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313화 (313/1,277)

##  313화

우리는 트베르스카야 대로 끝에 다다라 오늘은 이만 헤어지기로 했다. 미리 약속한 적도 없었는데, 그도 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아쉬웠지만 그 아쉬움 또한 더 큰 즐거움으로 돌아오리란 것을, 나는 믿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가장 큰 수확도 있었기 때문에 편안하게 그를 보낼 수 있었다.

에르네스트는 중앙음악학교에 남아 나와 함께 9학년을 지낼 것이다. 오늘 분명히 그것을 다시 확인했고, 그렇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빅토르에게 전화해서 차를 불렀고, 에르네스트를 집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난 그냥 지하철 타고 가도 되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괜히 돌아가는 거잖아.”

“괜히라뇨.”

“…….”

더 이상 말도 못 꺼내도록 거의 윽박지르자 그는 입을 다물고 얌전히 차에 올랐다. 난 내가 원하는 대로 그를 집에 데려다줄 수 있었다.

집 앞에서 그는 작게 손을 흔들었다.

“갈게. 오늘 즐거웠어.”

“저도요. 에르네스트.”

“다음에 또 보자. 타티아나.”

그는 씩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짐을 들고 내렸다. 중간에 쇼핑했던 그의 옷과 음반들이다. 난 저 음반들 사이에 내 것도 있음을 다시 한 번 떠올리고는 약간 들뜬 마음으로 웃었다.

음반에 내 이름과 사진이 붙어 있었으면 이렇게 두근거리는 마음보단 긴장되는 마음이 더 컸을 것 같은데, 아무것도 없이 내 음악만 넣길 정말 잘한 것 같다.

“……후후.”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에르네스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난 그도 빨리 음반을 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지금도 난 그의 피아노 소리가 생각날 때면 스마트폰으로 저음질의 녹음 파일을 재생해서 듣곤 한다. 그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그래도 좋은 음질의 음반을 가지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소망이었다. 뭐라도 좋으니까 음반을 내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에르네스트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응접실에서 루슬란 오빠가 기다리고 있었다.

“왔어?”

시계를 한 번 보고 날 보더니, 무심한 목소리로 왔냐며 손을 흔들긴 하지만, 내가 7시에서 1분이라도 늦으면 바로 잡으러 뛰어나갈 사람처럼 옷을 갖춰 입고 있었다.

난 괜히 웃으면서 오빠 옆에 앉았다.

“기다리셨나요?”

“아니? 뭘?”

시큰둥하게 반응하긴 하지만 루슬란 오빠는 내가 제시간에 와서 안심하는 것 같았다.

난 오빠와 소파에 앉아선 오늘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이야기했다. 사실 별일이랄 것도 없었고 트베르스코이 산책로를 산책하고, 그대로 올라와 트베르스카야 대로를 걸었을 뿐이었다.

루슬란 오빠는 우리가 안티 카페에서 올빼미들과 놀았다는 데엔 호기심을 보였다. 오빠도 은근히 관심이 가는 듯했다. 하지만 오빠가 먼저 관심 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여기선 내가 먼저 권유해 줄 때였다.

“으음……. 오빠도 다음에 저랑 같이 가 보실래요?”

“언제?”

오빠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반응했다. 난 헛웃음을 터뜨렸다.

학기 중엔 서로 바빠서 어렵지만 그래도 방학 중엔 루슬란 오빠와도 자주 외출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

8월로 달이 바뀌고도 며칠이나 지났다.

내 하루하루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새벽이면 일어나 연습실에 와서 연습을 하고, 해가 뜨면 벨카와 산책을 한 뒤 드미트리와 함께 아침을 만든다. 식사 후엔 외출을 할 일이 있으면 외출하거나 아니면 계속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뿐이었다.

“…….”

오늘도 난 연습실 안 구석구석까지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을 받으면서 의자에 앉아 책을 보는 중이었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함께했다.

이렇게 쉴 때 이 방은 연습실이 아니라 최고의 휴식 공간이 된다. 시원하고, 책도 많고, 음악도 크게 틀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한참을 이렇게 쉬다 보면 조금 뒹굴고 싶어지기도 한다.

난 그런 마음이 살짝 들자마자 바로 책을 덮고 옆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

적당히 쉬었으니 슬슬 연습을 재개할 때인 것 같다.

막 다시 연습을 시작하기 전, 의자에 앉아 스트레칭을 하면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아나스타샤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기에 답장하고, 다른 건 없나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흐응.”

발가락 끝을 까딱거리다가 고개를 기울였다.

아무래도 마카로프 프로듀서가 정말 나한텐 음반을 주지 않을 모양이다.

“…….”

난 아직도 내 음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미 내 음반이 음반 매장 등에 발매되어 있다는 것은 며칠 전 일요일에 에르네스트와 외출했을 때 확인했다. 그리고 한 장 얻었던 음반은 바로 에르네스트에게 줬다.

그날 바로 마카로프 프로듀서에게 전화해서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진 않았다. 언젠가 때가 되면 마카로프 프로듀서가 말해 줄 것이라 생각했고, 만약 그에게 어떠한 계획이 있었다면 내가 조급하게 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음반매장에서 내 음반을 봤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 것은 아무리 평범하게 물어도 따지는 것처럼 들릴 수 있었다. 그렇게 하긴 싫었다. 난 마카로프 프로듀서를 믿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믿고 기다리면서 음반 매장에 따로 가서 내 음반을 가져오는 것도 바보 같은 일처럼 느껴졌다. 때문에 그냥 난 며칠 동안 음반에 대한 것은 잊고 얌전히 지내기로 했다.

그래서 우습지만 아직까지도 난 내 음반도 한 장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

난 스마트폰 화면에 올라온 주소록을 내려다보면서 당장에라도 전화를 걸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음반 진행 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냐고 살짝 물어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 마음을 저 멀리에서 읽기라도 한 듯이 갑자기 스마트폰이 울었다.

발신자는 마카로프 프로듀서.

소름이 돋다 못해 무서울 정도다. 난 괜히 좌우를 돌아보며 주위를 살폈다. 당연하지만 나 외에 이 연습실엔 아무도 없었다.

벨은 계속 울린다. 난 마지막으로 생각 정리를 하고,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마카로프 프로듀서.”

- 하하, 타티아나.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에요.”

마카로프 프로듀서의 목소리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았다. 2주도 넘었으니까 간만인 게 맞다.

그가 안부를 물어왔다.

- 혹시 파리입니까?

“아뇨, 모스크바로 돌아왔어요.”

- 그렇습니까? 언제 돌아온 겁니까?

“저번 주 금요일이에요.”

- 2주 정도라……. 조금 더 오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군요?

“아, 연주회 일로 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요.”

- 연주회! 협연입니까?

“협연이에요.”

- 역시 그렇군요.

바로 협연이지 않느냐고 묻는 것만 봐도 마카로프 프로듀서는 역시 상당히 노련한 사람이었다.

마카로프 프로듀서가 다시 말했다.

- 여하튼, 통화됩니까?

“아하하하, 지금 하고 계시잖아요?”

- 조금 길어질지도 몰라서.

“괜찮아요. 지금 혼자서 쉬고 있었어요.”

- 그렇군요.

난 마카로프 프로듀서가 무슨 말을 할지 조금 예상해 보았다. 사실 음반 건으로 얽힌 나와 마카로프 프로듀서가 전화로 할 이야기라곤 하나뿐이었다.

- 타티아나. 음반이 나왔습니다.

예상은 적중했다.

난 이미 일요일에 음반 매장에 음반이 있는 것을 보았지만 모른 척하고 말했다.

“빨리 나왔네요?”

- 최선을 다했죠. 음, 말씀드리는 게 늦었을 뿐이지 사실 초도 물량을 완성해 낸 건 한참 전이고, 저번 주엔 벌써 음반 매장에 발매가 들어갔었습니다.

내가 굳이 묻지 않아도 마카로프 프로듀서는 음반 진행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모두 말해 주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 일단 우리나라와 주변 유럽국 기준으로 많이 배포되었습니다. 자세한 판매처는 제가 만나서 설명해 드리도록 하지요. 그리고 초도 물량 6천 장에 대한 수익금 아니, 곡 대금도 그때 정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조만간 한번 찾아뵙도록 하죠.

“아, 알겠어요.”

난 사실 가격 없이 나간 음반에 대해 대금을 받을 생각은 별로 없었다. 되레 돈을 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마카로프 프로듀서가 내게 초도 물량에 대한 대금을 정산해 주는 일은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는 사항이었다.

그리고 돈 이야기 말고도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이 있는지 마카로프 프로듀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당장은 말로 설명해서 알기 어렵고, 직접 보고 서류로 보여 주겠단 것들이다.

- 그 외에도 이것저것 할 말이 많군요. 음.

마카로프 프로듀서는 우리 집에 찾아오면서 가져와야 할 서류들을 생각하는지 잠시 중얼거렸다.

난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가, 불쑥 물었다.

“저도 여쭐 것이 있어요. 프로듀서.”

- 뭡니까?

음반이 나온 지 한참 되었는데 늦게 연락했다고 마카로프 프로듀서가 먼저 말해 주었으니 이젠 물어봐도 될 것 같았다.

“왜 이제 전화를 주신 건가요?”

- 무슨 말입니까?

“아……. 그게, 음반이 발매된 직후에 바로 전화를 주셨어도 되었잖아요? 그냥 궁금해서요.”

사실 며칠이 아니라 한 달이 늦어도 난 마카로프 프로듀서가 하는 일을 믿을 생각이었으므로 별 상관 없는 일이다.

단지 정말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었다.

마카로프 프로듀서는 내 질문에 하하 웃었다.

- 제가 정말 너무 제멋대로 진행했군요? 미안합니다. 타티아나.

“아니, 아니에요. 전 곡 외에 다른 모든 것을 맡겼으니까요. 괜찮아요.”

- 흠.

그는 잠시 목을 가다듬더니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 사실 이렇게 하면 안 될 일이었죠. 샘플을 만들어 타티아나를 찾고 퍼미션을 받아 진행을 했어야 하니까요. 파리에 가 계셨으니까 그렇게 할 순 없었고 그럼 발매일을 늦추기라도 했어야 했는데……. 혹시나 제가 타티아나를 무시했다고 생각하진 않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 단지…… 타티아나를 조금 놀라게 하고 싶어서 말이죠.

마카로프 프로듀서와 화상 통화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 허 참, 저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타티아나와 작업을 하다 보면 자꾸 젊었을 때처럼 움직이게 되는군요.

조금 아련하게, 하지만 또렷한 초점을 지닌 목소리가 그렇게 울리다가 내게로 향했다.

- 지금 전화를 드린 이유는 타티아나가 조금 기뻐할 만한 이야기를 전해 드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뻐할 만한 이야기요?”

- 예. 일단 음반을 내고나서 반응을 기다리기까지가 가장 기대되면서도 힘든 법인데, 타티아나의 경우엔 정말 빠르게 반응이 오더군요.

난 그제야 마카로프 프로듀서가 내게 연락한 이유를 깨달았다.

무언가 결실을 얻어 낸 것이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 저희 사무실로 하루에도 몇 통씩 전화가 옵니다. 도대체 이 음반의 연주자가 누구냐고 말이죠. 오늘만 해도 몇 통이나 왔는지 모르겠군요. 덕분에 베로니카와 다른 직원들이 고생 중입니다.

웃으면서 힘들다고 말하니 엄살처럼만 들렸지만, 에우테르페 레코즈의 직원들이 고생 중이라는 건 정말 사실일 것이다.

난 약간 헷갈려서 물었다.

“……잘된 것이겠죠?”

- 물론이죠. 그리고 인터넷의 클래식 음악을 다루는 사이트 등에서도 이 음반의 연주자를 찾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불과 며칠 만에 엄청난 파급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좋은 일이네요.”

음반 매장에 풀린 미지의 음반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건 아주 좋은 시작이었다.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그 어떤 반응도 얻지 못하고 까맣게 잊히는 것뿐이었으므로.

이렇게 며칠 만에 성과가 보인다면 그건 좋은 신호였다.

이 좋은 신호를 들고서, 마카로프 프로듀서는 내게 전화한 것이리라.

“마카로프 프로듀서는 이렇게 결과를 가지고 제게 연락하고 싶으셨던 것이로군요?”

- 결과요? 무슨 말입니까? 결과는커녕 이제 시작일 뿐인데요.

“아하하, 그랬죠.”

- 그리고 지금 전해 드릴 기쁜 소식은 겨우 그 정도가 아닙니다.

기쁜 소식이 또 있을 수가 있나?

나로선 바로 떠올릴 수가 없어서 의아해하고 있는데, 마카로프 프로듀서가 약간은 사악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 독일의 포노 아카데미, 클래식 음악 매거진인 누벨리스트, 클래시카의 편집자들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연주자와 인터뷰가 가능한지, 정 안 되면 이름만이라도 알려 달라고 아우성이더군요.

“예!? 벌써요……?”

- 빨라야 할 땐 그 누구보다 빠른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난 이번에야말로 깜짝 놀랐다.

음반을 평가하고 상을 주기도 하는 음악 매거진의 편집자들은 입맛이 까다롭고 콧대가 높기로 유명했다. 물론 정말 유명한 그라모폰이나 디아파종 같은 곳의 이름은 아직 없었지만, 지금 들리는 매거진들도 상당한 규모와 독자를 가진 곳들이었다.

한 달에 수백 장은 될 음반을 듣고 평가하는 그런 곳에서, 바로 던져 버릴 수도 있는 무명의 음반을 듣고 직접 전화로 물어볼 정도라면,

그 음반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마카로프 프로듀서가 은근하게 물었다.

- 그래서, 인터뷰 생각은 있습니까?

“아뇨.”

-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타티아나.

딱 잘라 말하자 마카로프 프로듀서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과한 유명세나 명성 같은 데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아는 것이다. 맨 처음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오로지 음악만으로 평가받고 싶어 하는 연주자를 찾는 것이 정말 제일 어려운 일이었다고.

어쨌거나 난 그런 사람이었고, 마카로프 프로듀서 역시 그런 나와 비슷한 사람이었다.

- 아직 시작도 아닙니다. 곧 전 세계의 평론가들과 클래식 종사자들이 관심을 보이게 될 겁니다. 그리고 저마다 연주자가 누군지 찾아내려 안간힘을 쓰겠죠. 하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할 테고. 결국 귀에 들리는 것만으로 평론하게 될 겁니다.

그가 다시 묻는다.

- 혹평이 두렵습니까? 타티아나.

“전혀요.”

- 하하하하.

난 이번에도 즉답했고, 마카로프 프로듀서는 괜한 걸 물어보았다는 듯 웃었다.

연주자를 밝히거나, 더 나아가 내가 인터뷰를 할 수는 없지만 조금 기다리면 내가 무언가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저마다 내 음반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게 호평이든 혹평이든,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난 아무래도 조금 이상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묘한 대화였지만 마카로프 프로듀서는 흡족해했다.

- 장담컨대 혹평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대중들의 귀는 정말 까다롭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음반 매장에서 받아 온 음반을 들었을 때, 그 귀를 만족시키고 빠져들게 만들어서 인터넷에 수소문하고 음반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당장 연주자 이름을 내놓으라고 반 협박까지 하게 만든 건 바로 타티아나의 음악이 가진 힘입니다.

“혀, 협박이요?”

- 신경 쓰지 마시죠. 그런다고 해서 제가 눈 하나 꿈쩍할 것 같습니까? 하하.

갑자기 협박이라고 하니까 조금 신경 쓰인다. 대체 무슨 전화를 받았던 걸까. 정말 괜찮은 거냐고 물어보려고 하는데, 마카로프 프로듀서가 말했다.

- 어쨌든…… 타티아나가 아무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음악을 전 세계 평론가들에게 블라인드 테스트받을 수 있도록 철저하게 도와 드릴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 고마워서 어쩌죠. 마카로프 프로듀서.”

- 고맙긴요. 저야말로.

그는 따뜻하게 웃으며 답한다.

- 잊고 있던 것들을 찾을 수 있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타티아나.

“…….”

난 마카로프 프로듀서와 반년간 자주 만나면서 많이 친밀해지기도 했지만, 사실 아직도 그가 어떤 사람인진 잘 모른다.

이번 음반이 정말 잘 되면, 조금 이야기를 들을 순 없는지 물어보고 싶다. 난 앞으로도 이 특이한 음반사 사장과 잘 지내고 싶었으니까.

- 크흠, 흠. 뭐 그렇습니다. 상황은.

“아주 좋네요.”

- 아, 그리고 음반. 타티아나는 지금 자신의 음반도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한 번도 보지 못했겠군요? 놀라게 해 드릴 생각만 하다 보니 아주 기본적인 것도 그냥 지나쳤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바로 가져다 드리도록 하죠.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 하지만…….

“정말 괜찮아요. 왜 그간 연락이 없으셨는지도 이해했고, 이제 상황 설명을 해 주셨으니까. 괜찮아요.”

- 음반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물용도 필요할 테고요. 물론 타티아나가 정말 믿을 수 있는 분들이 아니라면 조금 곤란하겠습니다만…….

“나중에 찾아와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때 뵈어도 괜찮아요.”

지금 바로 가져다 달라고 해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굳이 안 그래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카로프 프로듀서는 몇 번이고 당장 가겠다고 말했지만 난 끝끝내 괜찮다고 만류했다.

- ……여러모로 편의 봐주셔서 감사하군요.

“그렇지도 않아요.”

- 아무튼 알겠습니다. 되도록 빠르게 가 보도록 하죠.

“예. 프로듀서.”

- 그럼.

아무래도 내가 내 음반을 가지려면 며칠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즐겁게 기다릴 수 있었다.

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문득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소나타 1번이 다시 연주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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