 기분 좋았다.
작년엔 여름에도 집 안에만 있었기 때문에 사실 난 여름의 모스크바의 풍경을 이제 와서야 만끽하고 있는 중이었다.
“…….”
모스크바엔 여름도 없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여름이 짧을 뿐이지 높을 땐 30도까지 기온이 올라간다.
얇은 복장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많고, 심지어 모스크바 강 주변의 공원에 가면 아예 비키니를 입고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맨몸에 짧은 반바지만 입고 자전거를 타는 남자들도 부지기수다.
난 처음엔 대체 해변가도 아닌 도로 옆 풀밭에서 그렇게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기겁했지만, 이젠 조금 적응되어서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어쨌든, 지금은 벤치에서 에르네스트와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자니 기분이 너무 상쾌했다. 마음에 안정감이 든다. 걱정할 것도 없고 아이스크림은 달고 행복하다.
옆을 보니 에르네스트는 무슨 생각인지 멍하니 정면을 보며 아이스크림을 할짝이고 있었다. 광합성하는 건가요?
“에르네스트.”
“어.”
“무슨 생각 하시나요?”
“네 생각.”
“……?? 예?”
약간 당황해서 되묻자 그는 슥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았다.
“네가 저번에 파리에서 메시지 보냈었잖아. 모스크바로 돌아오면 찾겠다고. 무슨 뜻이었어?”
“아, 그거요…….”
일주일쯤 전, 파리에서 마지막 날을 보내다가 잠들어 버린 사이 에르네스트가 아나스타샤와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는 에르네스트에게 메시지로 모스크바에 가면 만나자고 했었다.
조금 뜬금없는 메시지였는데도 에르네스트는 길게 무슨 소리냐고 하지 않고 알겠다고만 답변해 왔다.
원래는 그에게 줄 기념품 선물도 준비해서 만나서 이야기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정말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또 몰랐다.
당장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집에 다녀올 순 없었다. 난 선물은 다음에 주기로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제가 파리에서 사고를 쳤었잖아요.”
“사고인 줄은 아는구나.”
“결과는 좋았지만 아무튼요……. 그 일에 대해 전화를 주셨던 거…….”
하고픈 말은 담백했다.
“고마워서요.”
“고마워?”
“예.”
“뭐가 고마워? 그냥 왜 그랬던 건지 물어보려던 거였는데. 아나스타샤한테도 그냥 이유만 물어봤었고.”
“제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아주신 거잖아요?”
“…….”
에르네스트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넘기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난 그날 밤에 에르네스트가 내 소식을 듣자마자 전화를 해 준 마음을 어렴풋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정말 어지간해선 하기 힘든 일이었다.
내가 빤히 바라보자 에르네스트는 아이스크림을 내려놓더니 말했다.
“뭐 그렇지. 네가 아무 생각 없이 그럴 애는 아니니까.”
“사실 전 아무 생각 없이 그러는 애가 맞아요.”
“솔직히 잘 모르겠네, 이젠.”
“부정해 주셔야 하는데요?”
“하하.”
내가 얼른 부정해 달라고 시위하자 그는 알았다면서 손을 내젓긴 했지만, 사실 에르네스트는 내 편입 실기시험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대책 없어질 수 있는지 잘 아는 친구이기도 했다. 내가 피아노 앞에선 이것저것 따지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에르네스트는 약간 진지하게 물어 온다.
“뭐……. 다시 누구 앞에서 할 생각은 없지?”
“……그렇죠.”
“정말 귀찮아질 거야. 다신 하지 마. 못 한다고 해.”
아나스타샤도 했었던 걱정이다. 말하지 않아도 그럴 셈이었기에 난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에르네스트는 피식 웃더니 아이스크림을 크게 베어 물다가 차가운지 인상을 썼다. 내가 해맑게 웃자 그가 투덜거리더니 말했다.
“어쨌든, 기술 자체는 대단하네.”
“연주자의 기술이라기엔 조금 그렇죠…….”
“물론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은 결코 아니겠지만, 그게 기술이라는 건 분명해.”
순간 살인 기술도 기술인가? 라는 물음이 뇌리에 떠올랐지만 바로 지워 버렸다. 그런 건 아니었다. 에르네스트도 그런 의미로 물어본 것이 아니다. 하나부터 끝까지 몸을 써야 하는 연주자의 입장에서 순수하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가 말했다.
“우리 클래식 연주자들에겐 금기나 다름없는 일이겠지만, 아마 팝 피아니스트들은 혈안이 되어서 가르쳐 달라고 할지도 모르겠네.”
“테크닉을 익히면서 자연스레 느끼게 되는 것이지 특별히 배울 수 있는 건 아닌데요…….”
“다른 사람들이 그런 걸 신경 쓸까?”
“그도 그렇지요.”
“아까도 말했지만 다신 누구 앞에서 하지 마.”
“안 할 거예요.”
“그래.”
에르네스트는 다시 내게 확인받고는 씩 웃었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그의 옆모습을 보면서, 난 에르네스트는 내가 어디까지 피아노를 다룰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챔버 오케스트라의 단원이었던 로만이 직접 보고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까지 평했던 일을, 에르네스트는 내가 한다면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에르네스트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저번 상트페테르부르크 콩쿠르에서 내가 쇼팽의 영웅 폴로네이즈로 조성의 함정을 판 것을 듣고는, 잠깐 요령을 가르쳐 주는 것만으로도 따라해 내기도 했다. 이번에 내가 부린 사소한 기교도 조금 설명해 주기만 하면 바로 따라할 것이다.
물론 가르쳐 줄 생각은 전혀 없고, 가르쳐 준다고 해서 그가 배울 것 같지도 않지만.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에르네스트가 웃으며 물었다.
“파리에서 있었던 일은 그게 다였어?”
재미없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하자는 것 같았다. 우리들은 만나면 늘 피아노 이야기만 하곤 했지만 이렇게 야외에서 기분 좋은 햇빛과 바람을 맞으면서까지 피아노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곤 싶지 않았다.
특히 이번에 내겐 여행지에서 겪은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중 난 파리에서 있었던 일 중 인상 깊었던 일을 떠올렸다.
“아, 맞아요. 도중에 사기꾼 일당도 만나고 소매치기 일당도 만났어요.”
“뭐? 괜찮았어?”
“예. 괜찮았어요.”
에르네스트는 깜짝 놀라서 날 돌아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왜 그렇게 사건 사고가 많아? 불안하게.”
어쨌든 별일 없었고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았기에 괜찮지 않나 싶었는데 그에겐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조금 미안해져서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다른 나라들엔 연주회 등으로 수없이 다녀 본 그도 희한하게 파리엔 한 번도 안 가 봤다고 해서 할 이야기들은 정말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