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스크바의 여명-315화 (315/1,277)

##  315화

8월도 중순에 이르렀다.

덥다고 느껴지던 날씨도 한풀 꺾여서 선선해졌고 바람은 상쾌했다.

난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연습실에서 보내곤 했지만, 종종 벨카에게 이끌려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벨카가 느끼기엔 이런 날씨엔 밖에서 놀아야 한다고 생각되는 모양이었다.

해야 할 일은 많았지만, 난 벨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으므로 가끔 벨카가 연습실에 찾아오면 함께 나가서 놀곤 했다.

“여기요, 벨카.”

“그르르.”

벨카는 내가 쥐고 있는 둥근 도넛 모양의 장난감을 물고 울음소리를 냈다. 몸을 좌우로 흔들며 장난감을 빼앗으려 들었다. 난 그런 벨카와 장난감을 밀고 당기며 줄다리기를 했다.

애견들과 놀아 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 터그tug 놀이였다.

난 벨카와 함께 산책도 하고, 프리스비를 던져 주기도 하고, 들판에 앉아서 쓰다듬어 주기도 했지만, 독일에서 벨카를 위한 터그 장난감을 사 온 이후로 벨카는 나와 터그 놀이를 하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기본적으로 사냥 본능을 응용한 놀이라서 조금 위험할 수도 있는지라, 처음에 빅토르에게 어떻게 벨카와 놀아 주어야 하는지 배웠을 땐 만에 하나 물릴까 싶어 가죽 장갑을 끼기도 했었다. 그러나 벨카는 단 한 번도 실수로 내 손을 무는 경우가 없었고, 난 바로 다음 날부턴 장갑을 벗어 버렸다.

벨카는 장난으로라도 날 물거나 하는 법이 없었다. 작년에 내가 한참 허약했을 무렵, 조금 세게 치대기만 해도 비틀거렸던 것을 벨카는 기억하는 것 같았다.

“자, 여기 있어요.”

이젠 나도 예전 같지 않아서 벨카와 터그 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붙었지만, 사실 대형견인 벨카가 장난감을 물고 당기는 것을 버티는 건 상당히 힘들었다. 그래도 난 벨카와 제대로 놀아 주지도 못하는 건 싫어서 열심히 버텼다.

“…….”

그렇게 장난감을 물고 있던 벨카가 갑자기 멈칫하더니 장난감을 놓았다. 내 손엔 터그 장난감이 덩그러니 남았다. 벨카는 혀를 빼물고 헥헥거리면서 날 올려다보았다.

강아지 훈련에도 일가견이 있는 빅토르에게 배우기로는 이렇게 적당히 힘겨루기를 하다가 주인이 살짝 놓아주어 애견에게 장난감을 건네줌으로서 성취감을 높여 주는 방법이 좋다고 배웠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벨카는 적당히 놀이를 하다가 먼저 알아서 장난감을 놓아 버리곤 했다.

처음엔 터그놀이를 재미없어하는 것인가 생각했는데, 또 건네주면 물고 늘어지다가 적당히 내가 힘들 때쯤이면 놓아 버린다.

그 의미는 명확했다. 벨카는 날 운동시키고 있었다.

처음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땐 약간 황당했었다. 아침마다 산책을 할 때도 벨카는 내게 살짝 벅찰 정도의 페이스를 유지하곤 했으므로, 벨카가 상당히 엄한 트레이너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하하하, 벨카. 다시요.”

하지만 기분이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한숨 돌린 내가 다시 터그 장난감을 내밀자 벨카가 물었고, 또 밀고 당기기가 이어졌다.

확실히 내가 벨카를 운동시키는 것인지 벨카가 날 운동시키는 것인지 아리송했지만, 그건 그리 신경 쓸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나와 벨카 사이에 유대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벨카가 날 얼마나 좋아하는진 의심할 것도 없었고, 꼭 주인과 애견이라는 상하관계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난 벨카와 친구로 지내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렇게 얼마나 놀아 주었을까.

벨카가 몇 번이나 날 봐주었지만 그래도 힘든 건 어쩔 수 없었다. 난 벤치에 앉으며 터그 장난감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지쳐서 더 이상 못 하겠다.

벨카는 나와 조금 더 놀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내 체력이 그리 좋지 못하단 건 잘 아는지 투정을 부리거나 하진 않고 내 옆에 얌전히 앉았다. 난 웃으며 벨카를 쓰다듬어 주었다.

“조금만 더 있다가 들어가도록 해요.”

“왕.”

“우후후.”

벤치에 앉아서 벨카를 쓰다듬으며 한적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정말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좋았다.

산책이나 조금 하다가 연습실로 돌아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스마트폰이 울었다. 아나스타샤였다.

“안녕하세요. 아나스타샤.”

- 안녕. 타티아나.

그녀와는 자주 통화를 하곤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듣는 목소리는 반갑다.

아나스타샤는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묻는다.

- 뭐 해?

“놀아요.”

- 연습 중인 거 아니고?

“연습하려고 했는데 벨카가 놀아달라고 해서요.”

아나스타샤는 내가 거의 하루 종일 연습실에 있음을 알기 때문에 내가 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미심쩍어했다. 하지만 벨카의 이름을 대자 웃음을 터뜨렸다.

- 아하하하. 벨카가 널 데리고 나갔구나?

“예.”

- 잘됐네. 그때 부탁해 놓길 잘 했어.

“……부탁이요?”

- 응. 넌 모르겠지만 내가 저번에 벨카에게 특별히 부탁해놓았거든. 하루에 한 번은 꼭 널 데리고 나가 달라고.

“……맙소사.”

난 기가 막혀서 중얼거렸다.

스마트폰을 귀에서 조금 떼어 놓고 옆에 있는 벨카를 내려다보았다. 벨카는 똘망똘망한 눈을 들고 날 바라보았다. 벨카, 진짜예요? 아나스타샤가 부탁했나요?

벨카는 말이 없었지만 난 상황 파악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말했다.

“벨카가 저에게 혹독했던 것이 아나스타샤 때문이었군요?”

- 뭐?

“절 운동시키려 한다고요!”

- 어? 어?

왁 소리를 치자 그녀가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난 요즘 들어 벨카가 종종 놀아 달라고 보챈다는 것과, 벨카와 놀기 위해 터그 장난감 같은 것을 가지고 나가면 벨카가 놀면서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내가 운동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을 그대로 전했다.

아나스타샤는 그야말로 빵 터져서 박장대소를 했다.

- 아하하하하! 벨카가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는 게 정말이었네! 부탁을 하니까 들어주기도 하고.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다 알아듣는다고요.”

벨카가 얼마나 영리한진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난 종종 벨카와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한다는 기분까지 느끼곤 한다. 벨카는 보통 똑똑한 것이 아니다.

어쨌든, 그런 벨카가 내 체력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에 기뻐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심정이다. 난 괜히 손을 뻗어 벨카의 목뒤를 마구 문질렀다. 벨카는 마냥 좋아하며 꼬리를 흔들었다.

평범한 일상 이야기들이 지나가고, 아나스타샤가 약간 스마트폰에 입을 더 가까이 가져다 댄 것처럼 가까이에서 말했다.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 아무튼, 타티아나. 지금 인터넷에서 한창 난리더라. 네 음반.

“그런가요?”

- 안 찾아봤어?

“처음엔 했었는데 지금은 안 해요.”

- 아, 다른 연주자들 이름이 자꾸 나와서 부담된다고 했었지 너.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 죄스러워서요.”

난 음반을 내고 나면 정말 아무 걱정할 것 없이 구경만 하면 되리라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엉뚱한 프로 연주자들의 이름이 너무 많이 거론되고 있었다.

정말 온갖 걱정들이 다 들었다. 내가 연주회를 자주 하다 보면 사람들이 내 연주의 특징을 짚어 낼 때가 올 테고, 언젠간 반드시 탄로 나게 될 텐데 그때 잔뜩 비난이라도 당한다면 슬플 것 같다.

애초에 굉장히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음반이기에 비난을 당할 각오는 하고 있었고 후회도 없었으나, 그래도 다른 피아노 연주자들이 기분 나쁘다는 듯 비난하면 견디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곤 했다.

결국 나와 마카로프 프로듀서가 모두 감내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는 있지만, 난 나도 모르게 아나스타샤의 이름을 불렀다.

“어쩌죠. 아나스타샤.”

- 뭘 어떡해?

“기분 나빠하실지도 모르잖아요.”

- 누가? 언급된 연주자들이?

“예.”

- ……타티아나.

아나스타샤는 조용히 내 이름을 부르더니, 푹 찔러 온다.

- 너 바보지.

“……예?”

- 얘는 정말……. 왜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그래?

“쓸데없어요?”

- 그럼. 쓸데없지. 네 프로듀서한텐 이야기해 봤어?

“……예.”

- 뭐래?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하시던데요.”

- 당연히 그렇게 말했겠지.

마카로프 프로듀서는 딱 잘라서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했으나 신경이 쓰이는 난 그럴 수 없었을 뿐이다. 하지만 같은 연주자인 아나스타샤도 똑같은 말을 하니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곁에 다가와 토닥이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

- 잘 생각해 봐. 지금 애초에 네 음반이 이슈화되어 가는 이유가 뭐겠어?

“음……. 이름이 없어서요?”

- 그것도 그런데.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말이지.

아나스타샤는 내가 분명 목표로 하고 있지만, 늘 불안해하는 지점을 분명하게 문장으로 말해 주었다.

- 네 곡들이 그만 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

- 음반에 이름을 넣지 않고 무료로 나누어 준 것이 이렇게 이슈화되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정말 바보 같은 소리지. 세상 어떤 물건이든 출처가 모호한 것들은 무시당하게 되어 있어. 당연한 거야, 그건.

사실 내 음반은 프로모션이 극도로 불리한 음반이었다. 연주자의 이름을 내세울 수도 없었고, 때문에 초도 물량을 무료로 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무료로 푼다면 연주자의 이름을 광고라도 해야 할 텐데, 그것도 아니니 사람들 사이에선 이 음반에 뭔가 이상한 의도가 잠재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로선 억울한 음모론이었지만 그런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음모론은 아주 극소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음반을 듣고, 연주자를 찾아내는 것에 그야말로 혈안이 되어 있었다.

- 그런데 네 음반은 무시당하긴커녕 사람들이 연주자를 궁금해하고 있지.

“예.”

- 이런 곡이라면 반드시 그에 걸맞은 연주자가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궁금해하고, 찾고 있는 거야. 보잘 것 없는 곡이었다면 연주자를 궁금해 했을 것 같니?

“…….”

바로 무시당했겠지.

6천 장이 아니라 60만 장을 찍어 냈더라도, 곡을 들어 본 사람들이 자신들이 느낀 감상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궁금한 점을 알아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면 아무런 반향도 없었을 것이고 순식간에 잊혔을 것이다.

사실 지금 꽤나 격렬한 반응이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것만으로도 난 어느 정도 곡에 대한 가치를 증명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물론 아주 초기였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될진 아무도 모르지만.

아나스타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약간 더 상황을 잘 볼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잘못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잘되고 있었고,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 내고 있었다. 마카로프 프로듀서는 날마다 문의 전화에 죽겠다며 행복한 비명을 토해 내고 있었고, 그건 아나스타샤의 말대로 내 음반에 마땅한 가치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생각을 조금 더 정리하는데, 그녀가 말했다.

- 그런 과정에서 다른 유명 피아니스트들이 언급된다는 건 네가 걱정해야 할 일이 아니라 기뻐하고 뿌듯해야 할 일이야. 애초에 네가 바란 것 아니었어?

“아뇨, 전 그저…….”

- 아, 그 연주자들이 혹여나 기분 나빠할까 봐 걱정할 수는 있겠네.

이상한 음모론도 나도는 것을 보면서 난 아무래도 그런 사람도 있지 않을까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나스타샤는 내 걱정을 모조리 날려 버리는 웃음으로 말했다.

- 그런데 있잖아, 기분 좋아하면 좋아하지 나빠할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해.

“없을까요……?”

- 없을 거야. 생각해 봐. 나중에 네 정체가 알려지더라도, 단지 실력만으로 권위를 떠올리게 할 정도의 후배 연주자를 미워할 사람이 있겠어? 적어도 난 전 세계에 있을 우리 선배들 중에는 없다고 믿어.

“…….”

전 세계에 있는 피아노 연주자들은 한정된 명예의 스포트라이트를 놓고 경쟁하는 경쟁자이기도 하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예술 중에서도 음악, 거기에서도 피아노라는 좁은 예술을 하며 서로 협력하고 응원하는 관계였다.

질시와 경쟁은 모든 사람들을 발전시키는 아주 큰 성장력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커다란 공동체 의식이 없었다면 아마 문화라는 것이 지금처럼 이렇게 찬란하게 남아 있을 순 없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았다. 새파랗게 어린 후배 연주자가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음반을 냈는데, 그 음반의 연주자로 오해받았다고 해서 화가 날까?

음반의 내용이 엉망이라면 화가 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내 음반이 그렇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내 불안은 세상에 처음 음반을 냈다는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최선을 다해 세상에 내놓은 것이니 후회도 없고 불안하지도 않다고 생각은 하지만, 무의식중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내 불안일 뿐.

아나스타샤의 말이 옳았다.

“제 생각이 짧았어요.”

- 칭찬을 들으면 들었지 절대 네 걱정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냥 즐겨도 돼. 재밌잖아? 멋대로 추측하는거.

“즐기기는 조금 힘든데요. 아나스타샤.”

- 뭐 어때.

난 마음이 조금 편해진 상태로 아나스타샤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중요한 것을 빠뜨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튼 아나스타샤. 음……. 제 음반은 나중에 선물할게요. 지금은 제가 가지고 있는 것도 없어서요.”

- 응. 나중에 줘도 돼.

하지만 아나스타샤는 쿨하게 대답했다.

- 난 거기에 있었잖아?

아나스타샤가 자신 있게 내 음반에 가치가 있다고 답한 건, 친구로서 하는 공치사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 있어 줬으니까.

난 다시 한 번 아나스타샤에 대한 감사를 느낀다. 사실 그때 아나스타샤가 없었더라면, 난 라흐마니노프를 제대로 녹음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나스타샤는 내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정말 많은 힘이 되었던 것이다.

“고마워요. 아나스타샤.”

- 아하핫, 별말씀을.

그녀는 경쾌하게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중요한 건 이번 달 음악 매거진 등에서 평론이 혹 나온다면 어떻게 나올지, 잘 봐야 한다는 것 정도였다.

대중들의 평가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아무래도 권위 있는 평론가나 음악가들이 글로 적어 낸 평론은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하게는 그 평론에 따라 전체적인 평가가 움직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 때문에 난 음반에 대한 평론이 어떻게 나올지 각오는 했지만 두렵기도 했다. 조금만 늦게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딱 하나, 빨리 나왔으면 하고 손꼽아 기다리는 평론도 있었다.

“…….”

에르네스트는 들어 봤을까?

음반을 건네준 지 한참이나 되었다. 어디 구석에 던져 놓지 않았다면 호기심으로라도 들어 봤을 것이다.

혹시나, 만에 하나,

내 연주라는 것을 알아차려 준다면…….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무언가 연락이 없는 것을 보면 아마 음반 매장에서 덤으로 얻은 음반이 내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 하고 있는 듯하다.

기대가 조금은 있었기 때문에 약간 실망스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그것이 에르네스트의 잘못은 아니었다. 난 그의 앞에서 음반에 있는 곡들을 연주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로선 처음 듣는 곡들일 것이다.

솔직히 입장을 바꿔 내가 에르네스트의 상황이었더라도 연주자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맞히긴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가 오랜 시간 함께 하긴 했지만 그래 봐야 1년. 모르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객관적인 평가라도 듣고 싶었다.

무엇이라도 좋으니까 에르네스트가 전화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

- 타티아나?

“아, 예. 아나스타샤.”

순간 딴생각을 하느라 아나스타샤의 목소리를 놓쳤다. 난 급히 다시 말했고 아나스타샤는 무슨 생각 했냐며 물었다. 난 선뜻 에르네스트에겐 음반이 있다고 말하지 못했다.

빨리 아나스타샤에게도 내 음반을 줘야겠다. 일단 전화를 끊고 나면 마카로프 프로듀서에게 연락해서 언제쯤 방문하실 수 있느냐고 다시 물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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